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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열걸 1
미야기 아야코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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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데도 진도가 잘 나가지 않는 소설이 있다.
얼마 전 10년 만에 다시 읽은 소설이 그랬고, 그저께 다 읽은 『교열걸』도 그랬다. 반대로 재미가 없는데도 진도만 잘 나가는 소설도 있다. 이 얘긴 나중에 하기로 하고… 우선 재미있는데도 책장을 넘기기가 힘든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10년 만에 다시 읽은 소설은 그 당시 느꼈던 설렘이 되살아나 가슴이 벅차고 머릿속에서 상상하느라 책장을 넘기기가 힘들었다. 『교열걸』은 채널J에서 드라마로 먼저 접했기 때문에 읽는 내내 등장인물의 말투와 표정, 행동거지 그리고 옷차림이 되살아났다. 머릿속에서 해당 배우의 목소리로 대사를 읊어대는 것이었다. 한 명 한 명의 대사를 다 들어 주느라 책장을 넘기는 데 시간이 걸렸다. 요 수다쟁이들 같으니라고!

『교열걸』의 주인공 고노 에쓰코는 종합 출판사 '경범사'에 다닌다. 원래 패션 잡지 《라시》의 편집자가 되고 싶어서 경범사에 지원했지만, 문예 교열부로 발령이 나고 어느새 2년이 지났다. 어쩌면 이름이 교열과 비슷해서일지도 모른다.
   고노 에쓰코(河野子, えつこ)
   교열(校, こうえつ)
얼굴이 새송이버섯을 빼닮은 부장은 "성과를 내면 원하는 부서로 옮길 수도 있을 거"라고 한다. 에쓰코는 그 말을 듣고 열심히 문학 작품을 교열한다.

한편으로 에쓰코는 교열부의 눈 밖에 나서 얼른 패션 잡지 쪽으로 이동하려고 일부러 입을 험하게 놀리곤 한다. 시청자와 독자의 입장에서는 할 말을 똑 부러지게 하는 성격의 에쓰코 덕에 속이 다 후련하다. 드라마에서 늘 당하기만 하는 주인공만 보다가 에쓰코 역할을 맡은 이시하라 사토미가 바른말로 다다다다 쏘아붙일 때면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에쓰코는 회사 내에서뿐만 아니라 단체 미팅 자리에서도 잘난 척하는 남자의 코를 납작하게 만드는데, 드라마에서는 순식간에 지나간 이 장면을 책을 통해 차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여자는 차에 대해 모르지 않냐며 은근히 무시하던 남자를 에쓰코가 한 방 먹인 것이다.

"레이싱 팀 드라이버 엔초 페라리와 결별하고 F1에서 페라리사에 참패한 후 경영 부진으로 피아트 그룹에 인수되었는데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비스콘티 가문의 문장을 조합한 엠블럼을 내건 채 영업 중인 알파로메오 말인가요?"

때에 따라서는 작가와 편집자에게도 독설을 서슴지 않는 에쓰코는 그런 성격 덕분에 원고의 오류를 바로잡기도 하고 사적(?)으로 그들을 도와주기도 한다. 그렇다고 꼭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몇 년간 패션 잡지에 연재되었던 에세이가 단행본 출간을 앞두고 에쓰코의 손에 맡겨진다. 오랜 기간 애정을 갖고 읽어 온 그 에세이를 교열하면서 에쓰코는 어쩐지 괴리감을 느낀다. 직장인의 한 달 월급으로는 도저히 구입할 수 없는 고가의 브랜드를 찬양하는 내용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에쓰코는 독자들의 반응을 우려해 원고에 교열 작업 외에 자신의 의견을 적어 넣고, 그 탓에 다른 분야 교열부로 이동하게 된다. 월권을 저지른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잘된 일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교열걸과 주변 인물의 케미도 빠뜨릴 수 없다.
드라마와 소설 속 설정이 똑같은 사람은 새송이버섯 부장, 요네오카, 가이즈카, 모리오, 이마이 정도다. 써 놓고 보니 한두 명을 제외하고는 거의 똑같구나. 새송이버섯 부장은 에쓰코가 폭주하지 않도록 나름대로 잘 붙들어 준다. 성 정체성에 구애받지 않는 요네오카는 교열부에서 패션을 화제로 가장 말이 잘 통하는 동료이고, 모리오는 늘 마감에 허덕이는 입사 동기이자 부럽기 짝이 없는 패션 잡지 편집자다. 낙하산 이마이는 겉모습만 번지르르한 줄 알았더니 의외로 결정적인 순간에 도움을 준다.

