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성공의 경험"의 중요성은 이제 자기개발 분야의 흔한 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한 권의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인내하며 자분자분히 읽어내려가는 일은, 이 행위의 앞머리에 강조점을 찍는다면야 그저 흔한 "작은" 성공의 경험 중 하나로 치부되겠지만, 행위의 뒷꼬리 마침표에 부러 힘을 주어 마치 방점이라도 찍듯 꾹 눌러 매듭 짓고 나면, 이는 비교가 필요 없는 유일하고도 온전한 성공으로 남는다. 내게도 이런 경험이 몇 번 있었다. 〈닥터후〉 전시즌을 완주한 일(이후 새 시즌이 2개는 더 나왔지만)이나, 이론물리학자 리사 랜들의 《숨겨진 우주》를 완독한 일, 그리고 바로 이 책 《수잔 와이즈 바우어의 세상의 모든 역사:중세편》 1권 완독을 세 번째 성공으로 꼽고 싶다.

이렇게 두꺼운 책을 두고 사람들이 '벽돌책'이라 부른다는 사실을 솔직히 이번에야 알았는데, 이 리뷰를 쓰기 직전 잠시 뒹굴거리며 보던 유튜브 영상에서 마침 '김겨울' 님이 이 '벽돌책'에 관한 인용을 읽어 주셔서, 《수잔 와이즈 바우어의 세상의 모든 역사》 시리즈와도 무척 잘 어울릴 것 같아 소개해 본다.



벽돌책은 언제나 나의 로망이다.

벽돌책을 읽는 데에는 유난히 긴 경청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두께는 그 자체로 주장이며 난이도는 그 자체로 방어다.

대개 하드 커버로 감싸진 두꺼운 책의 내부로 들어가려면

독자와 저자 모두가 가지고 있는 심리적 방어선을 뚫어야 한다.

뚫고 들어갔다면 긴 미로 속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정신을 차려야 한다.

《책의 말들》, 김겨울


어릴 적 만화책에서 아리아드네가 미궁의 입구에 붉은 실을 묶어 두고 조금씩 풀어가며 결국 테세우스를 찾아 함께 미로를 빠져 나오는 데 성공한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그렇다면, 이 책 《수잔 와이즈 바우어의 세상의 모든 역사:중세편》이라는 이름의 미로 속에서 중도 포기해 입구로 돌아오지 않고, 또 길을 잃지도 않고 무사히 출구로 나오려면 어떤 방법을 써야 할까?

우선, 거창한 마음을 버려야 한다. 두꺼운 책을 읽고 있다는 사실을 최대한 의식하지 않으려 애쓰며 그냥 바로 눈앞의 문장과 페이지, 챕터에만 집중해 본다. 물론 이게 마음만으로 쉬이 되는 일은 아닌데, 나는 주로 낯선 이름이나 개념 등이 우다다 나올 때면 무조건 노트에 끄적거리며 책과 마음의 거리를 좁히는 방법을 택한다. 이때, 조심해야 할 것은 필기에 신경쓰기보다는 이를 철저히 보조 수단으로, 예전 라디오 안테나의 주파수를 맞추듯 조심조심 내 머릿속을 책 내용과 연결짓는 데에만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이 시점에서 여간해서는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 같으면 잠시 다른 일을 하며 다음 시도를 노려보는 게 효율적이다.

두 번째로, "심리적 방어선"을 뚫는 데 성공했다면 우선 충분히 기뻐하며 내 자신을 칭찬한다. 그런 다음, 마음의 문이 살포시 열린 독자들에게 이 책이 마련한 붉은 실을 마음의 손 끝으로 가볍게 쥐면 된다. 《수잔 와이즈 바우어의 세상의 모든 역사:중세편》은 각 장마다 장의 제목과 함께 연도 및 해당 역사를 짧게 요약해주는 글이 상단에 배치된다. 해당 장의 내용을 다 읽고 났을 때 이전 페이지의 요약 문장이 나타내는 의미가 한결 머릿속으로 잘 들어온다면 질 좋은 독서를 하고 있는 중인 셈이니 안심해도 좋다.

