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엔가 친구에게 잠시 주식을 배웠다(고 하기도 민망하게 아주 잠깐이었지만). 갓 배운 어휘를 남발하게 되는 것처럼 처음으로 주식을 진지하게 마주하니 삶의 모든 게 주식 차트의 그래프처럼 느껴져서 신기한 기분이었다.

누구든 돈이 많았으면 하고 바란다. 바꿔 말하면, 돈이 없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바라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인데, 이 마음을 잘 들여다 보면 사실 "돈이 많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소망에는 이렇다 할 의미값이 없다. 내게는 이게 "내 안의 막연한 불안을 줄이고 싶다"는 말처럼 혹은, "이 세계에서 혼자 도태되고 싶지 않다"는 말처럼 들린다. 일단 나는 내 안의 소리를 그렇게 해석했다.

경제/경영서 다수에 등장하는 문장 중에 "부자가 되고 싶다면 부자가 되기로 결심부터 하라."는 말이 있다. 친구와 몇 번 오프라인, 온라인으로 만나 주식 공부를 하면서 깨달은 바가 하나 있었다. 그저 막연하게 남을 흉내내 쫓고 쫓기듯이 돈과의 경주를 벌이면 안 되겠다는 거였다. 그래서 일단 그 레인을 벗어나려 주식 공부를 그만뒀다. 나는 원래 어릴 적부터 뭣도 모르고 무작정 내달리는 일이라면 소질도 의지도 없었다.

그러고는 몇 달 간 '돈' 즉, 내 안의 불안과 마주했다. 그게 지금 당장의 1차원적인 불안이었다면, 이 책 《지혜롭게 투자한다는 것》은 독자가 좀 더 다차원적인 불안을 또렷이 응시하도록 돕는다. 크리스마스 이브, 과거-현재-미래의 망령이 스크루지의 방을 찾은 것처럼, 나 역시도 은퇴 이후 언젠가의 시점까지 다녀오느라 그 여운에 아직 좀 아득한 멀미에 시달리는 중이다.

앞서 삶의 모든 게 주식 차트처럼 보였다는 말을 바꿔 보면, "주식 역시도 삶"이라는 말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머리 아프게 고민해 보았다. 당연하지만 일독으로 단번에 풀리지 않을 고민이므로 앞으로 충분히 시간을 더 들여 거듭 읽으며 골머리를 앓아야 할 듯 싶다. 다만 하나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이게 가장 빠른 방법이라는 점이다.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저축과 투자가 빠를수록 좋듯, 현재의 노골적인 참상을 들여다 보는 일 역시 빠를수록 좋다. 그리고 가장 빠른 때란 바로 오늘, 지금 당장이다. 당신이 17살이든, 29살이든, 41세든, 63세든, 언제든. 영문법에는 후회 섞인 Shulda/Woulda/Coulda 용법 따위가 존재할지 몰라도 인간의 삶에는, 적어도 불안과 대면하고 저축과 투자 계획을 세울 때는, 이런 가정이 하등 쓸모가 없다. 도리어 방해만 될 뿐.

이 책 프롤로그에서 말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늘 특별한 핵심을 곧장 알기를 바란다. 특별한 삶을 살 수 있는 특별한 방법, 특별한 부를 이룰 특별한 비법, 특별한 영어 구사력을 키울 특별한 학습법 등. 현재의 문제를 "알지 못함"에서 찾는 것이다. 그리고 이게 정답이자 정보값 자체가 금값이던 시절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찌 됐건 지금은 많은 게 달라졌다. 알자고 들면 아주 조금의 품을 팔아 원하는 정보와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정보의 품질을 판별하는 건 또 다른 문제이기는 하지만). 인터넷으로 뭐든 배울 수 있다는 얘기를 사람들이 육성으로 하던 2천년대 초반에는 이를 그다지 체감하지 못 했다면, 지금은 당연한 전제가 되어 오히려 간과하게 되는 기분이 든다.

