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펜의 시간 - 제26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김유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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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야구다.’(198페이지)

이야기는 누구처럼 닮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한다. 그 순간 준삼의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는 돌멩이였다. 대답이 떠오르지 않는 순간 준삼의 눈에 TV 속 야구 선수가 들어온다. 중학교 야구부에서 함께 활동했던 권혁오, 프로에 입단한 후 특별한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는 선수다. 잘나가는 선수가 아니었기 때문에 준삼의 대답을 들은 사람들은 크게 반응하지 않는다.

 

입을 다물고도 환하게 웃던 아버지의 얼굴’(20페이지)

인생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인상적인 하루였던 그 날의 기억 속 아버지의 웃는 얼굴. 준삼은 아버지와 야구장을 다녀온 후 아버지의 꿈이 야구선수였을 것이라 생각해 아버지의 꿈을 대신 이뤄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야구단에 입단한다. 중학교 3년 동안 야구부에서 활동한 준삼은 투수가 되어 혁오와 함께 번갈아가면서 공을 던졌다. 고등학교 진학을 준비하던 중 전국대회 영상을 본 준삼은 혁오의 아름다운 투구 폼과 비교되는 자신의 투구 폼에 충격을 받는다. 그 뒤 야구를 그만두고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해 서울 소재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 증권회사에 공채로 입사한다.

흙탕물을 일으키는 첫 번째 미꾸라지’(75페이지)

아름다운 혁오의 투구를 보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면서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거슬리지 않았던 것들이 거슬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보이기 시작한 것과 거슬리는 것을 바꾸려고 움직이지는 않는다. 회사는 사내 보유금이 창립 이래 최고임에도 구조조정을 계획한다. 준삼은 부조리함을 보면서 거슬리는 마음 때문에 목에 지푸라기가 걸린 것처럼 껄끄럽지만 구조조정 대상이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실적 경쟁에 대한 압박과 사내 정치 때문에 마음은 지치고 피투성이가 되지만 그래도 회사는 계속 다녀야 한다. 다른 팀과 시합을 하면서 끊임없이 경쟁하고 시합해야 하는 야구처럼 회사원도 끊임없이 다른 동료들과 경쟁하면서 실적을 올려야 한다. 준삼은 이런 시합을 끝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절대 끝내고 싶지 않는 마음이 더 강하다. 준삼은 공채채용으로 뽑힌 마지막 정규직이다. 준삼의 기수 이후 회사는 더 이상 공채를 뽑지 않았다. 이들은 관행과 각종 비리를 건드릴까봐 모두가 몸을 웅크리고 숨을 죽인 채 어떤 변화도 만들지 않고 살아간다. 악취와 모욕을 견디면서도 준삼은 끝까지 회사 생활을 버틴다. ‘예측이 가능한 것이 평범함이라 생각한 준삼은 예측할 수 없는 기쁨보다는 눈물을 흘리더라도 예측 가능한 예정된 모욕을 견디는 쪽을 선택한다. 그것이 준삼이 생각하는 평범함이다. 희망퇴직자가 있어야 하는 상황이 닥치고 희망자가 나오지 않자 직원들끼리 성과 관리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동료의 평가서를 작성해 오게 한다. 준삼은 심리적인 압박과 자기 안에 쌓인 비겁함을 발견한 후 중심을 향한 열망을 내려놓는다. 자신은 무엇을 견뎌야 하는 걸까에 대한 질문을 던진 후 동료 평가서에 자신의 이름을 써서 제출한다. 동료 평가서에서 가장 많은 표를 받은 데다 자기 이름을 적은 준삼이 희망퇴직자로 정해진다. 준삼은 건물이 무너질 것 같은 공포에 사로잡히고, 퇴직을 권고를 받기 전에 회사를 그만둔다. 무너진 마음은 세상이 무너질 것이라는 공포로 이어져 준삼을 괴롭힌다.

 

물기 없이 황폐한 사막. 그 한가운데에 혁오가 서 있다.

주변을 둘러봐도 온통 모래뿐이다.’(95페이지)

혁오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프로팀 입단이 결정된다. 고등학교 마지막 시합을 승리로 거둔 혁오는 자신을 괴롭히는 진호의 눈을 오랫동안 응시했다. 힘없이 돌아섰던 진호는 사고로 사망한다. 진호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과 그로 인한 공포감으로 인한 트라우마는 혁오를 슬럼프에 빠지게 만든다. 모두의 기대를 안고 프로 데뷔 시합에 오르지만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해 모두를 실망시킨다. 두 번째 시합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나자 혁오는 자신의 내면이 크게 틀어졌음을 깨닫는다. 위력적인 스트라이크를 던졌던 혁오가 시합에만 올라가면 볼넷을 던지는 이유는 죽은 진호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버석거리는 모래뿐인 황폐한 사막에 혼자 떨어진 느낌을 받은 혁오는 진호를 보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아무도 혁오를 돕지 못한다. 혁오 자신조차도. 계속되는 슬럼프로 혁오는 이제 진호가 보이지 않을 때도 볼을 제대로 던지지 못한다. 하지만 혁오는 야구를 그만둘 수 없다.

