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귀엽게 보이는 높이

사람이 귀엽게 보이는 높이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김민정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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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와우북페스티벌에서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라는 독특한 제목의 책을 구경한 적 있었다. 어떤 내용일지 궁금해서 나중에 한번 읽어봐야지 생각하고는 내게 밀려오는 수많은 책들 속에서 허우적대다 그만 잊어버렸다.

<사람이 귀엽게 보이는 높이>는 내가 아직 읽지 못한 그 책의 작가인 모리미 도미히코가 처음 선보이는 에세이였다. 대학 시절 다다미 넉장반의 좁은 방에서부터 시작된 그의 작품 여정과 읽은 책,좋아하는 작가, 소소한 일상, 어린 시절의 추억 등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그 작가의 작품을 하나도 읽지 않은 채 에세이를 읽은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고, 그동안 읽었던 에세이들과는 달리 책이 매우 두껍고 글자수도 빽빽하여 다소 부담스럽게 다가왔지만, 읽다보니 작가의 시시콜콜한 일기를 한 장 한 장 넘겨보는 기분이 되었다. ‘교토의 천재작가’라고도 불린다는 모리미 도미히코가 매일 아침 7시반에 일어나 출근을 하고, 밤과 휴일에는 소설을 쓰는 생활을 해왔다는 것을 알고 나니 그의 작품들을 더욱 읽고싶어졌다.

p.174
취직해서 일하기 시작함과 동시에 <야성시대>에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가, <소설NON>에 “달려라 메로스”, <파피루스>에 “유정천 가족”의 연재를 시작했다. 취직과 동시에 연재를 세 편이나 시작한 것은 아무래도 내 한계를 넘은 임무였다. 게다가 마감이란 존재에 익숙하지 않아 한 달 후의 마감이 두렵게 느껴질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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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책 몇 권 읽고 어줍잖은 감상 몇 줄 쓰는것도 회사와 육아와 병행을 하려니 곡소리가 절로 나는데, 이 작가의 근성은 정말 대단하다.

사실 이번달에 책을 많이 신청하기도 했지만 돌잔치에 업무 과다에 애는 또 편도염이 심각해져 고름이 나오고 며칠을 잠도 못자고 어린이집도 못가고 나는 휴가를 못내 이리뛰고 저리뛰고...안팎으로 난리라 책을 읽으면서도 제정신이 아닌적이 많았다. 솔직히 이번달에 내가 책 욕심을 너무 많이 냈나, 이렇게 쫓기듯 하는 독서는 리뷰의 질도 떨어지는 것 같고 의기소침해져있었는데 에세이를 읽으면서 왠지 모르게 위로를 받았다. 이거 모아서 검사받고 평가받을 것도 아니고 혼자 좋아서 책 읽고 올리는 건데 남들에 비해 너무 후져보이더라도 그냥 내가 하고싶은대로 해야지.

두껍고 빽빽하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책. 그 이유는 작가가 알아서 프롤로그에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p.5
자기 전에 읽어야 할 책.
철학서처럼 어렵지 않고, 소설처럼 마음을 사로잡는 책도 아니다. 그렇다고 재미가 없어 하품이 나로는 것도 아니고, 손에서 놓지 못할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재미없는 작품도 아니다.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정보는 없지만, 읽고 있는 시간이 허무해질 정도로 무익하지도 않다. 독이 되는 것도, 약이 되는 것도 아닌 책. 중간부터 읽어도 되며, 읽고 싶은 부분만 읽어도 되는 책. 긴 것, 짧은 것, 농후한 것, 얄팍한 것, 능청스러운 것, 나름대로 성실함을 갖춘 것 등 다양한 글이 수록되어 있어서 그 몽롱한 분위기가 태평양에 떠 있는 이름 모를 섬의 모래사장에 왔다가 물러가길 반복하는 파도처럼, 책을 읽는 독자들을 평안한 꿈의 나라로 유혹할 것이다.
당신이 지금 손에 들고 있는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다.

나이 듦의 심리학

나이 듦의 심리학 - 비로소 알게 되는 인생의 기쁨
가야마 리카 지음, 조찬희 옮김 / 수카 / 2019년 6월

내 나이 스물아홉에는 서른이 되는 것이 그렇게 싫었다. 갑자기 엄청나게 늙어버리는 것 같았고 서른씩이나 됐는데 아직 결혼은 커녕 변변한 남자친구도 없는 것도 불안했다. 당시 소개팅에서 만난 남자가 내 나이를 듣고 픽 웃으며(빈정거리는 말투가 습관인 분이었다) “이제 뭘 하든 이십대의 마지막이겠네요” 라고 쐐기를 박듯이 말한 것이 더 계기가 된 건지도 모른다.

