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한국 지성의 모험 - 100년의 기억, 100년의 미래
김호기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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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은 이렇게 구성되어 있어요.

 

‘100년의 기억, 100년의 미래’라는 부제를 가지고 김호기 교수는 『현대 한국 지성의 모험』이라는 책을 썼다. 이 책은 2018년 2월부터 2019년 5월까지 매주 연재한 한국일보 기획 ‘김호기의 100년에서 100년으로’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므로 1년 3개월에 걸쳐 원고가 쓰였으며, 수정과 보완을 거쳐 2020년 8월에 책이 출판되었으므로 2년 6개월에 걸친 노력의 결실이다.

 

이 책은 저자가 서문에서 ‘우리 현대의 역사를 묵묵히 살아오신 부모님께 기억과 사랑 그리고 그리움을 담아’라고 밝히고 있듯이 부모 세대에게 드리는 책이면서도 동시에, ‘저자는 딸아이가 어렸을 적 <눈 감고 간다>라는 윤동주 시를 읽어주었다. 윤동주라는 이름과 밤이 어두워도 씨앗을 뿌리라는 그의 맑고 굳은 정신을 딸아이가 오랫동안 기억해 주길 바라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고 한다. 딸아이가 자신의 아이에게, 그 아이가 다시 자신의 아이에게 윤동주 삶과 시의 기억을 전달하길, 그리하여 삶의 용기를 갖게 되길 바라는 작은 소망을 여기에 적어둔다.’(pp. 124~125)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후세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 책을 관통하고 있는 코드는 기억이다. 저자에 따르면 “역사란 본디 과거에 대한 기억이다. 이 기억은 실존적 기억과 집합적 기억으로 나뉜다. 실존적 기억은 개인의 삶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이다. 집합적 기억은 크고 작은 공동체가 공유하는 기억이다. 이 책을 통해 내가 전하려고 하는 것은 이러한 기억에 대한 지식인의 책무다. 진리를 탐구하는 이들에게 부여된 중요한 과제 중 하나는 잊어서는 안 될 과거의 기억들을 소환하고 다음 세대에게 전승하는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p. 6.)

 

“미래는 과거 기억의 현재적 성찰을 바탕으로 새로운 역사를 일궈가는 과정이다. 기억은 지나간 역사의 증거인 동시에 새로운 역사에 용기를 선사한다. 지난 100년 우리 현대 지성이 고투에 대한 기억이 새로운 100년을 향한 용기를 안겨주길 나는 소망한다.”(p. 11) 지나간 100년이 과거의 역사라면, 다가올 100년은 미래의 역사다. 우리가 지난 역사를 돌아보는 까닭은 과거에 대한 탐구가 미래 전망의 출발점을 제공하기 때문일 터다. 그렇다면 역사의 원천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기억일 것이다. 기억이란 의식 속에 존재하는 과거의 경험과 사유다. 망각해선 안 될 과거의 기억들을 소환하고 다음 세대에게 전승하는 것은 지식인의 중요한 책무 중 하나다. 실존적 기억처럼, 집합적 기억은 우리라는 공동체를 더 나은 삶의 미래로 고양시킨다. 기억의 미래가 중요한 까닭이다. (pp. 123~124)

 

역사란 전통과 현대가 서로 충돌하고 흡수하면서 나선형으로 발전해 과는 과정이다. 우리 역사를 돌아볼 때, 권위주의와 가부장주의가 배격해야 할 전통문화라면, 인본주의와 공동체주의는 창의적으로 계승할 수 있는 문화 전통이다.(p. 406)

 

문화에는 이중적인 뜻이 담겨 있다. 한 집단이 갖는 공동의 생활양식이 그 하나라면, 삶의 이유를 제공하는 의미 체계가 다른 하나다. 이러한 문화는 앞선 세대로부터 다음 세대에게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전승되고, 사회의 ‘심층구조’로서 정치와 경제, 그리고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미친다. (p. 403)

 

모험이란 ‘위험을 무릎 쓰고 어떤 일을 하는 것’을 말한다. 저자는 한국 지성이 지난 100년 동안 한국 사회를 움직여왔던 지성의 힘을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하나의 ‘모험’이라고 살펴봄으로써 시대정신을 찾아내 그것을 앞으로 100년을 내다보며 우리가 해결해 나가야 할 시대적 과제를 성찰하고 있다.

