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 아이 꿈꾸는돌 36
이희영 지음 / 돌베개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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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아이 #이회영 #돌베개


대학생 때, '섬'에 꽂혀서 여러 사람에게 여러번 이야기를 하고 다닌 적이 있다.

그 기억 중에서도 새벽, 우연히 기숙사 휴게실에서 만난, 지금까지 깊은 속내를 털어보지는 않고 반갑게 인사만 하던 한 친구와 나누었던 새벽의 차가운 공기, 그와 반대되게 따뜻했던 상대방의 눈길. 그 순간을 가끔 떠올린다.


이제는 그 '섬'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데 <소금아이>를 읽으며 아, 내가 그때 그랬지. 나도 참 비슷한 생각을 했었는데, 정말 신기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며 나는 과거를 회상했다.

 

사람은 하나하나의 섬이다. 섬 사이에는 바다가 있다. 섬과 육지 사이는 멀 수도, 가까울 수도 있다. 섬은 외롭지만 누군가가 쉴 수 있는 공간이 되어주기도 한다. 나는 섬으로서 단단히 그 자리에 있다가 누군가가 쉬거나 놀러오면 기꺼이 반겨주면 된다. 내 공간에서 충분한 쉼을 쉬었다면 다시 떠나겠지. 구태여 붙잡을 필요 없다. 섬에 머물렀던 시간이 좋았다면 또 찾아올 것이다. 관계가 그런 것 아니겠는가. 그러다 내 섬에 정착하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함께 지내면 될 일이다. 두 사람이 너무 꽈악 안아 붙어버리면 상대방의 얼굴을 볼 수 없어서, 어느정도 거리가 있어야 얼굴을 볼 수 있듯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거리가 있어야 한다. 있을 수밖에 없고. 거리가 있다고 서운해할 필요가 없다. 


관계에 연연하던 나는 다짐을 하듯 만나는 사람들과 이 이야기를 했다. 그리곤 언제든지 편하게 찾아와서 쉴 수 있는 섬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로부터 약 10년이 지났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었는가. 거리를 잘 유지하면서, 너무 외로워하지 않으면서 찾아오는 이를 반겨주며 쉬게 해주는가. 나는 다른 사람의 섬에 찾아가려 했는가. 배를 타거나 헤엄쳐 가서 상대방을 제대로 마주하려 했는가.


세상은 이수와 세아를 제대로 마주하려 했는가. 나는 우리 아이들을 제대로 마주하려 했는가.

넝쿨처럼 이리저리 얽히고설켜 사는 게 인간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어쩌면 사람들은 저마다의 섬에서 사는지도 몰랐다. 누군가 배를 타거나, 헤엄쳐서 가보지 않으면 결코 그 속을 알 수 없는 섬들....... - P146

바다보다 깊고 산보다 높으며 사막보다 메마른 곳, 그것이 인간의 심연이라고 이수는 생각했다. 한집에 살아도 결코 다다를 수 없는 할머니 마음속처럼....... - P151

때론 냄새보다 소란으로 더 허기질 수 있겠구나. 이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파도가 섬 귀퉁이를 깎아 내도, 모래가 되어 바닷속으로 가라앉을 뿐이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인간의 마음도 같지 않을까. 서서히 부서져 내릴 뿐 기억에서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다. 미풍에도 잔잔한 바다가 깨어나듯, 인간의 마음속에 침잠한 것들은 조금만 건드려도 쉽게 부유한다. 애써 외면했던 기억과 상처를 아프게 불러들인다. - P183

이수는 문득 인간을 떠올렸다. 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 이들을 아프게 하고, 다른 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 이들을 도울 수 있는지를....... - P192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쌓이거나 잊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어지러운 꿈의 한 조각처럼 가슴에 박혔다가, 생각지도 못한 모습으로 불쑥 되살아났다.

집도 외로움을 탄다 했다. 사람이 살지 않으면 고독해져 금방 허물어진다고. - P204

섬은 가장 밝고 화창할 때 사람들이 찾는다. 그러나 오래 머무는 이는 없다. 사람과 사람 사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잠시 만났다가도 머지않아 등을 보인다. 상대가 눈 덮인 추운 겨울을 지나고 있다면 더더욱 빨리.
하지만 때로는, 무채색인 겨울의 섬을 찾듯, 헐벗은 사람 곁에 머무는 이도 있었다. 이수가 주머니에 손을 넣어 반으로 접힌 편지를 쓰다듬었다. -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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