막상 서른이 넘어가자 또 특별한 이벤트 없이 시간은 잘도 흘러갔다. 내 친구의 엄마는 여자 서른 셋과 서른 넷은 명확한 차이가 있다며(대체 뭐가?) 친구를 부지런히 선 시장에 내놨지만, 우리 부모님은 딱히 나의 연애와 결혼에 적극적이지 않으셨기에 오로지 가는 세월과 조금씩 늘어가는 나이에 나 혼자만 스트레스를 받았다.

서른에 그렇게 호들갑을 떨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마흔을 바라보다니, 언제부턴가 나는 내 나이가 실감이 안난다. 아직도 철이덜 든 것 같은데 서류상의 나이는 나에게 “ 넌 이제 중년이야” 라고 말해주고 있다. 나는 과연 내 나이에 걸맞는 사람일까? 십년 전에는 그저 내 한몸만 건사하면 되는 싱글이었지만 이제는 결혼을 했고 내 가정과 시댁과 딸도 있다. 회사에서는 또 입사한지 꽤나 오래된 직번의 과장이다. 내게 주어지는 여러 역할기대에 나는 과연 적절하게 부응하고 있는 걸까?

서른 이후 나이와 관련된 책은 거의 읽은 적이 없었지만, 마흔이 코 앞으로 다가오자 왠지 이런 책도 몇 권쯤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이 듦의 심리학”은 정신과 의사이자 릿쿄대학 현대심리학부 교수인 가야마 리카가 마흔 너머를 준비하는 여자들의 여러가지 고민에 대해 쓴 글이다. 연애는 몇 살까지 가능한가, 나이를 먹으면 어떤 옷을 입어야 할까, 몇 살까지 일할 수 있을까, 어떤 집에 살아야 할까 등등...

p.159
‘40대가 되면 이렇게 살고 싶다’는 이상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막연히 상상했던 내 인생과 너무 달라서 가끔 이렇게 살아도 될까 싶은 생각이 들고, ‘이렇게 50대가 되는 건가?’싶어서 이내 초조해진다. 그런데 쉰 살이 된 순간,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마음이 가뿐해졌다.

저자는 곧 60대를 바라보고 있고, 그렇다보니 상대적으로 책의 내용이 40대 보다는 50대에 포커스를 두는 경우가 많았다. 아이나 남편이 없는 독신 여성인 저자는 50대가 된 순간 더이상 아이에 대한 질문도 받지 않고 연애에 대해서도 해방될 수 있었기에 눈앞의 안개가 걷히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내가 늦게라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나도 독신으로 늙어갈 미래에 대비하는 심정으로 이 책을 읽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이를 낳고 정말 훅 가버린 체력과 몸매에 스스로 낯설어하며, 회사에서도 하루 아침에 애 낳은 아줌마 과장이 되어 출근하는 순간부터 퇴근할때까지 업무와 동시에 집안일과 육아에 신경써야하는 워킹맘으로 살고 있는 40대의 이야기도 듣고 싶다. 이십대에서 삼십대로 넘어가는 순간은 불안함과 우울함이 뒤섞인 심정이었지만, 사십대의 시작은 비록 정신이 쏙 빠지게 분주할지언정 마음만은 훨씬 안정되어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

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 ㅣ 다산책방 청소년문학 3
스즈키 루리카 지음, 이소담 옮김 / 놀(다산북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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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작가를 꿈꿨으나 책을 좋아하는 것만으로는 결코 작가가 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포기했던 아쉬움 탓일까, 어린 나이에 등단한 작가들을 보면 왠지 관심을 갖고 작품을 보게 된다. 일종의부러움과 질투가 섞인 호기심이기도 하다.

“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을 쓴 스즈키 루리카는 무려 2003년 생이다. 내가 대학을 들어가던 해에도 태어나지 않았던 이 어린 작가는 타고난 재능으로 초등학교 4,5,6학년에 걸쳐 일본 대표 출판사쇼가쿠칸에서 주최하는 ‘12세 문학상’ 대상을 3년 연속 수상했다.이 책은 그녀가 14살에 출간한 첫 소설집이다.

“찢어지게 가난한” 모녀 가정의 이야기. 가족도 남편도 없이 매일 성인남성도 힘든 막노동을 하며 중고제품과 반값세일을 하는 음식일지언정 딸에게 필요한 것은 어떻게해서든 마련해주려고 열심히 살아가는 엄마 다나카 마치코. 그리고 그런 엄마 아래서 ‘벌레든 동물이든 괜찮으니까 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이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구김살 없이 바르게 성장하는 딸 다나카 하나미. 얼마전에 본 영화 ‘기생충’이 ‘냄새’로 대변되는 지독하게 가난한 반지하 하층민의 모습을 섬뜩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그렸다면, 14살 소녀가 쓴 가난한 모녀의 이야기는 부족한 것이 많은 삶일지는 모르나 유쾌하고 따뜻하고 희망적이다.