 

다소 어려울 수 있는 주제를 저자는 동서양을 넘나들고 역사적 인물을 다시 소환하는 비유를 통해 비교적 쉽게 독자들의 식견을 넓혀주는데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사람들 중에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인물도 있지만 이 책을 통해 새롭게 만난 인물도 있다. “과거는 현재의 관점에서 늘 새롭게 해석된다. 지성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잊혔던 인물이 새롭게 발견되고 독해되어 지성사를 더욱 역동적이고 풍요롭게 한다.” (p. 443)

 

이렇게 다양한 분야에서 시대정신을 민중에게 알리고자 온몸으로 글을 썼던 지식인들을 만나게 되면서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지식인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난 100년 동안 어쩌면 우리나라가 어려움 속에서도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다행히도 우리나라에는 이런 지식인을 우대해 주는 풍토가 큰 몫을 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서는 독립운동, 종교와 철학, 문학, 역사, 정치가, 법, 정치 경제, 사회와 문화, 여성과 환경, 자연과학, 밖으로부터의 시선 등을 구분하여 무려 60명이나 되는 인물과 그의 대표 저작들을 통해 현대 한국 지성의 역사를 담담하게 고찰하고 있다. 지난 100년의 기억을 미래 지향적 사유와 성찰을 통해 앞으로 100년의 나아갈 방향을 탐색하고 있다. 나는 이러한 시도가 이 책 전반에서 저자가 강조하고 있는 지식인의 책무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2. 이 책을 읽다가 다음과 같은 생각, 느낌이 들었어요.

 

 

1) 이 책에서 말하는 지식인의 책무란

 

 

망각해서는 안 될 과거의 기억들을 소환하고 다음 세대에게 전승하는 것은 지식인의 중요한 책무 중 하나다. 실존적 기억처럼, 집합적 기억은 우리라는 공동체를 더 나은 삶의 미래로 고양시킨다. 기억의 미래가 중요한 까닭이다. (p. 124)

 

어느 나라든 지식인에게 가장 기대하는 것의 하나는 시대의 미래를 선구적으로 읽어내는 일이다. 시대에 대한 전망은 쉬운 과제가 아니다. 시대의 변화는 예견된 경로로 진행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p. 331)

 

지식인은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 지식인에게 진리란 과연 무엇인가. 이에는 하나의 정답만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문학‧역사학‧철학 등의 인문학이 진리 탐구에 주력한다면, 정치학‧경제학‧철학 등의 인문학이 진리 탐구에 주력한다면, 정치학‧경제학‧사회학 등의 사회과학은 정책 연구도 소홀히 할 수는 없다. 진리 탐구와 정책 연구는 지식인에게 부여된 가장 중대한 사명일 것이다.(p. 248)

 

우리 역사를 돌아보면 생명력이 긴 지식인들이 존재한다. 원효와 지눌, 이황과 이이, 박지원과 정약용이 그런 지식인들이었다. 주목할 것은 이들 지식인의 사상에 놓인 공통점이다. 그것은 시대에 맞서서 자신의 사유와 담론을 펼침으로써 새로운 사상적 흐름이 선각자가 됐다는 점이다. (p. 251)

 

외부의 지식인 제안하는 ‘외부로부터의 시각’은 우리 사회 문제를 분석하고 대안을 마련해 온 ‘내부로부터의 시각’에 넓이와 깊이를 더한다. 그렇다고 외부로부터의 시각이 내부로부터의 시각보다 더 탁월하다는 것은 아니다. 외부로부터의 시각은 내부로부터의 시각이 갖는 역사적 특수성에 대한 분석적 섬세함이 부족할 수 있다. 사회에 대해 지식인이 가져야 할 거리와 그 거리 속에서 이뤄져야 할 성찰의 중요성에 있다.(p. 508)

 

 

2)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시대정신이란

 

 

