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하게 몸을 씻고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내방에 누우면 수많은 사람 중의 하나가 아니라 나 자신이 되는 기분이다.
이 세상에 내가 있구나. 나라는 사람이 숨을 쉬고있구나. 여러 모습으로 여러 마음으로 종일 말하고 움직이다가, 몸과 마음에 아무것도 없이 오로지 나인 채로, 나로 살아 있는 상태로 나 자신이 되고 내 세상이 되는 것. - P37
언니와 골목에서 헤어진 뒤에 문득 올려다본 하늘이 너무 아름다워 가만히 서서 바라보았다. 이럴 때면 지나간 불행이 줄어드는 것 같다. 골목에,
정류장에, 버스에, 길가에 수많은 사람이 어딘가를 향해 걷는 것, 지나친 횡단보도의 신호가 깜빡일 때 누군가 다급히 건너는 것. 그가 안전하게 인도에 도착했을 때 혼자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안도의 숨을 내쉬자마자 정작 내가 전봇대에 부딪히고 말았다. 지나간 것을 너무 오래 돌아보지 말자고, 보고 싶으면 봐도 되지만 너무 오래 보지는말자고 다짐하는 아침. - P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