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책으로 - 순간접속의 시대에 책을 읽는다는 것
매리언 울프 지음, 전병근 옮김 / 어크로스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다룬 기사를 링크한 트윗은 이런 논조였다. '전자책은 머리에 남지 않는 걸 알고 포기했다.' 이런 걸 발견하면 나같은 사람은 화들짝 놀라 링크를 클릭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내가 지난 (반올림해서) 1년 동안 읽은 99%의 텍스트가 트위터와 전자책이었으니까. 커피 세 잔을 단숨에 들이킨 것처럼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한국에서야 종이책 vs. 전자책 중 선택이라도 할 수 있지(심지어 이런 선택의 자유도 그나마 시각으로 책을 읽는 독자에 국한된다), 그러지 못하는 환경에서는 어쩌라고? 싶은 마음이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내가 읽은 그 트윗이 고도의 바이럴 마케팅이었던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작가 매리언 울프는 『다시, 책으로』 를 통해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해준다. 심지어는 이 책을 소개한 해당 링크의 기사글도 전혀 핵심을 짚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만 『다시, 책으로』 를 읽고 난 감상 혹은 내용을 요약하는 일은 살짝 망설여지게 된다. 내가 해당 트윗과 책의 소개 기사를 두고 '전혀 다른 이야기'라고 꼬집었듯 누군가 내 감상을 읽고 나면 '딴 얘기 하는 건 너도 마찬가지'라고 지적받을까 좀 두렵기 때문이다. 그건 이 책이 '깊이 읽기'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는 탓이다.

저자가 전면으로 내세운 주제는 디지털이냐 피지컬(종이책)이냐하는 '옳은' 플랫폼을 선택하는 문제에 관한 것이 아니다. 대신 매리언 울프는, 인간이 지금에 오기까지 습득한 읽기라는 능력(혹은 기술)은 유전자에 새겨진 것이 아니므로 언제든 도로 퇴화 및 초기화 될 수 있고, 그러니 어떤 방식으로 읽는가와 별개로 제대로, 깊이 읽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아주 찬찬히 공들여 한다(심지어 읽는 이에게 진지하게 호소하려는 목적으로 편지글 형식을 택했다). '디지털 읽기'라는 게 어떤 점에선 대단한 태세의 전환이 아니며 요즘 흔한, 종이책에서 멀어지는 세대를 향한 우려는 완전히 새로운 고민이 아니라 이미 오래 전 처음 '글과 쓰기'가 보편화 되었을 때도 비슷하게 퍼져나간 바 있음을 지적하기도 한다.

만약 인간이 이것(글)을 배우면,

이것이 그들의 영혼에 망각을 심을 것이다.

사람들은 더는 기억력을 쓰지 않을 것이다.

문자에 의존하게 되면 무언가에 대한 기억을

자기 내부에서 가져오는 대신,

외부에 표시해둘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책으로』 중 소크라테스의 말 인용

다른 그 어떤 책보다도 『다시, 책으로』 는 독자 모두가 다른 사람이나 미디어를 통하지 않고 직접 찬찬히 읽어봐야 하는, 다시 말해 저자를 통해 직접 들어야 하는 이야기로 꾸려져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통해 나를 비롯해 모두가 곰곰이 '왜 읽어야 하는가'를 곱씹어볼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단순히 독서의 효용 가치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 인간 모두가 함께 사는 삶을 위해서는 반드시 읽지 않으면 안된다는 결론으로 나아가게 되는데 그 여정에는 다른 누구의 손길도 거치지 않은(편집자 및 역자는 제외하기로 하자) 온전한 매리언 울프의 단어와 문장이 필요하다.

여러분 중에 속으로 저를 정체를 감춘

러다이트(신기술에 반대하는 사람)로 여기는 분들은

깜짝 놀라실 것입니다.

이제 안전벨트를 매시기 바랍니다.

곧 우리는 거친 주행에 나설 테니까요.

『다시, 책으로』 중

잠정적으로 저자를 종이책 옹호론자로 가정하며 읽어 내려간

나같은 독자들이 허를 찔린 순간

내가 SF 장르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먼지 같은 나의 존재가 우주로 산산히 흩어지고 난 뒤의 미래를 그려보는 일이 묘하게도 아주 재밌기 때문이다. 대부분 내가 살아서 지켜볼 수 없는 아주 먼 미래의 일이라는 사실이 전하는 거리감과 더불어, 현재의 인류가 그 미래에 불가피하게 미치게 될 나비의 날갯짓같은 영향력이 미묘하게 뒤엉켜 기묘한 관계성을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그렇다.

저는 다음 세대가 우리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방법으로

우리를 넘어설 거라고 생각합니다.

(중략)

그들의 인생은 우리보다 훨씬 더 확장될 테지요.

그들은 우리와는 아주 다르게 사고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들은 지금까지 인류가 습득한 능력들을 최대한 정교하게 갖추어야 합니다.

엄청나게 공을 들인 깊이 읽기 과정은

코딩과 설계, 프로그래밍 기술을 통해 공유되고 확장될 것입니다.

(중력)

우리 종의 가장 어린 구성원들에게 다능한 뇌 회로를 구축해주는 것이

그들의 후견자인 우리가 그들과 지구에 함께 머무는

짧은 기간에 집중해야 할 임무입니다.

『다시, 책으로』 중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