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듣고 말하는 호락호락 한국사 6 - 조선 시대 2 초등 한국사 토론왕 6
문원림 지음, 김규준 그림, 이익주 감수 / 뭉치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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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한국사 토론왕
보고 듣고 말하는 호락호락 한국사
6. 조선 시대 2

보고, 듣고, 말하고
또 보고, 또 듣고, 또 말하고
책을 보고 읽고 또 읽고
저자가 직접 들려주는 한국사 이야기
QR코드 수록! 이 되어 있어 책이 없어도
들을수 있어서 좋답니다.
토론방을 통해 토론을 하며 말하는 한국사 책

보이는 역사, 들리는 이야기
초등 학국사 토론왕


차례
또다시 전쟁이 일어난 병자호란, 정약용이 들려주는 영 정조 시대,
백성들이 즐긴 문화, 조선이 흔들리고 있고 19세기 이야기



1장 조선은 또다시 전쟁터가 되었어
청나라 침략
김영철이 들려주는 병자호란 이야기
여진족이 들불처럼 일어나 명나라를 무너뜨리고 우리 조선을 넘보던 때였어요.

임금은 더 큰 전쟁을 막기 위해 애를 썼지만 결국 임진왜란이 끝난지
40여 년밖에 안 되어 병자호란이 일어났어요.
광해구으 전쟁을 몸소 겪은 임금이라 그런지 나라의 힘을 키우려고 무척
애를 썼어요.
인조 임금은 신하가 입는 푸른색 옷을 걸친 임금은 아홉 계단 위에 앚은
청나라 태종에게 한 번 절할 때마다 세 번 머리를 조아리는 삼배구고두례
라는 항복 의식을 치러야 했죠.
그리고 항복을 받아낸 청나라군은 소현 세자와 봉림 대군, 비빈과 수많은

'대신들을 청나라로 글고 갔지요.
조선으로 돌아온 인조 임금은 소현세자를 그다지 반가워하지 않았어요.
청나라의 발전된 문물을 직접 보고 온 소현 세자는 청나라에서 배울 건
빨리 배워 조선도 잘사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기 했기 때문이었는데,
삼전도의 치욕만을 깊이 새기고 있던 임금은 그런 세자가 영 못마땅했지요.
봉림대군이 효종임금이 되어 북별 정책을 시도했지만 그 뜻을 펼치지 못하고
효종 임금이 돌아가시자마자 북벌 계획도 흐지부지 되고 말았죠.

 


2장 나라는 활기를 되찾았지
수원에 화성을 세운 정조, 거중기롤 발명한 정약용
영조와 정조 임금님의 뒤처진 제도를 개혁

정약용이 들려주는 영.정조 시대 이야기
화성을 지을 때 무거운 도을 들어 올리는 거중기를 만든 사람이 정약용
영조와 정조 임금 시대를 조선을 르네상스라고 한다죠.
대동법을 확대한 숙종
대동법이 시행되자 상공업도 발달하고 상평통보
우리 섬을 지킨 용감한 백성 안용복
우리가 왜구의 침략과 임진왜란으로 잠시 울릉도를 비워둔 적이 있었는데
일본인들의 횡포로부터 우리 백성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는데 이 틈을 타
울릉도와 독도를 제 땅인 양 드나드는 일본인들. 일본 땅에서도 안용복은

울동도는 조선땅이라고 당당히 외쳐 일본 조정의
화인서까지 받았는데, 일본인들은 여전히 울릉도와 독도를 넘보았고,
지금도 독도는 일본땅이라고 우기고 있죠.
백성을 사랑한 영조
영조 임금은 무척 소박하고 백성을 아끼는 분이었어요.
임금을 위해 백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백성을 위해 임금이 있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죠.
균역법을 실시해 백성들이 군대 안 가는 대신 일 년에 두필씩 내던 군포를
한 포씩 내도록 했어요.
청계천 공사를 해 홍수 문제를 해결하고 가난한 백성들도 구제하였어요.
탕평책 실시로 여러 당의 사람들을 고루 등용하는 정책으로 신하들의
권력 다틈을 막기 위한 정책이었죠.
개혁의 상징 정조
세종 임금이 집현전으로 인재를 키워 문화를 발전시켰듯이 정조 임금도
규장각을 만들어 젊은 인재들을 키웠어요.
또 규장각의 관리로 서얼을 등용하므로서 많은 사람들이 능력을 쏟아 낼 수
있었어요.
화성 건설
아버지인 사도 세자가 뒤주에 갇힐 떼 어린 세손이었던 정조 임금은 이렇게
울부짖었지... 아버지의 죽음을 그대로 지켜 볼 수밖에 없었으니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 그래서 임금은 이 나라 최고의 명당 수원 화산에 현륭원

