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적의 단어들
이적 지음 / 김영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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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의 단어들은 쉽사리 매칭되지 않은 단어들이 꽤 나온다. 예를 들면 홍어, 고스톱, 좀비, 불멸, 샤워볼, 베게, 세포, 개떡, 칫솔 등이 그렇다.

 

아니, 나는 지금까지 작가를(책을 내셨으니) 가수나 싱어송라이터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건 무슨 단어들의 조합인가 싶었다.

 

이적의 단어들을 통해 작가의 다른 책들이 몇 권 된다는 것을 처음 알았고, 작가의 생각이 좋았다.

 

 

지혜

'짜파게티를 끓일 때 마지막 물양 잘 맞추기' 먼저 얘기해 주지 않아도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다 보면 자기에게 딱 맞는 물의 양을 스스로 찾기 마련이다. p19

 

삶의 지혜가 이런 것이지 않을까? 남들이 이러쿵저러쿵하여도 내가 겪어봐야 나에게 맞는 길을 알 수 있다. 맞춤옷처럼 말이다.

 

처음 하는 요리를 영상이나 글로 보고 따라 하지만 어느 순간 그것보다 내 입맛에 맞게 손이 돌아다니고 있다면 이미 그 음식의 레시피는 나만의 것이 된다.

 

그렇게 따라 하고, 나에게 맞게 살짝만 변화시키는 것, 그게 내 브랜드가 되지 않을까. 지혜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

 

 

홍어

남도에선 집안 큰일이 생기면 상에 홍어가 올라온다. 잔칫집 홍어는 미리 충분한 시간과 정성을 들여 맛이 좋지만 상갓집 홍어는 급히 구해 올리니 맛있기 힘들다. 슬픈 일은 느닷없이 닥친다는걸, 홍어로도 배운다. p23

 

나도 남도 사람이다. 삭힌 홍어 귀신이다. 입 천장이 까지게 먹어야 홍어 좀 먹었다 생각하고, 삼합 이런 거 안 키운다. 그냥 삭힌 홍어 그 본연을 즐긴다. 그래야 먹을 줄 안다고 가족들 모인 자리에서 그런다.

 

아이들 입에 조금 떼어 주면 똥맛이 난다고 난리다. 똥을 먹어본 적도 없으면서. 그 모습에 하하 호호 웃게 된다.

 

우리 집안의 행사에는 항상 홍어가 빠지지 않는다. 대신 박 씨가 아닌 다른 분(사위, 며느리)들을 위해 삭힌 홍어가 아닌 그냥 홍어무침을 사다 먹는다.

 

이적의 단어들에서 홍어라는 단어가 나오다니.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고개를 끄덕이게 되며, 잠깐 우리 집의 모습과 오버랩되었다.

 

 

변화

변화는 불가피하게 무언가와의 단절을 수반할 터인데, 단절된 쪽에서 보기엔 '변해버린' 것 같겠지만, 단절한 쪽에서는 '변혁을 일으킨' 것이다. p119

 

친구가 생각난다.

내 쪽에서 단절해 버린 친구, 내 인생의 변화를 꾀한 것이다.

 

처음에는 내 정신이 힘드니 친구를 챙길 겨를이 없었다. 그렇게 연락을 받지 못하고, 못하고, 못하다.. 연락하기가 애매해졌다. 내 마음이 거기까지 신경 쓰질 못했다.

 

우선 나부터 살고 보자 생각하니 그다음은 가족을 챙겨야 하고 먹고 살 걱정이 들고. 친구에게까지 기회가 닿지 않았다.

 

핑계고, 단절된 쪽에서 '변해버린' 것이 맞겠다..

