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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날씨를 바꾼다
서동욱 지음 / 김영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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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제주엔 비가 정말 자주 왔다. 비 오는 날을 좋아하지 않은 편인데다 특히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에는 산책하기도 여의치 않았다. 그러다 해가 반짝 뜬 날 깨달았다. 나 날씨 많이 타네. 그래서 서동욱 교수의 『철학은 날씨를 바꾼다』 라는 책이 눈에 띄었다. 한 폭의 인상주의 그림 같은 삽화도 한 몫 했지만! 책은 헤라클레이토스의 말로 시작한다. '당신은 폭우로부터 가뭄을 만들어낼 능력이 있는가? (8 p.)' 4부로 구성된 이 책은 시대와 장르를 넘나들며 '삶'이라는 키워드로 모든 것을 아우른다. 혼밥, 쓰레기와 같은 가까운 주제로부터 죽음이라는 낯선 종착지까지 독자를 사유의 세계로 이끈다. 개인적으로는 3부에 수록된 글들이 가장 좋았다. - '산책' 이라는 글은 말할 것도 없고 - 그 중 '바람과 허파의 철학' 이라는 글은 놀라웠다. 공기와 영혼, 숨과 사랑을 잇는 사유의 과정을 거쳐 그는 이렇게 썼다. '프네우마를 지닌 자, 숨쉬는 자는 홀로 있는 자일 수 없고 타자와 더불어 있는자다. (234 p.)' 어쩌면 이 문장이야말로 이 책을 관통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지난했던 팬데믹 시기를 돌아보며 뭉클함과 부끄러움, 안도감을 느꼈던 것 같다. 수록된 각 꼭지의 글은 짧지만 깊이가 있어 소화하는데는 꽤 오래 걸렸다. 인용된 책이 많아 연쇄 독서를 불러 일으키는 책이기도 했다. 책을 덮으니 무한도전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설원에서 웃통을 벗은 채 해맑게 긍정의 말을 외치던 노홍철씨. 어쩌면 뻔한 말이지만 저자도 그가 했던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 내 마음은 어둠 속에서도 햇살처럼 켜져야 하며, 가뭄 속에서도 그토록 좋아하는 빗소리가 울려 퍼지는 우산 아래의 원형 극장을 만들어야 한다. 진정 모든 변화는 생각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이다. ... 삶에 햇살을 찾아주는 것도, 가뭄 속에 간직된 비 향기를 기억해내는 것도 생각의 노력에서 시작한다. (9-10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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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컴퓨터의 미래 - 양자컴퓨터 혁명은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미치오 카쿠 지음, 박병철 옮김 / 김영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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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꼽은 2023년의 책은 미치오 카쿠의 『평행우주』 였다. #평행우주 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현재의 컴퓨터를 능가하는 양자컴퓨터를 만들려면 결맞음상태에 있는 원자가 1,000~100만 개까지 필요하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양자컴퓨터는 아직 먼 훗날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280-281 p.) 그러므로 그의 신간 『양자컴퓨터의 미래』 에 호기심이 생길 수 밖에. 2012년 존 프레스킬이라는 물리학자가 '양자 슈프리머시(Quantum Supremacy)' - 이 책의 원서명 - 라는 단어를 언급한 이후로 양자컴퓨터 완성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된 듯 하다. 그가 『평행우주』를 쓴 2005년으로부터 18년이 지난 지금, 그는 양자컴퓨터의 미래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 ... 양자컴퓨터는 디지털 컴퓨터를 무한히 긴 시간 동안 가동해도 절대 풀 수 없었던 문제까지 해결하는,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컴퓨터이다. ... 양자컴퓨터는 모든 가능한 경로를 '한꺼번에' 거의 빛의 속도로 분석할 수 있다. (12-13 p.)


그는 양자컴퓨터에 이르기까지의 역사, 개발 현황과 종류,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양자역학을 설명한 후 양자컴퓨터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썼다. 『평행우주』를 읽을 때도 느꼈지만 역시 그는 어려운 이론을 일반인도 이해할 수 있게 풀어내는데 천재적이다. 17장 「2050년의 일상」 에서는 이 모든 것이 실현되었을 때의 모습을 그린다. 핵융합로 가동에 성공해 청정에너지를 무한정 쓸 수 있는 시대, 최신 초음속 제트여객기 운항에 성공하는 시대, 알츠하이머 예방약이 출시되고, 양칫물을 통해 암진단이 되며 접종으로 치료가 되는 시대, 지구온난화를 저지할 수 있는 시대, 식량 문제가 사라지는 시대, 우주의 기원에 대한 해답을 얻는 시대, 달로 신혼여행을 갈 수 있는 시대. 이 모든 것은 양자컴퓨터로 그릴 수 있는 미래다. 양자역학이 물리학계의 정설로 인정받고 있다는 점, 양자역학이 '모든 가능한 상태'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그 모든 것이 허무맹랑해 보이지가 않는다. 그가 다른 평행우주를 향한 인류의 대탈출을 이야기할 때처럼 이번에도 그럴듯한 SF영화 한 편을 본 기분이었다. 나는 이번에도 『평행우주』 를 읽고 썼을 때와 같은 감상을 남긴다. 믿을 수 없이 요원한 일 같지만 참 다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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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들의 세상은 내가 사는 세상이다 - 세상 끝에서 경이로운 생명들을 만나 열린 나의 세계
나이라 데 그라시아 지음, 제효영 옮김 / 푸른숲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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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그 모든 것에 경의를 느끼는 한 마리 포유동물이 되어 조용히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150 p.)


