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인문학 - 생명의 근원에서 권력의 상징이 되기까지, 역사와 문학, 신화와 과학으로 살펴보는 물 이야기
베로니카 스트랭 지음, 하윤숙 옮김 / 반니 / 2020년 11월
평점 :
절판


수도를 틀면 물이 나온다. 수도시설이 없던 시대에 물은 마을 공동 우물이나 집안에 있는 우물에서 퍼 올려 사용했다. 수도의 발명으로 사람들은 수도꼭지만 틀면 물을 마실 수 있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고 목욕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흐르는 하천의 물과 땅 속에 존재하던 물을 인간은 필요에 의해 생활 속으로 끌어당겼고, 그렇게 물은 인간의 역사와 함께 변화했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다. 우리 몸의 대부분은 수분으로 구성(인체의 약 67페센트-43페이지)되어 있고, 인간은 물이 없으면 살 수 없다. 물은 살아있는 생명체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다. 물을 섭취하지 못하면 생명체는 죽게 된다. 물을 너무 많이 마셔도 발작이나 혼수상태를 일으키고 끝내는 죽음에 이르게 된다. 물은 적거나 또는 너무 많이 섭취해도 사람을 죽게 만든다. 그렇기에 인간에게 물은 절대적으로 중요한 요소이다. 물의 인문학은 물과 인간의 관계와 인간이 물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물은 어디에서 왔을까?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초기 학자들은 물이 거대 지하 저수지에서 왔다고 주장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저수지를 타르타로스라고 불렀다. 물이 지하에서 왔다는 이론은 18세기까지 이어진다. 또 다른 주장은 물이 하늘에서 왔다는 것이다. 고대에는 하늘에도 강이 있다고 믿었다. 물의 기원에 대해 신화적, 종교적인 부분과 연결해서 설명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의 인문학을 처음 접했을 때 나의 마음을 가장 강렬하게 끌어당긴 것은 물의 신화였다. 여러 문명권에 신화가 존재하고 모든 신화에 이 등장한다. 호주신화, 수메르 신화, 바빌로니아 신화, 성경, 이집트 신화, 중국 신화 등 동서양의 대부분의 신화에 무질서와 혼돈을 상징하는 대홍수가 등장한다. 무질서와 혼돈을 지나 물은 빠지고 드러난 뭍에 남은 인류는 새로운 인류를 만들어 내고 새로운 삶을 이어간다. 그렇기에 은 죽음임과 동시에 삶을 나타내는 요소이다. 신화 속에서 물은 살아 움직이고, ‘으로 형상화 되고 숭배의 대상이 된다. 물은 사람을 살리지만, 분노한 물은 사람을 공격해 거의 절멸 단계까지도 몰아넣는다. 하지만 결코 완전히 멸망시키지는 않고, 신을 섬기는 사람들 중 누군가를 살려 인류가 계속 이어질 수 있게 한다.

 

인간은 물을 숭배하던 단계를 넘어 물을 가두고 다스리는 단계로 넘어간다. 순환하는 물을 관리하고 어떻게 잘 다스리느냐에 따라 정치권력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물을 다스리는 자, 왕이 되어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치수 사업은 왕의 권위를 지키는 데 중요한 과업이 된다. 아시리아의 센나케리브 왕은 댐을 건설해 바빌론을 공격하고, 목화 재배를 가능하게 만든다. 정원과 대농장에 물을 공급하고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우물을 선물해 자신의 업적을 새긴다. 중국 우 황제는 치수 사업으로 왕조를 세우고 제국의 권력을 유지한다. 물을 잘 다스리고 백성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주는 권력자는 성군이 되어 많은 권력을 쥐게 된다. 사람들은 물을 함께 사용하고 물길을 공유하면서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연결된다. 세계 거대 문명의 발상지는 을 중심으로 만들어지고 그 덕분에 세력을 키워갈 수 있었다. 물이 공급되는 상수시설이 갖추어진 도시는 생활수준이 높아지고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대도시로 성장한다. 상수 시설만큼 중요한 것이 오수를 버리는 하수시설이다. 로마는 상수 시설과 하수 시설이 모두 잘 갖추어져 많은 사람들이 모여 대도시가 된다. 인간의 문명이 발달하면서 물 사용량도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한다. 물길이 마르고 물길이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때 물을 잃은 문명은 쇠퇴의 길을 걷고 결국 멸망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여기서도 물의 이중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물을 지배하려는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은 공학 기술과 과학의 발달을 이용해 댐을 만들어 물을 가둔다. 흐르는 특성을 갖는 물을 가두게 되면서 인간은 물이 필요할 때 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자연 파괴와 더불어 댐이 파괴될 때 물에 잠기는 위험 요소를 함께 안게 된다. 물은 인간에게 삶과 풍요를 안겨주었지만, 인간은 개발을 이유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물을 오염시키고 있다. 오염으로 탁해진 물은 생명의 물이 아닌 죽음의 물로 변하고 있다. 인간의 개입으로 막힌 물길은 자연생태계를 파괴하고, 기후변화에도 영향을 미친다. 인간의 편익을 위해 막은 물길이 인간에게 자연 재해와 분쟁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여러 나라를 통과하는 큰 강의 경우 특정 국가가 댐을 건설해 물길을 막게 되면서 하류에 있는 나라는 물 공급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대표적으로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은 터키, 시리아, 이라크의 분쟁을 불러왔고, 나일 강은 이집트, 에티오피아, 수단의 분쟁을, 요르단 강은 이스라엘, 레바논, 요르단, 파키스탄의 분쟁의 원인이 되었다. 미래에는 물 부족 사태가 더 심각해질 수 있다. 물의 흐름을 막고 독점하려 한다면 분쟁은 계속될 것이다. 물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나누어져야 하는 공공제로 존재해야 한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생존권은 지켜져야 한다. 물의 속성처럼 고이지 않고 흐를 때 물은 썩지 않고 맑은 물로 존재한다.