저자는 ‘시대정신이란 한 사회가 지향해야 할 가치의 집약’ (p. 305)이라고 말하며 지난 100년 우리 현대사를 이끌어온 시대정신을 다음 세 가지로 분석하고 있다. “첫째는 독립된 국가와 사회를 이루려는 민족 해방이다. 둘째는 빈곤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산업화다. 셋째는 자유‧평등‧인권을 누리려는 민주화다. 민족 해방과 산업화와 민주화는 독립운동가, 정치가, 그리고 지식인들의 삶을 끌고 또 밀어 온 시대정신이었다.” (p. 7) 이것을 하나로 요약하면 바로 민주주의다. “민주주의는 지난 100년 우리 현대사를 이끌어온 마스터 프레임이자 가장 중요한 시대정신이었다.”(p. 274)

 

이러한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해 보수와 진보 세력의 경쟁은 불가피한 것이다. “ 서로의 보수 세력이 새롭게 거듭나기 위해선 21세기 정보 혁명 시대에 걸맞게 공동체‧사회통합‧점진주의와 같은 보수 본래의 가치를 새롭게 재구성하고 정립하는 것은 보수의 미래에 부여된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p. 283) 진보란 변화를 통해 더 나은 삶과 사회를 모색하려는 사상적 ‧정치적 기획을 통칭한다.(p. 305) 21세기 미래에서 진보에게 부여된 주요 과제는 세 가지다. 시장이 적절한 제어, 사회적 약자의 보호, 개인적 자율과 공동체적 연대의 생산적 결합이다.”(p. 306)라고 밝히고 있듯이 진보와 보수의 갈등이 갈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경쟁의 시너지 효과를 통하여 더 좋은 사회 발전을 이루어가야 할 것이다.

 

저자는 앞으로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필요한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라고 결론적으로 말하고 있다. “그동안 지식인들이 외쳐왔던 민족주의, 민주주의, 균등 주의, 평화주의는 현재에도 유효한 시대정신이다. 변화하는 21세기의 상황에 걸맞게 이 시대정신들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의 미래적 과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p. 317) 지난 100년을 마감한 현재, 개인의 자율성과 공동체의 연대는 결코 양도할 수 없는 두 가치다. 이 둘을 생산적으로 공존시키고 결합하는 것을 나는 ‘연대적 개인주의’라고 부르고 싶다. 이 연대적 개인주의야말로 새로운 100년으로 가는 시대정신의 하나라고 나는 생각한다.” (pp. 456~457) 21세기 현재, 어느 나라든 인권, 자연과의 공존, 그리고 성 평등은 결코 양도할 수 없는 시대적 가치들이다.” (p. 448) 지난 100년을 마감한 현재, 개인의 자율성과 공동체의 연대는 결코 양도할 수 없는 두 가치다. 이 둘을 생산적으로 공존시키고 결합하는 것을 나는 ‘연대적 개인주의’라고 부르고 싶다. 이 연대적 개인주의야말로 새로운 100년으로 가는 시대정신의 하나라고 나는 생각한다.” (pp. 456~457)

 

3) 21세기 미래 100년을 위한 과제

 

 

앞으로 미래 100년을 위한 과제로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책을 읽다가 공감되는 부분을 발췌하여 좀 더 집중적으로 이해해 보는 것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함석헌, 장준하, 백기완 등은 재야(在野)를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재야란 벌판에 있음을 뜻한다. 최근 용법으로 바꾸면, 재야란 공적 기구가 아닌 민간 조직, 곧 시민사회를 말한다. 우리나라 민주화 과정에서는 재야의 역할이 중요했다. 재야라는 말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 있다. 권력에 맞서는 도덕, 지배자에 맞서는 민중, 군사독재에 맞서는 민주주의가 그것이다. 오늘날 재야는 고색창연한 개념이다. 권력과 지배에 맞서서 주권자인 국민이 나라의 주인임을 계몽했던 재야의 정신, 다시 말해 시민사회의 정신은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을 이끌어온 사상이었다. 다가올 100년에서 민주주의가 여전히 가장 중요한 가치라면, 국민주권을 추구하는 재야의 정신은 한국 민주주의에 지속적인 생명력을 부여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p. 58~59)