나이라 데 그라시아는 기후 변화와 크릴 어업이 남극의 지표 생물인 물개와 펭귄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하는 현장 연구자였다. 이 책에는 그가 남극 리빙스턴섬의 시레프곳 기지에서 보낸 2016년 봄부터 다음 해 가을까지 5개월의 시간이 기록되어 있다. 펭귄이 둥지를 짓고, 알에서 새끼 펭귄이 부화하고 직접 먹이를 구하러 바다로 나서는 모습이 펼쳐진다. 그 과정에서 ' ... 겉은 보송보송한 털로 감싸인 풍선을 쥔 기분 (152 p.)' 이 들게 하는 새끼 펭귄을 만나기도 하지만 가혹한 자연의 섭리를 마주하기도 한다.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은 저자가 급한(!) 용변을 보는 도중 만난 펭귄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 ... 그때마다 펭귄 두어 마리가 이렇게 흥미로운 일은 처음이라는 듯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가까이 다가와서 내 엉덩이를 열심히 살폈다. 펭귄들이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싶으면서도 그 순간 내가 반발심을 느낀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지난 몇 달 동안 펭귄을 관찰하면서 생신 깊은 친밀감은 다 어디 가고, 그때만큼은 '제발 쳐다보지마!'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서로의 입장이 단수에 뒤집힌 순간이었다. (143 p.)


그는 처음에는 모든 펭귄이 다 똑같아 보였지만 (45 p.) 가까이에서 자세히 살펴보면 펭귄도 인간만큼 개성이 다양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76 p.)고 말했다. 각자의 개와 고양이를 떠올리면 바로 알 수 있듯 저자는 펭귄과 사랑에 빠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연구를 위해 해야만 했던 불가피한 처치나 의도치 않게 발생한 사고가 더 고통스러웠을 것 같았다.


✍️🏻 나는 펭귄을 지켜보는 그 시간을 사랑했다. (79 p.)


✍️🏻 ... 그래서 이런 일을 겪어도 견딜 수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내가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동물을 내 손으로 괴롭히고 있다는 죄책감을 떨칠 수 없었다. (206 p.)


한편 그는 '우리가 리빙스턴섬에 온 핵심 목적도 크릴이었다. (210 p.)' 고 썼다. 이 책에서 크릴 새우를 만나게 될 줄 몰랐는데, 몇 년 전 크릴새우 오메가3 열풍이 불었을 때가 떠올랐다. 그 때 뉴스에서 남획 문제를 보도하는 것을 보며 고래 먹게 놔두지, 했던 기억이 났다. 책을 읽고 나서야 그 작은 생물의 엄청난 존재감을 알았다. 녹은 눈 위에서 거대한 저인망 어선 두 대를 향해 중지를 치켜드는 그의 심정을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했다.


남극 동물들에 대해서는 몇몇 자연 다큐멘터리를 통해 접한 적이 있지만 한번도 앵글 밖의 인간에 대해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의식주와 그 안에서 해결해야 하는 일들의 고충을 읽으며 탄식했다. 누구보다 단단할 것 같은 이들이지만 그들이 심신을 보살피고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슬럼프를 이겨내는 모습을 보았다. 현장 연구자의 삶을 들여다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이 책을 더욱 흥미롭게 읽은 것 같다.


『펭귄들의 세상은 내가 사는 세상이다』 의 원제는 『The Last Cold Place』. 책을 다 읽고 보니 한국어판 제목은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이기도 하다. 왜 제목을 이것으로 선택했을까 생각했다. 그러다 이 책에서 던지는 여러가지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함축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펭귄들의 세상이 곧 지구이므로, 내가 사는 세상이기도 하다. 기후 변화와 크릴 어업에 대한 경고이자 남극과 펭귄이 미래에도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였다. 그리고 아마도 저자가 자기 자신에게 끊임없이 물어온 미래에 대한 질문에 대한 대답이기도 했을 것이다. 에필로그에 등장하는 턱끈펭귄의 유영 장면이 보고 싶어졌다. 오래 오래 볼 수 있다면 더 좋겠다.


