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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머 씨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장 자끄 상뻬 그림 / 열린책들 / 199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름을 알수 없는 '나'라는 어린 화자의 일상 중에-그의 성장 중에-좀머씨는 가까이 세번 등장한다. 첫번째는 날씨가 지독히도 나쁜 어느날 아버지와 경마장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부지런히 그의 하루-바쁘게 돌아다니기-를 보내고 있던 좀머씨를 만난것이다.
두번째는 '나'가 피아노를 배우고 돌아오던 어느날, 몸에 맞지 않는 자전거와 길을 가로막던 행인과 연주하기 어려운 푸가형식의 곡을 쓴 작곡가와 미스 풍켈 선생님의 꼬딱지가 놓여있어 올림바음을 칠 수 없었던, 무척이나 화가 났던 그날에 자살을 하기 위해 마을에서 제일 높은 나무위에 올라가 그 나무 밑에서 잠시 머물러 버터빵과 물을 꾸역꾸역 삼켜버리고 또 다시 바삐 걷던 좀머씨를 보게 된것이다.
세번째는 이웃 집에서 TV를 보고 저녁 식사를 위해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망가진 자전거를 고쳐 세우고 더러워진 손을 닦기 위해 호숫가로 가던 날에 한걸음 한걸음 호수 속으로 걸어들어가던 좀머씨를 본것. 그것이 마지막이었던 만남이 있었다.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는 무엇인가 더 있어야만 할 것 같은 허전함이 느껴졌고 그래서 책 곳곳의 삽화들을 다시 살펴보았다. 이 책의 내용과 삽화는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데, 거의 모든 삽화에는 배경처럼 부지런히 걷고 있는 기다란 지팡이를 잡은 좀머씨가 등장한다. 그러나 쓸쓸한 느낌의 마지막 삽화, 호숫가에 신문이 펼쳐져 있는 그림에는 이미 죽은 좀머씨는 등장하지 않는다.
이 책은 좀머씨보다 '나'인 화자의 이야기가 더 많이 나오고 어린 소년 시절을 떠올리게 하며 순수하고 재미있어 독자에게 감동을 주긴 하지만, 바쁘게 걸어다디던 좀머씨는 책을 읽는 동안 마치 이 책의 배경처럼 항상 느껴지며 지금도 내 주위 어딘가에서 이곳저곳으로 돌아다니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들게 만든다.
이해하기 쉽지 않지만 생각할 수록 마음에 많이 남는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