 

“지나간 역사와 새로운 역사가 교차하는 현재, 철학에 부여된 미래의 과제는 뭘까. 그 방향이 지향해야 할 가치는 무엇보다 인권, 정의, 민주주의, 그리고 성 평등 및 인간과 자연의 공존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p. 67)

 

오늘날 지구적 차원에서 자유의 현재를 바라보는 시선은 이중적이다. 한편에서 정보사회의 진전으로 표현의 자유를 위시해 정치‧문화적 자유는 크게 확장했다. 다른 한편 경제‧사회적 자유는 소비의 자유로 나타났다. 정치적으론 자유로운데 적지 않은 이들이 경제적으론 부자유하다는 게 오늘날 자유가 처한 상황이다. 자유란 자기의 삶, 다시 말해 자신의 사유와 생활을 스스로 지배하는 것을 말한다. 사유의 자유와 생활이 자유가 동시에 확장되기 위해선 정치 민주주의와 함께 경제 민주주의가 증진돼야 한다. 특히 인간다운 삶의 자유를 위한 경제 민주주의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자유의 미래는 바로 이 경제 민주주의의 성패에 달려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p. 133)

 

노동시장 정책과 복지정책이 적극적으로 추진되지 않으면 21세기의 미래를 지켜볼 때 불평등은 더욱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부유층과 빈곤층 간의, 노동계급 안의 불평등을 해소하는 대 압착 정책이 미래 100년으로 가는 우리 경제와 사회의 중대한 과제 중 하나라고 나는 생각한다. (p. 141)

 

가치판단의 차원에서 공정한 시장경제, 성숙한 민주주의, 연대적 개인주의, 개방적 민족주의는 성취와 해방이라는 과제를 동시에 앉고 있는 한국 근대성이 가야 할 길이다.(p. 183)

 

민주화 시대가 열리면서 노동문제는 우리 사회의 주요 의제가 됐고, 노동운동은 시민운동과 함께 양대 사회운동이 됐다. 노동에 대한 올바른 접근 없이 한국 산업화와 민주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노동자 계급은 산업화의 진정한 주역이었다. 동시에 노동존중은 질 높은 민주화로 가는 핵심 조건을 이룬다. 노동시간 단축과 기본소득 보장은 미래 과제인 동시에 현재적 과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pp. 197~199)

 

사상과 정치는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다. 사상의 궁극적 목표가 개인과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있다면, 정치는 그 개인과 사회를 바꿀 수 있는 구체적 힘이다. (p. 19) 정치란 한 사회의 자원과 가치 배분에 대한 최종 의사 결정을 함의한다. 인간들이 모여 사회를 이루며 살아가는 한, 그 사회 속에 내재한 다양한 가치와 이익을 조정하는 정치는 불가피한 것이다. (p. 297) 열정, 책임감, 균형감각을 갖춘 정치가의 존재는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p. 299)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선 정치가의 리더십과 시민들이 팔로어십이 적절히 결합해야 한다. 민주주의가 올바로 운영되기 위해선 대의민주주의와 참여 민주주의가 생산적으로 결합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정치 리더십은 공동체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사항이다. 민주적‧참여적‧생산적 정치 리더십을 어떻게 정착시킬 것인가는 미래 100년의 우리 사회와 국가 발전에서 매우 중대한 요소라고 나는 생각한다. (pp. 290~291)

 

선진국이란 국민 다수가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정치적으로 자유로우며 문화적으로 성숙한 나라를 뜻한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승인받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성장과 분배를 이뤄야 할 뿐만 아니라 성숙한 민주주의와 시민문화를 일궈내야 한다. 분명한 것은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 기존의 ‘모방 전략’을 넘어서야 한다는 점이다. 자기 나라의 역사적‧사회적 조건에 걸맞은 ‘창의적 표준’을 만들고 이를 실현해야 한다. 선진국으로 발전하는 데 필요한 것은 지속적 혁신이다. 지식 정보화가 가속화하는 현재, 이 지속적 혁신을 이루기 위해선 무엇보다 창의적 사유가 요구된다. 창의적 사유의 교육을 위한 사상의 역할이 더없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pp. 364~365)