“슬플 때는 배가 고프면 더 슬퍼져. 괴로워지지. 그럴 때는 밥을 먹어. 혹시 죽어버리고 싶을 만큼 슬픈 일이 생기면 일단 밥을 먹으렴. 한 끼를 먹었으면 그 한 끼만큼 살아. 또 배가 고파지면 또 한 끼를 먹고 그 한 끼만큼 사는 거야. 그렇게 어떻게든 견디면서 삶을 이어가는 거야.”

가족이며 남편은 어떻게 된건지, 어떤 역경과 고난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는지 자세한 설명이 없어 그냥 추측만 할 뿐인 엄마 다나카 마치코의 인생관은 마지막 챕터인 <안녕,다나카>에서 비로소 표현된다.

요즘 새벽에 더 일찍 일어나는 아이를 건사하랴, 분명 단축근무를 하고 있는데도 일을 그만큼 줄여주지는 않는 회사로 인해 분초를 다투며 일을 하다가 허겁지겁 퇴근해 잠시도 쉬지 못하고 청소, 아이 하원, 병원가기, 이유식 먹이기, 저지레한거 치우기, 설겆이, 다음날 어린이집 준비물 챙기랴 매일이 너무 피곤하다보니 위장병도 도졌다. 쓸데없이 책욕심은 잔뜩 부려놔서 십분씩 쪼개서 책을 읽고 정리를 하느라 잠을 줄였더니 더 피곤하다.

‘먹기’에 의미를 부여하며 팍팍한 인생을 살아갈 힘을 얻는 다나카 마치코처럼 어쩌면 나는 ‘읽기’로 인해 이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버틸 힘을 얻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내일도 업무는 잔뜩밀려있고 내 몰골은 엉망진창일지언정, 뒤집어서 일어나는 기술을 습득한 우리집 저지레 대마왕과 또 다른 책과 함께 할 하루이기에 나는 행복하다.

사랑한다고 상처를 허락하지 마라

사랑한다고 상처를 허락하지 마라 - 나를 아프게 하는 것들에 단호해지는 심리 수업
배르벨 바르데츠키 지음, 한윤진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5월

A는 B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는다. 자신의 감정에 매우 충실하고 미래를 대비하기보다는 현재에 반응하는 스타일인 B는 일이든 연애든 모두 그런식이었다. 남자에게 꽂혀서 모든 걸 내던지고, 관계로 상처받았으나 쉽게 끊지 못하고 질질 끌고, 자신의 감정이 감당이 되지 않아 업무를 내팽개치고, 주변 사람들의 관심을 갈구하고 챙김을 받는 것에 익숙하고...등등.
상대적으로 감정의 변화가 덜하고 매사에 계획하는 걸 좋아하는 A는 B의 대책없는 지름에 걱정이 되어 쫓아다니며 말리고 조언해왔으나 어느 시점이 되자 깨달았다. 자신이 변하지 않듯이 B 역시 변하지 않음을. 자기에게 고민을 얘기하지만 해결할 생각이 아니라 그냥 그 감정에 빠져 이야기하는 것일 뿐임을. 그것에 일일이 반응하고 스트레스를 받고 대책을 강구하고 노력해봤자, B는 결국 자기가 하고싶은대로 할 뿐이었음을. A는 오랜 시간에 걸쳐 정성들여 시간과 감정을 낭비해왔던 것임을.

내 지인과 최근 서로의 주변에 있는 B와 같은 친구로 인해 스트레스 받았던 경험을 이야기한적 있었는데, 이 책은 그 이야기의 연장선 같았다. 소냐와 프랭크의 이야기, 그리고 각 단락마다 붙여진 심리학적 관점의 논평과 설명을 통해 독자는 나르시시즘에 물든 관계가 얼마나 파괴적인 결말을 맞는지 간접경험하게 된다. 나르시시즘에 빠진 프랭크는 매사에 허세 가득한 모습을 보이며 연인을 복종시키려 하는데 이는 내면의 여러 상처와 연관되어 있다. 소냐는 의존적이고 의기소침한 짝이 되어 애써 그 상황을 부정하는데 시간을 허비하고 무려 7년이나 프랑크의 비난, 멸시, 공격을 받으며 고통에 시달린다.

