아메리칸 더트
제닌 커민스 지음, 노진선 옮김 / 쌤앤파커스 / 2021년 2월
평점 :
절판



표지가 마음을 사로 잡았고 오프라 윈프리 북클럽이 선정한 최고의 소설이란 말에 매료되었다.

<아메리칸 더트>는 난민의 애환을 담은 픽션이다. 

하지만 난민의 존재와 그들의 삶은 모두 사실이다. 


조카의 성인식 파티가 열리던 날, 18명의 대가족이 집 마당에 모여 파티를 열고 있었다.

그 때 총소리가 빗발치고 엄마 리디아와 8살 아들 루카는 화장실에 숨어 운좋게 목숨을 건진다.

아빠이자 남편 세바스티안을 포함한 일가족 16명이 그 자리에서 총에 맞아 숨진다. 

총소리가 사라지고 사내들이 떠나간 후 리디아는 경찰을 부르지만, 현장을 조사하는 경찰들 내부에도 카르텔의 돈을 받아 일하는 부패 경찰이 있다는 사실을 리디아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집에 남아 있을 경우 리디아와 루카 또한 목숨을 부지할 수 없기에 곧장 짐을 싸서 떠난다. 

장례식도 치르지 못하고 사건 현장을 떠나는 리디아를 보면서도 경찰 또한 그녀가 그렇게 서둘러 떠나야만 한다는 사실을 이해한다. 


멕시코 카르텔 조직에 대한 기사를 썼던 기자 남편은 그 전부터 카르텔에 대한 기사를 게재하고 목숨의 위협을 받았던 적이 있다. 

리디아는 갱단이 들이닥쳐 일가족을 살해했을 때 바로 알았다. 그것은 보복이라는 것을. 


리디아는 어린 아들과 함께 북쪽으로 향한다.

온두라스, 과테말라 등 많은 난민들이 생존과 안전을 위해 향하는 엘 노르테로.

중산층의 삶을 살던 리디아는 한 순간에 꾀죄죄한 난민들과 섞여 기나긴 여정에 오르지만, 

카르텔 조직원은 전국 곳곳에 숨어있었기에 한시도 마음을 놓지 못한다.


카르텔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미국 땅을 밟는 것은 이들에게 생존을 위한 필수 요건이다.

수많은 난민들이 엘 노르테로 가기 위해 화물열차에 무단 탑승하고 열차 지붕에 앉아 수천 킬로를 이동한다. 

달리는 열차에 탑승하려다 열차 바퀴에 짓이겨지고 목숨을 잃는 일이 다반사다.


엘 노르테로 향하던 중 모자는 솔레다드와 레베카라는 자매를 만나게 된다.

특히 언니 솔레다드는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심각한 부작용을 야기할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다. 

아름다운 그녀와 마주치는 난민들은 하나같이 힘든 여정이 될 것이라는 말을 던진다.  

자매 또한 카르텔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 엘 노르테로 향하고 있었고 이미 수차례 난민 길에 오르고 화물열차에 탑승해본 적이 있었기에 모자는 자매와 함께 하기로 결심한다. 


열차를 이용하는 데에는 두가지 위험성이 있는데 열차에 탑승하는 일 그 자체와 불법이민자 단속반이다. 

이 단속반이 진짜 정부에서 나온 것 일수도 있고 불법이민자를 단속하는 불법 단속반 일수도 있지만 이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진짜 정부에서 나온 단속반 마저도 카르텔 조직원이라면 같은 결과를 맞기 때문이다. 


노련한 자매를 만나 달리는 열차에 탑승하기 좋은 방법을 배우고 그렇게 무사히 북으로, 북으로 향하던 어느 날 열차를 덮친 단속반에 잡혀가게 된다. 

리디아는 멕시코 사람이었기에 사실 불법이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가지고 있던 현금을 모두 단속반에 건네어 위기를 벗어나지만,

솔레다드, 레베카 자매는 굶주린 남자들에게 팔려갈 운명에 처하게 된다.

리디아에게 남은 현금은 국경을 넘는 것을 도와줄 코요테에게 줄 몸 값밖에 없었지만, 자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그 돈을 모두 지불한다.


