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절
링 마 지음, 양미래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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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서 깼다.

아침에 일터로 출근했다. 저녁에 집으로 돌아갔다.

그 루틴을 반복했다.’(261페이지)

대학을 졸업한 후 뉴욕으로 온 캔디스와 친구들은 함께 어울렸지만 친구들이 취직하면서 캔디스는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다. 거리를 걸으면서 사진을 찍어 익명으로 블로그에 올리는 일상을 반복하던 캔디스에게 스티븐이 명함을 건넨다. 스티븐이 건넨 명함을 받고 그의 형 마이클 라이트만이 운영하는 도서 제작 업무를 하는 출판 컨설팅 회사 스펙트라의 어시스턴트 자리에 지원한다. 면접을 본 후 캔디스는 스펙트라의 성경 제작 업무 팀에서 일을 하게 된다. 이때부터 뉴욕에서 직장인으로서의 일상을 시작하게 된다.

 

사람들이 인식하는 감염병의 심각성은 각자가 신뢰하는 소식통이 무엇이냐에 따라 달라졌다.’(349페이지)

메가시티 뉴욕에 선 열병이 퍼지기 시작한다. 곰팡이 감염 질환인 선 열병은 곰팡이 포자를 들이마시면 감염된다. 가벼운 증상으로 시작한 열병은 조금씩 의식을 사라지게 만들고, 하루 동안 반복했던 일상의 루틴을 계속해서 반복하게 만들었다. 좀비와 같이 공격성은 없지만 아무런 의식이 없다는 것은 좀비와 같았다. 선 열병으로 인해 거대한 도시 뉴욕이 텅 비어갔다. 전 세계 거대 메타 도시 중 하나인 뉴욕의 붕괴는 사람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전염병이 퍼지면서 수많은 뉴스가 만들어진다. 사실을 보도하는 뉴스도 있지만 가짜 뉴스도 퍼지기 시작한다. ‘신뢰하는 소식통에 따라 심각성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지는 것은 지금 코로나와 관련된 뉴스에 반응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비슷해 보였다.

 

허리케인 마틸드는 뉴욕에 많은 피해를 입혔다. 그 후로 규모가 작은 폭풍우가 계속되었고, 더 많은 피해가 발생한다. 선 열병 감염자가 늘어나면서 피해를 복구할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문을 닫은 가게가 늘어나면서 식료품을 구하는 것도 힘들어지고, 전기와 와이파이가 끊기기 시작했다. 뉴욕 인프라를 관리할 시스템이 붕괴되면서 사람들은 뉴욕을 떠나기 시작했다. 출근하던 직원들도 하나 둘 떠나가면서 캔디스 혼자만 남는다. 어느 날 캔디스는 도시가 텅 비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더 이상 셔틀버스가 다니지 않게 되자 사무실로 거처를 옮긴 첫 날 캔디스는 사무실 천창을 통해 뉴욕 하늘 위에 뜬 별을 보게 된다. 그 순간 처음으로 태동이 느껴졌다. 사무실을 나오면서 출입카드를 놓고 나와 버린 캔디스는 아무도 없는 거리로 나간다. 그리고 뉴욕을 떠나야 한다는 마음을 먹은 후 선 열병에 걸린 택시기사의 택시를 몰고 뉴욕을 떠난다.

 

종말이 지나고 새로운 서막이 열리던 순간 아홉 명의 생존자가 모인다. 캔디스는 뉴욕에서 빠져나간 마지막 생존자다. 생존자들은 서로 업무를 분담해 조직 생활을 하면서 습격 대상을 정해 필요한 물건을 습득했다. 습격을 미적 경험이라 말하면서 습격에는 의식과 관습이 있다고 한 밥은 습격이 미래를 계획하는 행위라 말한다. 습격을 갈 때는 살아있는 습격죽어 있는 습격으로 나뉘는데 열병에 걸린 사람들이 계속 같은 동작을 반복하고 있는 것은 살아 있는 습격이고, 시체들이 있을 때는 죽어 있는 습격이라고 한다. 한 가정집에 갔을 때 기계적이고 체계적인 움직임으로 상을 차리는 여자의 모습을 보면서 그런 모습을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반복의 열병, 루틴의 열병이라 불리는 열병은 무한히 돌고 돌며 반복되는 무료한 움직임을 계속하게 만들었다. 같은 행동을 무한 반복하는 그들의 모습은 의식이 사라져 공격성만 남은 좀비의 모습보다 더 섬뜩해 보였다.

