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서 帛書 - 125년 만에 도착한 편지
이상훈 지음 / 책마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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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 편지 한 통이 걸어온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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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의 신작 장편소설 『백서 — 125년 만에 도착한 편지』는 제목부터 예사롭지 않다. '백서(帛書)'는 비단에 쓴 글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1801년 신유박해 당시 스물여덟 청년 황사영이 충청도 배론의 토굴 속에서 목숨을 걸고 써 내려간 편지, 이른바 '황사영 백서'를 가리킨다. 가로세로 한 뼘 남짓한 비단 위에 한자 1만 3천여 자를 육안으로는 거의 식별할 수 없을 만큼 작은 글씨로 눌러쓴 이 편지는, 조선 천주교 박해의 참상을 북경교구를 거쳐 로마 교황에게 알리고 도움을 청하려 한 절박한 시도였다. 그러나 편지는 압송 도중 발각되었고, 작성자는 대역죄인으로 능지처참에 처해졌다. 그 편지가 실제로 교황의 손에 가 닿기까지는 소설의 부제가 말해 주듯 무려 125년의 세월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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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이 역사적 사실을 뼈대로 삼아, 조선 후기 천주교 수용사의 첫 장면부터 백서가 마침내 로마에 전달되는 순간까지를 하나의 서사로 엮어 낸다. KBS·SBS·채널A를 거치며 방송 현장에서 다져진 극적 구성력에, 『한복 입은 남자』, 『김의 나라』(제16회 류주현문학상 수상), 『제명공주』 등을 통해 쌓아 온 역사소설가로서의 감각이 더해진 결과물이다. 특히 이 작품은 2027년 서울에서 열릴 세계청년대회를 앞두고 서울대교구의 교회 인가를 받아 출간되었다는 점에서, 하나의 문학적 기획을 넘어 신앙 공동체의 시대적 요청에 응답하려는 뚜렷한 목적의식을 지닌 텍스트로 읽어야 온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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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중 서사구조 — 순례자의 걸음과 순교자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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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구조적 특징은 두 개의 시간대가 교차한다는 데 있다. 하나는 1784년 이승훈의 영세로부터 1839년 기해박해, 그리고 1925년 백서의 로마 전달에 이르는 역사적 시간이며, 다른 하나는 황사영의 7대손뻘 후손으로 설정된 현대 인물 '진복'과 그의 벗인 '박 신부'가 명례방(현재의 명동)에서 마재, 배론성지, 천진암성지, 새남터, 제주와 추자도에 이르는 유적지를 순례하며 나누는 현재의 대화이다. 목차만 훑어보아도 「사랑이 싹트다」, 「조선천주교의 씨앗을 뿌린 이벽」, 「명례방 사건」, 「1801년 신유박해」, 「배론성지」, 「125년 만에 전달된 편지, 황사영 백서」로 이어지는 구성이 확인되는데, 이는 연대기를 충실히 좇으면서도 각 국면마다 하나의 독립된 단편처럼 완결된 장면을 배치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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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중 구조는 단순한 형식적 장치에 그치지 않는다.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황사영 백서의 미스터리를 찾아 발로 뛰었다"고 고백하는데, 소설 속 진복의 순례는 바로 그 취재 과정의 극화라 할 수 있다. 독자는 진복과 박 신부를 따라 실제로 존재하는 성지를 밟으며 과거의 사건 속으로 걸어 들어가게 되고, 그 결과 역사소설이 흔히 빠지기 쉬운 박제된 재현의 위험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이 순례의 서사가 단지 정보 전달의 통로에 머물지 않고, 결말부에 이르러 신앙과 죽음, 순교의 의미를 둘러싼 실존적 질문을 던지는 장으로 발전한다는 점이다. 이 부분은 뒤에서 다시 짚는다.​

