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뇌를 열었을 때 - 수술실에서 찾은 두뇌 잠재력의 열쇠
라훌 잔디얼 지음, 이한이 옮김, 이경민 외 감수 / 윌북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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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후반, 친구들과 뮤지컬을 보고 귀가하던 중 영동고속도로에서 4중추돌사고가 났다. 조수석에서 안전벨트를 대충 메고 있었던 나는 아 이렇게 죽나보다 싶었다. 천만다행으로 친구와 나 둘다 크게 다친 곳은 없었지만 사고 직후 왼팔이 위로 올라가지 않았기에 일단 근처 아산병원 응급실로 이송되어 brain CT등을 찍었다.

아산 응급실은 경증 교통사고 환자를 취급하는 곳이 아니기에 우리는 곧장 내가 살던 목동 쪽 H병원으로 이동하여 며칠 입원했다. 왜 여기로 갔었는지 명확히 기억나지 않으나 아마 경증의 교통사고 환자들(일명 나이롱환자;)이 입원하기 수월한 병원이어서 였을것이다. 실제로 이 병원은 brain CT결과를 묻는 내게 의사가 도리어 "아산에서 뭐래요?"라고 되물을 정도로 한심했기에 그냥 미련없이 퇴원하여 내가 소속되어 있던 대학병원 외래로 물리치료를 받는 쪽을 택했다. 

어차피 사고 이후 왼팔 운동성은 금방 회복되었기에 외상으로 인한 염좌등으로 자가진단 하고 마침 안면이 있던 신경외과 교수님께 내 brain CT를 보여드렸다. 

"어? 잠깐만 정선생. 이거 정선생꺼 맞아?" "네 왜 그러시는데요?" "어 좀 이상한데? 이거 다시 좀 봐야겠는데?"

결국 나는 brain MRI를 다시 찍었고 뇌의 양성종양이 의심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너무 뜬금없는 이야기라 실감도 안나고 이렇게 자가증상이 없을 수 있는지 이해가 안되었기에 연대세브란스 외래로 옮겨 한번 더 확인한 결과 더 황당한 결과가 나왔다.

"정민영씨는 뇌에 양성종양이 있는게 아니라, 일부분이 결손된겁니다. 여기 하얗게 보이는 부분 있죠? 이게 종양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고 여기가 말 그대로 비어있는거예요. 일부분이 이렇게 없는겁니다. 근데 뭐 그렇다고 크게 문제될 건 없어요. 흔치 않은 케이스긴 한데, 살면서 지금까지 뭐 어디 문제된거 있어요? 아무 문제 없었죠? 선천적인 것 같은데 애초부터 이렇게 생겨서(?) 성장해왔는데 특별히 문제된게 없었다면 그냥 그대로 살면 되는거예요."

뭐지..뇌의 일부가 없어도 괜찮은건가 싶었으나 각 지역의 중환자들을 보는 대학병원에서 너무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셨기에 나도 그런가보다 하고 나왔고 지금까지 뇌의 일부가 결손된 상태로 멀쩡하게 살고있다. 


이 책을 보니 잊고 있었던 나의 뇌 상태가 떠올랐다. 저명한 신경외과 전문의의자 신경과학자인 저자는 뇌부정맥발작으로 더이상 다른 방법이 없는 제니퍼에게 뇌의 우반구 전체를 제거하는 반구절제술을 시행한다. 흡인기로 가래나 피가 아닌 뇌를 흡인하는 수술 묘사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우측 뇌 절제후 당연히 신체 절반이 마비가 온 제니퍼는 그러나 3년 후 정상적으로 걷고 웃으며 학교를 다니고 축구도 하게된다. 절반만 남은 뇌는 그녀의 좌측 신체를 통제하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한 것이다. 절반이 남은 뇌를 가지고도 이렇게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한데 하물며 아주 일부분이 결손된 나의 뇌 같은 정도야 사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것이 당연했던 것이다.

뇌에 얽힌 다양한 임상사례들을 통해 쉽고 재미있게 뇌의 기능과 뇌를 건강하게 보호하고 유지하는 방법까지 제시해주는 책, <내가 처음 뇌를 열었을때> 는 비단 나같이 특수한 뇌를 가진 사람이 아니더라도 상당히 흥미롭고 유익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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