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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서 아름다운 - 끝내 사랑으로 남는 순간들
이승원 지음 / 김영사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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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에 남은 빛의 온도 


— 이승원, 『사라져서 아름다운』


소리부터 말해야겠다. 이 책에는 세우(細雨)가 내린다. 가랑비도 보슬비도 이슬비도 아닌, 그 모든 이름 사이의 가장 가느다란 비. 세상을 떠난 시인이 마지막 통화에서 그 비가 온다고, 술 한잔해야지 하고 말했다는 대목에서 나는 책장을 넘기던 손을 오래 멈추었다. 


저자는 '세우'의 시옷과 '술'의 시옷이 부딪는 작은 리듬에 마음을 빼앗겼다고 쓴다. 한 사람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이 얼굴이나 목소리 전체가 아니라 자음 하나의 울림이라는 것. 그 아득하고 정확한 사실 앞에서 애도는 거창한 문장이 아닌, 작고 가느다란 빗소리가 된다. 


빛은 이 책의 가장 은밀한 주인공이다. 


가로등 불빛 아래 아이들이 있다. 해가 지면 하나둘 집으로 돌아가고, 일터에서 돌아오지 않은 부모를 기다리는 몇몇만 남아 불빛 아래 서성인다. 그 가운데 한 아이가 유리구슬을 가로등에 비춰 보았을 때 구슬 속에서 은하계가 펼쳐졌다는 장면은,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오래 쓰다듬어 본 대목이다. 


가난한 아이의 손바닥 위에서 우주가 열린다. 언젠가는 나도 이 세상의 주인공이 될 것이라는, 언젠가는 포근한 집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아이가 혼자 속삭였을 법한 다짐이 불빛에 실려 온다. 


같은 가로등 아래에 딸의 귀가를 기다리는 어머니가 서 있고, 연필에 침을 묻혀 초코파이 상자를 찢어 만든 스케치북에 누군가의 얼굴을 그리던 이름 모를 사내가 앉아 있다. 그가 그림을 다 그리고 나면 외치던 알아들을 수 없는 말, "날라 베겼어"가 사실은 '나를 그렸어'였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한 사람의 실종이 한 편의 시가 된다. 그리고 그 장의 제목이 '나를 잊지 말아요', 물망초의 꽃말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 독자의 목구멍으로 무언가 뜨겁게 올라온다.



맛도 있다. 이 책은 허기와 온기로 쓰인 책이다. 

막냇동생의 손을 잡고 대중목욕탕에서 한 시간을 채우고 돌아온 소년을 기다리던 밥상, 생애 첫 참치김치찌개의 김이 모락모락 오르던 저녁은 어떤가. 빈 참치캔 안에 바다가 있었고, 목욕탕의 수증기가 있었고, 엄마의 간난신고가 있었다는 문장은 한 끼의 밥을 한 세대의 역사로 바꾸어 놓는다. 시간강사 첫해 연봉이 칠백만 원이던 사람이 일곱 배쯤 되는 친구와의 술자리에서 기어코 술값을 내겠다고 우기던 밤, 그 뒤에 식도를 타고 내려가던 위스키의 열기가 어디서 오는 것인지 오래 알지 못했다는 고백은 이 책에서 가장 정직한 맛이다. 달콤함과 쓴맛이 한 모금 안에 섞여 있다. 이승원의 문장은 그렇게 혀끝으로 읽힌다.


그리고 촉감. 이 책의 가장 깊은 곳에는 손이 있다. 이모가 그를 '미싱 타는 삼촌'으로 오인한 채 수도가 얼어붙은 겨울에 그의 겨울옷을 대신 빨아 주던 손. 그는 굳이 아니라고 하지 않았고, 봄이 오자 작별 인사도 못 한 채 그 동네를 떠났다. 훗날 그는 삶이 지치고 힘들 때면 그때 충전해 둔 환대와 친절의 기억을 곶감 빼 먹듯 꺼내 먹는다고 적는다. 사라진 사람들이 우리에게 남기는 것이 정말로 이런 것이다. 


엄마와 함께 이불 홑청을 밟아 헹구던 그 서늘한 발바닥의 감각, 우물 옆 홑동백에 거름을 주던 여자의 거친 손등, 한밤중 마당을 가로질러 돌배 두 개를 따서 이불 속으로 숨던 입덧하는 며느리의 떨리는 손. 다음 날 시아버지가 배가 몇 개 없다고 하자 그녀는 잠시 뜸을 들이다 들고양이가 먹었나 보다고 대답한다. 


한 여자의 평생이 그 열두 글자 안에서 허기와 죄책감과 순발력과 생존으로 압축된다. 훗날 폭설 속에서 눈을 맞는 붉은 동백을 보았을 때, 아들은 그 모든 것이 재가 되어 꽃 위에 소복하게 내려앉은 것 같다고 느낀다. 붉은 꽃 위의 흰 눈이 재로 읽히는 순간, 사진은 더 이상 사진이 아니라 한 사람이 살아 보지 못한 삶의 체온이 된다.


