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귀와 입 그리고 코
곽흥렬 지음 / 맑은샘(김양수)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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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 귀와 입 그리고 코

곽흥렬

수필

일정한 형식을 따르지 않고 가볍게는 일상적인

느낌이나 체험을 생각나는 대로,

자유롭게 쓰는 산문 형식의 문학

수필 오랜만에 읽어보는 터라 다소 대면 대면한 감정으로 곽흥렬 작가님의 여섯 번째 수필집‘눈과 귀와 입 그리고 코를 마주하였습니다.

파스텔 톤의 여린 보라색 바탕 위에 붓으로 투박하게 쓰윽 쓰윽 그린‘눈과 귀와 입 그리고 코’는 마치 출퇴근 길에 항상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보는 얼굴들 같아요.

매일 보는 얼굴들이지만 타인의 관심사는 상관없다는 듯 무심하게 스치듯 지나가며 본인의 갈 길을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 아닌가 싶네요.

우리와 동떨어지는 느낌을 주는 사람들이 아닌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 말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책 표지의 글과 그림이 수필이라는 단어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랑표 장갑

몇 해 전부터, 벙어리장갑이 언어장애인에 대한 비하의 의미가 담겼다고 하여 순화된 말로 부르자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그들에 의해 생겨난 것이 '손모아장갑'이니 '엄지장갑'이니 하는 이름들이다. '주머니장갑'으로 바꾸자는 주장도 나왔다.

그런 어색하고 억지스러운 이름들 대신 나는 '사랑표장갑'으로 고쳐 부르고 싶다. 우선 생긴 모양부터가 손가락 사랑 표시를 닮아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 장갑 속에는 동생을 향한 누나의 도타운 사랑이 담뿍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33쪽, 34쪽


*마음이 허해 올 때면

가을이 깊어 간다. 계절성인가, 해마다 이맘때만 되면 무언가 말로는 풀어낼 수 없는 상실감으로 마음에 허기가 진다.

아! 그러고 보니 이맘때쯤이면 으레 갖게 되는 그 상실감이란, 그동안 잃고만 흘러간 날들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것이었음을 깨닫는다.

오늘날의 스피드에 밀려나 버린 아날로그적인 불편함, 그 불편해서 오히려 정겨웠던 그때가 목마르게 그리워진다.

35쪽, 38쪽

*삶의 모순, 그 앞에서 길을 묻다

안락함이란, 마약보다도 중독성이 강해서 거기다 한 번 맛을 들였다 하면 끊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것은 암컷에게 몸을 뜯어먹혀 참혹한 죽음을 맞으면서도 쾌락의 황홀경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수컷 사마귀의 성애性愛처럼 매혹적인 것이기에.

그 반대급부로 망각의 그림자가 머릿속을 하얗게 지워 놓는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하듯, 지난날의 그 불편해서 오히려 애틋했던 일들은 쉬이 잊게 만든다.

그러면서 마치 예전부터 유한계층이나 되었던 것인 양 착각에 빠져 거들먹거리게 함을 가르친다.

76쪽


*불쏘시게

삶과 죽음의 경계는 종이 한 장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던가. 어쩌다 가슴 저미는 사연으로 몸부림치게 될 때, 사람들은 곧잘 이 이야기를 입에 올리며 위로받고 싶어 한다. 생과 사가 한순간에 엇갈리는 일이 세상살이에서 늘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기 때문이어서 일 게다. 벽난로에 불을 지피면서 그 말의 심오한 의미를 돈오頓悟하듯 깨친다.

88쪽 ~ 89쪽

큰돈을 아낌없이 주면서도 때로는 당장의 환심조차 얻지 못하는 수가

있는가 하면, 그리 대단찮은 은혜를 베풀었음에도

상대방이 평생토록 잊지 못하고 고맙게 여기는 수도 있다.

그러기에 남한테 도움의 손길을 내밀 경우에는

때와 처지를 잘 헤아려서 베풀어야 하는 것이다.

