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___세, 이제 돈 생각뿐이다.

몇 년 전에 구매한 책이었나? 부록으로 이런 문구가 적힌 스티커를 받아서 다이어리 맨 뒷장에 붙여둔 기억이 난다. 그사이 이래저래 다사다난한 시간을 보냈고, 바야흐로 나는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에 (거의) 완벽히 적응했다. 그리고 돈 이상의 무언가를 얻고 싶다면 우선 돈이라는 관문을 제대로 지나야 한다는 게 내가 이해하고 납득한 요즘 시대 자본주의라는 결론을 내렸다.

유튜브에서 "부자가 되는 방법" 같은 영상을 보다 보면 자주 접하는 키워드가 하나 있다. Reticular Activating System, 줄여서 RAS. 이 단어를 아는 나도 아직 번역어를 외우지 못했으므로 번역을 하는 대신 개념만 설명하겠다. 좀 이상하지만 RAS를 다루는 거의 모든 영상에서 예시로 '파란색 혼다 자동차'를 가져오는데, 나는 《실직도시》를 읽었으니 예시를 '검은색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자동차'로 바꿔 보겠다(GM에서 제조하는 자동차). 요지는 이렇다. 내가 한번 이 자동차를 마음에 두면 이 자동차에 관한 지각력이 눈에 띄게 발달한다는 거다. 길에서 이 자동차가 지나가면 바로 알아채고, 심지어 이 자동차는 흔하디 흔한 검은색인데도 바로 발견한다는 건 꽤나 세심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튼 이렇게 계속 염원하고 끌어당기면 곧 내 것이 된다는 게 요즘식 자기계발(?)의 주요 마인드세팅이라고 할 수 있다.

유튜브 영상 보기 외에도, 요즘은 자고 있을 때도 돈이 돈을 벌어다 주는 시스템, 파이프라인을 구축하려는 노력을 꾸준히 하고 있다. 이런 내가 가장 멀리하는 것이라면 안정적인 직장(정규직), 나의 물리적 거점(고향) 등이 있겠는데, 《실직도시》는 딱 이런 가치를 품에 간직하고 살아가는 옛 GM 노동자들을 취재한, 어딘지 르포라기 보다는 감성 에세이라고 부르고 싶은 기록이다.

나는 운전면허도 없고 자동차라고는 쥐뿔도 몰라서 GM이 뭐하는 회사인지도 잘 몰랐고, 어릴 적 내가 국사시험 성적을 포기하고(?) 본방사수를 택한 〈파리의 연인〉 속에서 남자 주인공이 사장으로 나오는 대기업의 PPL로 쓰인 회사였다는 것 정도만 알았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때 GM이 대우를 인수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라 다들 GM대우라고 불렀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다. 하나 재미있는 것은, 《실직도시》를 읽은 영향인지 최근에 케이블 채널에서 〈파리의 연인〉 재방송을 해 주길래 어제오늘 옛 추억을 떠올리며 열심히 보았다. RAS 덕분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여러 이야기와 사람들에 공감해 보려 애썼지만, 앞서 말했듯 나는 자본주의로의 먼길을 이미 떠난 상태여서인지 솔직히 잘 되지 않았다. 한국 여자들에게 삶은 어떻게 해서든 도시로 탈출하고 특히 옛 것을 경계하는 길이어야 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내가 로맨틱한 시선으로 〈파리의 연인〉을 보는 게 가능했던 어린 시절부터 막연히 몸으로 느낀 깨달음이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나는 《실직도시》 속 사람들을 응원할 처지가 못 된다. 우리는 각자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고, 결국 다른 길을 가야 하는 사람들이니까.

정말 냉정하게는 변화를 외면하지 말고 받아들여야 그다음 길을 모색할 수 있다는 어쭙잖은 말 한마디를 건네고 싶기도 하다. 나는 주구장창 돈 안 되는 일만 염원하는 삶을 살아 와서인지 오히려 방안의 코끼리처럼 우뚝 서서 나를 괴롭히던 변화와 자본을 직시하고 나니 그걸 내가 원하는 삶으로 가는 수단이자 기회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군산을 비롯해 서울 외 지역(나도 수도권이기는 해도 서울 사람은 아닌데) 거주민들이 우선은 현재의 상황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결과가 아니라, 그동안의 여러 작용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일시적 상태로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 서울 같은 '슈퍼스타' 도시가 있는 나라에 산다는 건 어쩌면 우리에게 또 다른 기회일 수 있으니까. 한국의 모든 지역이 마냥 서울 같지 않듯이, 전 세계에서도 모든 나라가 꼭 하나씩 이런 '슈퍼스타' 도시를 갖고 있는 건 아니다. 그런데 그 무작위 추첨 같은 기회가 내가 사는 나라까지 와 주었다는 건 분명히 기회라고 볼 수 있다. 왜 우리 지역은 서울 같지 않느냐며 불만을 품을 일이 아니라. 애초에 균등한 개발이라는 건 가능하지 않다. 인간 자체가, 우리 모두의 삶이 지극히도 제멋대로이기 때문에. 이 사실을 이해하고 나면 세상에서 추앙받는 가치와 이해할 수 없는 사회의 흐름 같은 것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고 모두가 현재 높은 가치를 갖는 일을 하고, 사람들이 몰리는 곳으로 무조건 가라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니다. 상상만 해도 악몽이기는 하지만, 여러 가지 의미로 일단 가능하지도 않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 역시도 그 흐름을 따르지 않고 내 맘대로 할 자유를 찾으려고 현재의 상태를 '일단' 받아들이기로 결정했으니, 이 흐름을 무작정 받아들이거나 혹은 무작정 배척하려 하기 전에, 다들 "왜?"라는 의문을 한번 던져 보면 좋겠다.

