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광선 꿈꾸는돌 43
강석희 지음 / 돌베개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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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색 광선>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다른 소설의 인물들보다 굳게 입을 다물고 대화를 거부하는 것 같았다고 작가는 말한다(작가의 말 인용). 복잡한 속내를 숨기고 깊은 상처를 지닌 인물들과 그들을 애써 섬세하게 보듬고 있는 작가의 문장을 조금씩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이들과 함께 섞여 춤을 추며 거스를 수 없는 생의 많은 문제들에 대해 견딜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든다.

 북토크를 통해 많은 선생님들과 나눴던 이야기들도 기억에 남는다. 사회 현실을 소설에 반영해 쓸 때 작가가 어떻게 다루어야 윤리적으로 옳을지에 대한 고민이라든지, 사회 현상 자체를 넘어서는 문학적 형상화 작업과 재현의 윤리에 대한 고민들을 현직 교사이기도 한 작가의 치열한 언어로 들을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묵묵이라는 작은 돌과 같은 미미한 희망을 발견하는 자리였고, 날카로우면서 다정한 작가의 책들을 더 읽고 싶어졌다. ‘상처받는 사람이 덜한 방향으로 쓴다.’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면 너무 무거워져서 쓰지 못할 것 같아 그냥 쓰고 싶은 걸 쓴다.’ ‘나는 나를 화나게 하는 것을 쓴다. <내일의 피크닉 중>’ 내가 오래 붙잡고 있을 문장들이다.




-아래로 떨어지는 모든 것은 부서질 위험을 안고 있다. 낙하와 파손,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라면, 견디는 연습을 하자. (중략)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다 보면, 뚝 떨어지는 기분과 한없이 가라앉는 마음까지 받아 낼 수 있을지도!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 제 마음속의 파편들로 사방을 찔러야 속이 시원한 사람들이 있어.”

 

-그런 내 사정을 그 아이들에게 말하는 게 가능했을까? 내가 이해받을 수 있다는 기대를 놓아 버린지 오래였다. 그래서 나는 나에 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고 오해는 오해로 남겨 두는 게 차라리 편했다.

 

-이모는 슬쩍 던지는 시선만으로도 나의 변화를,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고 있는 나의 몸을, 다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멀리서 보면 윤슬 같았으나 손으로 집으면 날카롭게 베이는 유리 조각 같은 순간들.

(중략) 그 순간 이모는 사랑과 폭력을, 보호와 구속을, 신념과 집착을 구분하기가 어려워졌다. 이모는 싸울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아빠는 안 하던 짓을 무리해서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무리함이 싫었다.

 

-할머니가 받아 온 따가운 시선과 날카로운 말들의 절반 이상이 자신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이모는 생각했다. 그와는 반대로, 이모가 겪어야 했던 편견과 차별이 모조리 당신의 책임이라고 할머니는 믿었다. 나는 두 사람이 통과한 아프고 쓰리고 나쁜 것들이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끝날 것인지 알 수 없겠지만, 그것들이 주는 통증의 크기는 흐릿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다.

 

-이모가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어째서 그렇게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내가 배워서 아는 사랑의 형태 중에 휠체어를 탄 이들의 것이 없었다고 하면, 그건 이유가 될까. 놀랍도록 부끄러운 일이었다.

 

-일반식을 먹을 것. 그 말은 나의 진전과 전진을 응원하는 말이면서도 내 마음 한편을 지그시 누르는 말이기도 했다. 내가 얼마나 일반의 영역에서 멀어져 있는지 상기시키는 말이었으므로.

 

-우리는 세상을 나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어. 그게 우리 일이야.

 

-대체 그 사람들은 왜 이모와 친구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거야?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장애인은 정해져 있거든. 돌봐 주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장애인이 아닌 거지,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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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기린, 그날 이후 하얀 기린
변준희 지음, 이수연 그림 / 쉼어린이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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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기린, 그날 이후>를 읽고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별의 고통과 아픔이 찾아왔을 때 그 시간을 어떻게 통과할 수 있을까 질문하는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아픔을 안고 누군가에게 다가가 상처를 함께 어루만지고 연대할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빛이 보이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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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진 2025-02-28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운 이야기와 삽화입니다. 그림과 글을 보는 내내 마음이 평화로워졌어요. <하얀 기린, 그날 이후>는 상실의 고통과 아픔을 겪는 레인이 누군가를 살리고, 돕고, 구하는 이야기입니다. 고통이 찾아올 때 처음 느끼는 감정은 무력감과 절망, 원망하는 마음일텐데요. 레인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주변의 소중한 이들을 지키는 선택을 합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요. 주저하던 마음에 용기를 주고, 고통이 찾아왔을 때 이 시간을 통과할 수 있는 힘을 주는 이야기입니다. 꼭 읽어보시길 추천드려요.
 
[세트] 520번의 금요일 + 봄을 마주하고 10년을 걸었다 + 사람이 사람에게, 사람의 말을 이어갑니다 - 전3권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사단법인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 온다프레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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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펀딩에 참여해 도착까지 기다렸던 세 권의 책. 생존자 분들의 곁에 있었던 이들의 이야기, 책 속의 이름들 단원고 희생자 부모님과 생존자 부모님들, 형제자매, 그리고 시민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그저 남은 시간 이 이름들을 불러보고 기억하려고 합니다. 그거라도 하면서 연대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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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브 농장
이민주 지음, 안승하 그림 / 창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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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분주한 도시에서 할머니의 편지를 받고 강아지 프레스토와 함께 <페브 농장>으로 떠나는 주인공의 이야기이다. 눈부신 아침에는 따스한 햇볕을 받으며 비밀 씨앗을 심는다. 깜깜하고 고요한 밤이 되면 주인공은 평상에 누워 별빛을 구경한다. 수확한 열매들을 가지고 피자를 만들어 맛있게 먹기도 하고. 이렇게 농장의 하루는 낮과 밤이 함께, 음표와 쉼표가 함께 만들어 간다.


분주했던 나의 낮과 고요한 나의 밤을 생각한다. 가장 부대끼던 것들과 버거웠던 것들과 불안했던 것들과, 나를 위로하던 것들과 나를 울게 하던 것들을 생각한다. 그래도 참 성실하게 달려온 너에게 별빛으로 물든 열매들과 밤하늘의 쉼표 별자리들이 위로해 주기를. 따뜻한 음식을 만들어 먹고, 밤에는 마음 누이며 편안하게 자고, 낮에는 그 싱그러운 씨앗의 자라남을 보라고 그렇게 말해주는 것 같다. 정말 아름다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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