이 책이 서정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을 짚어야 한다. 히로시마의 위령비 앞에서 저자는 문장에 주어가 없다는 사실에 걸려 오래 멈춰 선다. 과오는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하는데, 그 과오의 주어는 누구인가. 그라운드 제로라는 말이 원래 가해의 현장을 가리키던 군사 은어였고, 훗날 가해자의 언어가 피해자의 언어로 둔갑했다는 대목은 이 책의 가장 서늘한 문장이다. 


그러나 그 서늘함은 곧 이렇게 이어진다. 폼페이에도, 히로시마에도, 오슈비엥침에도 꽃이 핀다. 비판과 애도가 서로를 지우지 않고 한 문단 안에서 나란히 숨 쉰다. 그리움이 날카로울 수 있다는 것, 날카로운 시선이 그리움으로 완성될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은 알고 있다.



이 책의 제목, '사라져서 아름다운'. 사라짐이 아름다움의 대가가 아니라 아름다움의 원인이라는 것. 그래서 이 책에는 서둘러 붙잡으려는 조급함이 없고, 떠나가는 것들의 등을 오래 바라보는 사람의 느린 호흡만 있다. 사라진다는 사실이 삶을 달콤하게 만들 뿐 아니라, 우리를 배고프게 만든다는 것도 이 책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읽는 내내 나는 보고 싶은 사람이 많아졌다.


덮고 나서 오래도록 손바닥이 따뜻했다. 


모래사장에서 무언가 반짝이는 것을 주워 든 사람처럼, 누군가가 오래 쥐고 있던 온기를 건네받은 사람처럼.이 책이 증언하는 것은 단지 한 사람의 여행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손끝에 아직 남아 있는 빛의 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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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서 아름다운 - 끝내 사랑으로 남는 순간들
이승원 지음 / 김영사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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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의 힘과 사진의 아름다움이 어우러져 잊을 없는 추억의 앨범이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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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아름다운 영어 문장들 - 교양과 영어를 한번에 챙기는 영문 필사집
노지양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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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공부를 오래 해왔지만 문장이 입에 잘 붙지 않는 것이 늘 고민이었는데, 이 필사책을 만나며 그 고민이 많이 해소되었습니다. 검증된 명문장들로 구성되어 있어 표현 하나하나가 모두 학습 가치가 높고, 직접 손으로 쓰면서 자연스럽게 어휘와 문장 구조가 익숙해집니다. 부담 없는 분량으로 매일 꾸준히 할 수 있다는 점도 큰 장점입니다. 영어 초보자부터 중급자까지 모두에게 추천할 만한 필사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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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방 예찬 - 나무를 다듬고, 가죽을 꿰매고, 글을 쓰는 남자의 기록
이승원 지음 / 천년의상상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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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으로 매만지고 쓰다듬는 세계의 아름다움"이라는 말이 닫힌 마음을 어루만진다.  "무언가를 만들수록 우리는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간다"는 문장도 커다란 위로가 되어준다.  
정말 무언가를 열심히 손으로 만들어본 기억이 언제쯤인가.
우리는 모든 것을 사고, 팔고, 버리는 시대에 살고 있다.
만들고, 쓰다듬고, 아끼고, 더 오래 쓰는 데는 인색하다.
사고 팔고 버리는 것은 삶을 새롭게 만드는 것 같지만 사실은 삶을 소모해버리는 것이 아닐까.
만들고, 쓰다듬고, 아끼고, 더 오래 쓰는 것은 조금 느리고 답답해 보이지만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일이 아닐까 싶다.
 
저자는 목공방과 가죽공방의 경험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느리고 소소하게, 그러나 따뜻하고 풍요롭게 바꾸어가는 과정을
유머와 위트를 섞어 들려주고 있다.
과장되지 않아서 좋고
'이렇게 하면 인생이 바뀐다'고 소리쳐 부르짖지 않아서 좋다.
그냥 곁에서 자기 인생을 담담히 들려주는 듯한 저자의 목소리 덕분에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본지 한참 된 우리 인생'도 위로받는 느낌이 참 좋다.
그리하여 <공방예찬>의 진정한 예찬 대상은
권태와 우울에 빠진 우리의 삶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든다.
삶을 예찬하기 위하여, 언뜻 무미건조해보이고 지루해보이는 삶 그 자체를 사랑하기 위해
무언가를 손으로 깎고, 쓰다듬고, 매만지는 일상을 선택한 사람의 이야기가
오늘따라 참으로 정겹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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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방 예찬 - 나무를 다듬고, 가죽을 꿰매고, 글을 쓰는 남자의 기록
이승원 지음 / 천년의상상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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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느질은 에르메스급, 청승은 박사급, 입담은 수준급‘인 한 남자의 공방예찬이라니, 궁금하다. 손으로 만지고, 다듬고,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세계에 대한 향수가 피어오르는 요즘, 공방에 직접 다닌 사람의 살아있는 체험담이 가득 담긴 책이다. 나도 무언가를 손으로 만들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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