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arthian Tales 어션 테일즈 No.1 - alone
김보영 외 지음 / 아작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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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지에서 계간지로 바뀌고, 이내 휴간했던 ‘별과 우주‘가 생각났다. 천문잡지를 통해 우주를 보던 당시의 초등학생은 어른이 되었다. 그 어른은 이제, SF의 꿈을 꾸면서 우주에 우리의 흔적을 남기는 어션테일즈를 읽게 되어 행운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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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 (리커버 개정판) - 국내 최초 수메르어·악카드어 원전 통합 번역
김산해 지음 / 휴머니스트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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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전에 대한 해석을 시도한 것은 기념할만한 일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원전을 다시 이야기로 풀어내는 것은 별개의 능력이라는 것도 확실하다.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가 생각난다. 역사가는 사실 여부만 기록하는 사람이 아니다. 이는 신화사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길가메쉬 서사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없을까? 아쉽게도 그 교훈을 직접적으로 느끼기에 이 책은 지나치게 상업적이다. 넓은 문장 간격과 쪽 여백, 두꺼운 종이 재질과 양장 상태. 모든 것이 길가메쉬 서사시를 찬양하기 위한 귀족적이고 상업적인 장치로 꾸며져있다. 인터넷 위키에 비해 같은 공간 대비 정보의 밀도가 턱 없이 낮다.


  다행히도 길가메쉬의 교훈은 성경으로, 그리스 신화로, 역사서로 전승되었다. 엄밀히 말해서 전승이 아니라, 인류사의 보편 교훈일지도 모른다. 이왕이면 우리는 그런 교훈을 길가메쉬 서사시가 아닌 다른 이야기에서 재미있게 얻는 것이 좋을 것이다.


  단순히 길가메쉬 신화의 존재 판단을 위해 다섯 가지 정도 되는 큼직한 사건의 나열을 반복적으로 읽는 것은, 시간과 돈과 정신의 측면에서 피곤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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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ilz 2021-05-04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훈찾아 삼만리))

gdd2020gdd 2021-05-27 0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을 필요없다. ㅋ 별 1개 달고 리뷰를 쓴 의도가 뭘까. ㅋ

해준 2021-08-13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 한개인 리뷰도 있을 수 있죠; 윗분 이상하시네..

synufo 2022-05-01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수쟁이?

sun6300 2022-09-16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독은 도처에 깔려있다. 언제든지 성경에 불리한 자료나 성경보다 오래된 역사를 지우기위해 은폐 및 파괴하며 또는 미화작업으로 덮어버렸다. 기독교가 일본에게 저지른 역사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개독들은 박해를 받았다고 미화작업으로 진실을 가린것이 오늘 낼이 아니지. 그리고 개독이 욕이라고 생각하거나 혐오 발언이라 생각하는데 잘못이 얼마나 많으면 그러겠냐. 개독교는 개신교와 기독교의 합성 언어다. 그동안 욕이라고 생각했다면 대가리가 짧은거지. 그정도로 개독은 진실과 멀고 알아보거나 찾아보거나 조사는 커녕 개독 찌라시에 새뇌되어 거짓에 파뭍여 살고 있다는게 신의 은총이다. 여지껏 귀에걸면 귀걸이 코에걸면 코걸이 자기 합리화 속에서 개독끼리 서로 잘되면 하나님이 도와준거고 잘 안되면 때가 안되서 또는 기도가 부족해서 이런식으로 합리화되고 변질된 종교가 바로 기독교 이니 거짓된 종교에서 빠져나오기란 오히려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것이 매우 쉬울거다.
 
생명의 설계도 게놈 편집의 세계 - 게놈 편집은 우리와 생명의 미래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NHK 게놈 편집 취재반 지음, 이형석 옮김 / 바다출판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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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놈 편집 기술현황에 관한 가이드

  250쪽 남짓의 이 책은 최신 생명공학 기술의 교과서 같은 것이 아니다. 이 책은 철저하게 일반인을 위한 가이드북이다. 어려운 내용은 최소한으로 하고, 연구 동향과 영향을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 레포트다. 그럼에도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연구, 기술, 상업, 그리고 끝내 윤리까지 다루는 이 책은 말 그대로 '게놈 편집' 전반에 관한 지침서라고 하기에 손색이 없다. 책이 제시한 내용들은 어떤 개인이라도 고민 해볼만한 것들이다. 그 개인은 연구자, 기술자, 사업가, 철학자, 사회학자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게놈 편집의 현주소