《지혜롭게 투자한다는 것》은 마음을 닫고 읽으면 그저 시시한 줄글로 느껴질 만큼 평범한 진리를 정연하게 담고 있다. 우리는 줄곧 평범함을 특별함의 반대말로 취급해 왔지만, 마음을 열고 찬찬히 들여다 보면 책 속의 마법처럼 비밀 메시지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평범하다는 건 누구나 이룰 수 있음을 뜻한다. 그러니 지금이야말로 이 책을 핑계로 그저 부자가 되기를 결심해야 하는 순간인 것이다.

"지금이 가장 빠르다"는 진리 외에도, 이 책에서 꼬집는 인간의 삶과 꼭 닮은 투자 대원칙이 하나 더 있다. 바로 "과거의 실적은 미래의 나침반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인간 문명이 만일 삶의 유형 습득과 도구의 발달을 기반으로 선형적으로 진화할 수 있었다면 이 세계는 지금의 모습과는 퍽 다른 풍경이었을지 모른다. 허나 지금으로부터 약 백 년 전, 1918년부터 2월부터 1920년 4월까지 2년간의 스페인 독감 팬데믹을 이미 지나왔음에도 2020년대의 인류는 여전히 바이러스의 혼란 속에서 맥을 못 추고 있다. 그리고 나는 여기에서 섣부른 교훈 하나를 짚고자 한다. 인간이 가장 효과적으로 배우고 익힐 수 있는 대상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삶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과거 인간사를 그대로 습득할만큼 남의 삶에 달리 관심이 없다. '남의 염병이 내 고뿔만 못하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크리스마스의 망령이 다녀간 동화 속에서 스크루지는 대번에 큰 깨달음을 얻고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난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은퇴의 망령이 다녀간 후 나는 2시간 전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고 있다. 다만 하나 말할 수 있는 건, 이 책을 읽은 나는 그대로지만, 이후 내 삶을 달라지게 할 삶의 방향성은 분명히 변화했다.

다시 말하지만 책 한 권 읽어서 당장 대단히 달라질 거였다면 이 세계는 지금과 같은 모습은 아니었을 게 분명하다. 핵심을 짧고 간결하게 줄일수록 많은 전제가 생략되고, 생략되는 순간부터 빠르게 잊힌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식을 실천하는 일의 중요성"을 말하는 동안 지식 자체의 중요성은 생략되어 잊힌다. 그렇게 생략된 수많은 전제를 다시 이어 붙이다 보면 평범한 진리가 되고, 다수 독자들이 흥미를 잃어 독서를 중단한다.

《지혜롭게 투자한다는 것》을 읽는 과정은, 그 자체로 마음을 열고 평범한 진리를 받아들이는 삶의 태도와 닮았다. 그래서 우리는 이 책을 통해 투자의 원칙과 함께 삶의 대원칙을 배운다. "어떻게 투자해야 하는가?"하는 물음은 우리에게 반드시 선행하는 물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던진다. 그리고 양쪽 물음 모두에 답하는 과정을 통해 인간의 삶은 차차 앞으로 달려간다. 그 여정표에 일찍이 "부자"라는 정거장을 세워뒀다면 꾸준히 나아가는 한 반드시 그 팻말을 만나게 될 것이다.

지나치게 친절한 타인은 한두 번 의심해 볼 법하지만, 지나치게 친절한 책은 달리 손해볼 게 없다면 그 친절을 감사한 마음으로 냉큼 받아도 괜찮다. 내 경험에 따르면 대체로 그런 책들은, 어떤 대단한 식견과 통찰을 내놔도 무덤덤한 독자들에게 방심한 저자들의 작품일 때가 많은 탓이다. 이 책 역시 그렇다.

게다가 미국인 공동 저자의 책을 번역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국내 사정과 비교해 성실한 감수를 거치고 해제를 달았으니 나보다 실행력이 높은 독자라면 훨씬 더 많은 수확을 거둘 수 있다. 내 경험상으로는 목차를 훑어봤을 때 대강 책의 맥락과 논조를 짐작할 수 있는 학습 수준이라면 수월하게 읽을 수 있다. 가성비 높은 독서란 전적으로 독자들에게 달린 일임을 일깨우는 이 책에 다들 도전해 보시길.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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