후지이와는 문예 편집자로 나오지만 변함없이 철팬 캐릭터다. 고레나가 고레유키(유키오)는 혼고 다이사쿠와 아무 관련이 없을 뿐 꽃미남 모델 작가로 등장해 에쓰코와 썸을 탄다. 유키오를 바라보는 에쓰코의 속마음이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절로 웃음이 터졌다. 

그리고 고레나가의 옆얼굴을 힐끔거렸다. 눈썹은 손질하지 않았는데도 깔끔하니 모양이 좋았고, 연한 속쌍꺼풀 끝에서 이어지는 코는 적당히 오뚝하고 날렵하게 생겼다. 컵에 닿아 눌리는 입술은 보드라워 보였고, 그 입술을 닦는 손가락은 미끈하게 쫙 뻗었다.
아아, 진짜 꽃미남이야. 꽃미남은 전 인류의 보물로 세계유산에 등록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케미가 좋은 사람은 가이즈카다. 드라마에서도 그랬고 소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혼고 다이사쿠의 문제로 에쓰코와 티격태격하는 장면이 가장 흥미진진했다. 읽을수록 줄어드는 페이지가 아쉬웠을 정도로 말이다. 소설에서 가이즈카는 에쓰코를 툭하면 '유토리'라고 부르는데, 드라마에서는 '고-에쓰(교열)'라고 부른다. 드라마에서 에쓰코는 가이즈카를 '타코(문어, 딱히 머리가 벗어진 것도 아닌데 왜 문어일까?)'라고 불렀다. 혹시 소설에 가이즈카의 별명이 왜 '타코'인지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며 읽었지만, 시종일관 이름으로만 불린다. '고-에쓰'와 '타코'는 드라마상의 설정이었던 것이다.

참고로 '타코'는 가이즈카의 이름 때문에 에쓰코가 붙인 별명이다. 매번 자신을 '고-에쓰'로 부르는 가이즈카에게 나름 복수하려고 말이다. 그의 풀 네임은 가이즈카 하치로. 일본에 '타코 하치로(1940-1985)'라는 권투 선수이자 개그맨이 있었는데 '하치로'라는 이름이 똑같이서 '타코 하치로'를 줄여서 '타코'라고만 부른 것이다. 참으로 어이없고 싱거운 두 사람이다.

다시 꽃미남 유키토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에쓰코는 유키토의 잘생긴 얼굴을 좋아한다. 자신의 미모가 더 돋보이도록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치장하는 것을 좋아한다. 세상 사람들은 '얼굴만 밝힌다'며 이런 사고방식을 경멸한다. 그러나 에쓰코는 당당하다. 그리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깨달음을 얻는다. 2년간 교열 일을 하면서 재미와 보람을 느낀 것이다. 외모를 가꾸는 것과 글을 다듬는 작업은 통하는 구석이 있다. 각각 사람의 내면과 글의 내용을 보기 좋고 읽기 편하게 담아 내는 그릇이라는 의미에서 말이다. 패션 잡지 편집부 자리에 잔뜩 눈독을 들이면서도 지금의 교열부에서 성실하게 일해 왔다. 그 결과 가느다랗지만 또렷한 연결고리를 발견한다.