3. 인물론 — 침묵당한 자들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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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중심에는 황사영이 있다. 정약용의 맏형 정약현의 사위이자 정약종의 제자였던 그는, 소설 속에서 총명하지만 미천한 신분을 자각하는 청년으로 처음 등장해, 정약용 형제들과의 인연을 거쳐 신앙의 길로 접어든다.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그는 천주교에서도 대접받지 못하고 우리 역사에서도 버림받은 존재가 되었다"고 적으며, 조선 조정에게는 외세를 끌어들이려 한 역적으로, 후대 교회사 서술에서도 온전히 순교자로 대접받지 못했던 황사영의 이중으로 소외된 위치를 정면으로 문제 삼는다. 소설은 그를 영웅으로 미화하기보다, 벼랑 끝에 몰린 한 인간이 마지막으로 선택할 수 있었던 절박한 호소로서 백서를 재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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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소설에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는 인물은 황사영이 아니라 그의 아내 정명련(세례명 마리아, 훗날 정난주로 알려짐)이다. 관노로 제주에 유배되던 중 수청을 강요받자 정절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던 장면, 그리고 두 살배기 아들 황경한을 추자도 언덕에 남겨 두고 떠나야 했던 장면은 이 소설에서 가장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가장 강렬한 대목이다. 아이의 저고리에 부모의 이름을 적어 두고 떠나는 어머니, 그 아이를 거두어 기른 오씨 부부, 그리고 이 인연으로 지금도 추자도에서는 오씨와 황씨가 서로 혼인하지 않는다는 후일담에 이르기까지, 작가는 거대한 순교사 서술 속에 파묻히기 쉬운 여성과 아이의 고통을 놓치지 않고 붙잡아 둔다. 추자도 해안에 세워진 '눈물의 십자가'를 진복과 박 신부가 말없이 바라보는 장면은 이 소설이 도달한 가장 성숙한 순간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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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도 소설은 조선 천주교 초기사의 굵직한 이름들을 성실히 불러낸다. 천진암에서 서학을 강학하던 이벽, 조선 최초의 영세자 이승훈, 신앙 때문에 형제를 잃으면서도 스스로는 살아남아 유배지에서 학문에 몰두하다 1836년 세상을 떠난 정약용, 목자로서의 소명 앞에 신자의 대속을 거절하는 주문모 신부와 대신 죽음을 자청하는 최인길, 그리고 아버지 정약종의 순교 이후 황사영의 뜻을 이어받아 조선 최초의 신학생이 되고 끝내 1839년 기해박해로 순교하여 1984년 성인품에 오르는 정하상까지, 소설은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저마다의 짧은 장을 할애함으로써 조선 천주교 수용사를 한 개인의 일화가 아니라 여러 세대에 걸친 집단적 서사로 그려 낸다.

“슬프고 답답한 가운데 누가 저희를 불쌍히 여기며 위로해 주겠습니까.”