  뉴밀레니엄을 앞둔 1999년, 인류가 새천년과 함께 닥쳐올 다양한 과학/기술의 폭풍에 기대와 걱정을 동시에 품고 있던 시기였다. 그 폭풍 속에서 등장한 것 중 하나가 '게놈 프로젝트'였다. 인간의 유전자 지도를 규명하기 위한 기초학문과 기술의 총체인 게놈 프로젝트가 민간에 그 성과가 소개되던 해였다. 공개와 동시에 사회적 이슈가 된 게놈 프로젝트는 각계각층의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의미로 다가왔다. 심지어 문학과 영화와 같은 매체에서도 생명공학 SF가 대대적인 붐이 불어, 생명공학과 아무 관련 없던 영화 포스터의 홍보문구에도 '게놈 프로젝트'라는 단어가 들어가던 시기였다.

  그 후로 10년, 게놈에 관한 생명공학이 뚜렷한 진전을 이룩했다고 보긴 힘들었다. 여러 생물들의 유전자 지도들은 차츰 완성되고, 게놈 해석의 비용도 점점 낮아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학문적 성과와 별개로 게놈의 기술적 응용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물론 10년이라는 기간은 연구라는 측면에서 그리 긴 시간이 아니지만 연구자들을 제외한 일반인들에게 잊혀지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러다 2010년, 2세대 게놈 편집 기술이 등장한다. 게놈 프로젝트가 공개되기 전에도 '징크 핑거 뉴클레아제'라는 1세대 게놈 편집 기술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2세대 기술인 '탈렌'은 징크 핑거 뉴클레아제에 비해 유전자 절단에 있어서 오차가 낮고, 높은 정밀도와 정확도를 가지고 있었다.

  탈렌의 기술과 비용 효율이 높아지는 가운데, 3년이 채 지나지 않아 2012년에 '크리스퍼 캐스9' 기술이 개발되었다. 세균의 면역기능을 응용하여 단백질 조합이 요구되는 1세대, 2세대 기술에 비해 놀랍도록 간단해지고 정확도도 높아진 기술이었다. 심지어 원하는 유전자의 파괴뿐만 아니라 교체나 삽입까지 가능한 기술이다. 간단한데다가 응용범위도 넓은 크리스퍼 캐스9은 숙련된 기술이 없더라도 구현할 수 있고, 그 반응이 빠르다는 것이 장점이다.


생명공학과 미래시대

  게놈 편집 기술은 생각보다 강력한 파급효과를 가지고 있다. 게놈 편집 기술은 발전하면서 동시에 연구현장의 효율을 높혔다. 편집 기술 자체가 발전하는 불과 수 년마다 연구의 효율과 성과도 빠르게 증가했다. 나아가 이런 효율성과 성과는 상업적 이용이 가능한 수준까지 이르렀다. 게놈 편집 기술의 데이터를 축적하여 세계 각지의 연구를 대상으로 한 '애드진'과 같은 회사뿐만 아니라, 실제적으로 게놈 편집 기술을 자신들이 이용하여 품종개량과 치료제를 개발하는 회사들이 등장했다.

  기업이 게놈 편집 기술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일반 연구에서의 관심과는 다른 점을 시사해준다. 기업의 관심은 이윤창출의 가능성이 있을 때 성립하는 것이다. 즉, 다시 말하면 게놈 편집 기술은 기업이 이윤창출을 위해 사용할만큼 가능성이 있는 기술이다. 결국 기업이 재화를 판매하는 대상은 일반인들이다. 살과 근육이 많은 참돔과 소, 독성이 없는 감자, 그리고 에이즈 치료 기술은 인류의 삶을 윤택하게 하기 위한 상품들이 될 것이다. 앞으로도 여러 기업들이 게놈 편집 기술을 이용해 새로운 품종을 개량하거나 치료제와 치료기술들을 개발할 것이다.

