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게 갔었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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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발간된 <아버지에게 갔었어>는 신경숙 작가가 오랜만에 선보이는 장편이다. 2008년에 출간된 <엄마를 부탁해>의 아버지 버전이라고 할까. <엄마를 부탁해>가 절절한 엄마의 이야기였다면 <아버지에게 갔었어>는 너무 담담하게 말해서 더 가슴 아픈 아버지의 이야기였다.

깊은 물이 더 고요히 흐르는 법이듯 아버지의 외롭고 고된 삶이 너무 단단해서 하나씩 열어 보기 겁이 났을, 그래서 더 모르고 싶고 알려고 하지 않았던 그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주인공 헌이는 딸을 잃은 아픔을 안고 사는 작가다. 어느 날 엄마가 갑작스런 병환으로 서울병원에 입원하게 되자 그녀는 혼자 남을 아버지를 위해 J시로 향한다. 평소 연락도 왕래도 뜸했던 그녀를 J시로 향하게 한 건 아버지가 울었다는 여동생의 한마디였다.

J시에 도착해 아버지와 함께 지내면서 그녀는 아버지가 원인 모를 수면장애를 앓고 있고 그 때문인지 기억도 온전치 않음을 알게 된다. 커다랗고 단단했던 아버지의 눈물. 아버지에겐 어떤 아픔이 있었기에 밤만 되면 찾기 힘든 곳으로 숨어 들어가 다음 날이면 기억도 못할 눈물을 서글프게도 흘리는 걸까.

그녀는 아버지의 삶을 그녀의 어렴풋한 기억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로 되짚어가면서 아버지라는 한 인간의 뒷모습을 바라보게 되었다.

 

나는 내 아버지의 말도 제대로 들어 본 적이 없었다는 생각. 아버지의 슬픔과 고통을 아버지 뇌만 기억하도록 두었구나, 싶은 자각이 들었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부모 형제를 잃고 일찍 가장이 되어버린 아버지. 참혹했던 전쟁과 치열했던 현대사를 거치면서 그는 죽을 힘을 다해 여섯 아이를 키워냈고 또한 그들을 지극한 마음으로 사랑해냈다.

 

너는 언지나 근사해따

나는 아버지가 되어서 너의 힘이 돼주지는 모타고 니 어깨만 무겁게 햇지마는

너는 언지나 근사해따

 

나는 바라는 거시 업따

하늘 아래 니 몸 건강한 거 그거면 된다

 

배움은 짧았어도 꿈을 가진 적도 있었고

잠시나마 사랑이란 걸 해본 적도 있었고

포마드 기름을 머리에 바르고 거리를 누비기도 했던 아버지.

하지만 먹성 좋은 여섯 아이가 달려들면 그 무게가 무거워 두려워지기까지 했던 젊은 아버지.

그 아버지가 이제 조용히 주변을 정리하고 작별을 준비하면서 나지막히 속삭인다.

살아내었다고.

 

눈물이 핑 돌아 괜히 눈을 부릅뜨고 코를 불며 참았던 마지막 문장이다.

헌이가 유일하게 부러웠던 순간이기도 했다.

늙어가는 부모를 볼 수 있음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싶어서, 그 부모의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기억할 수 있음이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싶어서. 너무 젊은 날 허망하게 가버린 나의 아버지. 작별의 준비란 없었다. 책을 덮으면서 살아내지못한 아버지의 뒷모습이 너무 그리웠다.

 

신경숙은 그런 작가다. 감정을 그림처럼 그려놓는 사람. 그녀의 작품을 오랫동안 읽어온 독자로서 그럼에도 써야만 했던그녀의 복귀가 반갑다. 사전서평단이란 걸 처음 신청하면서도 나의 신청 사유는 신경숙이니까였다. 그녀의 따뜻한 작품을 다시 보게 되어서, 게다가 먼저 보게 되어서 무척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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