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문체와 서술 전략 — 다큐멘터리적 상상력
이 소설의 문체는 극화된 대화체 장면과 실증적 서술이 교대로 등장하는 방식을 취한다. 등장인물들의 대화는 방송 드라마 대본을 오래 써 온 작가의 이력을 짐작하게 할 만큼 명료하고 속도감이 있으며, 특히 위기의 순간—주문모 신부와 최인길의 대화, 정명련이 목숨을 끊으려는 순간의 독백—에서는 감정의 밀도를 효과적으로 끌어올린다. 반면 각 사건의 배경을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다산 정약용의 「녹암 권철신 묘지명」과 같은 원사료를 직접 인용하고 각주를 붙이는 등, 역사서에 가까운 실증적 태도를 취한다. 표지 추천사가 이 작품을 두고 "기적의 스토리를 실증적으로 풀어낸 고뇌의 역작"이라 평한 것은 이러한 이중적 문체 전략을 정확히 짚은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현재 시점의 순례 서사가 실재하는 성지—마재, 배론, 천진암, 새남터, 제주, 추자도—를 구체적인 지명과 주소까지 밝혀 가며 답사하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이 소설은 단순한 허구적 이야기를 넘어 일종의 신앙 답사기, 순례 안내서의 기능까지 겸하게 된다. 이는 2027년 세계청년대회를 계기로 한국을 찾을 해외 청년들과 국내 독자들에게 실제로 걸을 수 있는 순례길을 안내하려는 의도로 읽히며, 소설이라는 장르가 신앙 교육과 관광 콘텐츠의 영역까지 확장되는 흥미로운 사례를 보여 준다.
5. 주제의식 — "오늘 우리는 목숨을 걸 수 있는가"
소설의 결말부, 황사영의 무덤 앞에서 진복과 박 신부가 나누는 대화는 이 작품이 단순한 순교사 재현을 넘어서는 지점을 보여 준다. 진복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그리스도교 인구가 천오백만 명에 이르지만, 만약 조선시대와 같은 박해가 다시 일어난다면 그중 몇 사람이나 황사영처럼 목숨을 내놓을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박 신부 역시 오천칠백여 명에 이르는 한국 가톨릭 사제 가운데 오늘 당장 순교를 요구받는다면 응할 이가 몇이나 되겠느냐고 자문하며, 신학생 지원자가 격감하는 현실을 함께 짚는다. 이 대화는 인공지능과 화성 이주 계획이 거론되는 최첨단 과학의 시대에, 신앙이 관습과 장식으로 얄팍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묻는 불편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이 장면이 값진 이유는, 작가가 이 질문에 손쉬운 답을 내려 주지 않는다는 데 있다. 소설은 순교자들의 헌신을 예찬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헌신을 마주한 오늘의 우리가 얼마나 무기력한 신자인지를 함께 드러낸다. 이는 신앙을 가진 독자에게는 뼈아픈 성찰의 계기가 되고, 신앙이 없는 독자에게도 신념을 위해 무엇을 걸 수 있는가라는 보편적인 질문으로 확장될 수 있다. 작가가 「작가의 말」에서 밝힌 대로 2027년 세계청년대회의 표어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가 이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정신적 좌표로 기능하는 것도 이 지점에서 뚜렷해진다.
6. 작가 세계 속에서의 위치
이상훈의 기존 대표작 『한복 입은 남자』가 장영실의 실종이라는 역사적 공백을 레오나르도 다빈치와의 만남이라는 대담한 상상으로 메운 대체역사물에 가까웠다면, 『백서』는 그와 결이 다르다. 이 작품은 교회의 공식 인가를 받고 대주교의 추천사를 앞세운, 사료에 훨씬 긴밀히 밀착한 다큐드라마적 성격의 소설이다. 허구적 상상력의 비중이 줄어든 대신, 실제 순교자들의 삶과 죽음을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복원하려는 태도가 전면에 나선다.
이러한 변화는 작가 자신이 「작가의 말」에서 밝힌 개인적 배경—아흔다섯의 어머니가 평생 성당에 다니고 여동생이 수녀가 된 신앙 환경—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즉 『백서』는 작가의 다양한 역사소설 스펙트럼 가운데서도 개인적 신념이 가장 직접적으로 투영된, 일종의 헌정에 가까운 작업으로 자리매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