우리 사회에서 민중 담론은 시민 담론을 거쳐 이제 국민 담론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국민 담론 안에는 민족주의적 국민과 지구주의적 세계시민 간의 정치적‧문화적 긴장이 담겨 있다. 민족주의적 국민과 지구주의적 세계시민을 어떻게 공존시키고 화해시키며, 나아가 결합시킬 것인가는 앞으로 전개될 21세기에 부여된 가장 중요한 사회‧문화적 과제들 중 하나라고 나는 생각한다. (p. 415)

 

문화가 존재의 이유를 안겨주는 의미 체계라면, 바람직한 의미를 위한 전통문화와 외래문화의 ‘창조적 혼융’은 오늘날 더없이 중요하다. 어느 시대든 전통문화는 외래문화와의 ‘혼융’을 이루고, 이 혼융을 통해 문화는 성숙하고 발전하게 된다. 문화에 내재된 자발성을 존중하면서도 인권과 민주주의라는 보편적 가치를 구현할 창조적 혼융을 어떻게 이룰 것인지는 우리 문화의 미래에 부여된 매우 중대한 과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pp. 422~ 423)

 

“오늘날 성 평등은 노동 존중, 인권 보호와 더불어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를 이룬다. 성 평등을 실현하는 데 일차적인 과제는 각종 차별을 해결할 수 있는 제도 개혁이다. 동시에 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성 평등을 위한 개인적‧집합적 태도 및 의지다. ‘지금, 여기’의 일상적 실천이 이뤄져야 한다. 이러한 성 평등과 여성해방을 성취할 때 우리 사회는 진정한 민주주의에 도달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p. 464~465)

 

이 지구는 현재 세대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지구는 다음 세대를 위해서도 존재하며, 살아 있는 모든 존재의 공유물이기도 하다. 환경을 보호하고 생명을 존중하려는 생태학적 사유와 실천은 축복받은 행성 지구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이 아름다운 생명의 지구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 우리 인류에게 부여된 더없이 중대한 미래 과제임은 너무나도 분명하다고 나는 생각한다.(p. 491)

 

동북아라는 지정학적이고 지경학적인 조건은 우리 미래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구조적 배경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 강제 아래 동북아의 평화와 아시아의 번영을 위한 최선의 전략적 선택을 어떻게 강구할 것인지는 우리 사회의 미래에 부여된 매우 중대한 대외적 과제라고 나는 생각한다.(501)

 

불확실한 미래를 두려워만 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미래에의 대비를 게을리해서도 안 된다. 세계화, 제4차 산업혁명, 불평등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우리 경제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p. 517)

 

3. 이 책을 읽다가 다음과 같은 생각, 느낌이 들었어요.

 

역사를 통계 숫자로만 파악하고, 역사를 제도의 변화로만 이해하며, 그리하여 역사 속에 놓여 있는 개인적집합적 주체들의 꿈과 열망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일면적 해석이다. 역사 속을 당당히 걸어온 우리 선조들의 삶과 꿈, 절망과 희망을 제대로 가르치는 것이야말로 역사에 대한 올바른 예의라고 나는 생각한다. (pp. 116~117)

 
→ 역사를 대하는 저자의 겸허한 자세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역사란 사건의 기록이 아니다. 그 사건에 담긴 선조들의 삶과 지혜를 읽어 낼 수 있어야 하고, 선조가 살았던 역사의 시공간 속에서 그들의 삶을 이해할 때, 역사는 늘 살아있는 교과서가 되어 줄 것이다.

