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어디에도 없었던 방법으로
테라오 겐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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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과 출산 전에는 미세먼지 같은 것에 별 관심도 없었던 나.
아이가 있으면 공기청정기는 필수라며 회사 아줌마들이 발뮤다를추천했다. 사실 어느 나라 브랜드인지도 몰랐고 어디선가 들어본 듯하다 했더니 버뮤다 삼각지대와 발음이 비슷했다. 심지어 발뮤다를 검색하면 “버뮤다 공기청정기”라고 연관검색어가 뜬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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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뮤다의 경영이나 디자인 노하우를 이야기하는 책이라 생각했던나의 예상과는 달리, 이 책은 발뮤다의 창업자 테라오 겐의 자전적이야기를 담은 에세이였다. 그는 정규교육을 제대로 받고 착실히 경영자 수업을 받거나 디자이너로 경험을 쌓아온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부모님은 이혼하고, 어머니는 갑작스런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양아치같이 살다가 열일곱살에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음악에 빠져 느닷없이 곡을 쓰고 밴드를 하던 뮤지션이었다. 발뮤다를 창업하기까지의 과정도 참으로 뜬금없고 맨땅에 헤딩하는 식이라, 잘되었으니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으면 어쩔 뻔했나 싶기도 했다. 그러나 책을 읽는 내내 하나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무엇을 하든 진심으로 최선을 다해 달려드는 모습. 그것이 테라오 겐의 모토라는 걸. 어찌보면 디자인이나 경영노하우를 담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이미 기성세대가 되어버린 나의 선입견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나보다 나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순수한 어린 소년같았다. 눈을 빛내며 자신의 꾸는 꿈에 대해 이야기하고 믿는 구석도 없이 맨몸으로 도전한다. 한계에 부딪히고 실패를 경험해도 어떻게 해서든 방법을 찾아내 꿈을 이룬다.

p.105
언제든지 진심으로 진지하게 살아갈 것. 무엇보다 소중한 가르침이었다. 그동안 수많은 실패를 경험하고, 고민하고, 방황했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가진 가치관이나 살아가는 방법을 의심한 적은 없었다.
p.256
꿈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지만, 꿈을 꾼 사람이 느끼는 만큼 다른사람이 느낄 수는 없다. 나는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꿈을 꿨다. 그 꿈을 위해 정말 많은 경험을 했다. 그리고 그동안의 경험에서 미루어봤을 때, 이번 꿈은 틀림없는 진짜다. 내가 가진 거라고는 꿈뿐이었다. 탈탈 털어도 나올 건 그것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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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패기와 열정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건 서로 헤어졌음에도 아이들에게 나름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했던 그의 부모의 모습이었다. 그의 지칠줄 모르는 도전정신과 끊임없이 품고 또 실현시켜가는 꿈들은 그를 이렇게 키워낸 부모님에게서 비롯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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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4
그때 봤던 아버지의 모습, 사람이 진심을 다해 어떤 일에 전념할 때 뿜어내는 기운을 그렇게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던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진심은 많은 것을 움직이게 한다. 어떤 꿈을 꾸든, 무엇을 목표로 하든, 그건 자유다. 경험이 없으면 모르는 게 당연하다. 무지를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모르는 게 있다면 알고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된다.
p.105
나는 정말 멋진 가정에서 자랐다. 그곳은 제멋대로에 막돼먹은 사람들이 손수 만든 집이었다. 상식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면 실패한 집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부족한 것도 많았지만, 꼭 필요한 것들은 대체로 갖추고 있었다. 특히 사람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은 넘치도록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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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나이를 먹고 많은 사람들을 만날수록, 또 아이를 낳고 조금씩 부모가 되어갈수록, 가정과 부모가 한 사람에게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지 느끼게 된다. 공기청정기로 시작해 우리 은총이를 더 최선을 다해 키워야겠다는 다짐으로 끝나는 오늘의 책 읽기. 테라오 겐의 마지막 말을 다시 한번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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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93
꿈은 어떤 상황에서도 품을 수 있다.
또 어떤 상황에서라도 내가 꾼 꿈에 가까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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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기억 못하겠지만 아르테 미스터리 1
후지마루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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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일본 드라마나 일본 소설이 보고싶어질 때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나오기 힘든 설정이나 상상, 특유의 분위기.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기에 킬링타임용으로 적합하다.