  생명공학 기술이 최종적으로 도달하는 곳은 어디일까? 바로 역시 하나의 생명에 속하는 인간종에 관한 기술이 아닐까? 단순히 '치료'라는 범주를 넘어선 생명공학 기술들이 인간에게 적용될 날도 머지 않아 보인다. 게놈 편집 기술은 인류가 가진 유전적 문제들을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또는 필요에 따라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게놈 편집도 수행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

  게놈 편집 기술은 다른 과학기술들과 마찬가지로 갑자기 한 천재에 의해서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과학기술이 배양되기 위한 학문적 토양이 먼저 필요하다. 책의 저자인 NHK 취재반이 게놈 편집 기술의 취재 내내 아쉬워한 것도 일본의 학문적 토양이 미국과 같은 생명공학 선진국에 비해 뒤쳐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일본보다 기초학문이 뒤쳐진 한국은 말할 것도 없다. 실제적인 응용이 가능한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기술개발 자체를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는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선행되어야할 것은 기초학문을 견실히 하는 것이다. 보통 기업은 기초학문에 지원하지 않기 때문에, 국가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 시점이다. 미국과 일본도 국가 주도의 생명공학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고, 그 프로젝트가 진행됨에 따라 비로소 기업들도 참여를 하고 있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는 점이다. 더 나아가 여러 학문의 경계를 허물어 연구자들이 하나의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돕는 것도 국가의 역할이다.

  게놈 편집 기술 자체만 두고 본다면 앞으로 인류의 삶은 무한하게 윤택해질 것이라는 낙관론에 빠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은 기술 낙관에 대한 경계도 빼놓지 않고 있다. 과학기술을 위해 불필요한 규제나 사회인식은 수정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는 한편, 과학자와 연구자들의 윤리적 가이드라인이 선행되어야 함을 언급하고 있다. 중국에서 인간의 수정란을 이용한 게놈 편집 실험에 연구자들이 성과에 다급해지는 한편으로도 중국의 실험을 경계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연구자들은 자신의 연구에 책임을 져야 하며, 이것은 단순히 개인의 책임이 아닌 연구 공동체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유전자 조합에 관한 부정적 인식과 같이 게놈 편집 기술에 대한 사회의 거부감을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앞으로 게놈 편집 기술에 관한 사회적 인식도 연구자들과 기업에 의해서 점차 바뀌어 갈 것이다. 연구자들과 기업이 연구윤리와 책임을 무시해서는 안되는 것도 당연함은 물론이지만, 동시에 일반인들도 잘못된 지식을 고쳐나가는 한편으로도 기술이 폭주하지 않도록 경계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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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니아의 騎士 15 - 완결
니헤이 츠토무 지음, 김동욱 옮김 / 애니북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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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헤이 츠토무의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일까? 많은 이들이 하드한 SF적 세계관을 손에 꼽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장르에 관한 이야기에 불과하다. 니헤이 츠토무의 스토리텔링에는 다른 만화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부분이 있다. 츠토무의 작품들은 모든 작품이 병렬적으로 사건을 다룬다. 이는 최신작인 '시도니아의 기사'도 다르지 않다.


 '시도니아의 기사'는 크게 3가지 관점이 서로 교차한다. 시도니아의 내부적인 일, 외부적인 일, 그리고 조종사 '타니카제 나가테'의 일이다. 3가지 스토리는 복잡하게 얽히고 궁극적으로 인류의 미래까지 이어진다. 무엇하나라도 빠지면 인류의 미래는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우리가 '시도니아의 기사'를 읽을 때 주목할 점은, 이 3가지 스토리가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되느냐이다.


 '타니카제 나가테'는 전형적인 파일럿이자 주인공이지만, 위기로부터 시도니아를 구해낸다는 결정력 외에는 그 존재 자체로서 두각을 보이는 면은 없다. 사실상 시도니아는 함장 '코바야시'와 부함장 '미도리카와'를 비롯한 여러 선원들에 의해 이끌어진다. 그들이 없다면 가우나의 습격으로부터 시도니아는 안전할 수도 없다.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3개의 스토리라인도 점차 명확해진다. '타니카제'의 스토리를 빼면, 시도니아의 내부적인 일들은 '코바야시'를 중심으로, 외부적인 일들은 '미도리카와'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코바야시'의 인류 존속에 대한 사명, 또한 그것을 초월한 '사이토'에 대한 동경과 집착은 '타니카제'와의 만남을 통해 점차 변화의 계기를 맞이한다. 엄밀히 말해서 '타니카제' 개인의 힘 때문이라기보다는, '타니카제'에게 영향을 받은 주변 사람들 덕분일 것이다. 냉철하고 임무중심적이며, 때로는 지독한 매니아 같은 면모를 가진 '코바야시'가 최종장에 이르어 시도니아를 침입한 가우나와 격전을 펼치는 장면은 그런면에서 감회가 새롭다. 단순히 인류 파종선이 아니라, 결전에 임한 원정대가 돌아올 장소, 시도니아를 반드시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역시나 그녀 특유의 전투 센스로 가우나를 시도니아에서 몰아낸다.