로마 제국, 진 제국, 인도, 고구려-백제-신라의 한반도 삼국시대, 페르시아 등으로 시작되는 《수잔 와이즈 바우어의 세상의 모든 역사:중세편》은 최대한 전세계를 두루 아우르려는 저자의 노력이 돋보인다. 미국인 저자다보니 아무래도 서양 역사의 큰 뿌리가 되는 그리스-로마 역사 비중이 가장 크지만, 전체적인 역사의 얼개를 맞추는 데는 소재의 빈틈이 없어 보인다(설령 빈틈이 있다고 해도 개인적으로 알아챌 만큼 역사를 잘 알지 못하기는 하지만). 또, 각 장이 끝날 때마다 직전 장 혹은 관련 장에서 다룬 다른 나라의 연대를 시간순으로 함께 제공해주어, 그동안 주로 분리된 과목으로 배워온 국사와 동양 및 서양의 역사를 하나의 연대기에 두고 찬찬히 싱크를 맞춰보는 재미 역시 톡톡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역사를 왜 알아야 할까? 아니, 왜 역사책을 읽어야 할까? 이 부분에 관해서는 이런 생각을 한번 해보게 되었다. 나는 어릴적부터 꽤 오래 컴퓨터를 배워왔는데(일단 요즘 세대에게는 '컴퓨터를 배운다'는 행위부터도 좀 어색하게 느껴질지 모르겠다) 고릿적 도스 운영체제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면, 처음에는 컴퓨터에 구현된 기능이 거의 없었다. 지금은 다수의 트랜잭션을 '터치'로 구현하지만, 마우스 입력으로 컴퓨터를 구동하던 시기가 있었는가 하면, 그전에는 온전히 키보드 명령만으로 컴퓨터를 작동시키던 때도 있었다. 더 시절을 거슬러 올라가자면 구멍을 뚫어 0/1을 구분해 데이터를 처리하던 천공카드 시스템도 존재했다(이게 무슨 소리인지 궁금하다면 영화 〈히든피겨스〉를 추천한다).

일명 '컴퓨터'로 대표되는 컴퓨팅 하드웨어/소프트웨어 기술은 빠른 발전을 거듭해 지금에 이르렀고, 어쩌면 앞으로 이러한 발전의 속도는 더욱 가파라질지도 모른다. 현재를 사는 우리는 그저 이 기술을 누리기만 하면 된다. 세대를 거듭하면서 기술의 발전은 전부 이 기기에 내장되고, 전제되므로 이걸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면야 이 보이지 않는 기술의 뒷면을 일부러 의식적으로 알 필요도 없다. 인간의 역사 역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 자체가 인간이고, 내 안에 역사라는 이름의 소프트웨어가 온전히 내장되어 있는데, 굳이 인간과 문명의 역사를 더 알 필요가 있을까? 내가 개인적으로 생각해본 이 물음의 답을 먼저 내놓자면 이렇다. "이렇게 영원히 살 거라면 (혹은 살 수 있다면) 알지 않아도 괜찮다. 하지만 어디론가 나아가고 싶다면 (혹은 현재 시스템에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한다면) 반드시 알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당장에 실용적이지도, 이렇다 할 쓸모도 없어보이는 역사에서 답을 구하고 싶은 순간 역시 이따금 우리를 찾아온다. 우리는 어째서 현재 이러한 삶을 살고 있을까? 내 인생은 왜 이러지? 코로나19는 언제 끝날까? 같은, 잘 포장하자면야 제법 철학적이긴 해도 누구에게서도 속시원한 답을 얻어내기 어려운 자못 아리송한 질문이 뾰족한 빙산의 일각처럼 대뜸 내 안에 자리하게 될 때, 《수잔 와이즈 바우어의 세상의 모든 역사:중세편》같은 책들은 수면 아래 잠긴 빙산의 커다란 저변처럼, 인류의 일장풍파를 가득 품은 채 가만히 때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에게 시의적절한 해답과 통찰을 전한다. 현대 인간 특유의, 과거 사실(혹은 사실로서 기록된 것)과 거리두기 하며 서술하는 저자의 쿨한 문체도 읽는 재미를 더하며, 번역/편집에도 아주 꼼꼼한 장인의 솜씨가 느껴진다.

찬드라굽타 1세는 마가다에서 시작해 옛날 코솔라와 밧사의 영토에 이르는

전 지역을 정복하고 갠지스강을 심장부로 하는 소규모 제국을 이룩해 냈다.

그러고는 그것이 꽤나 뿌듯했던지 스스로에게 '마하라자드히라자'

즉 "뭇 왕들의 대왕(현실이 그랬으면 좋겠다는 소망의 표현이었다)

이라는 칭호를 붙여 주었다."

《수잔 와이즈 바우어의 세상의 모든 역사:중세편》 1권 중


보다 근원적이고도 실용적인 독서 목적을 하나 제시해보자면, 몇 년 전 한겨레센터에서 〈스타일 레슨: 명확하고 아름다운 영어 글쓰기〉의 원서를 교재로 진행하는 수사학적 글쓰기 수업을 한차례 들은 일이 있는데, 이 수업의 가장 첫 시간도 《수잔 와이즈 바우어의 세상의 모든 역사:중세편》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로마의 역사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영어나 한국어 글쓰기 외에도 보다 풍부한 레퍼런스를 소화하고 싶은 출판/영상 번역자(혹은 지망생)들에게 읽기를 권하고 싶은 책이다.

이런 '벽돌책' 한 권 읽은 경험이 어쩌면 작금의 코로나 시대, 우리 삶에 독특한 무늬의 나이테를 새겨줄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의 이런 현실도 훗날 언젠가는 역사가 되어 까마득한 후대의 누군가에게 읽힐 것이다. 이러한 과정 그 자체가 지난하게 쌓여 인류의 역사가 되었음을 이 책을 통해 새삼 되새겨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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