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하면 괜찮은 죽음 - 33가지 죽음 수업
데이비드 재럿 지음, 김율희 옮김 / 윌북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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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9

인생에서 마주하는 어떤 장면들은 무척 기이해서 말로는 거의 형용할 수 없을 때가 있다.


p.87

인생의 비극은, 우리가 저지른 몇 가지 실패에는 정신적 에너지를 엄청나게 부정적으로 소모하면서도 자신이 거둔 성공으로 마음을 위로할 때는 거의 없다는 데서 온다. 의료계에서 일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정신 건강을 대가로 지불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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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과 중환자실에 자리가 없어 우리 중환자실로 들어온 말기 암환자였다. 혼수coma상태로 인공호흡기를 포함한 각종 line을 잔뜩 달고 있던 환자는 부종으로 온몸이 터질것처럼 부풀어있었고, 몸의 모든 구멍에서 녹색의 분비물이 흘러나왔다. 분비물에서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악취가 났다. 환자는 다음날 죽었다.


가벼운 증상으로 심혈관조영술을 위해 방문한 환자였다. 심혈관조영술 도중 attack이 왔고 검사실에서 code blue를 띄우며 CPR을 시작했지만 소용없었다. 걸어서 들어간 환자는 죽어서 나왔다. 검사 후 우리 중환자실로 입원할 예정이었기에 아직 입원처리조차 되어있지 않았다. 입원 후 사망처리를 해야해서 죽은 환자 침대 앞에 서서 정신없이 차트를 기록하다가 "환자 손 좀 넣어"라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환자는 우리 아빠연배였다. 울고있는 보호자는 내 나이 또래의 딸과 아들이었다.


오랫동안 의식이 혼미하게 저하된 상태로(mental deep drowsy) 내과 중환자실과 우리 쪽을 번갈아가며 전전하던 할머니였다. 심전도가 서서히 flat이 되어갔고 드디어(?)라며 의료진들은 보호자에게 연락했다. 평소 거의 면회를 오지 않던 아들이 와서 어머니~하며 손을 어루만지자 심전도 그래프가 다시 상향하기 시작했다. 방금 사망선고를 했던 내과 레지던트 1년차가 당황하며 "아...환자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라고 했고 의료진들은 더 당황하여 "지금 뭐라는거야 말려 빨리"라고 했지만 이미 보호자는 의사의 말을 듣고 "네? 방금 돌아가셨다면서요." 라며 대혼란. 사망 직후의 일시적인 심전도 상승은 점차 소멸하며 최○○ 할머니는 "진짜로" 돌아가셨다. 


내 나이 스물다섯에서 스물일곱에 이르기까지, 2년 남짓한 기간동안 나는 가장 많은 죽음을 만났다. 많으면 하루에 두세명까지도 죽음을 기록하던 날들. 대학병원의 심혈관계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던 시절이었다. 


40년간 수많은 죽음을 지켜본 의사가 써 내려간 죽음에 대한 성찰. <이만하면 괜찮은 죽음>을 읽으며 나는 그 시절을 생각했다. 갑작스러운 죽음부터 오랫동안 지속되는 죽음까지 다양한 형태의 죽음이 내 곁에 존재하던 시절. 때로는 환자의 마지막 심전도와 마지막으로 급하게 주입한 약물과 주사기와 껍데기와 피가 묻은 시트 사이에서 차트를 기록하기에 급급한 내 모습을 깨닫고 잠시 멈춘 적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격무에 시달려 죽음도 그냥 하나의 바쁜 일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나의 20대 중반을. 그리고 죽음에 다다르는 길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벌써 내 나이는 마흔. 다양한 형태의 죽음을 의료진 입장에서 바라보던 시절에서 무려 15년이나 지났다. 방관자적 입장을 떠나 좀 더 노년에 가까워진 나를 실감하며 우리 아이에게 최대한 부담을 덜 주는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태어남처럼 죽음 역시 내가 마음먹은대로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지만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생전 진술서와 생전 유언장은 나 역시 언젠가 한번쯤은 작성해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은 애 재우다 같이 기절했다 깨어나는 혼미한 내 정신부터 바로잡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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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 다니는 어원 사전 - 모든 영어 단어에는 이야기가 있다
마크 포사이스 지음, 홍한결 옮김 / 윌북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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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Starbucks는 요크셔의 작은 개울에 바이킹이 붙였던 이름이다.