채근담 92쪽

3부 팔방미인과 반풍수



*짧은 글 긴 생각 2

고질병

무슨 일이든 시작하면 마치고 싶고, 마치면 또 시작하고 싶어지는 것이 사람의 진득하지 못한 마음인가 보다. 집 안에 틀어박혀 있으면 좀이 쑤셔서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고 막상 떠나 있어 보면 이내 집이 그리워짐도, 누군가를 만나면 금세 헤어지고 싶고 헤어지면 곧바로 다시 만나고 싶어짐도, 그렇다면 혹여 이 같은 인간 존재의 타고난 속성 때문이려나.

아니, 이건 어쩌면 쉽사리 고치기 힘든 고질병일지도 모르겠다.

그 언제쯤에나 죽 끓듯 하는 이 변덕으로부터 놓여날 수 있을는지...

123쪽


*짧은 글 긴 생각 4

우문현답

"부처님, 깊은 밤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어 괴로울 적에는 어떻게 해야 하옵니까?"

"답답하고 미련스러운 중생아, 머지않아 영원한 잠에 들게 될 것이거늘 미리부터 무슨 걱정이 그리도 많더란 말이냐."

어리석은 질문에 명쾌한 대답이 떨어지는 순간, 긴긴 나날을 고통 속에서 찾아 헤맨 숙제가 비로소 풀리는 듯싶어 뒤죽박죽이던 머릿속이 씻은 듯이 맑아 온다.

아! 이 지극히 간명하면서도 절대 불변하는 진리를 왜 진즉에 깨닫지 못했을까.

129쪽

*가르치는 선생, 가리키는 스승

'가르치다'가 지시하고 명령하는 행위라면 '가리키다'는 안내하고 권유하는 행위일 터이다. 곧, 전자가 타율에 기반을 두고 있는 데 비해 후자는 자율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나 할까. 이것이 자율과 타율의 결정적인 차이다. 그러기에 가르치는 것보다는 가리키는 것이 분명히 고차원이고 고품격임에 틀림없다.

가르치는 일이 선생의 상相이라면 가리키는 일은 스승의 상像이다. 지식의 단순한 전달자가 선생인 데 반해 인생의 친절한 안내자가 스승인가 한다. 가르친다는 행위에는 그 안에 상하관계가 깔려 있고, 가리킨다는 행위에는 그 속에 수평관계가 흐르고 있음에서이다.

186쪽 ~ 187쪽


*나의 무기는

사람은 누구 없이 가슴속에다 제 나름의 무기를 품고 산다. 이 무기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것은 복이 되기도 하고, 거꾸로 화가 되기도 한다. 특히나 가진 것이 많고 권력이 세고 지위가 높은 이들이 끼칠 수 있는 무기의 위력은 한층 크고 무겁다. 그러기에 그런 영향력을 지닌 사람일수록 행동 거지에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함은 너무나 자명한 조리이리라. 우리가 항용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는 까닭도 여기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191쪽


4부 죽어야 끝이 나는 병

*한순간을 못 참아서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한 솔로몬 왕의 명언을 떠올린다. 한시를 참으면 백날이 편하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아무리 불같이 끓어오르는 심사일지라도, 그 순간만 슬기롭게 넘기면 힘겨운 일은 지나가고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게 마련이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참을성이라는 '마음근육 키우기' 훈련이 절실히 요청되는 시점에 와 있다.





<눈과 귀와 입 그리고 코> 마치며

우리 얼굴의 4대 명소입니다.

두 눈으로 봄날 아침 새롭게 피어나는 파릇파릇한 새싹을 보고,

꼬불꼬불 두 귀로 부모님의 사랑과 젊음의 사랑 노래를 듣고,

모든 것을 삼킬 것 같은 앙다문 입으로 달고 쓴 세상을 맛봅니다.

그리고

보고, 듣고, 맛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올바른 사람의 냄새를 맡죠.

곽흥렬 작가의 6번째 수필집 <눈과 귀와 입 그리고 코>는

인생을 살아가며 느끼는 진솔한 풍경을 아름다운 수필로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에요.

먼 곳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나의 이야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나온 나의 이야기로 추억을 되새겨 보고,

현재 나의 이야기로 현실을 직시하며 ,

미래의 나의 이야기로 깨달음을 얻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서 작성한 글입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단다

It's not too l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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