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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일의 신 택리지 : 살고 싶은 곳 - 두 발로 쓴 대한민국 국토 교과서 ㅣ 신정일의 신 택리지 1
신정일 지음 / 타임북스 / 201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신정일의 신 택리지
신정일 지음/타임북스(2010.6.28)
‘택리지’라 함은 ‘살기 좋은 곳을 가려 뽑는다’는 뜻이다. 신정일은 문화사학자다. 그는 동학에 관심이 많아 <황토현문화연구소>를 차려서 벌써 25년째 연구 중이며, 나에게 처음으로 정여립에 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해 준 분이다. 그는 우리나라 방방곡곡을 발로 밟으면서 우리가 미처 신경쓰지 못하고 지나쳐 갔던 부분들을 들춰내고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그가 250년의 세월을 건너 뛰어 이중환의 시각을 새롭게 해석하고, 현대적인 시각에서는 과연 어떤 땅이 살기 좋은 곳인지를 나름대로의 ‘관(觀)’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내가 읽은 부분은 ‘전라도’편인데, 전에 유홍준의 ‘답사 1번지’로 꼽힌 지역답게 역시 전라도는 속속들이 속이 깊고 성정이 순박한 시골 인심을 지닌 지역이었다. 그 중에서도 딱 두 군데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전라도라는 말을 하게 했던 고장 ‘전주’와 ‘나주’다.
<택리지>의 기록에는 ‘노령 북쪽의 10여 고을은 모두 좋지 못한 기운이 있지만 오직 전주만 맑고 서늘하여 가장 살 만한 곳이다.’라고 되어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53쪽)
그래서 전주는 ‘온고을’이 된 것이다. 일 년 내내 자연 재해로부터 안전한 곳이어서 온전한 고을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단다.
또한 전주는 견훤과의 인연도 깊다. 견훤이 ‘백제’의 중흥과 의자왕의 못 다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 전주에 나라를 세웠다는 것이다.
견훤은 신라보다 일렀던 백제의 역사를 재정립하겠다는 일종의 ‘역사 바로잡기’와 더불어 의자왕의 숙분을 푸는 것을 당면 과제로 내세웠다. 정치 이데올로기로서 백제에 의한 국토 통일을 내걸었던 것이다. 견훤은 비참하게 몰락한 백제 왕조를 부활시키기 위해 힘찬 첫발을 내디딘 것이며, 도탄에 빠진 민중을 구원하고 세상을 건지겠다는 미륵의 나라 건설을 피력한 것이었다.(56쪽)
한 지역에 관한 역사와 함께 현재 남아 있는 유적의 내력, 그리고 숨겨진 이야기들을 술술 풀어내는 과정이 참으로 놀랍다. 전주 덕진공원에 얽힌 풍수적인 이야기도 참 재미있게 잘 읽었다. 전주는 정여립과의 관련성도 있어서 더욱 흥미로운 지역임을 새삼 알 수 있었다.
전주의 큰 산인 모악산도 역시 두 지도자를 냈다는 점에서 새롭게 알게 된 산이다. 김일성의 할아버지 묘소가 있다는 점과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의 본향이라는 점 등 그야 말로 흥미진진한 얘기들이 줄줄이 솟아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많은 자료를 얻을 수 있을까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주군 다시면 회진에 유배를 왔던 정도전은 그의 <기>에서 나주를 두고 “사람들이 순박하여 다른 생각이 없이 농업에 힘씀을 업으로 한다”하였고, 이예는 “가게를 벌여놓고 물건을 사고판다. 백성들의 풍속이 순박하다”라고 하였다. 『택리지』는 “나주는 노령 아래 있는 한 도회인데 북쪽에는 금성산이 있고 남쪽으로는 영산강에 임하였다. 고을 과나의 판세가 한양과 흡사하여 예부터 높은 벼슬을 지낸 사람이 많다”라고 기록하였다. 조선 초기의 학자였던 서거정이 『동국여지승람』에서 “나주는 전라도에서 가장 커서 땅이 넓고 만물이 번성한다. 또한 벼가 많이 나고 바닷가라서 물산이 풍부하며 전라도의 조세가 모이는 곳이라 상인들이 이곳저곳에서 몰려든다.”라고 말한 것처럼 나주는 끝없이 펼쳐진 평야의 중심지에 있다.
이렇게 각종 역사적 자료와 선비들의 말을 인용함으로써 글에 대한 신뢰감과 사실성을 더욱 확보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자료와 정보를 얻는 과정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기 때문에 더욱 이 책이 지닌 가치가 높아졌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끝으로 신정일 문화사학자의 북한 관심에 더욱 기대를 걸어본다. 이제는 북한의 살기 좋은 땅에도 관심을 더욱 가져야 할 때가 아니겠는가.
몇 년 전에 남도 여행을 하면서 내가 노년이 되면 이쪽 땅에서 한번 살아 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전라도의 구석구석을 샅샅이 설명해 내는 이 책을 통해서 그 생각이 더욱 확실하게 굳어지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역시 제도에 물들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가는 모습이 더욱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