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로 - 요절할 결심
이묵돌 지음 / 김영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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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죽으시게요?" 편집자가 물었다.

"마감은 하고요."나는 곧장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가장 빠른 비행기 표를 찾았다.

<여로> 중에서

 

여로 요절할 결심, 작가는 충동적으로 여행을 떠난다. 죽을 결심으로 러시아행 비행기 표를 끊고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웃픈 이야기가 시작된다.

 

마감은 하고 죽겠다는 그의 말에서 그는 이미 죽을 마음이 없어 보였다. 단지, 죽을 만큼 지금 현실이 싫어서였나 보다.

 

마감시간을 지켜가며 글을 쓰려니 방에 갇혀 글이 써질 리 없다. 간단한 블로그 포스팅 하나도 쓰려고 컴퓨터를 켜면 커서밖에 안 보이는데 작가가 직업이면 얼마나 머리를 쥐어 짜내고 온갖 생각을 하며 썼다 지웠다를 반복할 것인가.

 

그의 고뇌가, 죽어 버리고 싶을 만큼 지금의 상황과 여건이 맘에 들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그의 충동적인 러시아 여행기가 궁금하다.

 

제목에 나와 있듯이 요절할 결심으로 어디든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간단한 짐만 꾸려 작가는 여행을 떠난다.

 

그는 왜 그렇게 힘들어하고 괴로웠을까?

이야기는 자기 사정을 착실하게 잘 설명해 주지 않는다. 여로를 읽다 보면 중간중간에 가족이 없다는 것과 정신건강이 여의치 않아 수면제 등을 복용한다는 사실이 나온다.

 

이묵돌 작가는 1994년 생, 소위 요즘 MZ세대이다. 그래서 당당히 자기표현을 가감 없이 적었나 보다.

 

보통은 자기검열을 하기 마련이라 본인 가족사나 약을 복용한다는 사실을 적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적나라하고 거침없는 필체를 보여준다. 그런 솔직한 표현이 보기 좋았다.

 

어쨌든 작가는 죽을 요량으로(말은 그리하지만) 러시아를 떠나 좌충우돌 이야기가 펼쳐진다. 러시아에 도착하자마자 택시 기사에게 사기를 당하고, 코로나에 걸리고 격리되며 도움을 주는 고마운 사람들도 만난다. 여행 중에 러시아는 전쟁을 일으키며 인터넷 결재가 되지 않기도 하고 돌아오는 항공편이 취소되어 육로로 핀란드를 경유해 겨우 한국에 돌오게 된다.

 

우선 기억나는 대략의 이야기는 그러한데 정말 우여곡절이 많다. 코로나 음성확인서를 받기 위한 여정도 그러하고 꼬일 대로 꼬인 상황에서 그것을 풀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저자의 처절한 고군분투가 보인다.

 

내가 저자와 같이 충동적으로 말도 전혀 통하지 않는 나라를 여행한다면, 과연 잘 살아 돌아올 수 있을까? 아찔하다. 어쩌면 저자는 정말 죽으려고 갔을 수도 있겠다.

 

먹는 거며, 숙소, 언어도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었던 무모한 그의 여행이 그는 힘들고 불편했겠지만 그 여정을 따라가는 독자 입장에서 나는 즐거웠다.

 

또 원래 주인공의 역경과 고난이 많을수록 이야기는 재미있는 법. 고생스러웠지만 기억에 남았으니 여로를 출간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것도 러시아 여행기라니. 여행책을 오랜만에 읽은 것도 좋았는데 가기 힘든 나라 러시아라니! 내가 언제 그곳을 여행할 수 있을는지, 여로 덕분에 러시아 여행을 잘 다녀온 기분이다.

 

미지의 나라 러시아. 작가는 여로를 마치며, 이런 말을 한다. 진심으로 죽을 생각으로 유서까지 써두고 돌아가는 비행기도 예약하지 않았다고.

 

마감한 원고를 전송한 다음 얼어 죽는 게 계획이었다고 말하는 그. 얼어 죽을 때까지 추위를 견뎌야 한다는 점이 까다로웠고, 갑자기 걸린 코로나로 의도치 않게 삶에 대한 의지도 확인하게 되었다는 것.

 

결국 죽으려고 간 곳에서 삶의 의지를 되찾고 온 그는 아직도 살고 있다. 그것 아주 잘. 불면증이 나았고 몸무게도 7, 8킬로그램이 늘어났다고 한다.

 

지금의 상황을 비관하며 죽으려고 떠난 여행이 개고생 후 한국만 한 곳은 없구나 싶었는지 돌아와선 자퇴했던 대학도 다시 다니고 장학생도 되었단다. 뭔가 배우고 싶다는 생각으로 잘못된 결정(?)을 하고 말았다지만, 이 정도면 삶의 의지를 넘어 정말 잘 살아보고자 하는 마음이 샘솟은듯하다. 그의 행보를 응원한다.

 

갑자기 나도 처음 홀로 여행 갔었던 제주도가 생각난다. 여로와는 비교도 할 수 없지만 내겐 처음의 그 설렘과 떨림은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어떤 이는 고생길이었던 여행도 책으로 발간하는데 나는 멋지고 황홀했던 여행을 왜 마음속에 간직만 했을까. 아쉽다. 다음에는 여행을 떠난다면 나만이라도 볼 수 있게 여행기를 적어봐야겠다.

 

기존에는 수첩에 그때의 간단한 상황과 느낌 정도만 끼적이는 수준이었는데 여로를 보고 난 후에는 나도 이런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해 보면 어떨까 싶다.

 

일기나 편지 형식이면 어떻고, 블로그나 브런치에 기재하는 것은 어떤가. 공책이나 다이어리에 적어도 좋을 것이다.

 

이제는 글을 쓰고 싶다면 글을 쓰자. 쓴다 쓴다 하지 말고 제발 쓰자.

 

오늘은 여로를 통해 과거 홀로 섬 여행을 다녔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의 러시아 여행이 힘들고 고된 여정이었지만 그래도 그곳에서 친구를 만나고 도움을 받으며 사람 사는 곳이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기회가 된다면 러시아 여행 나도 떠나보고 싶다. 방구석 러시아 여행기 여로, 멋진 일탈이었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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