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의 아름다운 옆길 - 천경의 니체 읽기
천경 지음 / 북코리아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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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은 이렇게 구성되어 있어요.

 

이 책은 다음 브런치 사이트의 니체 철학 추천작가인 천경(본명 천미경)님이 201710월 중순부터 20197월까지 내외뉴스통신에 천경의 니체 읽기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것을 책으로 다시 엮은 것이다. 니체는 그녀에게 마약 같았고, 욕망의 화로에 불씨를 던져 준 프로메테우스와 같은 느낌이었다고 말하면서 이 책에서 니체에 대한 그녀만의 느낌의 색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엿보이는 책이다.

 

이 책은 총 3개의 장으로 되어 있다. 1장은 인식은 슬픔이다. 아니다. 인식은 웃음이다. 2장은 공부하기 좋은 날, 3장은 아모르파티라는 제목으로 니체의 원전을 읽으면서 떠오른 생각들과 느꼈던 감정을 그녀만의 독특한 문체로 서술하고 있다.

 

니체를 좋아하지만, 니체의 책이 너무 어려워서 제대로 읽지 못했거나 또는 니체의 책을 읽었지만, 너무 오래전에 읽어서 기억이 가뭇한 사람들이 한 번쯤 읽어보면서 니체의 말과 생각이 어떻게 오늘날에도 유효할 수 있는지 알게 해 주는 책이다. 어렵게만 느껴졌던 니체의 말들을 작가의 일상과 연결되는 것을 보면서 아하!’를 외치게 된다.

 

 

2.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것을 알게 되었어요.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는 말을 하면서 모든 가치의 기준이었던 기독교 정신의 을 부정하고 실존주의 철학을 주장한 독일의 철학자이다. 나 역시 푸릇한 젊은 시절 니체의 책에 빠져들었던 시기가 있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이라는 책을 통해 니체의 생각에 공감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니체의 사상만 이해했을 뿐, 니체가 추구하고자 했던 삶의 외침은 나의 생활 속에서는 반영되거나 실천되지 못했다. 지식적인 것으로 떠돌다가 어느새 잊혀졌다.

 

그렇게 잊혔던 니체의 생각을 이 책에서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가웠다. 물론 이 책은 전문적인 철학서가 아니기 때문에 니체 철학을 연속선상에서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작가는 니체가 그의 책을 통해 독자에게 계몽하고자 했던 내용을 쏙쏙 뽑아 어떻게 생각하고 실천해야 하는지에 관해 쓰고 있기 때문에 니체 사상을 조금 더 나의 생활과 연결해 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3. 이 책을 읽다가 다음과 같은 생각, 느낌이 들었어요.

 

인간들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가장 가까운 것에 대해서는 더 이상 숙고하지 않고 그것을 단지 받아들이기만 하는 경향이 있다. 아마 부모의 습관적인 멍청함이 언젠가 그들의 자식들에 대한 판단을 내려야 할 때 그렇게 빗나간 판단을 하게 되는 원인일 것이다.”

니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1, p. 423

부모 되기를 고민하자. 부모가 된다는 것은 큰 실험이며 도전이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어마어마하게 힘든 무상의 노역과 희생을 즐거이 해야 하며, 개인 이무개의 삶과는 차원이 다른 삶을 요구한다. 수고하고 책임지며 참아야 하며 부처님의 자기 수행에 버금가는 정신의 수양을 필요로 한다. 다른 단계의 인생의 장()이다. 부모 되는 공부를 하자! 이 공부는 매우 중요하다. (p. 210~211)

 

니체는 자식이 빗나간 판단을 하게 된 원인이 바로 부모의 습관적인 멍청함이라고 보고 있다. 자녀에게 좋은 부모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게 해 주는 대목이다. 중국의 문학 사상가 루쉰 역시 교사가 되기 위해 사범학교를 나와야 하듯이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부범학교를 통해 부모 되는 공부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루쉰이 떠올랐다. 자식을 낳았다고 해서 좋은 부모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서 공부가 필요한데 아직 사회적으로 이런 부분에 대해서 소홀한 것 같다. 부범학교 정도는 아니어도 부모 연수를 통해 부모 이수증 제도를 마련하여 모든 부모가 반드시 부모 교육을 받게 하면 어떨까?