예술은 존재에 대한 사려 깊은 이해와 인생에 대한 의미 있는 실천을 이끈다. 나아가 예술은 자기 사회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데 타자와 공유할 수 있는 공감과 연대를 선물한다. (p. 8) 인간은 생각과 느낌을 동시에 갖는 존재이고, 이를 문학음악미술 등으로 표현한 게 예술이다. 그 느낌과 생각을 다채롭고 생생하게 엿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예술은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이해하는 데 훌륭한 통로다. 인간에 대한 구체적이고 보편적인 인식이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는 데 중요한 조건이라면, 문학을 위시한 예술은 이런 인간에 대한 이해와 의미 있는 삶이 추구에 기여한다.(p. 214) 사상으로서의 문학은 두 가지 미덕을 갖는다. 삶에 대한 폭넓고 깊이 있는 생각을 안겨주는 게 하나라며, 그 생각을 통해 자신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게 다른 하나다. 많은 이들이 문학 작품을 읽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p. 153) 문학의 존재 이유는 인간의 다층성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에 있다. 문학은 삶에 대한 폭넓고 깊이 있는 생각을 안겨준다. 그리고 그 생각을 통해 자신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한다. 문학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텍스트다.(p. 166)

 

→ 저자의 예술, 특히 문학에 대한 생각을 보여주는 문장들이다. ‘예술은 삶에 대한 폭넓고 깊이 있는 생각을 안겨주고, 그 생각을 통해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예술은 필요하며, 또한 예술적 상상력과 즐거움을 통해 새로운 인생, 새롭게 꿈꾸는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게 만들어 준다는 점에서 포기할 수 없는 활동이다. 또한 예술은 삶의 치열함 속에서도 언제나 치유와 위안을 주는 영역이다.

 

오늘날 신념과 이념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는 지난 20세기와 같은 정치적 영향력을 더 이상 행사하지 않는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제기한 자본주의의 불평등은 갈수록 중대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마르크스의 실천적 해법과 정치적 전략이 잘못됐다는 것은 지난 20세기의 역사가 증거한다. 그러나 사회 불평등 해소에 대한 마르크스의 문제의식은 진보적 사회과학의 미래에서 여전히 중요한 과제를 이룬다. 사회 평등의 실현과 이를 바탕으로 한 인간 해방의 추구는 진보적 사회과학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p. 389)

 

→ 구소련과 동구권의 붕괴로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대결은 자본주의 승리로 끝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제시한 자본주의 문제점은 아직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부익부 빈익빈에 따른 경제적 불평등을 어떻게 해소해 나가야 하는가?’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선별적 복지와 보편적 복지는 여전히 논란이다. 불평등으로 나타난 사회 문제를 어디까지 복지로서 해결해 주어야 하는지도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합의에 이르는 과정을 제대로 제시해 주어야 하는 것이 바로 지식인들이 해야 할 몫이 아닐까?

 

서구 사회를 버튼 사회’, 우리 사회를 끈의 사회로 비교한 이어령의 분석은 여전히 음미할 만하다. “끈은 덩굴처럼 무엇엔가 의지해야 한다. 스스로 자기 몸을 타인에게 속박시켜야 한다. 끈은 끊어질 때 멸망하는 것이다. 이것이 선이 갖는 비극성이라는 주장은, 혈연과 지연, 학연이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을 돌아볼 때, 21세기 오늘날에도 설득력을 갖는다.(p. 405)

 

→ ‘버튼 사회’와 ‘끈의 사회’로 비유한 것이 참 신선하다고 생각한다. 위의 글에서는 끈의 사회의 단점을 제시하고 있지만 버튼 사회 역시 단점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버튼 하나로 인간관계의 단절을 가져온다면 얼마나 삭막할까? 또한 버튼 하나만 누르면 새로운 인간관계가 가능해진다면 너무나 가벼운 존재가 되지 않을까? 인생이란 단절되고 분절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다. 연속선상에서 이루어지는 일련의 활동들이다. 따라서 인간관계에서는 버튼과 끈이 가지고 있는 속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 교차점을 찾아내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4. 책 속의 문장에서 이런 것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었어요.