🔖보톡스botox는 사실 소시지독이다.

🔖우리가 입고 있는 속옷, 팬티panti는 초기 기독교 순교자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피터 팬이 사는 곳Neverland의 이름은, 백인들과는 '절대 절대(Never never) 엮이고 싶어 하지 않았던 흑인들의 이름을 딴 호주의 지명에서 가져온 것이다.

 윌북 서포터즈로 활동한지 몇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제공받아 읽었던 책들은 표지와 제목부터 내 마음에 쏙 드는 것들이었기에 더할 나위 없었지만, 솔직히 이번 책 만큼은 그냥 보통의 설렘(새로 책 택배가 온다는 기쁨) 정도에서 시작했다. 최근의 나는 매우 바빴고 건강도 좋지 못했으며 조의 아이들-고집쟁이 작가 루이자- 90일 밤의 클래식으로 이어지는 책읽기는 (물론 너무 즐거웠지만) 체력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내게 다소 무리였다.

부족한 시간과 후달리는 체력으로도 문제없이 독서를 즐길 수 있었던 것은 책 자체가 꽤나 흥미진진했기 때문이다. 읽다말고 몇번이나 앞장을 펼쳐 작가의 이름과 약력을 확인했다. 이사람은 대체 누구이기에 이렇게 박학다식하다못해 시시콜콜한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줄줄 꿰고 있는거지?

작가이자 언론인, 교정인이며 어원 전문가인 마크 포사이스가 쓴 이 책은 영어 단어의 기원, 언어의 역사에 대해 화수분같은 지식을 풀어놓는다. 한 장 한 장 읽고 있노라면 무심코 쓰던 단어의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기원을 알게 되고, 한 단어의 기원이 끝나가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형식으로 다음 단어의 역사로 이어져 읽는 재미도 있다.

다른 이들과의 대화에서 상식을 뽐내는 것을 즐기시는 우리 아빠 마음에 쏙 들것 같은 책, <걸어다니는 어원 사전>. 추석 연휴때 부모님을 만나면 슬쩍 내밀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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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쟁이 작가 루이자 - <작은 아씨들> 작가 루이자 메이 올컷 이야기
코닐리아 메그스 지음, 김소연 옮김 / 윌북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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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7

아버지는 몸을 회복했지만 혼란스러운 세상 물정을 잘 몰랐고, 어머니는 생계 문제로 지쳐있었다. 애나도 자기만의 야망이 있었고, 엘리자베스는 몸이 허약했다. 어린 메이는 아름다운 것들을 좋아하는 열정적인 아이로 커가고 있었다. 모두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가족에게 루이자가 느낀 사랑과 아끼는 마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자신이 가족을 돌보겠다고 다짐한 루이자는 작은 방에서 인생 계획을 세우며 사랑하는 가족 모두의 소원을 이루어 주겠다고 맹세했다. 아버지에게는 안정감, 어머니에게는 평화와 위안, 그리고 햇볕이 잘 드는 방이 필요했다. 애나에게는 기회, 엘리자베스에게는 보살핌, 메이에게는 교육이 필요했다. 


p.15

스스로 짐을 짊어지려는 자, 유달리 책임감 강한 딸, 역경에 맞서 인생을 개척하는 자, 괴테처럼 수련하고자 했던 글 쓰는 여자로서 그를 이해한다(추천의 글, 곽아람).