경주마처럼 평생 야구만 보고 달렸는데 내가 사회에 나가서 뭘 할 수 있겠어?”(100페이지)

투수를 하다 팔꿈치 부상으로 야구를 그만둔 후 팀 매니저가 된 진형의 말처럼 야구선수에게 평생 해오던 야구를 그만둔다는 것은 가장 두려운 일이다. 진형의 타구 연습을 보고 난 후 타자로 전향하기 위해 연습을 했지만 진호의 환상이 다시 나타나면서 그마저도 실패한다. 프로팀에 입단할 때 혁오가 가졌던 모든 목표는 볼넷으로 인한 부진으로 단 하나도 이룰 수 없었다. ‘신인왕과 MVP, 야구 역사에 남을 기록에 대한 꿈은 진호의 죽음 이후 혁오에게는 아무런 의미 없는 꿈이 되었다. 승부조작을 의심하는 기자를 만나 후배들을 지키기 위해 한 인터뷰는 혁오를 승부조작 선수로 만들어버린다. 모두와 연락을 끊은 후 오토바이를 타고 여행을 떠나 바다로 간 혁오는 오토바이를 바다 속으로 보내준 후 돌아온다. 기현의 정정보도로 승부조작 오명이 벗겨진 후 독립리그에 들어가 승패에 연연하지 않고 후배들을 가르치고 아름다운 투구 폼으로 공을 던진다. 혁오는 승패와 관련 없이 계속 야구하기라는 꿈을 이뤘다.

 

여자라서 그래.”(57페이지)

기현은 90퍼센트가 남자인 언론사의 스포츠 기자다. 다른 기자들은 기현에게 남다른 시선을 지닌 것, 아픈 것, 친구가 많은 것, 친구가 없는 것 등등의 모든 것이 여자라서 그렇다고 말한다. 기현이 취재와 기사 작성에 들이는 시간과 노력은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다. 초등학교 때 야구를 했을 때도 기현은 실력보다는 여자라는 성별에만 초점이 맞춰져 주목을 받았다. 중학교 진학을 앞둔 기현은 당연히 야구부 진학을 꿈꿨지만 여자는 중학교 야구부에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에 좌절한다. 모두가 기현에게 야구는 취미로 하라고 말했다. 중학교에 들어가 주말 야구를 했지만 중학교 2학년이 되고 난 후 야구를 그만둔다. 대학 졸업 후 기현은 스포츠 신문사에 입사한다.

여기선 가장 높이 올라갈 거야. 성공한 야구인이 될 거야.(65페이지)

성공한 삶을 꿈꾸는 이들은 각자의 꿈을 가지고 성공하기 위해 노력한다. ‘여성 최초의 스포츠신문 편집장이 되는 것이 기현의 목표다. 기현은 오빠 기철의 가게에 온 야구 선수들이 하는 말을 듣고 승부조작 사건을 취재해 특종을 터트린다. 하지만 사건은 축소되어 한 명의 선수만이 책임을 지고 마무리된다. 기현은 계속해서 이 건을 조사하고, 혁오를 주목한다. 승부조작 사건을 취재하면서 편집장과도 갈등을 빚게 된다. 기현은 자신에게 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생각해 특종에 대한 의지를 불태운다. 혁오에게 승부를 조작한 후배들의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조건으로 승부조작을 인정하라 압박한다. 승부조작을 하지 않았지만 후배들이 걱정된 혁오는 갈등한다. 혁오는 기현에게 자신이 트라우마 때문에 가끔 볼넷을 일부러 던진 적이 있다고 말하면서 인터뷰하는 조건으로 후배들의 비리가 담긴 파일을 지워줄 것을 요구한다.

이기는 게 중요할까요?”(191페이지)

혁오와 다시 만난 기현은 혁오의 볼넷이 야구와 스포츠에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행동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승패가 중요한 야구선수가 이기는 것이 중요한지에 대해 질문을 하고, 기현은 지금 하는 일과 목표가 과연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이었는지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된다. 혁오의 인터뷰를 기사화하겠다는 기현에게 편집장은 승부조작 문제와 연결될 수 있다는 이유로 허락을 해주지 않는다. 기현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고 승부조작에 관여되었느냐는 질문을 하자 흥분한 편집장은 기현의 뺨을 때린다. 잠시 놀란 듯 했던 편집장은 한국시리즈가 끝난 후 기사를 내보내는 조건으로 기사를 허락한다. 하지만 기사는 왜곡되어 보도되고, 혁오는 승부조작을 한 선수로 낙인찍힌다. 기현은 편집장이 마음대로 짜깁기한 기사라 말하면서 혁오의 정정 기사 요구는 바로 들어줄 수 없다고 사과만 계속한다. 구단의 결정으로 인해 선발투수가 된 혁오는 집중력을 발휘해 공을 던지지만 중간을 넘어서면서 집중력이 떨어져 교체되어 내려온다. 경기가 끝난 후 인터뷰에서도 혁오는 승부조작이 아니라 말했지만 편집된 영상은 결국 혁오를 승부를 조작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 정정기사를 실어주지 않자 기현은 신문사를 나와 SNS에 승부조작과 관련된 증거 자료와 함께 혁오의 정정기사를 단독으로 보도한다. 이때부터 치열하게 특종만을 향해 달렸던 기현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생존에 관심 있지, 여기서 끝까지 살아남는 게 목표랄까.’(142페이지)