 

생존자들 중 밥이 지도자 역할을 맡으면서 사람들을 통제하기 시작한다. 종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사람들에게 기도를 시키고, 습격 현장에서 열병에 걸린 사람들을 죽이게 한다. 생존자들은 밥의 말을 듣고 인디애나주에 있는 시설을 찾아 떠났다. 생존자 무리가 밥이 말한 시설을 찾아가던 중 애슐리, 저넬, 에번은 사람들 몰래 습격을 다니기 시작했다. 캔디스도 함께 애슐리의 옛 집으로 습격을 떠난다. 고향집에 돌아온 애슐리에게 선 열병이 발병하고, 생존자 무리에게 돌아간 캔디스와 에번은 애슐리의 집으로 무리를 이끈다. 밥이 선 열병에 걸린 애슐리에게 총을 쏘는 것을 막다가 저넬이 총에 맞는다. 애슐리와 저넬 없이 일행은 시설에 도착한다. 밥은 캔디스의 임신 사실과 떠나려 한다는 것을 에번에게 듣고 캔디스를 감금한다. 캔디스는 자신과 아이를 위해 탈출을 결심한 후, 열병에 걸린 밥이 가지고 있던 열쇠꾸러미를 손에 넣어 시설을 탈출한다.

 

거대 도시 뉴욕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선 열병으로 인해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고 뉴욕은 텅 빈 도시가 된다. 생존자 캔디스의 가족은 모두 죽었고, 중국의 가족들과는 연락이 끊긴 상태다. 남자친구 조너선과도 연락할 방법이 없다. 생존자 모임에 들어갔지만 자유를 억압하고 통제하려 해 그곳에서도 탈출한다. 갈 곳 없는 캔디스의 곁에는 오직 배 속의 아이만이 남았다. 하지만 선 열병이 퍼지기 전의 뉴욕에서 사람들은 단절되지 않고 이어져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거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물리적 거리는 가깝지만 심리적 거리는 완전히 단절되어 있다. 직장동료, 가족과도 적정 거리를 두고 심리적 단절 상태로 지낸다. 선 열병은 이러한 도시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심리적 거리와 함께 물리적 거리에서도 단절되게 만들었다. 이런 세상에서 살아남은 캔디스는 어떻게 될까? 모든 인간관계가 단절되고, 도시 인프라가 멈춘 상태에서 무사히 아이를 낳고 생존할 수 있을까?

 

단절은 코로나 19로 사람들 간 거리두기가 계속되는 지금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지금 우리는 서로에게 어느 정도의 거리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을까? ‘개인과 개인, 개인과 기업, 개인과 국가, 국가와 국가는 서로 이어져 있을 때 공존할 수 있다. 이러한 관계가 단절될 때 서로에 대해 오해가 생기고 둘 사이의 거리는 더 벌어진다. 내 역량이 부족해 책에서 전달하는 메시지를 모두 읽어낼 자신은 없지만, 책을 읽은 후 관계에 대한 의미를 생각하게 됐다. 지금 우리는 어떤 관계 속에서 어떤 루틴을 반복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단절은 전염병으로 거대 도시 뉴욕의 시스템이 어떻게 붕괴되어 가는지를 뉴욕에 남은 마지막 생존자를 통해 보여준다. 전염병으로 붕괴된 도시의 모습뿐만 아니라 젠트리피케이션, 값싼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가난한 나라의 노동자들, 미국에 살고 있는 이민자들, 이민자들을 향한 인종차별, 직장과 가족의 의미 등의 다양한 이야기를 한 권 안에 담고 있다.

 #서평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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