이라는 능을 만들어 아버지를 모셧고 자주 그곳을 행차를 하시며 행사
중에 격정도 들으렸던 거지요.
처음 화성을 세우려 할 때는 10년이 걸릴 거라고도 예상 했는데 3년도 못
되서 완성. 또 정약용은 성을 설계하고 거중기와 녹로를 만들어 공사기간을
크게 줄이고 돈도 많이 절약되고, 도드래를 만들어 무거운 것을 들어 올리리는데

사용하여 화성을 짓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기구였어요.



4장 조선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었지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 봉기를 일으킨 백성들
전봉준이 들려주는 19세기 이야기
녹두 장군으로 불렸던 전봉준
1894년 그러니까 19세기가 저물어 가던 때 참고 또 참았던 백성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 갑오농민혁명이 일어났지요. 그 혁명을 이끌었던
사람이라 조정에선 도둑의 우두머리로 불렸지만 백성들에게만은
녹두 장군으로 불리며 아낌을 받았어요.
오래도록 벼슬을 하지 못한 몰락한 양반인 홍경래는 여러 번 낙방을
겪고서야 과거 제도가 얼마나 부패했는지, 지역 차별은 또 얼마나 심한지를

깨닫게 되었고, 여러 사람들을 끌어들여 10년 동안이나 봉기를 준비했지요
19세기 말에 일어났던 을미사변
1985년 일본인과 군인이 경복궁에 쳐들어가 왕비를 시해했지요.
일ㄹ본이 조정을 꼭두각시로 만들려고 하니까 그걸 왕비가 막으려다 벌어진

일이라 왕비는 왕권에 도전하는 것은 결코 용서하지 않았기 때문에
러시아의 힘을 빌려 일본의 간섭을 막으려 했고, 왕비를 일본 침략의 가장
큰 방해꾼으로 여겨 살해한 것입니다.
을미사변으로 단번에 조정을 장학한 일본은 조정을 친일 세력으로 채우며 개혁을

서둘렀고, 개혁중에 서양과 똑같은 복식을 갖춰야 한다는 단발령을 시행했죠.

상투는 우리 조선인들에겐 수천년 역사를 이어온 자긍심이었는데 말이죠.
대한제국
1년 가까이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던 임금이 드디어 돌아오고, 1897년 10월 12일 새벽

신하들을 거느리고 환구단에 올라 하늘과 땅의 신에게 제사 지내며 황제가 되었어요.
새 나라의 이름은 대한제국 연호는 광무라 했고, 근대적인 나라를 만들기 위해 공장, 회사,

은행을 만들면서 나라가 부강해야 외세를 물리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대한제국은 근대의 문물을 빨리 받아들이는 것이 근대화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했나봐요.

전차를 놓고 철도 길을 놓고 또 전신기와 전화 그리고
전등을 놓으며 근대화 문물로 인해 빠르게 발전해 나갔어요.조선의 백성들은 살기가 무척

힘들었어요.

새로운 시대에 맞춰 변화하지 못한 조선은 백성들의 강렬한 저항에 부딪히고 강대국들의

통상 요구에 힘없이 무릎 끓을 수밖에 없었죠.



이번 여름방학이 지나고 2학기가 되면 역사를 배우게 되는 딸입니다.
호락호락 토론방을 통해 토론은 이렇게 하는거다 라는 것도 배우며 알게
되었고, 딴지양과 그렇군의 블로그를 통해 나의 생각을 잘 정리하면서
댓글도 있어 타인의 생각도 들을 수 있어요.
한눈에 쏘옥! 코너는 앞의 내용을 잘 읽고 이해했는지를 정리를 통해
쏙쏙 알려 주고 있지요.
또 같은 시대의 세계는 어떤 사람들이 어떤 일들을 했으며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를 한 눈에 볼 수 있게 요약해 주어서 한국사 뿐만 아니라
세계사도 알려 주고 있어요.
이 책을 통해 우리나라의 역사를 어렵지 않게
배울 수 있게되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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