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혼자서 여행을 떠나버리는 나에게 외롭지 않더냐고 친구는 물었다. 지독하게 외롭다고, 무섭도록 외롭다고, 그런데 그게 참 좋다고 대답했다. 외로움의 끝자리엔 이 밤하늘만큼이나 텅빈 생각이 홀연히 찾아온다고도 말했다. 그럴 때 찾아오는 간소하디간소한 평화로움과 비로소 온몸이 무정형이 되는 듯한 자유로움에 대해서는 상투적이게 들릴까 봐 말하지 못했다. 단지, 지금과 비슷한 느낌이라고 말해주었다. 활주로를 떠나는 비행기처럼 그림자가 저만치 내게서 떨어져나가는 느낌 같은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친구는 다음 여행은 함께 떠나보자고 말했다. 조금 뒤저진 채로 걷다가, 내 그림자가 떨어져나갈 때 조용히 주워 와 다시 내 신발에 붙여주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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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이가든
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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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산 사람이 사람인 것처럼 죽은 사람도 사람이야. 자기가 살아 있다거나 죽었다고 느끼는 건 어느 한 순간이야. 그냥 평범하게 살아 있거나 죽어 있다가, 어느 날 불현듯 아, 내가 살았구나, 아, 참, 내가 죽었지, 이런 생각이 든다구. 그 순간을 제외한다면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이나 똑같이 살고 있는 거야."
 
문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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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이가든
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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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몸이 뜨겁게 달아올라 비명이 터져나오려는 것을 참고 해부대를 쳐다보았다. 심장과 간, 허파와꼬불거리는 내장들이 길게 바깥으로 쏟아져 나온 그것은 자세히들여다보니 꼭 내 얼굴 같았다. 벽에 박혀 불타고 있는 C는 눈동자가 빠진 하얀 눈으로 내가 흘린 내장들을 무심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맨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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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이가든
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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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그녀가 있어야 나는 하루가 흐르고, 중첩된 하루하루가 무어세계가 된다는 걸 안다. 시간이 흐르는 건 축복이었다. 나에게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하는 것은 오로지 그녀뿐이었다. 아침에 맞닥뜨린 그녀의 얼굴에서 나는 어제와 오늘 사이의간극이 삼백십오만 년쯤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느낀다. 매시 매분마다 나날이 늙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그녀의 살갖, 태초에붉은색으로 태어났다가 시간과 함께 점차 옅어졌다가 종내는 시커멓게 변해버린 살갖. 그것이야말로 시간이 핀 호수인 동시에다량의 시간이 만든 그림자였다. 나는 시간과 더불어 흘러가고,
그리하여 내 몸이 늙어간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다.
 하루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그렇게 일 년이 지나 내가 리가는 걸 보면서 얻는 위안, 나는 그 위안 덕분에 산다고 해과장이 아니다. 내게 그런 위안을 주는 것은 나날이 더 리 고 있는 늙은 그녀이다. 그녀의 월경을 참을 수 없는 시 수 없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월경은 죽음의 징후가 아니라 삶에 내아니라 삶에 대한 악착같은 집착일 거였다.

- 아오이가든 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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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기 좋은 이름
김애란 지음 / 열림원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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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빛‘과 관련해 마지막으로 소개하는 일화하나. 몇 해 전 한 한국 작가가 독일에서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한국의 근대와 분열, 분단을 다룬 소설,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작가는 독일 기자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다.
- 그래서 당신은 결국 어느 편이란 말인가? 오른편인가? 왼편인가?

작가는 잠시 고민하다 이렇게 대답했다 한다.

- 나는 죽은 사람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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