 

물은 신화 속 신적인 존재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물은 역사의 흐름을 바꾸고 세계를 연결하는 존재이다. 물은 과학의 발달로 쓰임새가 다양해지고, 이용가치가 높아져 경제 발달의 원동력이 되어준다. 물은 인류가 농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농업 혁명을 일으켰고, 산업화의 물결에 영향을 미쳐 산업혁명을 일으켰다. 물의 흐름은 계속되고, 물은 인간이 살아가는 모든 분야에서 직접적, 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간은 흐르는 물길을 막아 필요에 따라 사용한다. 물은 인간에게 생명을 부여하는 이로운 존재이자, 생명을 앗아가는 해로운 존재이기도 하다. 물은 이중적인 의미로 신성한 의미와 불길한 의미로 함께 사용된다. 신성한 물은 인간을 정화시키고, 불길한 물은 인간을 오염시킨다. 선함과 악함, 신성함과 불길함, 생명과 죽음 등의 물의 이중성은 우리에게 물의 소중함과 더불어 물의 위험성을 알려준다. 물의 인문학은 물의 이중성과 더불어 물에 관련된 많은 정보와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물은 잘 사용하면 약이지만, 잘못 사용하면 독이 된다. 물을 약으로 또는 독으로 사용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우리는 물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인류가 공생할 수 있는 답을 함께 고민해 보아야 한다.

 

발췌글

10

물은 우리 정서와 상상 속에도 스며들어 수많은 생각의 비유를 제공한다. 종교적 믿음 속에도 물이 흐르고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관습 속에도 물이 흐른다. 물은 말 그대로 삶의 모든 측면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것이며, 언제나 그래 왔다.

 

12

인간이 물과 어떻게 관계를 맺는가 하는 점은 자연적이면서 동시에 문화적이다.

 

41

모든 생물군은 공기, 토양, 세포들을 거쳐 가는 물의 이동에 의존하며 모든 것이 물로 연결되어 있다.

 

43, 45

생물군이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온 지 수백만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도 인체의 약 67퍼센트가 물이다. 인간의 치아는 바위와 같아서 물의 비율이 12퍼센트를 약간 넘는 정도다. 인체의 버팀목과 같은 뼈는 22퍼센트가 물이며, 비옥하고 자원이 풍부한 습지대에 비유할 만한 뇌 조직은 73퍼센트가 물이다. 그리고 물보다 진하다는 피는 80 내지 92퍼센트가 물로 이루어져 있다.

 

54

이야기가 시작되었던 아주 초기 단계부터 인간 사회는 시간 속을 흘러가는 존재의 흐름을 묘사하면서, 세계를 돌아다니는 물의 이동을 관찰해 그것을 토대로 하여 인간이 형태를 띠었다가 죽는 순간 다시 형체 없는 상태로 돌아간다는 관념을 명확하게 표현했다.

 

64

신성한 물은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종교 의식에서 여전히 중심적 위치를 차지한다. 탄생과 죽음을 나타내는 핵심적 이행, 즉 물질적 존재로부터의 이행 그리고 물질적 존재로의 이행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특히 중요했다. 또한 오염과 무질서라는 개념을 떠올리게 해 죄를 씻는 의식에서, 그리고 극단적인 경우에는 악마를 쫓는 의식에서 신성한 물이 이용되었다.

