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봄이면 입덧을 한다 시선 시인선 50
황시은 지음 / 시선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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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봄이면 입덧을 한다

 

황시은(시선사/2008.11.25)

 

시의 배경이 되어 주는 장소는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경우가 참 많다.

 

‘창신대학 교문 입구’ (풍경2)

‘해군사관학교 박물관 가는 길(풍경3)

‘안민고갯길’(봄의 안부)

‘비음산 등산로 입구’(입춘일화)

‘용지동 민원센터 옆 공터’(오동나무 종소리를 들으며)

 



이것은 시인의 인생관, 가치관을 대변한다.

시인이 추구하는 세계는 구체적이어야 하고 사실적이어야 한다.

그만큼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 밖에서 찾는 것보다는

바로 내가 살아가고 있는 현장에서 찾아야 한다는 사고를 반증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은 다른 곳에서 더욱 확연해진다.

 

‘시어머님 하늘 길 가시던 날’‘친정집 우물가에 서 있는 향나무 한 그루’(향나무를 삶으며)

‘투박스럽기 그지없는 막사발에 텁텁한 조껍데기 술맛’

‘감식초와 태양초에 버무린 시골 어머니가 보내 주신 참기름’(난 봄이면 입덧을 한다)

‘할머니 한 분이 아파트상가 근처 길가엣 무공해라며 팔던 상추’(달팽이는 달리고 있다)

 

시인의 형이상학적 세계를 천착하기보다는 일상의 실제를 그대로 보이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곳엔 생활이 그대로 보인다.

아파트에서의 일상이 고스란히 시 속으로 형상화되어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 가지는 놓치지 않고 있다.

시인이 의도했든 안 했든 그 점은 그대로 체화되어 나타나는데,

바로 사람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다. 입덧을 하면서

자식을 낳고 세월을 견뎌온 아줌마로서의 생활을 숨기지 않고 솔직하고 편안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생활의 가치만 추구하는 건 아니다.

시인의 시선은 여기저기에서 다양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생명에의 외경심 같은 초월적 시선은 ‘김밥꽃2’에 보인다.

 

‘예리하고 날카로운 칼에 베어져 나와야만 한 송이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난다.’

‘늘보 오후를 구르다’

에서처럼, 언뜻 늘어지는 오후의 한 때를 캡처 화면처럼 보여주는 듯하면서도,

결코 게으른 한 마리의 늘보의 생활을 말하려고 하기보다는

찻잔에 섞여 들어간 ‘우울’과

대 숲으로부터 나의 존재감에게 어떠한 깨달음의 바람도 불어오지 않음에 대한 깊은 사색을 섞기도 한다.

이런 존재론적 인식은 결코 가벼운 터치가 아니다.

새들만이 그 어려운 한낮의 지루함을 깨워준다고 하고 있는데,

이것도 결코 새를 향한 깨달음의 시선만은 아니다.

새가 던져준 화두는 질그릇으로,

산타엘레나로 그 무한한 공간의 영역이 확장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간단히 공식화할 수 없는 시간 개념이며,

순간적으로 조망된 시적 영감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의 시선은 때로는 과거로, 어머니로, 그러다가 ‘먹거리’로 다양하게 풀어헤쳐진다.

어떻게 보면 흔하디흔한 인생살이를 보는 것과도 같이 보인다.

그러나 시인의 특별함이 있다면

그 평범한 글감들을 정말 다양하게 변주하고,

때론 그대로 까발리고, 때론 아프게 묶어나간다는 점일 것이다.

 

시어가 주는 투박함이 더 정겹게 다가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의 화자는 삼겹살을 구워 먹으면서 뱃살 걱정을 했지만

결코 다이어트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우

스꽝스럽게 인물을 희화화하면서 그 재미 뒤에 숨겨진 비밀 노트를 찾아보라고

애교 넘치는 숨바꼭질을 해 대고 있는 것이다.(뱃살이 거실에 떨어지다)

 

시인의 속살 같은 시어들은 참 거침이 없다.

마치 폐쇄회로 화면을 우리에게 다 보여주는 것같은 시들이다.

하지만 그 애교와 가벼운 귀여움 속에 우리는 놓칠 수 없는

인생살이의 아픔과 깨달음과 희망을 읽어내야 할 것이다

 

시는 독자에게 늘 상대적이다.

행복한 미소를 주다가도 거침없이 흘릴 눈물을 선사하기도 한다.

이렇게 다양한 시선 속에서 우리는 어찌 입덧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응?

시인의 진솔함 속에서

더욱 고아한 생활의 자태가 더 자세히 보일 날이 다시 오기를 학수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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