자그마치 1,015 페이지에 달하는 작은아씨들 완역판 3,4부 <조의 아이들>을 거의 다 읽어갈 무렵, 내가 좋아하는 작가 곽아람님의 피드에 루이자 메이 올컷 평전의 소개가 떴다. 그로부터 1주일 후, 나는 <고집쟁이 작가 루이자>의 표지를 넘겨 곽아람 작가님의 추천의 글을 한 줄 한 줄 소중히 읽고 있었다. "조의 아이들 끝내고 읽어보시면 작품이 오롯이 이해가 될 거예요"라고 얘기해주셨던 작가님의 댓글을 떠올리며.


p.120

희망을 품고 사는 사람들은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실패하더라도 절망하지 않는다.


p.169 

루이자는 무척 바빴고, 가정과 가족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느라 결혼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결혼하지 않아도 삶은 버거웠고 결혼하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간절히 바라는 독립적인 삶을 양보할 수 없었다. 


p.178

"올컷 씨가 여자아이들을 위한 이야기를 꼭 써주면 좋겠어요." 너무 절박해서 무엇이든 할 기세였던 루이자는 이번에는 나일스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가난은 도전을 하도록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고 루이자는 그 도전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작은 아씨들은 이렇게 가난을 원동력으로 탄생한다. 완역판 3부에 해당하는 <작은 신사들>역시 언니 애나가 남편을 잃었다는 소식에 언니와 조카들의 생계를 책임지고자 유럽 여행중 급히 쓰여진다.


p.14

페미니스트로서의 자의식에 의한 선택이든 어떤 것이든, 그 자신은 따스한 가정을 꾸릴 새 없이 부양과 의무와 책임으로 얼룩졌던 그 삶을 곱씹어보노라면 마음이 아프다. 그와 함께 단순한 여기 아닌 밥벌이로서의 글쓰기의 엄중함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게 된다.


밥벌이로서의 글쓰기로 쓰여진 <작은아씨들>은 루이자와 루이자의 가족의 이야기였다. 평전을 읽는 내내 또 하나의 작은아씨들을 읽는 느낌이었다. 조는 루이자의 분신이었고 책 속의 여러가지 에피소드는 실제로 그들의 삶 자체였다.


책을 좋아하고 끄적이는 것에 관심을 가지던 내게 지극히 현실적이던 아빠는 냉정하게 "네가 작가로서의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지는 않으니" 책 읽는 것은 취미로 하고 전문적인 직업을 가지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다. 책 읽는 것 외에는 뚜렷히 무엇을 좋아하거나 잘하지 못했던 내게 사실 그 말은 결정적으로 내 미래를 달라지게 했다. 정작 아빠는 본인이 그런 말을 했었다는 것을 명확히 기억하지 못하셔서 충격이었지만. 물론 안다. 천방지축인 남동생 때문에 맘고생하시는 부모님의 뜻을 거역할 수 없는 착한 맏딸 노릇이라는 핑계를 방패삼아, 막상 문학의 길로 가기엔 턱없이 부족한 내 재능도 자신감도 추진력도 숨길 수 있었다는 것을.


그래서 또 생각한다. 루이자처럼 온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글을 쓰게 되었더라면, 아니면 적어도 나의 밥벌이 수단으로 책을 읽거나 다루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했었더라면 나는 과연 지금처럼 읽고 쓰는 걸 바라고 기뻐하게 되었을까. 자신이 쓴 글로 가족을 보살피는 꿈을 이룬 루이자처럼, 나 역시 지금의 삶 또한 만족스럽기에 가지 않은 길은 그저 웃으며 인사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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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의 아이들 - 작은 아씨들 3,4부 완역판 걸 클래식 컬렉션
루이자 메이 올콧 지음, 김재용 외 옮김 / 윌북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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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내가 제일 좋아했던 책을 세권 꼽으라면 빨강머리 앤과 소공녀, 그리고 작은아씨들이었다.

