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설계도 게놈 편집의 세계 - 게놈 편집은 우리와 생명의 미래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NHK 게놈 편집 취재반 지음, 이형석 옮김 / 바다출판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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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게놈 편집 기술현황에 관한 가이드

  250쪽 남짓의 이 책은 최신 생명공학 기술의 교과서 같은 것이 아니다. 이 책은 철저하게 일반인을 위한 가이드북이다. 어려운 내용은 최소한으로 하고, 연구 동향과 영향을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 레포트다. 그럼에도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연구, 기술, 상업, 그리고 끝내 윤리까지 다루는 이 책은 말 그대로 '게놈 편집' 전반에 관한 지침서라고 하기에 손색이 없다. 책이 제시한 내용들은 어떤 개인이라도 고민 해볼만한 것들이다. 그 개인은 연구자, 기술자, 사업가, 철학자, 사회학자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게놈 편집의 현주소

  뉴밀레니엄을 앞둔 1999년, 인류가 새천년과 함께 닥쳐올 다양한 과학/기술의 폭풍에 기대와 걱정을 동시에 품고 있던 시기였다. 그 폭풍 속에서 등장한 것 중 하나가 '게놈 프로젝트'였다. 인간의 유전자 지도를 규명하기 위한 기초학문과 기술의 총체인 게놈 프로젝트가 민간에 그 성과가 소개되던 해였다. 공개와 동시에 사회적 이슈가 된 게놈 프로젝트는 각계각층의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의미로 다가왔다. 심지어 문학과 영화와 같은 매체에서도 생명공학 SF가 대대적인 붐이 불어, 생명공학과 아무 관련 없던 영화 포스터의 홍보문구에도 '게놈 프로젝트'라는 단어가 들어가던 시기였다.

  그 후로 10년, 게놈에 관한 생명공학이 뚜렷한 진전을 이룩했다고 보긴 힘들었다. 여러 생물들의 유전자 지도들은 차츰 완성되고, 게놈 해석의 비용도 점점 낮아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학문적 성과와 별개로 게놈의 기술적 응용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물론 10년이라는 기간은 연구라는 측면에서 그리 긴 시간이 아니지만 연구자들을 제외한 일반인들에게 잊혀지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러다 2010년, 2세대 게놈 편집 기술이 등장한다. 게놈 프로젝트가 공개되기 전에도 '징크 핑거 뉴클레아제'라는 1세대 게놈 편집 기술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2세대 기술인 '탈렌'은 징크 핑거 뉴클레아제에 비해 유전자 절단에 있어서 오차가 낮고, 높은 정밀도와 정확도를 가지고 있었다.

  탈렌의 기술과 비용 효율이 높아지는 가운데, 3년이 채 지나지 않아 2012년에 '크리스퍼 캐스9' 기술이 개발되었다. 세균의 면역기능을 응용하여 단백질 조합이 요구되는 1세대, 2세대 기술에 비해 놀랍도록 간단해지고 정확도도 높아진 기술이었다. 심지어 원하는 유전자의 파괴뿐만 아니라 교체나 삽입까지 가능한 기술이다. 간단한데다가 응용범위도 넓은 크리스퍼 캐스9은 숙련된 기술이 없더라도 구현할 수 있고, 그 반응이 빠르다는 것이 장점이다.


생명공학과 미래시대

  게놈 편집 기술은 생각보다 강력한 파급효과를 가지고 있다. 게놈 편집 기술은 발전하면서 동시에 연구현장의 효율을 높혔다. 편집 기술 자체가 발전하는 불과 수 년마다 연구의 효율과 성과도 빠르게 증가했다. 나아가 이런 효율성과 성과는 상업적 이용이 가능한 수준까지 이르렀다. 게놈 편집 기술의 데이터를 축적하여 세계 각지의 연구를 대상으로 한 '애드진'과 같은 회사뿐만 아니라, 실제적으로 게놈 편집 기술을 자신들이 이용하여 품종개량과 치료제를 개발하는 회사들이 등장했다.

  기업이 게놈 편집 기술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일반 연구에서의 관심과는 다른 점을 시사해준다. 기업의 관심은 이윤창출의 가능성이 있을 때 성립하는 것이다. 즉, 다시 말하면 게놈 편집 기술은 기업이 이윤창출을 위해 사용할만큼 가능성이 있는 기술이다. 결국 기업이 재화를 판매하는 대상은 일반인들이다. 살과 근육이 많은 참돔과 소, 독성이 없는 감자, 그리고 에이즈 치료 기술은 인류의 삶을 윤택하게 하기 위한 상품들이 될 것이다. 앞으로도 여러 기업들이 게놈 편집 기술을 이용해 새로운 품종을 개량하거나 치료제와 치료기술들을 개발할 것이다.

  생명공학 기술이 최종적으로 도달하는 곳은 어디일까? 바로 역시 하나의 생명에 속하는 인간종에 관한 기술이 아닐까? 단순히 '치료'라는 범주를 넘어선 생명공학 기술들이 인간에게 적용될 날도 머지 않아 보인다. 게놈 편집 기술은 인류가 가진 유전적 문제들을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또는 필요에 따라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게놈 편집도 수행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

  게놈 편집 기술은 다른 과학기술들과 마찬가지로 갑자기 한 천재에 의해서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과학기술이 배양되기 위한 학문적 토양이 먼저 필요하다. 책의 저자인 NHK 취재반이 게놈 편집 기술의 취재 내내 아쉬워한 것도 일본의 학문적 토양이 미국과 같은 생명공학 선진국에 비해 뒤쳐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일본보다 기초학문이 뒤쳐진 한국은 말할 것도 없다. 실제적인 응용이 가능한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기술개발 자체를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는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선행되어야할 것은 기초학문을 견실히 하는 것이다. 보통 기업은 기초학문에 지원하지 않기 때문에, 국가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 시점이다. 미국과 일본도 국가 주도의 생명공학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고, 그 프로젝트가 진행됨에 따라 비로소 기업들도 참여를 하고 있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는 점이다. 더 나아가 여러 학문의 경계를 허물어 연구자들이 하나의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돕는 것도 국가의 역할이다.

  게놈 편집 기술 자체만 두고 본다면 앞으로 인류의 삶은 무한하게 윤택해질 것이라는 낙관론에 빠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은 기술 낙관에 대한 경계도 빼놓지 않고 있다. 과학기술을 위해 불필요한 규제나 사회인식은 수정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는 한편, 과학자와 연구자들의 윤리적 가이드라인이 선행되어야 함을 언급하고 있다. 중국에서 인간의 수정란을 이용한 게놈 편집 실험에 연구자들이 성과에 다급해지는 한편으로도 중국의 실험을 경계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연구자들은 자신의 연구에 책임을 져야 하며, 이것은 단순히 개인의 책임이 아닌 연구 공동체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유전자 조합에 관한 부정적 인식과 같이 게놈 편집 기술에 대한 사회의 거부감을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앞으로 게놈 편집 기술에 관한 사회적 인식도 연구자들과 기업에 의해서 점차 바뀌어 갈 것이다. 연구자들과 기업이 연구윤리와 책임을 무시해서는 안되는 것도 당연함은 물론이지만, 동시에 일반인들도 잘못된 지식을 고쳐나가는 한편으로도 기술이 폭주하지 않도록 경계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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