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똥 민들레 그림책 1
권정생 글, 정승각 그림 / 길벗어린이 / 199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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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 선생님! '야곱의 우물'에 연재하신 '밥데기 죽데기'를 읽으며, 늘 다음호를 기다리며 선생님의 팬이 되었습니다. 녹색평론사에서 나온 '우리들의 하느님'은 그런 저의 마음을 더더욱 굳혀 주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 '강아지 똥'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느 날 처마 밑에 버려진 강아지똥이 비를 맞아 흐물흐물 그 덩어리가 녹아 내리며 땅 속으로 스며드는 모습을 보았고 그 옆에서 무엇인가가 피어나고 있는 것을 보시며 '아! 저거다!'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며칠 밤을 새워 강아지똥 이야기를 쓰셨다지요.

저는 선생님께서 쓰신 이 강아지 똥 이야기도 참 아름답지만, 무심히 봄비를 보며 지나치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그 강아지 똥을 발견한 선생님의 눈이 무척이나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의 그 아름다운 눈을 저도 닮기를 희망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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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톨스토이 민화집
레오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인디북(인디아이)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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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갖고 있는 책을 다시 한 권 사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겠습니다만, 10년 전에 산 삼중당 문고(같은 역자의 번역)가 이젠 거의 다 헤진 지경에, 새로운 장정으로 다른 출판사에서 나왔길래 반가운 마음으로 선뜻 다시 구입했습니다. 흔히 톨스토이 하면 '전쟁과 평화' '안나카레리나' '부활' 등을 떠올리지만, 톨스토이 자신이 가장 사랑한 작품은 만년에 저술한 이 민화집입니다. 톨스토이 사상의 변화는 그의 '참회록'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만 가슴 뜨거운 참회와 더불어 그의 문학도 커다란 변화를 겪습니다.

그는 작가로서의 자신의 명예와 부를 혐오하고, 자신의 모든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싶어했지만 부인과의 갈등 때문에 그럴 수 없었습니다. 결국 82세 되던 해인 1910년 10월 28일 새벽, 아무도 모르게 야스나야 뽈라냐에 있는 자신의 저택을 떠난 후 11월 7일 야스쨔뽀보라는 시골 역에서 역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임종을 맞이한 톨스토이의 죽음은, 그 자체로 그의 어떤 문학보다도 더한 감동과 가르침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톨스토이가 자신의 스승으로 삼았던 이는 쉬따예프라는 농부였습니다. '현재 나의 생활은 참다운 생활이 아니라 그 시늉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하고 있는 부유한 생활은 오히려 인생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을 저해한다. 그러므로 참다운 인생을 알기 위해서는 기생충 같은 내 생활에 한정되지 않고 소박하고 근로하는 사람들 - 인생을 창조하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을 알지 않으면 안된다'(참회록 중).

이런 생각 중에 상징처럼 나타난 사람이 농부 쉬따예프였던 것입니다. 쉬따예프는 묵묵히 일하고 단순한 생활을 하였으며 무엇보다도 그의 말과 행동이 일치했기 때문입니다. 톨스토이는 이 농부야말로 자신이 가장 많은 것을 배울 스승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쉬따예프와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농부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러시아의 민화들을 여기저기에서 채록한 여기저기에서 채록한 이 민화집은, 톨스토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가했던 것이 귀족들과 지식인등 상류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문학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 그 중에서도 특별히 서민들을 대상으로하는 문학이었음을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톨스토이 민화집은 톨스토이의 문학의 부록과 같은 부분이 아니라, 그의 문학의 완성이요 집대성인 것입니다. 이 위대한 작품에 대해 여기 저기서 발췌본들이 예쁜 그림과 함께 나오고 있지만, 제가 보기에 가장 좋은 번역본은 박형규 교수님의 번역입니다. 독자서평을 쓰신 '한기'님은 번역에 대해 혹평을 하셨는데, 저는 러시아 문학작품은 가능한 한 박형규 교수님의 것을 골라 읽습니다. 도스또예프스키의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학원사 간), 톨스토이의 '참회록'(동서문화사 폐간, 범우사 간), 전쟁과 평화(범우사 간) 등 박형규 교수님이 번역하신 책은 다른 번역본들을 능가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원작에 대한 충실한 번역 때문에 다소 딱딱해 보이는 문체 때문에 그러셨는지 모르지만, 제가 보기에 이것은 대단히 정확하고 학구적인 번역입니다. 모든 분들께 권하고 싶고, 초등학생과 중고등학생들에게도 일생의 지침이 될 책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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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c2
데이비드 보더니스 지음, 김민희 옮김 / 생각의나무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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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이 좋은 서평을 써 주셨기 때문에 굳이 하나의 찬사를 더 늘어 놓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들지만, 거드는 것이 책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이 듭니다. '단 한번도 실수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새로운 일을 시도하지 않는다.' '하나의 목적에 자신의 온 힘과 정신을 다해 몰두하는 사람만이 진정 탁월한 사람이다. 이런 까닭에 탁월해지는 데는 그 사람의 모든 것이 요구된다.'