 

젊었을 땐 용기가 필요하다면, 늙었을 땐 지혜가 요구된다. 그 지혜의 핵심은 자기의 삶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다. 우리 인간은 늙어서도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고, 다음 세대에게 존경받아야 할 의무가 있다. 이 권리와 의무를 다하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계속 공부를 하고, 취미 생활을 하며,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100년을 살아온 경험이 생생한 지혜가 되어 김형석은 삶의 통찰을 안겨준다. (p. 89)

 

→ 100세 시대는 인류의 축복인 동시에 재앙이라고 한다.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노인문제는 사회적으로도 큰 이슈가 되고 있다. 공부, 취미 생활, 봉사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건강이 중요하다. 자신의 의지로 신체를 움직일 수 있는 노년의 삶을 위해서 운동을 통한 건강관리가 필수적이다. 귀찮다는 이유로 운동을 피하지 말고 건강한 삶을 위해 오늘 하루도 운동을 해야겠다.

 

석과불식(碩果不食)은 신영복이 남겨준 화두다. ‘씨 과실은 먹지 않는다를 뜻하는 석과불식은 20년의 수감 생활을 견디게 했던 희망의 언어다. 석과불식의 교훈은 사람에 담긴 가치의 발견에 있다. 그는 말한다. “사람을 키우는 일이야말로 그 사회를 인간적인 사회로 만드는 일입니다. () 욕망과 소유의 거품, 성장에 대한 환상을 청산하고, 우리의 삶을 그 근본에서 지탱하는 정치경제문화의 뼈대를 튼튼히 하고, 사람을 키우는 일, 이것이 석과불식의 교훈이고 의함이 언어입니다.” (p. 97) 인간과 세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사상이 갖춰야 할 제일의 덕목이다. 하지만 이 못지않게 사상은 위로와 공감에 기반한 연대의식을 안겨줄 수 있어야 한다. 깊이 있는 인식에 따듯한 공명(共鳴)의 연대의식을 더하는 것은 사상의 미래에서 무엇보다 염두에 둬야 할 지식인의 태도라고 나는 믿는다. (p. 99)

 

→ 석과불식(碩果不食)이란 말이 마음에 와닿는다. 씨과실을 다 먹어 버리게 되면 미래가 없는 삶이 된다. 아무리 배가 고프다 할지라도 내일을 위해 남겨두어야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샘물에 물이 고여야 하는데 물이 고이기가 무섭게 물을 다 먹어 버리면 그 샘물은 말라버려 영원히 사용할 수 없게 되는 것처럼 미래를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사상을 공부하다 보면 취향이라는 게 생긴다. 비슷한 위상에 놓인 지식인들 가운데 관심이 더 가는 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왜일까. 아마도 그 까닭은 내가 그들의 사상에 더 깊게 공감하고 그로부터 의식적무의식적으로 더 큰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 터다. (p. 467) 어느 나라든 사상가에겐 두 그룹의 독자가 있다. 현재의 독자뿐만 아니라 미래의 독자도 존재한다.(p. 471)

 

→ 나 역시 어떤 특정 작가의 책이 더 좋다. 그것은 바로 저자가 위문장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취향’ 때문일 것이다. 저자의 생각이 나의 생각과 일치하고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문장과 주제를 만나게 되면 그 작가의 작품 속에 빠지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세 번 놀라게 되었다. 첫 번째는 일단 520여 페이지나 되는 방대한 분량에 놀랐다. 두 번째는 정치, 경제에서부터 역사, 과학뿐만 아니라 예술과 문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전문가적 식견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는데 놀랐고, 그리고 세 번째는 좌우, 보수와 진보에 치우지지 않으면서 균형감각을 살려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부각되고 있는 과제들을 제시하고 그것을 60여 명의 인물들이 모험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주었던 보석 같은 실마리를 찾아내 성찰하고 있다는데 놀라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소개하고 있는 역사적 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이 삶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이해하게 되었으며, 또 그들의 여러 작품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는 글을 쓰고 있다는 데서 학자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존경의 마음을 갖게 된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바로 김호기라는 교수가 그 어려운 일을 감히 해 냈다고 생각한다.

지난 100년 한국을 움직여 온 지성의 역사를 알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아마도 이 책은 당분간 많은 독자층을 확보할 것이라고 믿는다. 확실하게 그만한 힘이 있다. 그 힘은 저자의 해박한 지식은 물론이고, 진솔하고도 정성이 담긴 글이 독자에게 감동과 여운을 주기 때문이 아닐까?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료로 제공받아 솔직하게 쓴 후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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