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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 - 학벌주의와 부동산 신화가 만나는 곳
조장훈 지음 / 사계절 / 2021년 11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가 아는 '대치동'은 사교육 전쟁이
부동산 전쟁된 곳
아이들이 교육 문제가 시초가 되어
어른들의 땅 투기에 피가 터지는 곳.
그뿐이었다.
내 아이가 초6 졸업을 앞두게 되면서
중학교 입학을 앞두면서
입학원서 눈치 싸움을 하게 되면서
우스겠소리로 누가 보면
입시라도 치르는 줄 알겠다 했다.
열아홉 살 무렵에 치르는 한 번의 시험으로
주홍 글씨가 되어 그 사람을 평가하는
성인의식이 대학 입시가 되었고
우리 사회는 대학 입시라는 통과의례가 인생의 성패를 결정한다고 생각한다는 경향이 강하다.
그 이끌림으로 대치동을 찾고,
그 들의 간절함이 대치동을 만들었다.
맹모삼천지교의 유교적 세계관 속에서
윤리적으로 정당화되었던
이 나라의 교육열은 강남 부동산
폭등의 신화에 편승하여
이제는 거의 신앙의 대상으로 승격된다.
그것은 자식 사랑이면서,
동시에 직장에서 버는 돈보다 몇 배는
더 많은 수입을 실현하는 기적의
재테크였으며,
부모라면 마땅히 지녀야 할
시내의 미덕이 되었다.
p-135
대치동의 학생들은 회전목마처럼 규칙적으로 여러 개의 학원을 돌고 집으로 회귀하는
주기마다 나오는 성적표에 따른 상하 이동은,
반복되는 회전운동과 상하 이동 사이에서 아이들은 현실감을 상실하고 공포에 휩싸인다.
칼 폴라니가 '악마의 맷돌'이라고 말했던,
모든 것을 숫자와 데이터로 환원하는
자본주의의
방앗간은 멈추지 않는다는 말이다.
'학벌세탁'을 위해서 서울 명문대의 지방 분교 캠퍼스를 선호하고 많은 사람들이 재수를 선택하는 이유는 단 하나, 더 나은 학벌을 얻고자 함이다.
'학벌'이 비중이 얼마나 큰 지를 잘 보여주는 행보다.
어느 대학을 나왔냐가 취업, 승진과 급여 인상, 사회적 관계를 확장할 기회에 관여하게 되는
사회는 없다.
한국에서 교육과 입시는 뜨거운 감자다.
선거철에는 혁신을 약속하지만 막상 집권하면
아무도 제대로 건드리지 못하고 민심만 잡고
매가 두려워 행하지를 못한다. 답답하다.
공교육은 학생 개개인의 자질과 능력을 육성하고
지원하기 위해 사회적 자원을 동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저자는 국제 학교의 좋은 예를 들었는데
우리 사회의 아이들은 언제 그런 좋은 혜택을
받으며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올지 생각하게 된다.
교육의 기회가 가진 돈에 따라서 분배되는 사회는
결코 정의롭지 않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사교육을 부르고 그 지출
비용이 가계의 전반을 자치하기 시작했다.
사교육비 지출 비율이 늘면서 신조어가 발생했다.
'에듀푸어, 등골 브레이커'
2009년부터 입시에 성공하려면
할아버지의 경제력과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이라고 웃지 못할 말들이 화자 되었다.
대치동에서는 수많은 집단을 구성하고
신조어들을 만들어 냈다.
새끼를 잘 치고 냄새를 잘 맡는 돼지의 특성에 빗대어 붙인 이름인' 돼지엄마'
대원족/연어족/대전족/원정족
독수리 아빠/펭귄 아빠/대전족 아빠/참새 아빠
대치동은
대학 입시 성공담과 부동산 신화가 함께 작용하면서 대한민국의 모든 세속적 욕망이 집결하는
'욕망의 중심지'가 되었다.
나에게도 대치동은 먼 세상 이야기이고
그 사세인 것이다.
비난하기보다는 비판적인 관점에서 그 효율성과 역기능을 온전히 이해하고,
각 행위의 주최들의 네트워크 방식과
역할을 파악할 수 있다면
공교육과 대학 입시에도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지 않을까?
좀 더 유연하고 효율적인 교육 서비스를
더 많은 사람이 누릴 수 있지 않을까?
p-311
인적 자원의 집합으로 인식하고, 공교육의 대체재가 아니라 보완재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저자는 대치동에서 30년간 생활해 오면서
그 전반을 드러낸다.
대치동이란 제목에서 오늘 거부감이랄까?
대치동은 나와는 먼 세계라고 생각해서
손에 잡히 지 않을 듯한 제목인데
책 내용은 그보단 우리 사회의 입시 문제를
짚어 주는 듯하다.
내가 몰랐던 현 상황과 문제들 그리고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상황적인 부분들.
그것들을 대치동에서는 미리 파악하고 있다?
라고 전달하려는 것인가?
학원 사교육이 더 나은 성취의 방법을 가지고 있다면, 공교육에서 그것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자양분으로 삼을 수도 있지 않을까?
대치동 중
맞는 말이다. 이것이 대치동과 사교육과 공교육에
한정된 것이 아닌 모든 것에 수용되는 말이다.
더 나은 성취의 방법을 가지고 있다면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자양분으로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숙제이고
어른들이 우리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이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