첫 장에 씌어있는 아인슈타인의 매혹적인 말이 이 책을 구입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과학은 가장 객관적인 학문에 속합니다만, 이 책을 읽고 난 결론은, 그것 역시 사람의 작업이라는 것입니다. 과학 법칙은 그 자체로 존속하고, 사람은 그것을 발견해 나갈 뿐이라는 것이 우리 안에 형성되어 있는 통념입니다만, 과학사를 되짚어보면, 그러한 법칙이 발견되게 된 시대적 배경과 한 과학자의 인생이 과학적인 진리의 발견을 유도해 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현대 양자역학에서는 관찰자의 의도에 따라 다른 결과가 파악된다고 합니다. 가령 빛이 파동이냐, 입자냐 하는 것은 오랜 논쟁거리였습니다만 현대 양자역학은 빛은 파동임과 동시에 입자임을 밝혀내었습니다.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그것이 파동임을 증명하려는 실험에서는 파동으로 관찰되고, 입자임을 증명하려는 실험에서는 입자성이 발견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절대 객관적 세계라고 파악되는 과학 법칙 마저도 인간의 주관성과 긴밀한 영향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위의 얘기는 이 책에 나오는 말은 아닙니다만, 이 책에 나오는 여러가지 일화들은 위의 이론을 뒷받침 해주고 있습니다. 이 책은 E=mc2 이라는 과학공식의 전기로 씌어진 특이한 구성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책의 재미를 더해주며, 과연 저자 말고 누가 이런 작업을 할 수 있을까 하고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합니다. 공식이 태어나기 이전의 단계들과 탄생, 그리고 그것의 다소 비극적인 활용에 까지 소개되는 E=mc2 의 일대기는 한 영웅의 그것과 비견될 정도로 재미있고 흥미진진하게 소개됩니다.

아인쉬타인 외에도 마이클 페러데이의 훈훈한 일생, 오토 한과 리제 마이트너의 가슴 아픈 일화, 오펜하이머 라는 사람의 매력, 과학사에서는 존경받지만 지향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리는 하이젠베르크의 이야기들은 책 안에서 단순한 흥밋거리로 소개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이 과학사 안에서, 그리고 세계사 안에서 어떠한 위치를 점하는 지에 대해 통찰력 있게 제기됩니다.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시도를 성공적으로 끝낸 저자에게 박수를 보내며, 역자에게도 감사의 마음이 드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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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 S. 엘리엇 한길로로로 7
폴커 초츠 지음 / 한길사 / 199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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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은 잔인한 달' 누구나 4월이 되면 읊조리지만, 사실 이 말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아보입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영국의 시인 T.S. 엘리엇의 '황무지' 첫 구절입니다.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우는 4월은, 가사 상태를 원하는 현대인들에게 모든 것을 일깨움으로써, 새로운 삶을 원하지 않는 현대인들에게 새로운 삶을 요구함으로써 잔인한 달로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황무지의 발표와 더불어 현대의 시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T.S.엘리엇의 영향하에 놓이게 되었다고 황동규 교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나오던 1997년까지 T.S. 엘리엇(그는 스스로 그렇게 불리기를 원했으므로 '엘리엇'이라고 명명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의 문학에 대한 비평서는 우리나라에 드물게 소개되었습니다. 상업성이 없을 것이 예측되는데도 독일의 현대적 저작인 '로볼트 시리즈'를 번역하여 '로로로 시리즈'로 펴내고 있는 한길사의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이 책은 T.S. 엘리엇의 생애와 작품을 접목시킨 독일인 작가의 용기있는 작품입니다. 그러나 세계적인 영국시인에 대한 독일저자의 문체를 직역한 역자의 딱딱한 문체는 독서에 상당한 부담을 주고 있습니다. 또한 군데 군데 있는 오역 또한 책읽기를 방해합니다.예를 들어 198쪽의 San Juan de la Cruz는 16세기 스페인의 가톨릭 사제이며 시인으로서, 스페인 문학사에서도 소중하게 다루어지는 '십자가의 성 요한'입니다. (가르멜회의 수도자이기 때문에 이런 이름을 가집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성 요한' 이라는 공식 명칭 대신 '크루스'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즉 '십자가'란 뜻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역자께서 스페인어를 모르시기 때문에 넘어갈 수 있습니다만, Franz von Assis는 분명 독일어인데도 오역을 하고 계십니다. 그 분 또한 가톨릭 수도자로서 새들과도 대화를 했다는 저 유명한 '프란치스코 성인'입니다. 여기에 쓰인 von은 Herbert von Karajan 처럼 지체 높은 가문의 지위를 나타내는 단어도 되지만(그리고 이러한 경우에는 '카라얀'이라고 성을 부를 수 있습니다만), 독일어의 다른 용법으로서 '~출신'이라는 뜻을 지닙니다. 평생 가난을 목표로 삼았던 수도자가 어찌 자기 이름에 지체 높은 가문을 자랑하는 단어를 넣어서 불리었겠습니까? 단지, 프란치스코 성인의 출생지가 이태리의 '아씨시'인 것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따라서 '아씨시의 프란치스코'라고 번역해야 하는데 '아씨시'로 지명이 인명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 제가 두 가지 오역에 대해 일일이 꼬집어서 리뷰에 쓰는 까닭은, 같은 내용을 한길사에 편지로 보냈는데, 아무런 답이 없어서 화가 나서 그렇습니다. -

