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 - 자기 몫을 되찾고 싶은 여성들을 위한 야망 에세이
김진아 지음 / 바다출판사 / 201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보통 쿨쿨 자는 시간인데 눈이 번쩍 뜨였다. '출퇴근'과 거리가 먼 생활을 한지도 이제 1년이 넘었고 달리 일정이 있던 것도 아니라 뻑뻑한 눈을 게슴츠레 꿈벅거리며 침대에 누워 있었다. 오늘은 얼마나 또 늦잠을 잤을까 스스로 한심한 기분에 시간을 확인하고 싶지 않은 그런 날이었다. 내려놓은 블라인드 틈새로 하얗게 아침 햇살이 비춰들어오는 것을 흘끔 쳐다보고 휴대폰을 들어 확인한 시간이 5시 즈음이었다.

에세이를 좋아하지만 의미 그대로 에세이가 범람하는 요즘 같은 때에는 이따금 글의 장르가 에세이라는 사실에 조금 시시한 기분이 든다. 다른 게 아니라, 내가 아무렇게나 끄적인 글도 관점에 따라서는 에세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게 된 탓이다. 내 손에 닿는다는 이유로 다소 하찮은 기분을 느끼게 되는 것이 '하수'다운 마음가짐이라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가끔은 내가 하수인 걸 어쩌겠어 싶어지는 것이다.

나는 물 마시는 기분으로 에세이를 읽는다. 가끔은 성의없게, 또 가끔은 마음에 닿는 문장에 공명하며 달게 삼키기도 한다. 어쨌든 '에세이'란 내게 감정적 공명을 일으키는 장르다. 내내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 는 그에 비하면 '맥주' 같은 책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거의 30여년 간을 술 안 마시는 사람(being sober?)으로 살다가 아주 우연한 계기로 맥주롤 좋아하게 되었다. 주량은 딱 한 파인트 즈음인데, 술에 잘 취하고(얼굴을 시작으로 온몸이 삽시간에 '수학귀신'처럼 벌겋게 달아오른다) 취하기 위해 마신다기 보다는 맥주 자체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렇다 할 안주 없이 아껴 마시는 방식도 아주 좋아한다. 그리고 그렇게 한 모금 한 모금 천천히, 그러나 탄산이 죄 날아갈 정도로 너무 느린 속도는 아니게, 아껴가며 이 책을 읽었다.

물과 맥주의 다른 점은 '목넘김'에 있을 것이다(알맹이 대신 거품 같은 비유가 줄줄 흘러 지저분하게 손을 적시는 감상이 되어가는 중…). 나는 능동적인 독서의 방식으로 책에 직접 밑줄을 긋거나 메모를 하는 타입은 아니기도 하고, 타인의 감정에 공유하면서 내가 떠올릴 수 있는 생각도 고작해야 '나도 그랬어', '마음에 들어요' 정도가 다라서 에세이는 정말 물을 마시듯 읽는다.

이 책을 맥주 같았다 말한 건, 읽는 중간 여러 번 멈춰서 책장 모퉁이에 뭐라도 끄적이고 싶은 순간을 선명한 감각으로 꿀렁대며 만났기 때문이다. 손바닥만한 휴대폰으로 침대에 누워 읽느라 메모들은 전부 휘발성 메모리에 저장되었다가 이젠 반 이상이 날아갔겠지만.

잘 알지 못하는 타인과 찰나의 감정과 생각을 공유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것을 비슷한 결의 언어로 나누는 것은 한결 더 어렵다. 그런데 삶의 물리적 접점이라곤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저자(와 편집자)가 정갈하게 늘어 놓은 문장들이 독자인 내게 별다른 단어나 어조의 2차 해석 없이 그대로 전해지는 경험은 자주 겪어보진 못한 것이라 아주 재밌었다.

책을 읽을 당시에는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머릿속이 산만하게 북적일 정도였는데 한김 식히고 감상을 글로 적으려니 전부 책 속의 문장을 한 번 더 베껴쓰는 수준이라 그냥 이불 속에서 피식피식 웃으며 표시해둔 문장 몇 개를 소개하는 것으로 그쳐야 할 것 같다.

안전한 나라 한국이 여자에게는 전혀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미국 남자처럼 놀랐다.

『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 중

저자가 여자들의 남자 형제와의 차별담을 접하고 자신의 경험이 얼마나 특수한 것이었는지를 뒤늦게야 깨닫고 아주 화들짝! 놀랐음(ㅋㅋㅋ)을 표현한 문장이다. 베테랑 카피라이터로서의 저자의 만렙(?) 경험치를 실감하게 되는 비유다.

"아웃풋이 쌓일 수 없는 노동이

날마다 영화 <사랑의 블랙홀>처럼 반복된다.

집안일도 그렇다."

『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 중

- 빌 머레이의 <사랑의 블랙홀>은 타임루프 레퍼런스로 자주 소환하는 영화인데

이젠 나타샤 리온의 <러시아 인형처럼>에게 그 자리를 넘겨줄 때가 되었다(?)