p.278
자식이 항상 행복해야 하고, 매번 성공해야 하며 아무런 문제 없이살기만을 바란다면 그건 부모가 나르시시즘에 빠진 것이다. 자식을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이가 일을 스스로 해내도록 기다려주지 않는다. 이렇게 자란 아이에게 남는 건 열등감뿐이다.
아이의 버릇을 망쳐놓는 또 다른 사례는 부모의 자기애적 결핍을 해소해줄 아이의 재능에 과도하게 후원하는 경우다. 자식이 내가 예전에 이루지 못한 성공을 꼭 해내야만 한다고 철석같이 믿는 엄마들이 있다. 이런 유형의 양육자는 과거에 상처 입혔던 본인의 자존감을 높이고 주변에 자랑하기 위해 자식을 장신구처럼 키운다. 아이가 정말로 그런 삶을 원하는지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말이다.

예전에는 이런 책을 읽을 때 나 혹은 내 주변 사람들의 관계에만 집중했다면, 아이를 낳은 후부터는 이렇게 “내가 아이의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안좋은 사례에 해당하지는 않는지”도 신경쓰게 된다. 어린 시절 가족 관계 안에서 형성한 경험이 나중에 이성과 관계를 맺을 때 이성을 선택하는 방식부터 연인이 되었을 때의 관계 방향에까지 영향을 미치기에, 아이가 자라나는 가정환경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여러 크고 작은 시행착오를 거쳐 결국 나에게 가장 이상적인 사람을 동반자로 만나는데 성공했다. 내 인생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데 하물며 내 딸의 인생이야 오죽하겠나 싶지만, 그래도 엄마만큼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고 상처도 덜 받고 성장했으면 좋겠다. 엄마도 행복하지만, 엄마보다 더 많이행복해지렴.

올레오마가린 왕자 도난 사건

올레오마가린 왕자 도난 사건
필립 스테드 지음, 에린 스테드 그림, 김경주 옮김, 마크 트웨인 원작 / arte(아르테) / 2019년 5월

어렸을 때부터 너무 좋아해서 수십번도 넘게 읽었던 “소공녀”에서는 소공녀 세라가 친구들을 불러놓고 자기가 만든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면이 나온다. 하녀로 일하는 베키는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 청소를 하며 몰래 엿듣다가 들켜 성질이 고약한 래비니어에게 창피를 당하고, 이를 불쌍히 여긴 세라는 자기 방을 청소하던 베키를 불러 나머지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한다.

<톰소여의 모험>,<허클베리핀의 모험>으로 유명한 마크 트웨인도 집에서는 이야기를 들려달라 보채는 딸들에게 매일 밤 이야기를 만들어 들려줘야하는 육아대디였나보다. 두 딸에게 들려준 수많은 이야기 중 유일하게 그가 노트에 기록해둔 동화 <올레오마가린 왕자 도난사건>은 조니라는 가여운 소년이 마법의 씨앗을 얻은 후 도난당한 왕자를 구하러 가는 이야기이다. 미완성으로 남아있던 이야기는 2011년 이후 캘리포니아 대학의 마크 트웨인 기록 보관소에서 발견되어 현대 아동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와 삽화가들의 손길을 거쳐 완성된 책으로 탄생한다.

p.67
때로 신들은 예정에 없던 휴가를 가기도 하고, 잠시 본분을 망각하기도 해. 그사이 비참한 사람들의 삶은 잠시나마 덜 비참해지지. 다음에 일어날 일은 이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어.

어린 시절 나는 얼굴도 예쁘고 이야기도 잘 만들어내고 무엇이든지 잘하고 마음씨도 고운 세라가 부러웠다. 그녀에게는 혹독한 시련이 있었지만 동화는 “그래서 결국 그들은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라는 결말이 전제되어 있기에 역경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당시에는 몰랐기에 “아 세라는 참 좋겠다”라고 순수하게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일지도. 비참한 사람들의 삶은 “신이 휴가를 가거나 본분을 망각하지 않는 한” 계속 더 비참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버리자, 어른이 되었다.

어른이 된 나는 소공녀를 읽고 작은아씨들을 펼치게 될 우리 딸에게 마크 트웨인처럼 5일 밤 동안 이어지는 이야기를 만들어 들려줄 수 있을까? “너희를 알게 되어서 정말 기뻐” 라고 진심으로 말할 수 있는 순수함이 아직 내 안에 남아 있기를 바라며. 아직 책을 먹기 바쁜(!) 우리 딸에게 얼른 책을 읽어주고 싶다. 엄마한테 이야기를 만들어달라하면, 내 영혼까지 뒤져 몇 톨 되지 않는 상상력과 순수함을 긁어모아 뭐라도 만들어볼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