 오빠에 대한 미련, '타니카제'에 대한 마음을 정리한 '미도리카와'는, 원정대의 지휘관으로서 능력을 아낌없이 발한다. '코바야시'가 자신의 직무적 책임을 극복하고 한발 나아갔다면, '미도리카와'는 반대로 한명의 소녀(?)가 아닌 '책임을 진 지휘관'으로 변화한다. 어떻게 보면 '코바야시'와 포지션을 서로 교환한 느낌도 든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받아들인 천재소녀는 천재라면 당연히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사명감으로 결전에 종지부를 찍는다. '코바야시'가 앞서 외친 "발사."와 '미도리카와'의 대사 "발사!"가 묘하게 겹쳐지면서도 대조적인 느낌이 드는 이유는 그 때문일 것이다.


 '타니카제'는 결국 결전에서 '오치아이'와 조우하고, 렘 항성에서 격전을 펼친다. 이는 결국 과거 '사이토'와 '오치아이'의 싸움의 연장이다. 인류는 그 자체로 완전한 종이되어 우주를 떠도는 존재가 되어야 의미가 있을까? 아니면 현재의 종 자체는 불완전하더라도 서로 힘을 합치고 미지의 장소를 개척해야 의미가 있을까? 이 두 물음의 충돌이 인류의 새로운 태양이 될지도 모를 렘에서 펼쳐진다는 것이 재밌다. 이 둘은 절대 공존할 수 없는 것이다. 평소의 백치와 같고 순진하던 '타니카제'가 이 순간만큼은 결의에 차서 '오치아이'와 대결한다. 이는 그 혼자만의 의지가 아니다. 시도니아의 수많은 선원들과의 삶, 그리고 '쿠나토'의 진심어린 조언이 있기에 가능한 선택이었다. 그는 인류이면서 동시에 "시도니아의 기사"인 것이다.


 3가지 이야기는 각기 결말을 맞이한다. 혹자는 이것이 기존 츠토무의 작품들과 다른 느낌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본인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츠토무의 작품들은 언제나 하나의 '희망'을 결말에 심어두곤 했다. 독자들은 그 끔찍한 세계관에 자신을 대입하여 작중 인물들이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 츠토무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기 맞이할 수 있는 최고의 결말을 맞이하고 있다. 이는 비단 츠토무뿐만 아니다. 많은 SF작품들은 초월적인 희망을 남겨두는 경우가 많다. 츠토무의 스토리텔링은 이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3가지 스토리가 결국 향해가는 곳은 어디인가? 불확실하면서도 희망이 남아있는 미래다. 분명 '시도니아의 기사'도 단순히 해피엔딩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 행성 '세븐'의 개척과 '시도니아'의 새로운 여정 앞엔 필연적으로 역경과 고난이 닥쳐올 것이다. 그러나 언뜻 보면 불행한듯한 SF적 결말은 언제나 한 가지를 확실히한다. 인류는 그 어떤 역경도 극복해낼 것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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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온난화를 둘러싼 대논쟁
스펜서 위어트 지음, 김준수 옮김 / 동녘사이언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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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옹호하며 연구를 계속 하던 갈릴레오는 로마 교황청의 종교 재판에서 지동설의 포기를 지시 받았다. 당시 시대 상황에 따라 갈릴레오는 지동설을 포기한다고 선언했으나, 그가 재판에서 나오며 했다고 전해지는 말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세상이 인정하지 않더라도, 과학적 연구가 가리키는 현상을 갈릴레오는 마음속으로나마 끝까지 버리질 않았던 것이다. 과학계에서 과학자 또는 연구자들이 자신의 과학적 신념을 져버리지 않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지금은 현대물리학의 최전선에 있는 양자역학만 하더라도, 등장 당시에는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여러 세계적 석학들에게 비판을 받았다. 토머스 쿤은 자신의 저서 과학 혁명의 구조에서 이렇게 한 시대의 사람들이 가지는 신념체계의 근간을 패러다임이라고 말했다. 이 패러다임이 깨지고 새로운 이론을 수용하는 것을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하며, 이것은 과학 발전의 과정으로 과학 혁명이 된다. 그리고 20세기 말, 지금까지와 다른 아주 복잡한 성격의 연구가 과학자뿐만 아니라 거의 전 세계의 인류에게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했는데, 그것이 바로지구 온난화이다.