✍️🏻 파도 속에서 그렇게 펭귄이 보고 느끼는 세상을 함께 보고 느낄 때, 익숙한 경이로움이 밀려오던 순간을 기억한다. 펭귄들의 세상은 내가 사는 세상이다. (371 p.)


여담: 가장 반가웠던 이야기에 대하여 - ' ... 펭귄 식생활 연구는 동물 실험 윤리위원회가 펭귄에게서 표본을 얻는 방식이 지나치게 침습적이므로 더 이상 허용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렸다. (365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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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생에 바람을 초대하려면 - 세계적 지성이 들려주는 모험과 발견의 철학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이세진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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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 브뤼크네르는 팬데믹 시기를 지나며 떠오른 열다섯 가지 모티프를 여러 문학작품과 철학자의 말과 엮었다. 이 책의 원제는 『Le sacre des pantoufles』 인데, 구글 번역기에 따르면 : 『슬리퍼의 대관식』 이다. 막스 프리슈의 '군홧발 소리보다 무서운 것이 실내화의 침묵이다.' 라는 글귀로 시작하는 이 책은 현대사회, 특히 팬데믹 이후 심화된 현대인의 무기력증에 경종을 울린다. 가장 먼저 소개되는 이반 곤차로프의 소설 속 주인공 '오블로모프'의 모습은 몇년 전 우리의 모습이기도 했다. > 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은 긴 의자 겸 침상이고, 가장 자주 입는 옷은 잠옷, 거의 항상 신고 있는 신발은 "길고 흐늘흐늘한 실내화"다. (13 p.) > 인류학적으로 새로운 인간상이 나타났다. 웅크리고 있지만 고도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외부 세계도 타인들도 필요로 하지 않는 인간상이다. 현대 기술은 개방을 표방하면서도 실상은 감금 상태를 장려한다. (51 p.) 그는 슬리퍼, 즉 실내화에 대해 여러 번 다룬다. 그러고보니 실내화를 벗지 않는다는 것은 곧 내 방에만 머무르겠다는 것이다. 어쩌다 잠옷을 입고 외출을 할 수는 있어도 실내화를 신고 밖으로 나갈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블레즈 파스칼이 '일간의 모든 불행은 자기 방에 가만히 있을 수 없음에서 비롯된다.'는 말에 '앞으로는 인간이 모든 불행이 자기 방을 떠나려 하지 않는 데서 비롯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39 p.) 그러면서 루틴과 집이 주는 안정성과 그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규칙적'이고 '한결같은' 일상을 벗어나서 '쓸데없는 일이 중요하고 여행은 필수'이니 집 밖으로 나서라고 독려한다. >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현명함이 아니라 가벼운 광기요, 영적인 치료제가 아니라 짜릿한 도취다. (79 p.) 실제로 나는 이따금 들리는 지인들의 재감염 소식을 듣거나, 제주공항에서 마스크를 쓴 사람들을 볼 때를 제외하면 그 전대미문의 바이러스를 잊고 사는 것 같다. 파스칼 브뤼크네르는 바이러스는 잠깐 사라졌다가도 끊임없이 되돌아올 테니, 이후의 세상은 실내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34 p.) 그의 이 말은 우한폐렴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명명되지 얼마 되지 않았을 적 불안해하며 장거리 출퇴근을 하고 누구와도 함께 점심을 먹지 않았던 나를 상기시켰다. 팬데믹 기간 동안 나는 페소아의 『불안의 책』을 읽으며 부분 부분 발췌해 두었는데 홀로, 혼자, 자신, 타인 등 외로움에 대한 글귀가 대부분이었다. 그 때의 나는 아마도 나 자신에게 이 고립도 나쁘지 않다고, 최면을 걸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 책이 팬데믹과 관련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 책이 조금 더 일찍 출간되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다가, 이내 바로 어제 물영아리오름에 오르며 숨이 가빴던 때와 내 숨이 가득한 마스크 없이 처음 산책하던 날을 기억해냈다. > 행복은 적어도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창을 활짝 열어젖히고 싶은 확장의 행복, 반대로 창을 걸어 잠그고 평온을 누리는 수축의 행복이다. 비록 후자의 평온이 전자의 시각에서는 단조로움과 획일성에 지나지 않겠지만 말이다. 전자는 광활한 세상에서 경이를 발견하고 후자는 집이라는 소우주에 만족한다. ... 탐험의 정신과 칩거의 정신이 지금처럼 치열하게 대립한 적은 일찍이 없었다. (231-232 p.) 비록 나는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되뇌이며 자주 무력감과 허무함을 느끼는 편이고 바로 오늘 아침 '지난 주 보다 한 시간 반이나 스마트폰을 사용했다'는 경고를 받았지만, 볕이 좋았던 오늘 오후 나는 얼굴에 선크림을 두껍게 바르고 밖으로 나갔다. 제주답지 않은 잔잔한 바람이 불었던 오후였다. 카페 바깥 자리에 앉아 조금의 안도와 함께 책을 덮으며 앞표지를 바라보았다. 망망대해에 떠 있는 돛단배 한 척. 잔잔한 바다에 일렁이는 윤슬. 파란 하늘에 떠 있는 뭉게구름. 평화로운 풍경이다. 하지만 구름의 바닥은 짙고 평평하다. 무거운 비를 이내 쏟아버릴 작정인 것 같다. 작은 배는 저 멀리 신기루 같은 육지에 닿아야 한다. 아마 보이지 않는 이 배의 선장은 돛을 밀어줄 바람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인플루엔셜에서 도서를 제공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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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에게
최현우 지음, 이윤희 그림 / 창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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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코코에게 #최현우 글 #이윤희 그림 #창비 #창비주니어 2023