 

 

누다

'똥을 누다'는 변기에, '똥을 싸다'는 속옷에, 전자는 의도를 가지고, 후자는 의도치 않게. 아직도 "똥을 싸고 올게"는 내겐 너무 가혹하다. 그렇다고 "똥 누고 올게"가 딱히 향기롭다는 것은 아니지만. p121

 

이 글을 읽고, 둘째가 퍼뜩 생각났다. 둘째는 지금 7살이다. 그 아이는 유치원에서 도대체 무슨 그런 신기한 단어들을 배워오는지 나를 놀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하루는 둘째가 화장실에서 큰 볼일을 보고 있었다. 아빠도 큰 볼일을 보고 싶었는지 화장실 앞에서 기다리다 급하게 문을 두드렸다. 안에 있던 둘째가 말한다.

 

"아빠, 똥 마려워요? 급해요? 지렸어요?"

 

그 순간 아빠는 지리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 모두 지렸냐는 표현에 웃다가 나 또한 찔끔. ', 이런..'

 

 

씨앗

허투루 보면 티끌 덩어리 같았겠지만 실은 꽃의 꿈을 품은 생명의 씨앗이었다. 잠재력이란 말을 이 이상 절절히 웅변할 예가 있을까. 내 안엔 과연 어떤 설계도가 있는가. p179

 

나의 가능성은 어디까지 일까? 가끔 생각해 본다. 일처럼 아침부터 오후까지 책을 보고 서평을 올리고 그러고 나면 하루 일과가 마무리된다. 단순한 생활을 이어가는 중이다.

 

이렇게 몇 달, 몇 년이 흐르면 나도 도서 전문 블로거라는 타이틀을 달 수 있겠지? 그 이후에는 무엇을 하면 될까? 나는 또 어떤 옷을 입고 있을까? 계속 모색해 본다. 이건 나의 일이다.

 

이미 주위에 그렇게 이야기하고 다닌다. 그래서 커피 마시자는 분들과도 미리 약속을 잡고 일정을 조율한다. 웃기지 않은가? 집에 있는 가정주부인데.

 

그래도 꿈이 있고 그대로 실행 중이니 주위에서도 함부로(?) 나의 시간을 이용하려고 들지 않는다. 그런 분이 계시면 정중히 사양한다.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독서하는 시간을 즐기기까지 한다.

 

과연 나의 내년과 3년 후의 모습은 어떻게 변화되어 있을지, 궁금하다. 그리고 퍽 기대된다.

 

 

고수

음식에 화장품 냄새나는 풀을 넣는다고? 왜 다 된 밥에 재를 뿌리지? 속는 셈 치고 시도해 보라는 친구의 말에, 이 허브의 존재 이유가 온몸으로 납득이 되며 덜컥 사랑에 빠졌다. 완성된 취향 따위는 없다. 우리는 끊임없이 바뀔 때 젊다. p191

 

남편에게 이런 말을 장난처럼 한 적이 있다.

 

"늙으면 죽어야지. "

 

그런데 난 사실 장난 반 진담 반으로 한 이야기였다. 이 말의 속뜻은 이렇다. 몸이 늙어서가 아니라 마음이 늙으면 도태되고 죽을 수밖에 없다는 뜻으로.

 

소통이 되지 않고 남의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과는 대화할 수 없다. 그런 사람은 혼자가 된다. 그런 의미였다. 귀에 전봇대를 박은 사람 말이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만 내려놓고 남의 말을 경청하고 수용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이적의 단어들은 작가의 단상을 적어 내려간 산문집이다. 공감되는 부분도 있고, 톡톡 튀는 글밥은 보는 이를 흥미 돋게 한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즐겁고 유쾌하게 잡념이나 단상을 즐길 수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가끔 멍 때리고 하릴없이 있다가도 불현듯 떠오르는 단상들을 끼적이는 것. 그것들을 모아 엮어서 책을 낼 수 있다는 발상도 좋았다.

 

나도 앞뒤 없이 막무가내로 적은 단상들이 있는데 자신감을 살짝 가져본다.

 

내용 또한 길지 않고 잠깐씩 읽을 수 있는 책이어서 누구에게나 부담 없이, 그리고 특히 여행 갔을 때 들고 가면 참 재밌을 책, 이적의 단어들이었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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