에쓰코에게는 외모가 반반한 것이 정의이며, 외모를 반반하게 꾸미고자 노력하는 것 또한 정의이다. 분야는 다르지만 똑같은 정의가 교열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문학 책을 교열하고 싶어서 출판사에 들어온 요네오카는 일본어를 좀 더 아름답게 가다듬는 작업에서 황홀감을 느낀다고 했다.
패션에 존재하는 규칙은 계절마다 바뀌며, 그 규칙을 배우기 위한 교재가 바로 패션 잡지다. 문장에 존재하는 규칙도 매체와 저자별로 달라진다. 교열은 규칙을 익히고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작업이다. 에쓰코 입장에서는 머나먼 저편이랄까, 다른 우주에 존재하던 패션 잡지와 교열이 오늘 아주 가느다란 끈이기는 하지만 서로 이어진 느낌이었다.


소설 속의 소설도 각각 다른 맛을 자랑한다.
문예 교열부 소속인 에쓰코는 그야말로 다양한 분야의 소설을 교열한다. 처음에는 에로 미스터리(관능 미스터리), 그다음에는 난해한 순문학 『개 같네요』(도대체 리니어모터 소가 뭔지……. 자꾸만 모터쇼로 발음하게 된다), 문예 교열부에서 쫓겨난 뒤로는 패션 에세이, 역사소설, 미식 칼럼까지. 드라마에서는 삽화나 재연 장면으로 빠르게 넘어가는 소설들을 찬찬히 읽는 재미도 썩 괜찮지만, 사실 이 소설들에 대한 에쓰코의 소감이 더 흥미롭긴 하다.

『교열걸』을 드라마로 먼저 접한 독자라면 드라마와 다른 설정을 찾아가며 읽는 재미도 쏠쏠할 것이다. 드라마는 드라마대로, 또 소설은 소설대로 재미있었다. 오랜만에 재미난 소설을 읽느라 이마가 찌르르 저리고 뼈마디가 욱신거렸다. 가슴이 두근거린 것이야 더 말할 것도 없다. 2권에서는 교열걸의 주변 인물을 좀 더 자세히 다룬다고 하니 꼭 읽어 봐야겠다. 그리고 3권에서 어떻게 마무리를 지을지도 무척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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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 번역가 수업 - 호린의 프리랜서 번역가로 멋지게 살기 프리랜서 번역가 수업
박현아 지음 / 세나북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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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 번역가가 된 지 나도 어느새 5년째에 접어든다.

일본 소설 번역가를 목표로 글밥 아카데미에서 공부를 하고 졸업한 지가 벌써 5년이라니.

이번에 몽실북클럽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읽은 『프리랜서 번역가 수업』.

이 책의 저자 역시 5년 차 프리랜서 번역가란다.


책에서 저자는 왜, 어떻게 해서 프리랜서 번역가(이하 '번역가')가 되었는지부터 시작해

현실적인 조언과 번역 작업을 위한 환경, 일감을 따내는 방법,

그리고 번역가의 실제 생활까지 속속들이 알려 준다.

부록처럼 기성 번역가 8명의 인터뷰를 실어서 다양한 분야의 번역가도 소개한다.


이 책의 주요 독자층은 일본어 번역가를 꿈꾸는 이들일 것이다.

그동안 막연하게 번역가를 꿈꾸어 왔다면 이 책을 통해 번역에는 어떤 분야가 있는지,

그래서 자신에게 적합하거나 자신이 하고 싶은 분야는 무엇인지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번역에는 기술 번역, 산업 번역, 출판(도서) 번역, 영상 번역 등이 있는데, 자세한 내용은 '1강 번역에 대해 궁금하다 - 번역 분야에 대해 알아보자'에서 확인할 수 있다.


분야에 따라 접근 방법이 다르니, 덜컥 학원부터 등록하지 말고

철저히 조사하고 올바르게 접근하는 길잡이로 이 책을 이용하길 바란다.