— 황사영 백서 원문 중에서, 작가의 말에 인용​

4. 문체와 서술 전략 — 다큐멘터리적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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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문체는 극화된 대화체 장면과 실증적 서술이 교대로 등장하는 방식을 취한다. 등장인물들의 대화는 방송 드라마 대본을 오래 써 온 작가의 이력을 짐작하게 할 만큼 명료하고 속도감이 있으며, 특히 위기의 순간—주문모 신부와 최인길의 대화, 정명련이 목숨을 끊으려는 순간의 독백—에서는 감정의 밀도를 효과적으로 끌어올린다. 반면 각 사건의 배경을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다산 정약용의 「녹암 권철신 묘지명」과 같은 원사료를 직접 인용하고 각주를 붙이는 등, 역사서에 가까운 실증적 태도를 취한다. 표지 추천사가 이 작품을 두고 "기적의 스토리를 실증적으로 풀어낸 고뇌의 역작"이라 평한 것은 이러한 이중적 문체 전략을 정확히 짚은 표현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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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현재 시점의 순례 서사가 실재하는 성지—마재, 배론, 천진암, 새남터, 제주, 추자도—를 구체적인 지명과 주소까지 밝혀 가며 답사하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이 소설은 단순한 허구적 이야기를 넘어 일종의 신앙 답사기, 순례 안내서의 기능까지 겸하게 된다. 이는 2027년 세계청년대회를 계기로 한국을 찾을 해외 청년들과 국내 독자들에게 실제로 걸을 수 있는 순례길을 안내하려는 의도로 읽히며, 소설이라는 장르가 신앙 교육과 관광 콘텐츠의 영역까지 확장되는 흥미로운 사례를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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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주제의식 — "오늘 우리는 목숨을 걸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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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결말부, 황사영의 무덤 앞에서 진복과 박 신부가 나누는 대화는 이 작품이 단순한 순교사 재현을 넘어서는 지점을 보여 준다. 진복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그리스도교 인구가 천오백만 명에 이르지만, 만약 조선시대와 같은 박해가 다시 일어난다면 그중 몇 사람이나 황사영처럼 목숨을 내놓을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박 신부 역시 오천칠백여 명에 이르는 한국 가톨릭 사제 가운데 오늘 당장 순교를 요구받는다면 응할 이가 몇이나 되겠느냐고 자문하며, 신학생 지원자가 격감하는 현실을 함께 짚는다. 이 대화는 인공지능과 화성 이주 계획이 거론되는 최첨단 과학의 시대에, 신앙이 관습과 장식으로 얄팍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묻는 불편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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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이 값진 이유는, 작가가 이 질문에 손쉬운 답을 내려 주지 않는다는 데 있다. 소설은 순교자들의 헌신을 예찬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헌신을 마주한 오늘의 우리가 얼마나 무기력한 신자인지를 함께 드러낸다. 이는 신앙을 가진 독자에게는 뼈아픈 성찰의 계기가 되고, 신앙이 없는 독자에게도 신념을 위해 무엇을 걸 수 있는가라는 보편적인 질문으로 확장될 수 있다. 작가가 「작가의 말」에서 밝힌 대로 2027년 세계청년대회의 표어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가 이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정신적 좌표로 기능하는 것도 이 지점에서 뚜렷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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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작가 세계 속에서의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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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의 기존 대표작 『한복 입은 남자』가 장영실의 실종이라는 역사적 공백을 레오나르도 다빈치와의 만남이라는 대담한 상상으로 메운 대체역사물에 가까웠다면, 『백서』는 그와 결이 다르다. 이 작품은 교회의 공식 인가를 받고 대주교의 추천사를 앞세운, 사료에 훨씬 긴밀히 밀착한 다큐드라마적 성격의 소설이다. 허구적 상상력의 비중이 줄어든 대신, 실제 순교자들의 삶과 죽음을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복원하려는 태도가 전면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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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변화는 작가 자신이 「작가의 말」에서 밝힌 개인적 배경—아흔다섯의 어머니가 평생 성당에 다니고 여동생이 수녀가 된 신앙 환경—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즉 『백서』는 작가의 다양한 역사소설 스펙트럼 가운데서도 개인적 신념이 가장 직접적으로 투영된, 일종의 헌정에 가까운 작업으로 자리매김한다.​