 

66

날씨란 물이 이동하는 것, 물의 형태가 바뀌는 것, 물이 하늘로 올라가고 내려오는 것, 물이 얼고 흐르는 것과 같다.

 

73

물은 말 그대로 지구 곳곳에 물질을 운반할 뿐만 아니라 경제적 자원의 흐름을 나타내는 중요한 비유로도 쓰인다.

 

74~75

물은 개인, 가족, 친족, 사회 전체가 재생산될 수 있도록 해주며, 절실하게 필요하고 원하는 것들을 생산하도록 해준다. 물은 생물학적 삶뿐만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삶에도 동력을 공급해물질적 생산과정이 이루어지도록 해준다.

 

80

강은 수원지에서 내려오는 동안 점차 생태계 전체에 관여하고 다른 물질을 흡수하며 농경과 산업의 상호작용을 통해 인간 문화에 동화된다. 강어귀에는 많은 도시가 위치하고 있어서 국제적인 세련된 분위기를 띤다. 생명의 여정이 끝나갈 무렵이 되면, 강은 생명력과 을 잃고 이리저리 구불구불 흐른다. 마침내 바다에 닿은 강은 형체도 없이 흩어지고, 강의 본질은 높은 곳에서 다시 태어나기 위해 하늘 높이 날아오른다. 이와 같은 비유적인 물 순환 속에서 시간과 공간을 하나로 어우러지게 만드는 강은, 비록 유한한 물질적 여정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계속 이어질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한다.

 

95

에밀 뒤르켐은 인간 사회의 종교적 믿음이 그 사회의 특정한 사회적, 정치적 처리 방식을 반영한다는 것을 관찰한 것으로 유명하다. 대체로 연장자가 지도자 역할을 하는 수렵 채집 사회는 평등주의적인 종교 관념을 지녔으며, 이 종교 관념 속에서는 감각을 지닌 풍경이 생성적인 물 덕분에 생명력을 지니게 되며 많은 영적 존재를 그 안에 지니고 있다. 사람뿐만 아니라 이러한 존재들도 자원이 가장 풍부한 수원지 부근에 모여 있어서, 인류 역사의 가장 초기 단계 이후로 샘과 그 샘이 지닌 형태 변화 능력은 모든 곳에서 숭배 대상이 되었다.

 

111

수렵 채집 생활자가 조상 전래의 영적 존재에 대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던 지역적 사고는 물이 창조적, 생성적 근원으로서 지니는 의미를 매개로 하여 비교적 매끄럽게 초기 농경 사회의 홍수 중심적 우주론 모델로 이행할 수 있었다. 또한 초기 농경 사회들은 물의 동력과 함을 상징하는 신을 공경하고, 이 신을 달래려는 유사한 형태의 의식도 공유했던 것으로 보인다.

 

132

물의 공급을 지배하는 능력으로 농업 생산을 확대할 뿐만 아니라 정교한 기술을 확보한 사회가 새로운 생산양식을 발달시킴으로써 물과 권력의 관계는 더욱 더 분명해졌다.

 

164

과학이 대중 담론을 지배하고, 19세기 말 무렵에는 유럽에서 물이 지적으로도, 물질적으로도 인간에게 완전히 길들여졌다.

 

180

물을 다스리는 사람, 그리하여 물을 제공하는사람은 그 속에 권력이 반영되어 있음을 간파할 수 있다.

 

186

커다란 사회적 변화는 언제나 물에 반영되었다.

 

193

물을 갖는다는 것은 권력을 갖는 것이고, 생명을 갖는 것이며, 생성적인 힘을 갖는 것이었다. 따라서 댐의 규모가 클수록 강대국이었다.

 

198

산업 차원에서 물을 개발해 풍족함을 누리게 되자 가정에서 물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었고 여행과 레저 활동도 대중화되었다. 새로운 여행객들이 생기자 문화적 경계를 넘어 믿음, 지식, 물건의 교류가 이루어졌다.

 

247

인간과 물의 관계가 그동안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 역사를 살펴보면, 지속 가능성이 경쟁보다 협력을 바탕으로 한다는 것, 모든 인간과 인간 이외 종의 이익에 확실히 부응하는 지배 형태를 바탕으로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52

모든 문화 집단마다 그들만의 음악과 이미지, 그리고 물과 다시 연결되는 그들만의 방식이 있다. -중략- 사회는 물이 정말 무엇인지, 무엇을 의미하는지, 왜 중요한지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물은 인류와 지구상의 모든 유기체 사이를 흐르며 이어주는 연결고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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