여자의 무급 노동 착취에 관해 이야기한 부분도 인상적이었는데, 특히 나는 갓 서른이 되어서야 인생 첫 자취를 시작해서인지 비교적 이 '살림을 꾸려 나간다'는 개념을 선명하게 재정립하게 되어 좀 더 복잡한 마음으로 읽었다. 사실 모든 노동이 그러하지만 특히 가사 노동은 임금(혹은 재화적 가치)이 결부되지 않는 한 언제고 마이너스에서 0으로 달려가는 일이다. 훌쩍 런던으로 와서 맨땅에 헤딩하며 지내다 보니 더욱 그렇다. 6개월이라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나는 이 '0'으로 나아가기 위해 애썼고, 그래봤자 '0'인 탓으로 허탈한 기분도 자주 느꼈다. 두터운 먼지로 가려져 있던 것들, 눈 앞에 있었지만 보지 않던 것들이 실재함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일이 지난하지만 옳은 방향임을 이제라도 얕게나마 알게 되었으니 나쁘지 않은 시작이라 믿는다.

지금껏 역사에 기록된 수많은 업적과 성취들 또한 그렇게 가능하지 않았을까?

'보이지 않는 손'의 돌봄을 받고?

『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 중

이 책을 소개하지 않을 수 없는 타이밍이다.



"한마디로 돈 되는 건 남자들의 몫이다. 어떤 업종이든 모양새는 비슷하다.

다수의 여자가 그 일에 종사할 땐 임금도, 전문성도 얻지 못하다

남자들이 진입하기 시작하면 비로소 전문가로 인정받게 된다."

『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 중

나는 대학 때부터 거의 10년 즈음을 IT 분야를 배회한 탓인지 좀 더 다른 의미로 위 대목이 와닿았다. 우리가 흔하게 쓰는 '컴퓨터'라는 단어도 초기에는 '시시한 단순 계산을 하는 여성 직원' 자체를 이르는 말이었음을 어디 책에선가 읽은 일이 있다. 우리가 <이미테이션 게임> 같은 영화를 보며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연기한 '엘런 튜링'에 감정을 이입하는 동안, 그 배경에는 사실 <블렛츨리 서클>이나 <히든 피겨스> 속 주인공들이 [대화하는 소리, indistinct chatter] 같은 자막으로 덧입혀진 채 함께 존재했던 것이다. 여자들이나 하는 것이었던 코딩이 현재 한국 및 세계 각지에서 갖는 위상을 생각하면 웃기고도 씁쓸한 역사다. 최초의 '프로그래머'라는 타이틀을 뒤늦게야 얻게 된 '에이다 러브레이스'를 그린 그래픽 노블도 떠오르는데, 실제 그의 삶을 다룬 분량은 남아있는 기록만큼이나 아주 짧다. 그래픽 아티스트 '시드니 파두아'는 대신 에이다를 그가 자유롭게 연구를 계속할 수 있는 다른 평행 우주로 보내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나는 작가의 상상력이 서글프면서도 아주 마음에 들었다.




"가부장제가 작동하는 아주 태연한 방식.

굴욕적인 것은 바로 이 태연함이다."

『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 중

한국에서 나고 평생을 살면서 내가 부정할 수 없게 '어른'이 되었다고 느낀 순간 중 하나는, 이 '태연함'을 자각한 때였다. 내가 잘못 본 건가? 혼자 되묻게 되는 순간들. 온갖 성범죄를 저지르고 그게 언론에 까발려진 후에도 자신의 '작품'으로 잘못을 빌겠다며 버젓이 활동하는 남자 연예인들(초반에야 경악했지 이젠 손으로 꼽을 수도 없는 규모가 되었다)과 그를 넓은 마음으로 감싸 사회로 내보내주는 업계. 영화나 음악 같은 건 소비자의 선택이라 백 번 양보한다손 쳐도(물론 그럴 생각도 없지만) 아무 때고 TV 채널을 들 때마다 나오는 광고 속 누군가의 얼굴들은 매번 말을 잃게 되는 것이다. 보고도 모른 체하거나 체념하지 않고 작은 목소리라도 내는 것이 어른이 해야 할 도리임을 배워가는 중이다. 법적 성인이 된지는 이제 벌써 10년도 더 넘었지만, 다음 세대를 위해서라도 최소한이나마 제대로 된 어른의 역할을 배우고 수행하며 살자는 것이 삼십대가 된 내가 견지해야 할 마음가짐임을 종종 되새기게 된다.

새해가 돌아오면 유행처럼 한 번씩 해보는 것 중 하나가, 알파벳이 나열된 이미지 속에서 가장 먼저 찾은 세 개 단어 배열이 자신이 신년에 얻게 될 것이라는 게임(?)인데, 벌써 여름을 바라보는 5월 중순 나는 다늦게 이 책에서 앞으로 내가 삶에서 얻고 싶은 것이자, 처음 영국행을 결심하면서 마음에 새겼던 다짐의 말들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다.

고독하지만 고립되고 싶지 않은 개인

내 존엄

그리고 나와 다른 여성들 모두의 '파이 '.

이왕이면 언젠가 '울프 소셜클럽' 에서 맛 본 '키라임 파이'처럼 달콤하고 새큼하고 따뜻한 맛이 나는 파이가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