  누가 지구온난화를 가장 먼저 주장했다고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1896년의 아레니우스가 인류의 이산화탄소 배출에 따른 지구온난화 가능성을 수학적으로 계산하여 발표했다. 단순히 업적만 두고 본다면 아레니우스가 최초로 지구온난화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를 했다고 볼 수 있지만, 그것이 곧 지구온난화라는 전 지구적 문제에 대한 궁극적인 모델을 제시했다고는 할 수 없다. 실제로 아레니우스 이후 많은 과학자들이 지구온난화에 대한 다양한 연구들을 전개했다. 체임벌린은 해양순환에 의한 지구 탄소 교환 모형을 만들고, 베르나드스키는 생명체의 영향력이 여타 물리적 힘에 비견될 만큼 지구를 개조할 수 있다고 시사했다. 그밖에도 지구온난화에 일찍부터 관심을 갖고 다양한 원인을 주장한 사람을 열거하면 의외로 적지 않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지구온난화에 대한 선구적 관심과 그 연구가 바로 당대 사람들에게 지구온난화라는 지구적 재앙을 납득시킬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심지어 그들의 연구는 지구온난화를 경계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하나의 지구적 현상으로 이해하는 수준에 머무르기도 했다. 1938년에 영국 왕립기상학회에서, 산업화의 결과로 배출된 수백만 톤의 이산화탄소가 기후를 바꾸고 있다고 주장한 캘린더도 지구온난화를 지구적 재앙으로서 걱정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지구온난화로 인하여 인류의 작물수확량이 증가하는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사람들에게 평균 기온의 상승은 그렇게 위험한 문제로 다가오지 않았던 것이다.

  지구라는 시스템은 단편적인 연구만으로 결론을 내리기에 너무 복잡했다. 지구온난화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분야를 중심으로 이론을 전개하고 지구온난화의 가능성에 도달했다. 지구온난화라는 현상에 대한 연구는 기상학과 지구물리학의 발달로 그 기회가 열리게 되었다. 서구를 지배하던 실용주의적 관점이, 오히려 지구온난화라는 막연한 현상을 이해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20세기 초, 2차에 걸친 세계대전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전투는 국지적인 기상의 이해를 요구했다. 기상학은 눈부신 발전을 할 수 있었다. 많은 자연과학과 기술이 그러하듯, 기후에 관한 기상학도 전쟁의 수혜를 톡톡히 입은 것이다. 예를 들어 1942년부터 시카고대학교의 기상학과는 물리학 이론을 바탕으로 기후에 대한 복합적 이해에 도달하고자 기상학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전쟁으로 인해 이 기상학 프로그램은 지연되었으나, 시카고대학교 기상학과는 오히려 그 규모는 커지게 되었다. 동시에 1700여명의 군 기상학자를 훈련하고, 기상학에 대한 지식의 양도 점차 많아졌다. 기상학은 전쟁에서 상륙작전이나 폭탄투하 등에 필요한 다양한 기후 정보를 제공하며 활약했다. 2차 대전이 끝나고 나서도 세계의 군사적 긴장상태는 계속되었으므로, 군에서 기상학에 대한 수요는 줄어들지 않았다. 이처럼 기상학, 즉 지구물리학은 최소한 미국에 한해서는, 전후에도 정부에서 지원을 받으며 성장할 수 있었다. 물론, 이 당시의 지구물리학이 지구온난화를 목적으로 연구를 한 것은 아니었다. 지구물리학이 발전하면서 개별적인 연구자들 간의 교류도 활발해졌다. 게다가 당시 UN 같은 세계기구가 등장하던 시대 상황에 맞물려, 1951년에는 세계기상기구(WMO)가 설립되었다. 나아가 1958년에는 여러 국가와 단체들의 다양한 이해가 수렴된 국제지구물리관측의 해(IGY) 위원회가 발족하였다. 지구물리학의 공식적인 국제적 위원회의 효시 중 하나인 IGY는 여전히 지구온난화라는 기후변화가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이전의 지구물리학이 가지던 위상과 같이, 특정 집단에게 이익이 되는 정보를 얻거나 순수한 과학적 목적이 우선되고 있었다. 킬링 역시 그런 IGY 위원회에서 연구비를 받아 이산화탄소 농도를 측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전 지구적 이산화탄소 농도 측정 연구는 이후 킬링 곡선으로 거듭나서 지구온난화에 대한 경고장으로 작동하게 된다.