또한 T.S. 엘리엇의 유명한 시들도 문학적 감각이 살아나지 못한 독일어 직역이 되었습니다. 저의 견해로는 아무리 저자가 독일인이라 하더라도, 영문학가의 생애와 작품에 대해 다룬 책이니만큼 영문학자의 감수가 있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T.S. 엘리엇의 '황무지'를 읽기를 원하신다면, 문학적 매력과 상세한 주해가 곁들인 시인 '황동규' 교수님의 번역으로 읽으시기를 권합니다(민음사에서 나왔는데 현재 절판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만 곧 다시 나올 것을 희망합니다). 개인적으로 한길사를 신뢰하고 있습니다만, '로로로 시리즈'라는 용기있는 시도 뒤에 있는 한 두 가지의 오류가 보완된다면 한층 더 빛을 발하리라고 생각합니다. 하루빨리 수정본이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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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 장의 명반 클래식
안동림 지음 / 현암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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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상 일주일의 사흘은 시골에 내려가 산다. 오디오가 있을 리 없다. 강의실에서 강의실로 낮 동안은 눈코 뜰 사이 없이 바쁘다. 연구실 창밖 바로 눈앞에 다가드는 산 그림자를 희부옇게 저녁 안개가 가릴 무렵이 되어야 비로소 내 시간을 찾는다. 이 때 문득 책상 위에 놓은 트랜지스터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귀에 익은 음악. 어떤 값진 오디오 장치가 이때의 감동적인 순간을 만들어 줄 수 있겠는가!' (책에서)

안동림 교수님을 무어라 일컬으면 좋을까요? 음악애호가? 평론가? 시인? 교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교수님께서 '레코드 수집가'나 '레코드 비평가'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한 때 철학교수로 재직하시면서 '장자'를 향기롭게 번역하신 분이시기도 합니다. 지금은 음반에 대한 책들이 저술, 번역, 편집을 통해 다양하게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몇 년 전 이 책이 3권 짜리로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이러한 시도 자체가 무모하게 여겨지리만치 모험에 가까운 일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학생 때 비싼 가격 때문에 사지 못하고 늘 서점에 가서 힐끔힐끔 보고 오는 제가 안스러웠는지 동기들이 돈을 모아 통합본을 선물로 사주었을 때의 감격을 저는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선물받은 지 몇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이 책을 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기 때문에 저는 되도록 제 손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두고 있습니다. 제가 갖고 있는 것은 같은 내용의 구판입니다만 신판이 나왔다니 반가운 마음 금할 수 없습니다.

교수님의 글을 읽으면 하나의 음악 작품이 탄생되기 위하여 작곡가가 어떤 인생의 행로를 거쳐서 어떤 노고를 통해 작곡하였는지, 그리고 그런 작곡가 못지 않게 연주자와 지휘자는 또 얼마마한 공로를 들였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공들여 녹음된 음반을 이리 찢고 저리 분해하여 날카로운 비평의 칼날을 들이댑니다만(물론 이 작업도 필요한 일이겠으나) 교수님은 하나의 음반을 마치 그분들의 혼이 담겨있듯 소중하게 다룹니다.

한 때는 비평보다 칭찬 일변도의 말씀인 것 같고, 또 고전적인 녹음만을 다루신 것 같아 다른 책도 기웃거려 보았습니다만 다시금 이 책의 향기로 되돌아 오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 '아! 음악은 이렇게 듣는 것이구나!'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음악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과 철학, 사람과 삶이 녹아 있습니다.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듣는 분이라면, 음반 몇 장 값을 아껴서 꼭 읽으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또한 반드시 음악이나 음반과 연관되어 있는 것만이 아니라 인생에 대한 자잔한 수필집처럼 두고 두고 읽을 수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녹음에 대한 교수님의 감상도 첨부되었으면 하는 욕심이 솟기는 합니다만, 20세기의 베스트 셀러라는 책도 1000년전에 씌어진 단테의 신곡만 못하듯, 고전음악에 대한 고전적인 해석의 향수에 젖어든 교수님의 글은 무엇이 우리의 감성을 풍요롭게 만드는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클래식 음악은 이론적인 공부를 시작하고 나서 듣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음악과 만남으로써 이루어집니다. 클래식 음악을 처음 접하시는 분들은, 입문 서적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체계적인 공부에 식상하시다면 맑은 감성의 소유자이신 안동림 교수님의 이 책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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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2008-07-25 0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동림 교수의 이 책 리뷰를 보고 따라 왔어요. 한동안 잊어버리다가 한번 손이 가면 또 한동안 놓을 수 없는 그야말로 바이블 같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리뷰들도 천천히 읽어보겠습니다.

justin 2008-09-18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댓글이 있는 줄 몰랐네요.
좋은 날 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