흰 눈이 펑펑 쏟아지던 어느 겨울날, '나'는 어두운 지하주차장에 버려진 작은 강아지를 집으로 데려와 '코코'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 날 '나'는 내가 두르고 있던 빨간 목도리를 풀어 코코를 감싸안고 눈속을 달렸었다. 이제는 코코가 내가 주었던 온기를 반짝임으로, 즐거운 냄새로, 다정함과 사랑으로 돌려준다. 그리고 '나'를 빛으로 이끈다. 내가 코코를 어둠에서 안아 올렸던 것처럼.


최현우 시인의 시 「코코, 하고 불렀습니다」에 또 다른 '코코'의 반려인 이윤희 작가의 그림이 더해진 소중한 그림책을 선물 받았다. 최현우 시인의 글과 이윤희 작가의 그림에는 두 코코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이 진하게 뭍어났다.


시인과 똑닮은 주인공과 커가는 코코가 그려진 작지 않은 판형의 책을 펄럭이며 넘길 때마다 그림책 특유의 냄새가 났다. 익숙한 냄새는 옛 추억을 되살리기도 한다. 그래서 일까. 빨간 하네스를 한 코코, 빨간 목도리를 덮고 있는 코코, 달리는 코코, 냄새 맡는 코코, 잔디에 앉은 코코에 자꾸만 소중한 추억들이 겹쳐졌다.


특히 흩날리는 벚꽃잎 아래의 코코를 보며, 지난 4월 벚꽃을 보여주러 하나를 담요에 감싸 안고 다녀왔던 우리의 마지막 외출이 떠올라 손끝이 저릿해지고 목이 아파왔다. 결국 다음 날엔 선글라스를 쓰고 출근했다.


만약 내가 그림책을 만든다면 모든 페이지에 이런 그림을 그리고 싶다. 중문을 열고 집에 들어갈 때마다 보았던 장면. 가장 따뜻한 거실 한가운데 나의 보라색 꽃무늬 요가 두텁게 깔려있다. 그 위엔 시쭈가 덮어주었던 보라색 무릎담요에서 빠져나와 또아리를 틀고 자고 있고, 하나는 시쭈에게 기대어 졸고 있다. 나는 살금살금 다가가 촉촉하고 새카만 코 앞에 손가락을 대보고 안도한다. 무릎담요를 다시 덮어주며 나는 또 말하겠지. "너무 조용히 자면 언니 놀래"


거실에 그저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그 존재만으로도 한없이 충만했던 시간을 그리며 내 마음과 같은 이야기를 만난 것에 큰 위로가 되는 그림책이었다. 이름은 같지만 다른 강아지 두 코코. 『코코에게』라는 책이 나에게와 『시쭈·하나에게』로 닿았듯, '작고 기쁜 영혼과 심장을 포개본' 모든 사람들과 함께 읽고 웃다 울고 싶다.


"코코야" 부르니 빨간 목도리를 웃는 입에 물고 달려오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긴 호흡으로 다시 한번 시을 읽고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나도 그리운 이름을 나긋이 불러보았다. 나는 이제 강아지 없는 사람이지만, '사랑을 가르쳐 준 나의 개' 시쭈와 하나는 영원히 내 가슴 속에 살아있다. 진부하지만, 정말 그렇다. 많이 보고싶다.


*창비에서 도서를 제공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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