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나 페이의 보시팬츠 - 나댄다는 말을 듣기 전까지 당신은 아무도 아니다 코믹 릴리프 3
티나 페이 지음, 박가을 옮김 / 책덕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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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나 페이를 (작품으로) 처음 만난 건 <파크 앤 레크레이션>에서였다. 그 다음은 그가 제작한 넷플릭스 코미디 <언브레이커블 키미 슈미트>였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개그 코드가 잘 맞는 코미디언은 아니었다. 차라리 그 "기묘하게 안 맞음"으로 기억하게 된 인물에 가깝다. 《보시팬츠》를 읽기 전 내가 마지막으로 시도한 티나 페이 작은 <위스키, 탱고, 폭스트롯>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 영화를 끝으로 아, 이제 이 사람을 알려는 시도는 그만해도 되겠다 잠정적 결론을 내렸었다. 내가 소위 불편함을 느낀 지점은 그가 너무 '하얗고', 또 남초 코미디판을 오래 구른 베테랑인 탓에 필연적으로 미묘한 '마초 냄새'가 난다는 점이었다.

《보시팬츠》 속에서 이런 티나 페이의 완전히 다른 모습을 발견했다는 반전 같은 건 없다. 내가 티나 페이의 책을 통해 얄팍하게 읽어낸 건 그가 (내가 얄팍하게 알던 대로) '하얗고' 또, 어느 정도 '마초'스럽다는 변치않는 결론으로 나를 데려다주었지만, 대신 그가 작품 속에서는 할 수 없던 장황한 부연을 읽을 기회를 얻게 되었단 게 그동안과 다른 점일 것이다. 《보시팬츠》를 통해 티나 페이는 여성 코미디언으로서 낡은 체계에 맞선 자신의 고독한 분투기를 낱낱이 들려준다. 이는 다분히 개인적이라는 점에서 좀 더 남다른 역사로 느껴진다. 《보시팬츠》를 다 읽고 난 후의 감상을 짧게 요약하자면, 상투적이지만 "왜 《보시팬츠》, 《보시팬츠》하는지 알 것 같다"는 것이고(민디 케일링 역시 위의 저서에서 몇 번이나 '보시팬츠'를 언급한다.), 티나 페이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코미디언이 되는 일 같은 건 아마 평생 일어나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그의 코미디를 좋아해보려는 시도를 한 번 더 해보고 싶어졌다. 그런 의미에서 《보시팬츠》를 다 읽자마자 그날 밤으로 <30 락스>를 시작했다. 이 시리즈가 방영 당시 어째서 흥행하지 못했는가는 나 역시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이제 내게 누군가 티나 페이의 베스트 필모를 묻는다면 나는 어쩐지 <30 락>라고 답하게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여성 코미디언을 좋아하기에 앞서 우리는 왜인지 많은 이유를 찾게 된다. 싫어할 이유는 단 하나로도 충분하지만, 좋아할 이유는 수백 가지를 가져온대도 그 모두를 충족해야 '통과' 받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쉽게 남자를 좋아하고, 대신 여자는 쉽게 싫어하도록 학습해왔다. 코미디판에서 고군분투해가며 지금의 자리에 오른 티나 페이를 본받아, 나도 이 낡았지만 무너질 생각을 않는 이 교묘한 체제의 흐름에 맞서 더 많은 여성에게 무분별한 사랑과 지지를 보내기 위해 힘쓰는 한 해를 보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또한, 새로운 10년을 여는, 이번 2020년이 여성들이 더 많이 나대고 웃기고 그야말로 다 해먹는 한 해로 거듭나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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