  킬링 곡선이 보여주는 것은 자명했다. 이산화탄소 농도는 1960년대 이후로 매년 계속해서 상승하고 있었다. 킬링 곡선이 보여주는 추이에 대해 문제라고 인식하는 과학자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기상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대한 그 어떤 연구보다도 킬링 곡선은 명확한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산화탄소는 온실가스고, 분명 이산화탄소가 증가하는 만큼 지구의 온도도 상승할 것이란 것이었다. 1960년대에는 환경문제에 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었는데, 지구온난화 역시 그 관심을 조금이나마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이는 전 지구적 기상학 연구 측면에서 부족한 관심이었고, 지구온난화를 대중과 정치인들에게 환기할 수 있는 수준도 아니었다. 케네디 대통령의 WMO에 대한 지원 역시 더 나은 기상예보, 궁극적으로 기상통제를 목표로 하는 국제 협력을 촉구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기상학 연구 방법은 계속해서 발전했다. 생물학이나 지질학, 화학 같은 다른 과학 분야의 발달로 과거의 꽃가루나 원시 동물의 사체, 토양의 퇴적 등 여러 요인을 분석하여 과거의 기상정보를 도출할 수 있게 되었다. 세계대전 이후로 꾸준히 발전한 컴퓨터는 대규모 지구물리 모델을 손쉽게 시뮬레이션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기상학 정보가 누적되고 다양한 모델이 생겨나면서 킬링 곡선의 예측이 단순한 일이 아닌 것이 점차 드러났다. 비로소 많은 과학자 집단에서 지구온난화에 대한 우려를 표하고, 이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점차 전쟁의 여파가 줄어들던 1970년대에 다른 여러 문제들과 함께 지구온난화도 다뤄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지구 온도 상승으로 인해 21세기의 기후변화가 발생한다는 것이 그저 미래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자각했다.

  1970년대부터 과학자들은 각종 저널과 매체를 통해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에 이르러서는 다양한 사회집단들도 과학자들의 온난화 주장에 관심을 가졌다. 지구온난화가 그저 지구적 순환의 일부이며 자연은 다시 평형상태를 되찾을 것이라는 낙관적 견해나 오히려 세계가 냉각되고 있다는 견해를 반박하는 많은 연구결과들이 쏟아졌다. 이산화탄소 외에도 온난화를 야기하는 여러 요소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황산염, 메탄 같은 화학물질부터 태양활동 변화 같은 천문적인 영향, 인간의 사용에 의해 발생한 에어로졸까지 작은 듯한 요소 하나하나가 온난화를 가속하고 있었다. 세계에서 수집된 기상 정보는 겉으로 보기에는 통일성 없었지만, 이는 변덕스럽게 꾸준히 지구의 온도가 상승하고 있는 경향을 띠고 있었다. 지구의 온도는 분명히 상승하고 있는 것이었다! 1980년대 후반에 가서는 많은 전문가들이 사람들을 필사적으로 설득하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결실의 일환으로 1987년에 몬트리올 의정서를 통해 전 세계 정부는 공식적으로 오존을 파괴하는 특정 화학물질들의 배출을 제한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것이 곧 온실기체 규제에 관한 궁극적인 협약은 아니었다. 오존의 파괴를 막는 것만으로 온난화를 대비할 수는 없었다. 이듬해 열린 토론토 회의에서 전문가들은 각 국 정부들이 온실기체 규제에 관한 엄격한 목표를 설정하라고 요구했다. 1980년대 말에 혹서와 가뭄으로 미국 여러 지역이 타격을 받자, 이것이 실제로 지구온난화의 영향이든 아니든 지구온난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높아졌다. 더불어서 1980년대는 기후연구에 관한 출판물이 급증하고 많은 워크숍과 회의가 열렸다. 대중의 관심이 과학자들의 관심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결국 1988년에 WMO와 여러 UN 환경기구들은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을 창설했고, 본격적으로 지구온난화를 비롯한 기후변화에 관심을 가지고 대처하기 시작했다.