사촌언니에게서 얻은 계몽사 소년소녀 세계문학전집 시리즈의 <작은아씨들>을 표지가 닳을때까지 읽고 또 읽었다. 어렸을 때 엄청나게 낯가림이 심했던 나는 먼저 내성적이고 피아노를 좋아하는 베스에게 끌렸고, 좀 더 크고 나서는 당연히 조에게 끌렸다. 

한창 작은아씨들을 읽을 무렵이었던 94년, 영화 작은아씨들이 개봉했고 당시 좋아하던 위노나 라이더가 조를 맡는 바람에 나는 또 기대감에 부풀어 영화를 보았다. 영화 음악이나 분위기, 배우들 모두 기대하던 그대로의 영화라, 나는 또 이 영화를 비디오로 녹화해서(아 옛날사람) 두고두고 외울 정도로 보았다. 조 역의 위노나 라이더, 베스 역의 클레어 데인즈, 어린 시절 에이미 역의 커스틴 던스트, 로리 역의 크리스찬 베일, 엄마 역의 수잔 서랜든까지...당시 핫한 배우들로 이루어졌으며 내가 생각하던 등장인물들의 이미지와도 너무 찰떡이었기에 나는 이 멤버가 아닌 작은아씨들은 상상할 수 없었다.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퍼지며 극장에서 영화 한 편 보는 것 조차 조심스러워지기 시작하던 지난 2월, 2019년 버전의 작은아씨들이 개봉했고 시얼샤 로넌의 조가 궁금해 참을 수 없었던 나는 혼자 마스크를 쓰고 영화관에 가서 작은아씨들을 보았다. 머리털나고 처음 혼영이었다. 너무너무 익숙한 첫 화면이 브라운관에 펼쳐지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사실 베스나 에이미, 로리 역할이 너무 원작과 동떨어진 느낌이라 몰입은 좀 힘들었다. 내게는 94년 버전이 베스트!). 심심하면 방에 쭈그려앉아 작은아씨들을 펼쳐 읽던 어린 시절이 눈앞에 펼쳐졌다. 반가움과 그리움이 교차했다.

윌북을 알게된 건 바로 이 작은아씨들 때문이었다. 교보문고를 지나가는데 내 취향을 완벽히 저격하는 예쁜 하드커버의 책이 나를 사로잡았다. 작은아씨들. 아 너무 예쁘다. 빨강머리앤은 여러 출판사 버전을 가지고 있지만 작은아씨들은 계몽사 책 한권 뿐이니 나를 위해 사치를 부려볼까. 작은아씨들을 시작으로 나는 윌북 서포터즈가 되었고 흔히 알고 있는 작은아씨들의 후속편이자 완역판의 3,4부에 해당하는 <조의 아이들>을 서포터즈 자격으로 받았다. 미친듯이 기뻤다. 무려 천페이지가 넘는 어마어마한 두께에 생각지도 못했던 초면인 다수의 등장인물의 향연도 상관없었다. 첫 페이지를 펼치자 내가 좋아하는 곽아람 작가님의 추천사가 있었다. 추천사부터 감동받으며 읽고 <3부>라 적혀있는 페이지를 넘겼다. 내가 그리워하던 익숙한 작은아씨들의 세계가, 아직 거기에 있었다. 로리가 조에게 실연당하고 에이미와 결혼하고(내게는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조가 독일인인 바에르 교수와 결혼하며 학교를 세우는 것으로 끝나는 줄 알았던 <작은아씨들>이 그 후의 이야기가 있었다는 것, 내가 모르는 그 후의 이야기가 천 페이지가 넘게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모든 체력과 면역력이 저하되어 각종 증상과 질환이 나타나기 시작한 마흔의 애엄마를 다시 십대 시절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매일 밤 애를 재우며 같이 뻗었다가 겨우 몸을 추스려 남은 집안일을 하고 씻고 나서 새벽에 열심히 눈을 비비며 두꺼운 책을 읽었다. 출퇴근 용으로 가당치도 않은 두께와 무게였으나 한 장이라도 더 읽고 싶어 회사로 책을 이고 지고 갔다. 그렇게 나는 다시 조와 에이미와 메그와 로리를 만났고 플럼필드의 아이들을 만났다.