 

 

 

젊은이라는 말은 젊은 사람에 대한 비하가 아닌데 늙은 사람에게 늙은이라고 하면 왜 비하의 말로 들리는 걸까? 젊은 사람을 젊은이, 어린 사람을 어린이, 늙은 사람을 늙은이라고 하는 것이 애 늙은이에 대한 모욕으로 느껴지는 걸까? 그것은 우리 사회가 늙음을 모욕으로, 늙음을 미안함으로, 늙음을 가치 없음으로 인식한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왜 우리는 늙음을 부끄럽게 느끼는 걸까?(p. 224)

중요한 것은 늙음을 인정하고 젊음에게 격려해주고 누군가의 취향을 향해 쉽게 손가락질하지 않으면 족하다. 그리고 자신의 늙음에 존경을 보내는 늙은이가 되어야 한다. 고단한 삶을 살아낸 자기 자신을 존경할 것, 늙음을 부끄러워하지 말 것, 젊은이의 취향을 인정할 것. 새로운 경향과 흐름에 마음을 열고 다가가기. 배움에 열려 있기.(p. 226)

 

이 부분에서 많이 공감되었다. 그만큼 나도 늙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하면서 노인 인구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자기 삶의 방식을 강요하는 사람은 꼰대라고 하며 요즘 젊은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유형이다. 라떼는 말이야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 역시 새로운 경향과 흐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이다. 작가의 주장처럼 늙음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자신의 신체적 늙음은 인정하지만, 정신적인 유연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러려면 배움에 열려 있어야 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독서가 아닐까?

 

4. 책 속의 문장에서 이런 것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었어요.

 

 

 

글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쓰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을 쓰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을 이긴 기록’, ‘자신을 승리한 기록이라는 부분에서 잠시 멈짓했다. 꼭 자기를 이기고, 승리한 기록만 글일까? 실수했거나 부끄러운 행동에 대해 성찰하면서 쓰는 글도 있지 않을까? 또는 소망하는 것들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글을 쓸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소설처럼 상상한 것을 글로 표현할 수도 있지 않을까?

 

 

춤은 유희이며 놀이이며 신체의 다른 감각을 여는 행위다. 그것은 도취이며 순간순간 다르게 배치되는 신체의 느낌을 춤추는 자에게 전달한다. 삶의 무거움과 중력을 잊은 세계다. 춤추는 나무, 춤추는 삶은 그 자체로 메타포이지만 말 그대로 춤추는 것, 신체를 다르게 움직이며 안 쓰던 근육을 사용하며 미지의 감각을 불러내는 행위다. 그 행위는 긍정을 허공에 쓰는 몸의 언어다. 걷기와 달리기와는 다른 삶, 삶이 예술이 되는 지점이 축제처럼 가볍다. 이 삶, 이 땅에서 나무처럼 살아가기. 그것이 아모르파티의 방식이며 그 방식을 우리는 창조하는 자다. 가치를 만드는 자는 운명애의 삶을 사는 자다. (pp. 229~230)

 

이 부분은 아주 공감이 가는 문장이다. 작가가 춤에 대해서 느끼고 생각한 것을 제대로 잘 표현한 문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 라인댄스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이 일상생활에서 큰 활력소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 스텝을 배우느라고 힘들었지만 어느 순간 도약하는 지점이 있다. 그 고난의 시기를 지나고 나면 음악에 맞는 스텝이 저절로 나온다. 거울에 비춘 내 모습을 발견하곤 신기해한다. 음악에 맞추어 몸을 움직이는 나를 보면 언제나 미소 짓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댄스를 하면서 가끔은 내가 이렇게 유연했던가?’라고 스스로 놀랄 때가 있다. 라인댄스를 배운지 3년 정도 되니까 이제 내가 배운 라인댄스 음악이 흐르면 나의 신체는 어느새 리듬을 타고 있을 정도이다. 혹시 망설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라인댄스를 강력히 추천해 주고 싶다.

 

이 외에도 이 책에는 공감 가는 부분이 참 많았다. 어렵게 느껴졌던 니체의 생각을 좀 더 가깝게 그리고 천천히 음미해 보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솔직하게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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