  1992년에 리우에서 기후변화 협약에 150여개 국가가 서명했음에도, 1990년대는 지구온난화를 우려하는 자들과 이익집단의 대결이 계속되었다. 거대 에너지기업이나 일부 정부는 온실가스 규제 정책으로 자신들이 입을 피해를 고려하고, 온난화가 허황된 이야기라는 연구들을 대중에 소개했다. 반면 IPCC의 보고서는 수정이 될수록 지구온난화가 명확한 경향을 보이고 있음을 확신했다. 1997년에는 일부 개발도상국들은 면제를 받되, 선진 공업국들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규제할 것을 담은 내용의 교토 의정서가 발의되었다. 미국은 2001년에 교토 의정서에서 탈퇴했지만 다른 국가들의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지구온난화는 이제 하나의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았고 인류는 이를 공동의 노력으로 해결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여러 증거들이 지구온난화를 방지하기 위한 행동들이 궁극적으로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화석연료에 높은 세금을 물리어 화석연료 사용량을 낮추고 세수를 확보하는 것, 국가적 환경사업으로 국민의 건강과 복지를 증진하는 것, 그 외에도 많은 행동들이 실제로 미래에는 더 큰 이점이 되어 돌아올 수 있었다. 지구온난화를 예방하기 위한 공적규제들로, 한정된 자원을 남용했을 때 발생하는 공유지의 비극을 해소하고 공익을 지킬 수 있다는 인식이 사람들에게 확산되어 갔다.

  인류가 점진적으로 지구온난화 예방 대책을 수립한 것 자체가 일종의 패러다임이 전환하는 과정이었다. 이 패러다임은 지구의 자연이 불변하며, 변덕은 잠시일 뿐 다시 평형을 되찾는다는 생각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발달로 정립된 기후모델들과 기후변화에 관한 통시적 연구결과들은 자연이 불변하는 것이 아님을 입증했다. 심지어 자연은 아주 작은 요인에 의해서도 급진적으로 바뀔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기후변화에 관한 패러다임의 전환은 이전에 존재하던 과학혁명들과 확실하게 다른 점이 있었다. 종래의 과학혁명은 과학자 집단 안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과학이론이 설명하는 것과 이를 연구하는 연구자그룹은 확실한 방향성과 구분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지구온난화는 대부분의 경우 19세기 말부터 독립적인 기후연구들이 수렴하여 도출된 결론이었다. 당연히 각 연구결과에 대한 해석 방향도 가지각색이었다. 예전부터 일부 과학자들이 기후변화의 위험성을 경고했지만, 그저 일부 그룹의 한 가지 해석 방향으로만 받아들여졌었다. 지구온난화가 적극적으로 조명 받은 것은 단순히 과학자들의 노력뿐만 아니라 지구적 문제에 관한 대중의 인식 변화와 언론인, 정치인들의 관심이 있기에 가능했다. 전 지구적 사안을 다루는 과학이론은 일부에게만 해당하는 패러다임이 아니었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의 인식이 함께 바뀌어야했다. 비록 그 시작은 선진공업국들에 의해 주도된 것이긴 하지만 온실가스 규제 정책은 사회적 합의의 과정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었다. , 과학은 그만큼 민주적인 성격을 띨 수도 있다는 것을 지구온난화라는 사안은 보여주었다. 현재보다도 미래에 대한 기대, 그리고 전 인류적 노력으로 지구적 재앙을 극복할 수 있다는 과학적 낙관이 인간에게는 있었다. 지구온난화를 둘러싼 대논쟁들은, 인류가 국경을 초월하여 합의에 이르는 민주적이고 낙관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앞으로 어떤 지구적 재앙이 닥치더라도 인류가 통합하여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을 남겨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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