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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 - 혼자여서 즐거운 밤의 밑줄사용법
백영옥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10월
평점 :
책 속에 다른 책이 언급되는 것을 좋아한다. 책을 읽으며 언급되는 다른 책들이 내가 읽지 않은 책이면 내 위시리스트에 올리며 ‘다음엔 이 책도 읽어봐야지’ 하는 순간의 즐거움을 좋아한다. 밑줄 긋는 여자, 밤은 책이다, 책읽기 좋은날, 이동진 독서법같은 책도...모두 그런 이유로 내가 좋아하는 책들이다.
이름만 알고 있던 백영옥 작가를 처음 만난 건 “빨강머리앤이 하는 말”을 통해서였다. 가슴 속에 자라지 않는 소녀가 있다면 누구나 애착을 가질 수 밖에 없는 “빨강머리앤”의 일러스트와 문장들이라니. 대박이 안 나는게 더 이상한 책. 기대했던 대로였고 기대했던 만큼이었다.
아르떼 책수집가 당첨이라는 행운으로 가장 먼저 만나게 된 백영옥 작가의 신간. 그녀는 이번 에세이에서 자신이 읽었던 책과 기사들 속 문장을 동네 약방처럼 처방해주길 원했다. 말하고 싶지만 말하고 싶지 않은 날, 그 사람의 사진을 가지고 싶어서 모든 사람의 사진을 찍었던 날, 흘러간 것에 대해 가슴 아픈 날, 책 속의 밑줄을 처방해준다. 그 중 하나라도 상처에 가닿아 연고처럼 스미길 바라면서.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지난 날 와우북페스티벌에서 스쳐지나갔던 김소연의 마음사전이 읽고 싶어졌고 당인리 책 발전소에서 만났던 박준의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을 다시한번 위시리스트에 올렸다. 세살 아이와 터키를 여행한 (정말 대단하다) 오소희의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겠지도 궁금해졌다. 그밖에도 읽고싶은 책은 계속 추가되었다. 그리고 최근 실연으로 힘들어하고있는 까마득한 회사 후배에게 이 책을 선물해주었다. 상처받은 마음에 연고처럼 스며들어 위로가 되어주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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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39
살면서 우리는 많은 선택을 하죠.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직업을 선택하는 일인데요. 늘 이런 질문 앞에서 머뭇거리곤 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할까? 잘하는 일을 해야 할까?’ 확실한 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꿈꾸고 원했던 일이 아니라,자신을 필요로 하는 일을 하며 살게 된다는 거예요.
p.162
빨리 가는 것보다 어떻게 가느냐가 더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빨리 말리는 것보다 오후 두 시의 태양 아래 말린 빨래에서 나는 햇빛의 냄새를 기억하는 사람이고 싶어요.
p.179
살면 살수록, 힘주는 것보다 힘을 빼는 게 더 어려운 일 같아요.
p.247
이제 하나의 행위를 할 때, 그것이 미래에 가져올 결과보다는 행위자체에 더 집중하려 노력해요.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꼼꼼히 살고, 인생은 흘러가는 대로 놔두자, 이런 마음이 되었다고 할까요.
시인 정현봉의 말처럼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입니다.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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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에 부담없는 짤막한 챕터들, 그녀가 그은 밑줄도 좋았지만 더 좋았던 것은 각 장을 마무리하는 그녀의 문장이었다. 소박하게 곁들인 그 한 문장들에 마음이 울려서, 그녀의 다른 책을 더 읽어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