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해부하는 의사 - 영국 최고의 법의학자가 풀어놓는 인생의 일곱 단계
리처드 셰퍼드 지음, 김명주 옮김 / 김영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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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원서에는 '삶의 여정'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 죽은 자의 의사가 쓴 책에 왜 그런 부제가 붙어 있는지 죽음을 해부하는 의사를 다 읽을 무렵에는 알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모든 죽음이 그렇지 않을까 싶지만, 이 책은 죽음을 통해 삶을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다.

- 옮긴이 김명주 -

 

요즘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는다. 퇴직 프로파일러나 법의학자들을 출연시켜 사건을 재조명하는 프로그램도 많다.

 

기존에는 그것이 알고 싶다, PD수첩 등에서나 만나 볼 수 있던 전문가들이 방송 예능에 많이 출연하면서 범죄에 대해 다시 재조명하고 알아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워낙 호기심도 많고, 한때 경찰 공부도 잠깐 하였던 터라 이런 범죄 사건에 관하여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죽음을 해부하는 의사를 접할 수 있었고 신선하고 새로웠다.

 

법의학자 리처드 셰퍼드의 자서전 같기도 에세이 같기도 한 이 이야기는, 법의학자로 주검에 대해 어떻게 사망에 이르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여과 없이 잘 풀어내 주고 있다.

 

리처드 셰퍼드는 죽음을 해부하는 의사를 본인의 가족, 아이들을 등교시켜주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리고 바로 다른 세계로의 출근. 바로, 시체 검안을 하는 본인의 일터로의 세계로 시작이다.

 

영유아의 시신을 바라볼 때면 언제나 아이들 생각이 나지 않을 수 없다며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렇지만 인간의 존엄성을 언급하며 마음속 애도의 시간을 갖는다.

 

누군가의 사랑과 축복 속에 태어난 아이가 어찌하여 이 차갑고 서슬 퍼런 스테인리스 무대 위에 있게 되었는지..

 

아이의 시신을 보고, 해부하고 사인을 밝히는 일은 평생을 해온 법의학자로서도 마주하기 힘든 일이라고 언급한다.

 

태어난 지 6개월 된 아이, 영양 상태가 나쁘지 않고 딱히 외관상 학대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 조그만 몸을 감싸고 있던 기저귀를 벗기는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기저귀 발진이 끔찍하리만큼 심하고 기저귀와 피로 엉겨 붙어 있었다.

 

법의관 곁에서 이를 지켜보던 경찰관은 부모님을 조사하였지만 그들은 아이를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죽이려는 의도나 학대의 흔적은 기저귀 발진 외에는 찾아볼 수 없었다고. 무엇보다 이 아이의 사인은 발진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의 결론은, 부모의 잘못된 신념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이를 너무나 사랑하지만 병원과 의사를 믿을 수 없고, 대체 의학을 신봉한 나머지 아이에게 그 어떤 의료 행위를 하지 않고 키웠다는 것이다.

 

이 부모들은 학대의 일종으로 처벌을 받겠지만, 결코 살인의 고의를 입증할 수 없어 살인죄로 처벌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한동안 우리나라에도 안아키(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가 유행했던 적이 있다. 어찌나 유명했던지 그 저자의 책을 나도 읽은 것이 기억에 남는다.

 

그 저서 한 권으로 한때 엄청나게 엄마들 사이에서 병원과 의사를 불신하고, 약은 몸에 안 좋은 성분을 먹인다는 식으로 여겨져 크게 사회적 몸살을 앓은 적이 있었다.

 

신념이건, 종교건 말 못 하는 아이가 밤낮없이 3주 정도 울어댔다는, 엄청나게 살고자 하는 노력을 보인 사실.

 

이 아이는 과일, , 두유 등의 성분들을 대사할 수 없게끔 태어났다. 유당불내증처럼 몸에서 당을 대사처리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아이가 이유식을 시작하면 엄마는 아이의 상태를 살피며 조금씩 이를 늘려가고 줄이고를 파악한다. 그런 제대로 된 확인을 거치지 않고, 단지 신념에 따라 아이에게 좋다고 무조건 먹인 것이다.

 

해부한 결과, 간이 이를 처리하지 못해 아이의 간에 기름이 잔뜩 끼어서 사망에 이르렀다.

 

또 다른 기억나는 사건은, 중년의 부부 사이에서 일어난 끔찍한 일이다.

 

부부는 남부러울 것이 없는 중산층의 전문직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아이도 있고, 사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언젠가부터 아내가 부부관계를 거부하더니 남편에게 더 이상 사랑을 느끼지 않는다고 하였다. 남자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여자에 대해 주변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아내의 직장에 전화해 보고, 미행도 하고, 속옷도 슬쩍 살펴보았다. 남편은 여기서 남자의 정액을 몇 차례 발견하였다고 진술하고, 그녀에게 남자가 생겼다고 하였다.

 

남편은 아내를 너무나 사랑하고 헤어지기 싫어서 그녀에게 매달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생긴 것인지 추궁하기도 하였다.

 

그럴 리 없다 본인은 정숙한 여자임을 밝힌 아내의 말을 남편은 믿지 않고, 정황 증거만을 여자를 몰아갔다.

 

하루는 장인 장모님께도 이 사실을 알려 아내의 바람을 말려달라고 하였지만, 아내는 오히려 남편을 의처증으로 생각하고 정신과 병원을 함께 내원하기도 한다. 그리고 남편은 약 처방을 받았다.

 

이 사건에서 진실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한 가지, 남편은 아내를 결국 살해하기에 이른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아내를 욱하는 마음에 한차례 칼로 복부를 찔렀고 이내 본인도 자살하려고 칼로 자해를 했다고 하였다.

 

그러나 시신의 몸은 그것을 대변해 주지 못했다. 여자의 온몸에는 칼로 베이고 찔린 흔적이 여러 곳에 달하고, 방어흔이라 하여 칼에 찔리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남편과 몸싸움을 벌였던 흔적이 곳곳에 나타났다.

 

남자는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하는가? 외관상으로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을 말이다.

 

그는 유능한 의사를 찾아 본인의 정신과 병력을 읊으며,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저지른 일로 형량을 줄일 수 있는 사건으로 밀고 갈 것이다.

 

영국에서 일어난 유명한 사건을 가명을 써가며 풀어 놓은 것인데,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어디에나 이런 사람들은 있다. 신념에 따라 아이를 제대로 양육하지 않는 사람이나, 의처증 증세로 아내를 믿지 못하고 살해하는 사람. (솔직히 의처증이 사실인지도 모르겠다)

 

평생 죽음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을 접해오며 작가, 리처드 셰퍼드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자살 충동에 빠지기도 했지만 힘든 현실을 가족과 취미로 이겨냈다고 한다.

 

그는 죽음을 해부하는 의사를 기록하며, 죽음과 삶의 경계선에서 어떤 것을 바라보고 추구해 나아가야 할지 잘 알고 이를 헤쳐나가고 있는 것 같다.

 

법의학자로서 시신의 사인을 밝히는 일을 하며, 힘든 것보다는 뿌듯함, 사명감을 가지고 더욱 굳건히 생활해 가길 바란다.

 

오늘은 영국 최고의 법의학자가 풀어놓은 인생의 죽음과 삶의 경계선을 들여다보았다. 우리 사회가 정의하는 죽음의 의미를 드러내는 이야기였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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