p.184

온 세상의 어린 마음과 영혼에 가장 필요한 건 사랑과 보살핌이고, 그 따스함은 아름다운 꽃을 활짝 피어나게 해준다.

p.288

"하느님은 왜 밤을 만들었는지 모르겠어. 낮이 훨씬 재미있는데." 낸은 생각에 잠겨 말했다.

p.426

"열심히 보면 이 현미경으로 사람의 영혼도 볼 수 있을까요?" 작은 유리 조각의 위력에 감동한 데미가 물었다. 

"아니란다,얘야. 그렇게까지 대단하지는 않아. 그런 건 만들 수도없지. 보이지 않는 신비를 볼 수 있을 정도로 네 눈이 맑아지려면 아주 오래 기다려야만 할 거야. 하지만 네 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것들을 보면, 보이지 않는 더 아름다운 것들도 이해하게 될 거다." 프리츠 이모부는 데미의 머리에 손을 얹고 대답했다.

p.460 

선함은 명성과 돈이 사라질 때도 계속해서 남는 것이고,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도 가져갈 수 있는 유일한 재산이란다.

p.684

어디선가 읽었는데, 영국 해군에서 쓰는 밧줄에는 모두 붉은 가닥이 들어 있다더라. 어디선가 발견되면 알아볼 수 있게 말이야. 이게 바로 너에게 해주는 작은 설교란다. 명예, 정직, 용기 같은 덕목은 훌륭한 사람임을 알려주는 붉은 가닥이야. 어느 곳에 있는 사람이든 마찬가지지. 어딜 가든 항상 그 가닥들을 몸에 지니렴.


마지막 장인 1015페이지를 넘기며 나는 어린 시절의 여행을 마치고 현실로 돌아왔다. 어린 시절이 끝났음을 깨닫는 것은 늘 왠지 모르게 서글프다. 하지만 언제든 이 두꺼운 책을 펼치는 것 만으로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리고 이젠 나 대신 우리 은총이가 그 시절을 꽃피우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기에 더욱 감사하다. 소중한 추억여행을 하게 해주신 윌북 출판사에도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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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북클럽 - 우리 아이 책과 평생 친구가 되는 법
패멀라 폴.마리아 루소 지음, 김선희 옮김 / 윌북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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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2
부모 노릇을 하다 보면 스트레스가 넘쳐납니다. 하지만 가장 힘든 시간, 가장 힘겨운 순간에도, 저는 책에 손을 뻗어 마음을 가다듬으며 저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줄 것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고 느끼는 날에도, 아이들 옆에 앉아 책을 펼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함께 책을 읽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세상은 달리 보이죠.

p.21
지금 이 순간,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나요? 요즘 세상에는 우리 호기심을 자극하는 일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전에 독서를 삶의 주변으로 밀어냈다면, 지금 그것을 다시 중심으로 살며시 가져올 시기입니다. 책은 기쁨입니다. 책은 여러분의 더 큰 가치를 단단히 고정시켜줍니다. 그러니 직접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 놓길 바랍니다.
자녀를 책 읽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나부터 책을 읽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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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적이고 낯가림이 엄청 심했던 나는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했다. <보리와 임금님>의 머리말에 나오는 작가의 집처럼 온갖 책들이 책장과 책장 위, 바닥에서부터 천장까지 아무렇게나 쌓여있는 방에서 웅크리고 앉아 재미있어 보이는 책을 하루종일 읽는 것이 꿈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당시 회사를 다니던 엄마가 퇴근하며 어쩌다 한권씩 사다주시는 책을 기다리는 것이 큰 낙이었다. 생일선물은 꼭 책으로 받았고, 주말에는 집 앞 도서관에 갔다. 친구들의 집에 있는 전집이 나도 가지고 싶었지만 엄마는 사주지 않았다. 굳이 전집 안사줘도 도서관에서 잘 빌려보잖아. 엄마는 말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당시엔 전집을 사줄만한 형편도 아니었고 그걸 놔둘만한 여유있는 공간도 없었던거였지만.