마침내 미국과 닿은 국경 마을에 도달했을 때, 장벽과 철책 너머에서 휘날리고 있는 미국 깃발은 마치 오늘 아침에 새 것으로 교체한 듯 반짝인다. 반면 그들 쪽에서 휘날리는 멕시코 깃발은 빨간색이 바래다 못해 핑크색에 가깝다. 


보안이 그나마 허술한 국경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사막을 건너야 한다. 그 길은 위험천만하지만 국경을 넘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고 모자, 자매를 포함한 수십 명의 난민들은 코요테를 따라 목숨을 건 마지막 길을 나선다.

북쪽으로 향하기 시작하면 절대, 어떤 일이 있어도 뒤를 돌아봐선 안된다는 철칙을 가슴에 품고 머리에 새긴 난민들. 


멕시코는 범죄 사건 미해결율이 90%를 넘는다고 한다. 

마약왕이라 불리는 카르텔이 도시와 국가를 장악하고 살인을 일삼지만 돈으로 매수된 경찰, 정부는 카르텔의 행패를 눈감아준다.

16명 대가족이 한낮에 살해되었으나 생존자는 경찰을 믿지 못하고 자립적으로 도망쳐야 한다니 안전한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다. 


미국 국경을 넘고자 하는 난민이 넘쳐 난다는 이야기는 뉴스를 통해 한번씩 접했었다.

나는 부끄럽게도 난민들이 미국 땅을 밟으려는 이유가 그들이 그저 미국의 부와 안전을 “탐하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메리칸 더트>를 통해 난민이 무엇으로부터 조국을 떠나려 하는 것인지,

그리고 그 이유가 우리에겐 얼마나 낯설고 비현실적인지 알 수 있었다.


작가 제닌 커민스는 난민이 아니다. 

그런 자신이 난민에 대한 책을 내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녀는 되려 이런 이야기는 어떻게 해서든지 더 많이, 더 널리 알려져야 한다는 조언을 받았다고 한다. 


아침 출근 길에 공중전화 부스에서 잘려나간 머리를 발견하고,

저녁 퇴근 길에 총성을 듣고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는 사람을 발견하고,

너무도 억울하게 사랑하는 이를 잃었지만 경찰은 범인을 찾아주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삶.

불법 이민에 성공한 후에도 정식 이민 신청을 위해서는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지만 

그저 남들처럼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학교에 가고 일을 하는 삶을 위해 조국을 떠날 수밖에 없는 자들에게 범 지구적 측면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을까.


전쟁과 같은 참사가 일어났을 때 여자는 언제나 희생양이 된다.

이런 난민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솔레다드는 눈부신 외모를 가지고 태어났지만 그녀가 살아온 세상에서 그것은 장점이 아니다. 목숨을 앗아가게 만드는 결함이다.


"남자들에게는 자신과 두 자매가 무언가를 상징한다는 걸 알고 있다. 가정처럼 보이기도 하고, 구원처럼 보이기도 하고, 먹이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메리칸 더트>는 내 최애 작가인 프레드릭 베크만을 떠올리게 했다.

3인칭으로 서술하지만 각각 인물의 감정을 상세히 서술하는 것도 그렇고 짧은 문장 호흡으로 엄청난 몰입감을 주는 것도 그렇다. 

단 한 글자도 놓치고 싶지 않아 천천히 읽었는데도 숨쉴 틈 없는 긴장감을 가지고 따라가다 보니 어느 새 마지막 장…


국가를 선택하고 태어난 사람은 없다.

하지만 태어난 후 국가가 국가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면, 국가를 선택할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국가는 국가의 기능을 하지 못하기에 국가를 선택할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를 주지 못한다.

이러한 비극은 아직까지도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있고, 그들은 비극을 벗어나기 위해 목숨을 건 길을 나선다.


다 읽어버렸다는 것이 너무 아쉬워졌던 책이다. 

아마도 올해, 아니 평생 최고의 책 중 한 권으로 남지 않을까 싶다.


“Tambien de este lado hay suenos.”

장벽 이쪽에도 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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