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룡소의 그림동화 246
이수지 지음 / 비룡소 / 201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첫눈 내린 마당에 뛰어나가 재빨리 발자국을 찍는 아이의 마음'

 

이 책 『선』은 글이 없다. 오롯이 그림만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하얀 종이에 연필로 선을 그린다. 꾸밈과 채색은 엄격하게 제한된다. 선의 흐름과 하얀 여백 만이 남는다. 그래서 독자는 익숙하지 않고 불편하다. 어떤 사건의 흐름이나 전개를 기대했다가, 결국 모든 것이 독자에게 맡겨진 것을 깨닫게 된다.

 

작가는 모든 이야기가 선 하나에서 시작된다고 한다.

'내가 만드는 궤적을 따라가는 두근거림...그림 그리기의 즐거움을 이 책에 담아봅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불편한 것이 아니라 어색한 것이다. 작가의 간결한 선의 표현은 이야기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이 책은 독자의 적극적인 참여를 촉구한다. 절제된 표현과 남은 여백을 독자의 상상력으로 채우라고 말한다.

 

「한겨울 어린 시절, 집 앞 조그만 연못이 꽁꽁 얼어 빙판이 되었습니다. 가장 먼저 일어나 맨 처음 밟아 보는 얼음의 느낌...사각사각...내가 지나간 곳이 궤적이 되어 나를 따라 춤을 춥니다.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리듬에 맞추어 내가 그리는 빙판의 선들이 아름다운 선율이 되어 울려 퍼집니다. 주체할 수 없는 희열과 즐거움으로 나의 움직임은 절정에 이르고 마침내 나는 얼음 위를 힘차게 뛰어 오릅니다. 정상을 지나 찰나의 멈춤 그리고 착지하는 순간, 중심을 잃고 그만 미끄러져 버렸습니다. 잠시 정적이 흐릅니다. 주위는 아직도 고요합니다. 혼자임을 깨닫고 훅훅 털고 천천히 일어나려는 순간, 어디서 왔는지 옆집 아이가 내 앞으로 미끄러집니다. 우당탕~. "여기도 저기도 친구들이 모두 나왔네!" 동네 친구들 모두가 얼음 위를 달리기 시작합니다. 주위가 떠들썩해집니다. 우리는 서로를 보고 웃으며 삼삼오오 뭉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하나가 되어 빙판 위 즐거운 추억의 궤적을 만들어 갑니다.」

 

누구나 어린 시절의 소중한 꿈과 추억이 있다. 저자는 빙판과 종이 사이를 선으로 자유롭게 오가며 그림 그리기의 즐거움을 담는 동시에 독자들의 꿈과 추억을 소환한다. 누구나 이 책의 주인공이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고 추억을 되새기며 상상할 수 있다.

 

이 책을 서른 번 정도 찬찬히 바라보고 읽어보고 곱씹어 보는 동안, 저자가 진정으로 독자에게 전해주고 싶은 것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할 수 있었다. 작가의 어린 시절이 투영된 이 책을 통해 경험을 공유하고 추억을 회상하며 자신 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를 기대해 본다.

 

선문답(禪問答)처럼 가볍지 않고 묵직하며 몰입감과 에너지가 넘치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