군산에 가 본 적이 없어서 풍경을 상상하기가 조금 어려웠다. 나는 직장 생활을 하느라 청주에서 1년 반 남짓 살기는 했는데, 아마 군산과 청주도 비슷하다면 비슷하면서도 퍽 다른 풍경을 가진 도시일 것이다. 그리고 내가 가장 오래 거점을 두고 살고 있는 인천과 군산을 비교해도 마찬가지겠지. 같은 듯 다른 듯, 우리가 사는 도시의 풍경은 우리 인간을 꼭 닮았다. 그래서 같은 듯하다가도 다르고, 다른 듯하다가도 어쩐지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고 그렇다. 거기에 대단히 큰 의미를 부여할 것도, 낯잡아 무시할 것도 아니다. 이 책이 전하는 이야기처럼.

우리가 이 순간을 충실히 살아가려면 무엇보다도 누군가에게 배경으로 비치는 일을 꾸준히 경계해야 한다. 오랜만에 〈파리의 연인〉을 보면서 느낀 감상이 그거였다. 주인공 태영의 삶에는 행복과 고난이 복잡하게 뒤엉켜 있지만, 카메라는 제작 의도에 따라 원하는 일부를 뽑아내 관객의 감정을 장악하고 주도한다. 태영은 무턱대고 열심히 살려고 애쓰지만 그럴수록 사고 치는 삼촌과 끊임없이 자신을 곤경에 빠뜨리는 부자 동창 등 고난은 차곡차곡 쌓인다. 왜냐면 남자 주인공이 자신을 구원하러 올 때까지 그 상태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게 이 드라마가 전하는 가치이자 제작 의도라는 생각을 새삼 해 본다.

이런 허구의 이야기와 달리, 우리는 원하면 남들의 배경이 되는 것을 거부하고 틀에 박힌 시나리오에서 벗어나 내가 원하고 직접 주도하는 삶을 살 수 있다. 그리고 군산에 살아 숨쉬는 변화의 가능성을 아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분명한 희망이 지표다. 물론 군산의 가장 아름다운 희망은 '이성당'이 아닐까 하지만(반농반진).

요 몇 년간, 돈 생각에 빠져서 곰곰이 인간은 뭐 하러 사는가? 하는 문제를 심도 깊게 고민해 본 일이 있었다. 내가 내린 결론은, 우리는 '추억 팔이'하기 위해서 계속 살아간다는 거였다. 왜냐고? 그게 재미있으니까. 다만 이 재미있는 추억 팔이를 감성 한 스푼 넣은 패배주의와 섞어 마셔서는 곤란하다. 이런 유독한 습관은 우리의 삶에 더 재미있는 추억이 쌓이는 걸 적극적으로 막으니까.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를 통해 배운 영어 표현이 생각났다. "We are dinosaurs.(우리는 공룡이다)" 멸종된 공룡에 존재를 빚댄 이 대사는 무척 아름답지만 패배감에 젖은 세피아 빛을 띠고 있다. 공룡은 이미 멸종했지만, 현재 진행형인 우리의 삶에 일찍이 멸종을 고하는 건 시간 낭비다. 우리는 시간을 귀중히 여기고 아껴야 한다. 그러려고 돈을 버는 거고, 그래야 더 재미있게 지나온 삶을 추억 팔이할 수 있다.

우리가 더 재미있는 추억을 쌓기 위해서라도 군산은 살아 숨쉬는 도시로 거듭나야 한다. 그리고 이왕이면 그 기반이 제조업과 공장이 되었으면 한다. 이 도시에서 사람들이 추억을 쌓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한 산업이니까(군산을 잘 모르긴 해도, 이 책을 읽자하니 이렇게 말해도 좋을 것 같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군산에 들러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독서를 마치게 되는 걸 보면 《실직도시》는 감성 여행 에세이였던 모양이다. 그리고 역사의 거대한 줄기를 이루는 기록은 하나 빠짐 없이 모두 이런 시시콜콜하고 개인적인 이야기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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