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게 동화 같은 걸 읽어볼 생각이었다, 처음에는. 같이 사는 친구가 다니는 대학 도서관에는 '그런' 장르의 책이 전무했고 차라리 (동화 제목)을 다룬 연구 논문을 찾는 게 더 빠를 것 같다는 얘기를 전화로 전해 듣고 나서 집으로 돌아온 친구가 이 책을 건네주었다. 혹시 몰라서 그냥 보이는 걸 하나 집어와 봤다고 덧붙이면서. 그렇게 <시녀 이야기>는 올해 1월 나의 첫 책이 되었다.

알라딘 구매목록이 알려줬듯 2017년의 언젠가 샀던 이 책의 번역본을 나는 끝내 읽지 못(?)하고 영국으로 왔다. 아마 번역본을 먼저 읽고 영어로 된 책을 읽었다면 한결 더 집중도 높은 독서 경험이 됐겠지만 생각보다 그 반대도 꽤 괜찮은 방식이었다. 이 말인 즉슨, 영어 원서를 읽다 컨디션에 따라 들쭉날쭉한 몰입도 때문에 결국 번역본 E북을 사서 다시 읽었다는 의미이다. 결핍이 인간에 미치는 영향이란 아주 지대하여 덕분에 그 어느 때보다도 달게 읽은 한국어 텍스트가 됐다. 한국어나 영어나 분량은 비슷하게 300페이지 전후 즈음이었는데 읽는 속도에는 현저한 차이가 있었다.

<시녀 이야기>를 읽기 전까지 내가 대강 알고 있던 관련 배경지식은 이 책을 쓴 작가 마거릿 앳우드가 캐나다 출신 여성 작가이며, 대리모 시스템 및 여성체의 도구화가 통용되는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그리고 있고, 드라마로 제작도 되었으며, 이 작품 외에도 이 작가가 쓴 <그레이스>란 소설 역시 드라마로 만들어졌다는 것 정도였다(영상화된 <그레이스>는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나는 영어로 된 텍스트를 읽으면 한국어에 비해 이해도가 반절 즈음(혹은 그 이하)으로 떨어지게 되는데, 그럼에도 저자의 문장 솜씨나 깊은 통찰을 얕게나마 느껴볼 수 있었다. 게다가 여성 번역자 김선형씨의 번역도 아주 유려하게 좋으므로 쉽게 구할 수 있는 한국어 번역본을 읽는 것도 매우 추천한다.

아마 대부분의 E북 어플이 제공하는 기능일 것 같은데 문장을 줄긋듯 표시해두고 나중에 따로 읽어볼 수 있는 것도 좋았다. 종이책에 줄 긋는 거야 학교 다닐 때 교과서나 문제집에 말고는 거의 해본 적 없는 일이지만 전자책은 언제든 깨끗하게 지울 수 있으니 죽죽 마음에 드는 대목을 신나게 표시하며 읽었다. 그 중에서도 몇 개를 골라 공유해본다.

"You young people don't appreciate things, she'd say. You don't know what we had to go through, just to get you where you are. (…) Once upon a time you wouldn't have been allowed to have such such a hobby, they'd have called you queer."

- P.131, '나'의 어머니가 '나'의 배우자 루크를 두고, 젊은 애들이란 감사할 줄을 모른다며 옛날 같았으면 남자가 요리를 했다간 취미는 커녕 게이 취급했을 거라 말하는 장면.

"Mother, I think. Wherever you may be. Can you hear me? You wanted a women's culture.

Well, now there is one. It isn't you meant, but it exists. Be thankful for small mercies."

- P. 137

마무리 인용은 헤나 개즈비의 넷플릭스 스탠드업 실황 <Nanntte>에서 그가 '이야기를 함으로써 그만 내 무거운 짐을 좀 나눠 내려놓고 싶다'고 했던 말을 떠올리게 하는 주인공의 독백이다. 달리 설명할 것도 없이 <시녀 이야기>의 대부분은 화자 혼자 속으로만 겨우 뱉는 독백이나 의식의 흐름이다. 생각을 허락받지도, 곁에 그걸 나눌 누군가도 거의 존재하지 않는 곳이었으니까.

"By telling you anything at all I'm at least believing in you, I believe you're there, I believe you into being. Because I'm telling you this story I will your existance. I tell, therefore you are."

- P. 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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