아이를 낳고 거창하게 책육아랄것까진 없지만 내가 한이 맺혔던 책을 우리 아이에게는 어렸을때부터 많이 보여주고 싶었다(이런게 책육아인가? 사실 책육아가 뭔지 정확히 모른다). 그런데 전집을 사려니 생각보다 가격이 어마어마했다. 아...우리 엄마가 이래서 못사준건가. 애들 책이 왜 이리 비싼거야. 구강기 때는 중고 책을 보여주기도 뭔가 좀 찝찝하고 큰맘 먹고 산 몇권의 책들은 별로 관심이 없어보여 아...우리애는 나랑 성향이 다른가보다 싶었다.

은총이가 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건 내가 충동구매한 추피 전집을 보면서부터였다. 추피지옥이라는 말답게 추피 책을 읽고 또 읽고(정확히는 내가 읽고)..그러다가 호비도 읽고 친구가 물려준 전집도 읽고 자기 전에는 다 읽겠다고 자기 침대에 책을 한무더기 던져놓고. 참 너무 뿌듯하지만 막상 같은책을 백번 읽어주려니 너무 지겨운 나는 점점 영혼없이 읽어줄때가 많아져 반성도 하고.

윌북 서포터즈의 이번 책에 대한 소개를 읽는 순간 내 마음은 기대와 기쁨으로 뻐렁쳤다. 책 좋아하는 아이로 키우는 완벽한 안내서라니 이렇게 좋은 책을 제공받아 읽어도 되는 건가? 내가 팔로우하고 있는 당인리책발전소 김소영 아나운서의 추천사까지. 더할나위 없다!

책을 0세부터 연령에 따라 (혹은 아이가 읽고 이해하는 수준에 따라) 보드북, 그림책, 얼리 리더스(그림책과 챕터북의 중간 단계), 챕터북, 미들 그레이드, YA의 단계별로 나누어 각 시기별 특징이나 도움말, 추천도서 목록을 제시해준다. 비록 국내작가가 아니다보니 추천도서가 영미권 책들로 대부분 구성되어 있지만, 생각해보니 나도 고등학교 이전까지는 국내작가가 쓴 책들을 거의 읽지 않았었다...한국어판에는 특별히 '한국 작가가 쓴 책' 코너도 포함되어 있다.

나는 그냥 내가 책을 너무 좋아하기에 우리 아이도 꾸준히 책을 좋아했으면 좋겠다. 같이 도서관도 가고 서점에도 가고 북페스티벌도 가고 함께 책읽는 시간도 가지고 싶어서. 철저히 내 위주의 소망이다. 몇년이 지나면 낡디 낡은 나의 소공녀와 작은아씨들과 앤을 책장에서 꺼내 보여주며 엄마를 키운 책들이라고 소개할 수 있겠지? 내가 초등학생때 읽던 챕터북들같이 재미있는 책들이 요즘도 나오겠지? 엄마가 옆집 아이한테 다 줘버려서 너무 그리워하던 그런 책들이 우리 은총이에게도 생길까? 친구 엄마가 보지 말라고 해서 더 관심을 가지고 몰래몰래 보던 YA 소설을 은총이도 본다면 나는 쿨하게 대처할 수 있을까? 부디 우리 은총이가 엄마와 함께 이 행복한 책의 세계에 흠뻑 빠져주었으면. 상상만으로도 즐거워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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