세상에는 꿈꾸는 이들을 등쳐 먹는 업체와 유명인도 있다는 것을 부디 명심했으면 좋겠다.


저자는 '책을 비롯해 관광 안내서, 게임, 홈페이지 등'을 주로 번역한다고 하니

출판과 기술·산업 번역, 특히 기술·산업 쪽이 전문 분야인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프리랜서 번역가 수업』에는 기술·산업 번역에 대한 내용이 중심을 이룬다.


책의 뒷부분에 '번역 관련 추천 도서'가 실려 있다.

일본어 출판 번역가를 꿈꾸는 이라면 권남희 선생님의 『번역에 살고 죽고』를,

영어 출판 번역가는 김우열 님의 『나도 번역 한번 해볼까?』를,

일본어 기술 번역가는 윤지나 님의 『처음부터 실패 없는 일본어 번역』(구 초보 번역사들이 꼭 알아야 할 7가지)을 참고하길 바란다.


꼭 프리랜서 번역가가 아니더라도, 현재 기업에서 일본어 통번역을 맡고 있는 사람이라면

『처음부터 실패 없는 일본어 번역』도 꽤 도움이 될 것이다. 그 밖에 『일본어 통번역 사전』도 유용하다.


쓰다 보니 서평 아닌 서평이 되어 버렸다.

인터넷에 넘쳐 나는 거짓 정보와 홍보성 정보를 거르고

한 권으로 알차게 번역가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싶다면, 이 책 『프리랜서 번역가 수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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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연인
다이라 아즈코 지음, 김은하 옮김 / 글램북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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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지망생의 바이블 같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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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계량스푼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정경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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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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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바 1 - 제152회 나오키상 수상작 오늘의 일본문학 14
니시 카나코 지음, 송태욱 옮김 / 은행나무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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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포니카 자유공책(원제 : 원탁)』으로 처음 만난 니시 가나코.

『자포니카~』의 사랑스러운 주인공과 가족들, 친구들을 떠올리며

그때보다 더 큰 감동을 기대하며 읽기 시작.

 

작년 도쿄국제도서전에서 니시 가나코와 시바사키 도모카의 대담을 들으며

밝은 에너지와 자유로움을 느꼈기에 더더욱 기대하며 읽었다.

 

1권은 아유무의 가족 이야기와 어린 시절, 학창 시절로 구성되어 있는데

아유무의 나이별, 학년별, 나라별 학창 시절 이야기에 푹 빠져 읽는 사이

나의 어린 시절부터 학창 시절까지 절로 떠오르는, 또 그동안 잊고 지냈던 친구들의 얼굴, 소소한 일상까지 떠올라서 독서 반, 추억 반에 젖을 수 있었다.

평소 소설을 읽으며 내 경험이 문득 떠오르는 일은 자주 있었지만,

이렇게 어렸을 때부터 구석구석 떠오르는 일은 처음인 것 같다.

내 기억을 끄집어내준 고마운 소설이긴 하지만.

 

2권에서 갑자기 화자가 독자에게 말을 건다.

내게 말을 걸었는데,

어쩐지 방해받는 기분이 들었고 흐름이 깨지는 것 같았고

들킨 것 같았다.

 

성인이 되어 어려움을 겪는 아유무.

그 어려움이라는 건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덜 극적이었고 작위적이었고

착한 사람이 무리해서 쓴 나쁜 이야기 같았다.

 

갑자기 깨달음을 얻은 아유무의 누나는

나를 가르치려 드는 것 같았다.

 

자유로운 영혼인 아유무의 이모는

왜 늘 이모는 저런 사람이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통속적이었다.

 

마지막으로 '사라바'는

어린 시절의 그것은 애틋함 속에 힘이 있었지만

어른이 된 후의 그것은, 한때 반짝이다 사라진 '사토라코몬사마'보다 못했다.

 

 

기대를 너무 해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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