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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의 마음
김금희 지음 / 창비 / 2018년 6월
평점 :
마음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만나서 하는 말보다,
글로 하는 말이 늘어나고 나서부터는 더 그렇다. 번거롭겠지만 카카오톡 대신 문자로 꼬박꼬박
연락해주는 마음, 좋은 게 있으면 같이 보고 싶은 마음, 줘도
줘도 아깝지 않은 마음, 나도 힘들지만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 조금
더 자고 싶지만 일어나야 하는 마음, 할 수 있을까와 할 수 있다 사이의 마음 같은 것. 그 무수한 마음을 오래 생각하고는 한다.
마음은
늘 말보다 빠르다. 미처 누군가에게 닿지 못하고 삼켜지는 마음은 또 얼마나 많은가. 재작년 이맘때쯤에 많이 듣던 '안녕하신가영'의 '좋아하는 마음'이란
노래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좋아한다는 말보다 좋아하는 마음 먼저, 생각한다는 말보다 네가 먼저 생각이 나.> 맞아 맞아 마음은
그런 거지, 하고 손뼉을 쳤던 2016년의 봄이 있었다.
좋아한다는 말보다 좋아하는 마음 먼저 / 안녕하신가영 - 좋아하는 마음
아니, 마음은 늘 나보다도 빠르다. 아무리 열심히 달려도 마음을 따라잡지는
못할 텐데, 나는 자주 이 사실을 잊고 달린다. 그러다 지쳐
앉아 엉엉 우는 날도 있고, 앞서 달려가는 마음의 뒷모습을 한참 보고 나서야 그게 어떤 마음인지 알게
되는 날도 있다. 귀를 막고 노력해도 마음을 폐기하는 건 불가능하다.
애초에 잡을 수 없으니 원망도 소용이 없다.
아무 준비도 안 돼 있는 맘에 넌 자꾸 커져 그럼 난 떨쳐버리려고 머리를 자꾸 흔들어대 / 프롬(Fromm) - 마음셔틀금지
사랑에
빠진 마음은 더 빠르다. 이 사람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붙잡고 늘어지는 마음이나, 비참해지고 싶지 않아서 먼저 놔버리는 마음, 당장 보고 싶어서 달려가는
마음은 또 얼마나 나를 앞서는지. 기다리고 싶지 않은데 기다리는 마음과 너무 좋아서 창문을 열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마음도 그렇다. 어디서 퐁퐁 생겨난 건지 모를 마음들을 껴안고 살아가는 건 어쩐지 산뜻하고
외로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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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랑은 같은 기차에 탔다는 이유만으로 시작되었다. 혹은 어려서
운동회날 달리기에서 둘 다 꼴등으로 들어왔다는 이유로, 첫눈을 함께 봤다는 이유로, 부모에게 학대받은 기억이 똑같이 있다는 이유로 혹은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했다는, 같은 밴드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상대의 낡은 점퍼나 코트를 유심히
보게 됐다는 이유로, 지나치게 추워 보였다는 혹은 더워 보였다는 이유로, 식당에서 땀 흘리며 무언가를 열심히 먹었다는 이유로, 돌아서서 지하철역까지
느릿느릿 걸었다는 이유로.
그렇게 사랑이 시작하는 과정은 우연하고 유형의 한계가 없고 불가해했는데, 그것이
사라지는 과정에는 아주 정확하고 구체적인 알리바이가 그려지는 것이 슬펐다.
<경애의 마음, 김금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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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쯤 전에 출간 전인 김금희 작가의 <경애의 마음>을
미리 읽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열흘에 걸쳐 경애가 경애의 마음을 마주하는 걸 지켜보았다. 다른 사람들 속에 섞여, '그렇게 있으면 어떤 마음들은 아예 없었던
것처럼 생각되기도 했으니까, 안전했다.' 고 생각하던 경애가 '아무 사건 없이 쿨하게 살자 싶지만 안 되잖아요. 망하는 줄 알면서
선택하고, 책임지기 위해서라도 기꺼이 부서지고. 상대를 괴물로
만들고 죄를 뒤집어씌워봤자 뭐해요?' 라고 반문하다가, '한때는
나도 선배가 필요했는지도 모르겠어. 그러니까 그 오랜 마음을 그만둘 용기가 필요했는지 모르겠어. 하지만 선배가 너무 좋아서 불행히도 그러지 못했고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되었던 것이겠지.' 하고 씩씩하게 돌아서는 경애를 봤다. 마음을 폐기하지도 외면하지도
않고 '요즘 저는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주체인 나 자신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합니다. 그 시간에 대한 의미가 타인에 의해서 판결되는 것이야말로 내 자신에게 가혹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라고 말하는 경애를 봤다. 그러다가도 '서로가 서로를 채 인식하지 못했지만 돌아보니 어디엔가 분명히 있었던 어떤 마음에 관한 이야기' 를 듣는 경애를 천천히 봤다.
누군가를
생각하는 마음과 나를 생각하는 마음. 그걸 생각하는 내내 떠오른 또 다른 무한한 마음에 갇혀 질식할
것 같았다. 가끔은 너무 숨 막혀서 눈을 딱 감아버릴까 싶다가도, 상수가
그랬던 것처럼 '그런 사람이고 싶지 않고 오늘이 있으면 당연히 내일이 있고 내일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고 해결이 되든 되지 않든 마음을 쓰다가 하루를 닫는 사람이고 싶' 어서 꾹 참았다. 나의 마음을 외면하지 않으면서 누군가의 마음을 생각하게 된 경애를 자주 떠올렸다. 그러다 알게 된 마음도 있고, 오히려 영영 모르게 되어버린 마음도
있다. 어느 쪽이든 반갑고 힘겨웠다.
여전히 말하지 못한 내 속마음과 그대와 돌아가는 이 시곗바늘 어쩌면 / 참깨와
솜사탕(Chamsom) - 속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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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에 여자는 역 계단에서 구걸을 하고 있었다. E는 경애와 함께 그 앞을 지나면서 마치 중요한 비밀을 가르쳐주듯이
"아이가 있어"라고 말했다. 과연
옆을 보니 작은 이불을 덮고 있는 아이의 발이 보였다. 경애는 그 발이 지하도의 찬 기운 속에 불쑥
나와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려서 지나가는 말로 불행하네,라고 했는데,
E가 문득 경애의 팔을 잡으면서 니가 뭔데,라고 했다. 니가
뭔데 그렇게 말해, 라고.
<경애의 마음, 김금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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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확실하게 다짐한 건 마음을 넘겨짚지 말 것. 그게 나의 마음이든,
남의 마음이든 간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