기현의 말처럼 준삼, 혁오, 기현과 직장인, 야구선수, 기자 등등의 모두가 생존을 위해 끝까지 살아남는 것을 목표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지금도 수많은 직장인들이 생존을 위해 삶을 버티고 있다.

제발 시합이 끝나길, 제발 시합이 끝나지 않길.’(92페이지)

회사원은 실적에, 야구선수는 승패에 큰 영향을 받는다. 회사원이 실적 압박과 스트레스에도, 야구선수가 승패에 대한 압박과 슬럼프에도 자신들이 하고 있는 것을 그만 둘 수 없는 것은 할 수 있는 게 회사 업무와 야구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에너지를 모두 그곳에 쏟아 부었기 때문에 회사원은 회사를, 야구선수는 야구를 그만둘 수 없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그 자체가 전부이기 때문에. 모두는 시합이 끝나길 바라는 마음과 끝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동시에 느끼고, 이 두 마음 중 끝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더 크기 때문에 모든 모욕과 부조리를 참고 견디고 있다. 그렇게 서서히 자신을 잃어간다.

혁오가 필사적으로 지킨 아름다움이 자신의 조각을 자극했음을.

누구나 아름다움의 조각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에겐 서로의 조각을 자극할 힘이 있음을.’

-중략-

나도 있다.”

(251페이지)

견디고 견디다 결국 준삼은 마음의 병이 들어 발버둥 치면서 버텼던, 끝내고 싶지 않았던, 시합을 끝내고 다시 살아가기 위해 분투한다. 혁오의 경기를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은 준삼은 혁오의 투구 폼이 여전히 아름답다는 것을 확인한다. 힘든 일을 겪었음에도 혁오가 지킨 아름다운 조각이 자신에게도 있음을 깨닫고, 자신도 혁오처럼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조각은 있다. 준삼과 혁오 그리고 기현과 우리, 모두가 아름다운 조각을 가지고 있다. 마음의 병으로 힘들었던 준삼과 좌절했던 기현은 혁오의 아름다운 조각에 자극받아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었다. 우리 마음속에도 아름다운 조각이 존재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세 명의 주인공은 부당함과 부조리함으로 인해 리그 밖으로 나왔지만, 리그 안에 남은 사람들을 비열하고 비겁하다고 욕만 할 수는 없다. 그들은 그들의 자리를 지켜야 하는 이유가 있었고, 그들이 욕망하는 목표가 있었다. 그들은 그것을 지키기 위해 아무런 목소리를 낼 수 없어 뒤로 숨었다. 이들을 비겁한 인간이라 욕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궁금하다. 만약 내가 그 상황에 놓인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나 또한 그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마음이 더 무겁다. 새롬이 말한 것처럼 작고 단단한 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희생이 뒤따른다. ‘크고 견고한 것앞에서 작고 단단한 것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하지만 작고 단단한 것을 위해 움직이는 이들이 있기에 우리가 사는 세상은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나는 나의 비겁함을 인정한다. 그리고 아름다운 조각을 가지고 움직이는 많은 이들을 보면서 내 안의 아름다운 조각을 찾아본다. 모두가 자신이 사는 세상에서 최선이라 생각하는 삶을 살아간다. 그 누구도 타인의 삶을 함부로 재단하고 비난하고 판단을 내려서는 안 된다.

 

야구를 잘 알지 못해 야구를 소재로 한 이야기가 어려울까봐 걱정하면서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책은 술술 읽혔다. 야구를 이야기하지만 그 안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누구보다도 나 자신에 대해 들여다보게 하는 책이다.

거리에서 사람들의 비명을 듣고, 비명을 지르지 않아도 살 수 있는 사람이 다른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비명을 질러야 버틸 수 있는 사람이 한계에 다다르기 전에 비명을 지르지 않아도 숨 쉴 수 있는 사람이 먼저 말을 하는 것이······.”

(241~242페이지)

사회에 만연한 부조리 앞에 나는 목소리를 낼 용기가 있는가를 나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서평이벤트(한겨레문학상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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