7. 아쉬운 지점들 — 균형 잡힌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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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러한 성격은 문학적 미덕과 동시에 한계도 함께 지닌다. 첫째, 40여 년에 걸친 방대한 시간과 수십 명에 이르는 역사적 인물을 다루다 보니, 조선 후기 천주교사에 사전 지식이 없는 독자에게는 인물들의 관계망—정약용 삼형제와 황사영, 정하상, 이벽, 이승훈 사이의 혼맥과 사제 관계—을 따라가는 일 자체가 만만치 않은 과제로 다가올 수 있다. 계보도나 인물 소개가 별도로 제공되었다면 일반 독자의 진입 장벽을 상당히 낮출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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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진복과 박 신부의 대화 가운데 상당수는 극화된 장면이라기보다 신앙 교리에 대한 에세이나 강론에 가까운 어조를 띤다. 이 대화들이 담고 있는 물음 자체는 앞서 언급했듯 값지지만, 서술이 다소 길게 이어지는 구간에서는 인물의 목소리가 작가의 육성과 구분되지 않는 순간들도 눈에 띈다. 소설적 긴장보다 메시지 전달이 우선시되는 이러한 대목은, 이미 신앙을 공유하는 독자에게는 깊은 공감을 자아내겠지만, 그렇지 않은 독자에게는 다소 설교적으로 읽힐 여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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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교회 인가와 여러 성직자·평신도 단체장의 추천사를 전면에 내세운 이 책의 출간 방식은, 이 작품을 순수 문예물보다는 신앙 교육적 성격이 짙은 헌정 문학으로 자리매김하게 만든다. 이는 2027년 세계청년대회라는 시의성을 고려하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기획이지만, 문학적 완성도만을 기준으로 이 작품에 접근하는 독자라면 이 점을 미리 감안하고 읽는 편이 온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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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나가며 — 개인적 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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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자로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장면은 화려한 순교 장면이 아니라, 추자도 언덕에 아이를 내려놓고 떠나야 했던 한 어머니의 뒷모습이었다. 거대한 역사와 신앙의 서사 속에서도 작가가 이 개인적이고 사소해 보이는 이별의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 소설을 단순한 순교사의 요약이 아니라 한 편의 소설로 살아 있게 만드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덤 앞에서 "우리는 과연 목숨을 걸 수 있는가"라고 자문하는 결말부의 대화는, 종교적 배경과 무관하게 오늘을 사는 모든 독자에게 던지는 정직한 질문으로 오래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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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서 — 125년 만에 도착한 편지』는 한국 천주교 수용사의 결정적 순간들을 성실하게 복원하는 동시에, 그 역사를 오늘의 신앙과 삶의 태도에 대한 질문으로 되돌려 놓는 데 성공한 작품이다.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를 앞두고 한국 천주교회사의 뿌리를 되짚어 보려는 독자에게, 그리고 신념을 위해 무엇을 걸 수 있는가를 스스로 물어보고 싶은 모든 독자에게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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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총평 요약

평가 항목

코멘트

서사 구성

현재의 순례와 과거의 순교사를 교차시키는 이중 구조가 안정적으로 설계되어 있음

인물 조형

황사영보다 정명련·황경한 등 주변 인물의 형상화에서 정서적 밀도가 두드러짐

문체

극화된 대화와 실증적 각주가 교대하는 다큐드라마적 문체

주제의식

순교의 예찬에 머물지 않고 오늘의 신앙 태도를 되묻는 결말이 인상적

아쉬운 점

방대한 인물 관계망, 부분적으로 교리적·설교적인 대화 어조

추천 대상

한국 천주교사에 관심 있는 독자, 2027년 세계청년대회 관련 독자, 신념과 헌신의 의미를 성찰하고자 하는 일반 독자

부록 — 작품 속 주요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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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다루는 역사적 사건을 연대순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연도

사건

1777년

이벽 등 젊은 선비들, 천진암에서 서학 강학회 개최

1784년

이승훈, 북경에서 조선인 최초로 영세 / 정약용·정약전 형제 세례

1785년

명례방(현 명동) 김범우의 집 적발, 최초의 조직적 박해 시작

1791년

진산사건 발생, 신해박해로 확산

1795년

주문모 신부 밀입국, 최인길 등 신자들의 헌신적 보호

1801년

신유박해 발발 / 정약종·주문모 신부 순교 / 황사영, 배론 토굴에서 백서 작성 / 체포 후 능지처참

1801년 이후

정명련(정난주), 관노로 제주 유배 / 아들 황경한을 추자도에 남김

1839년

기해박해, 정하상 바오로·앵베르 주교·모방·샤스탕 신부 순교

1836년

정약용, 마재에서 선종

1925년

교황 비오 11세, 79위 시복식 거행 — 황사영 백서, 로마에 전달된 이후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방한하여 정하상 바오로 등 103위 시성식 거행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 개최 예정 — 소설이 조명하는 순교의 역사와 맞닿는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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