아르테 책수집가로 마지막 책인줄만 알았던 존레논의 말과 question에 이어, 은근히(?) 궁금해서 읽고 싶던 “너는 기억 못하겠지만”이 도착했을 때는 정말 깜짝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젊은 세대를 타깃으로 한 만화풍 책표지, 캐릭터성을 부각시킨 등장인물, 대화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진행되는 라이트노블은 한 두권만 읽어도 금세 파악이 된다. 금방 읽을 수 있고, 딱히 남는 건 없지만 읽는 순간에는 즐겁다. 마침 어떤 인친님의 피드에서 역시 이런 감상평을 읽은 것도 한 몫했다. 그닥 남을 건 없겠지만 요즘 너무 피곤하니까 가벼운 책 좀 봐야지.
고등학생 사쿠라 신지는 어느날 동급생 하나모리 유키에게서 ‘사신’ 아르바이트를 제안받는다. 시급 300엔. 시간외 수당이나 교통비도 없다. 미련이 남아 이 세상을 떠나지 못하는 ‘사자’의 소원을 들어주고 저세상으로 보내주는 일을 한다.
마치 한때 열심히 봤던 드라마 “도깨비”를 소설로 보는 느낌이었다. 여러가지 사연을 가지고 저 세상으로 가지 못하고 이승을 떠도는 사자들. 미련을 해소하기 위해 주어진 ‘추가시간’이 있는 세상에서는 그들의 죽음이 무효화 된 상태가 되지만, 이 시간은 제한적이다. 추가시간이 끝나면 사자들과 관련된 어떠한 기억도 남지 않고 사라져버린다.
표지나 캐릭터는 가벼울 지 몰라도 내용만큼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아동 학대처럼, 내가 엄마가 된 이후로 보기 괴로운 내용들도 있어 소설임에도 마음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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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29
신은 왜 이런 고통을 줄까 고민했다는 것. 행복은 찾을 수 없으리라고 여겼다는 것. 하지만 뜻밖에 행복은 가까이 있었다는 것. 분명 이 사소한 일상이야말로 행복이라는 것.
p.334
행복은 뭘까. 먼 기억 속 누군가가 물었다.
이제는 안다. 지금이 행복함을 아는 게 행복임을.
잃기 전에 깨닫는 것.
잃었더라도 행복했음을 기억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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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 아르바이트’라는 황당한 소재로 시작해서 삶의 의미를, 현재에 충실하고 소소한 일상에 만족하는 행복을 이야기한다. 가볍게 시작했지만 왠지 모르게 먹먹해져서 마지막 장을 덮었다.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는 소설이라 다행이다. 마지막인줄 알았는데 좀 더 아르테 책을 만나게 된 것도 다행이다. 소소한 기쁨이 이어지는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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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레논의 말
켄 로런스 지음, 이승열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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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레논은 가장 위대한 뮤지션이고, 유일무이한 존재이다. 나는 그를 무척 존경한다(프레디 머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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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is what happens when you are making other plans.
우리가 다른 계획을 세우는 데 정신이 팔린 사이에 벌어지는 것이 인생이죠.
(2005.2.14 <오스트레일리안>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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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 시부모님 찬스를 이용해 못볼줄 알았던 보헤미안 랩소디를 봤다. 생각보다 영화는 더 좋았고 한동안 퀸의 노래들을 흥얼거렸다.
퀸과 비틀즈의 세대는 아니지만 라디오에서 나오던 그들의 음악을 좋아했다. 매사에 뭐 그리 고민이 많았는지 날마다 한숨을 쉬고일기를 쓰고 편지를 쓰고 시험성적이 나쁠까봐 걱정하고 친구관계에 스트레스 받던 학창시절, Let it be만 수십번을 반복해서 듣기도 했었다. 그리고 내가 애정하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에 반드시 언급되는 뮤지션이기도 하다. 그의 책들을 읽고 있으면 또 비틀즈의 노래가 듣고 싶어지기도.
존 레논이 했던 말들로 이루어진 책. 익히 알고 있는 유명한 말도, 이런 이야기도 했구나 싶은 말도, 굳이 이런 의미없는 말까지 인용해야하나 싶은 말들도 있다. 책수집가 1기의 마지막을 기념하며..라기보다는 배가 고파 난리가 난 우리집 딸내미의 이유식을 중탕하며 한 장 한 장 넘기던 중 존 레논이 했었다는 저 말이 내 마음에꽂혔다. 이유식을 중탕하며 존 레논을 추억하는 것, 이것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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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 나와 세상을 마주하기 위한 365개의 물음
다나카 미치 지음, 배윤지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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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테 책수집가 1기라는 특별한 기쁨에 설렜던 때가 엊그제같은데, 어느새 마지막 책들을 읽고 있다.
성실하고 꼼꼼하게 책들을 읽고 여유있게 리뷰도 올리고 다른 1기들의 리뷰도 읽어보고 이러고 싶었지만 현실은...이앓이하고 이유식하고 독감걸리고 병원다니고 날마다 버라이어티한 6개월짜리 꼬맹이(이젠 7개월)를 키우며 책을 그냥 읽는 것 조차도 쉽지 않았다.
아쉬움이 남는다. 내가 싱글이었다면? 내가 아이가 없었다면? 내가 일찍 아이를 낳아 벌써 저만치 키웠더라면? 좀 더 다른 책읽기가 되었을까?
내가 스스로에게 하는 질문들을 생각해보니, 이렇게 주로 내가 가지 않은 길, 혹은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 나와 다른 사람들에 대한 비교나 질투나 아쉬움이나 단순한 상상..이런 것들이 많았다.
평상시에는 난 질문을 거의 하지 않는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거나 궁금해하기보다는 주어진 것에 적응하고 그냥 받아들이는 편이다. 창의력이 떨어지고, 고지식하다. 환경이나 상황이 급변하는 것에 매우 스트레스를 받는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이 책은 맨 앞 장부터 마지막까지 전부 질문으로 되어있다. 매우 신기하면서도 생소했다. 이 책의 의도는 무엇일까? 질문만으로도 책이 만들어지는구나. 책의 왼쪽은 영어로, 오른쪽은 우리말로 된 질문이 총 365개. 책 맨 앞쪽의 영어로 된 질문은 책의 맨 마지막 장의 우리말로 된 질문과 같다. 어느쪽에서부터 읽을지라도 서로 다른 언어로 이루어진 질문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교차하게 된다. 이 모습 자체가 하나의 예술로 보여질수도 있겠다.
질문은 “투명인간이 되면 제일 먼저 어디로 가고 싶습니까?”같이 흔히 생각할 수 있는 평범한 질문부터 “10월 1일에 시작했을 때 너무 늦은 일이 있을까요?”같은 독특한 질문들도 있다. “커피와 차 중에서 보통 무얼 마시나요?”와 같이 단순한 질문이 있는가 하면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부터 거짓말도 할 수 있게 된 걸까요?”와 같은 심오한 질문도 있다.
정답은 없고 질문만 있는 책. “나와 세계를 마주하기 위한 365개의 물음”이라는 부제처럼, 질문들에 대한 나의 대답은 곧 나 자신이 된다. 팔랑팔랑 페이지를 넘겨 30분도 안되어 마지막장까지 읽을수도, 한 페이지의 질문을 보며 하루종일 생각할수도 있는 책. 나는 어떤 질문들로, 그리고 또 어떤 답들로 2019년을 채워가게 될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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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내셔널의 밤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박솔뫼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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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테에서 새로이 출간된 한국소설 작은책 시리즈. [안락]에 이어 두번째 작은책과의 만남이었던 [인터내셔널의 밤]
작가의 이름 만큼이나 이 책은 내게 쉽지 않았다. 서술의 방식도 이리저리 바뀌는 시점도 그리고 친절하지 않은 묘사도. 아니, 등장인물의 정보제공이라 해야하나. 책장이 쉬이 넘어가지 않더니 리뷰 역시 정리되지 않아 버벅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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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91
나는 혼자 서 있고 가끔 벼랑 끝에 서 있고 지금도 혼자 있다. 외롭거나 고독한 것, 처참하고 우울한 것과 무관하게 모든 개인처럼 혼자 서 있다. 혼자 서 있는 사람으로 서 있다. 나는 모든 혼자 서 있는 사람처럼 서 있나? 아니면 나는 다른 사람으로 모든 사람들과 다르게 혼자 서 있나? 아니 나는 혼자 서 있고 멀리 다른 혼자 서 있는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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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열리는 친구 영우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부산으로 향하는 한솔, 그리고 사이비 종교단체로부터 도망쳐 부산으로 내려가는 기차에 몸을 실은 나미. 이들은 모두 혼자다. 가능한 한 “다른 모든 혼자 서 있는 사람”처럼 서 있고 싶지만 글쎄, 이들은 “다른 사람”으로 “모든 사람들과 다르게” 혼자 서 있는 것 같다. 자신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지금까지 발을 디디고 살아왔던 삶의 기반에 의문을 제기한다. 두 사람 모두 수월한 삶은 아니었고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보이기에, 그들을 이야기하는 책 역시 수월하지 않았다. 작은 책이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세계는 너무 복잡하고 뒤죽박죽이었다. 원치 않은 전공과목을 억지로 공부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어떻게 해서든 문학강의를 찾아듣던 학생 시절 그랬던 것처럼, 이 책을 프린트하여 한 줄 한 줄 읽고 토론하며 교수님의 생각과 학생들의 생각과 나의 생각을 서로 나누고 비교할 수 있었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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