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크 손 현대문학 핀 시리즈 장르 2
단요 지음 / 현대문학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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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에서 나온 단요 작가의 신작 «케이크 손»을 읽었다.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을 남들보다 빨리 접한단 사실이 참 기쁘다. 가제본 도서를 제공해주신 현대문학 출판사에 감사드린다. 아래로는 간단한 서평을 남긴다.

이렇게 물어보자. 마지막으로 남을 착취한 적은 언제일까? 언뜻 생각해 보면, 아마 없는 것 같다. 나는 그냥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있고, 남을 착취씩이나 했다고 말할 만큼 누리는 것도 없다. 그저 매일매일 주어진 삶을 감당해나갈 뿐이다. 그러니까 나는 착취자가 아냐, 그런 생각이 든다.


하지만 삶의 달콤한 면은 반드시 누군가의 고통과 희생을 바탕으로 한다. 어떤 가치를 저울에 달면 그 반대편 접시에는 필요한 비용이 놓이기 마련이다. 필연적으로 그 비용을 감당하는 누군가가 있다. 잘나가는 학생 무리는 소심하고 약한 학생들을 개처럼 갖고 놀고, 깔끔하게 정돈된 아파트 단지와 고가도로 뒤편에는 길에서 치워진 것들이 모인 원룸촌이 자리하며, 형에게 생활비를 받는 남자는 위협과 모욕을 감내한다. 당연히 나와 당신이 누리는 모든 좋은 것의 명세에도 그 가격이 붙어 있는데, 우리는 어떤 것은 기꺼이 지불하지만 어떤 것은 못 본 척 눈을 감고 지나친다.

편모 가정에서 방치되어 자라는 중학생인 ‘나,‘ 현수영도 현실의 어떤 값어치에서 눈을 돌린 사람이다. ’나‘는 사람의 마음을 잘 이용하는 부잣집 아가씨 안혜리의 “남편”이자 “애완견”으로 지낸다. ‘나’에게 안혜리는 (부모 대신) 사람처럼 먹고 씻고 말하는 법을 알려준 은인이고, 여기에 ’내’가 지불하는 비용은 폭력이다. 안혜리 무리가 괴롭히는 아이들을 그들 대신 때리거나, 어떤 괴롭힘을 기꺼이 묵인하거나. ‘나’는 묘한 죄책감을 느끼지만 눈을 감는다. 그 비용이 가져다주는 가치가 너무나 달콤하므로, 이는 쉽게 정당화된다. 하지만 ‘내’ 앞에 케이크 손 남자가 나타난다.

남자는 손에 닿은 생물을 케이크로 만들 수 있다. 미다스 왕의 황금처럼, 남자에게 케이크는 저주의 산물이다. 그는 하던 일을 관두고 원룸촌에 틀어박힌 채 폐인처럼 살아가다가, ‘나‘의 삶에 들어온다. ’나‘는 남자에게 과외를 받고 안식처를 제공받는 대신 그의 말상대가 되기로 한다. 그렇게 한동안 둘은 서로의 저울에서 모자란 것을 채워준다. 남자는 사회적 쓸모가, ‘나’는 집에서 떠나 머물 장소가 필요하므로 이 거래는 양자에게 만족스럽다.

반면 저울의 균형은 아슬아슬하다. 두 사람 모두 다른 사람과 자신의 저울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남자의 사촌 형이, 혹은 안혜리가 조금만 움직여도 ‘나’와 남자의 관계는 흔들린다. ‘나’는 안혜리의 “거룩함”에, 남자는 사촌 형이 제공하는 생활비에 빚지고 있다. 두 사람이 빚을 갚을 방법은 내가 아닌 다른 무언가에 폭력을 행사하는 것뿐이다. 남자는 케이크 장사를, ‘나’는 공부를 하려는 생각도 있지만 어쩐지 요원하다. 두 사람의 삶은 자꾸만 세상과 어긋난다. 이런 어긋남의 이유는 우리 마음 속에 있다.

우리는 달콤한 것을 누리고자 하며 쓴 것을 뱉고 싶어 한다. 예쁘고 아름다운 것, 정돈된 것, 좋은 것들을 사랑한다. 반면 추하고 못생긴 것, 더러운 것, 나쁜 것들을 미워한다. 그런데 무언가 “선하고 아름다운 것“이 있으면 그 반대편에는 “나쁘고 더러운 것” 또한 있다. 세상의 균형은 좋은 것의 반대항에 나쁜 것을 가져다놓는다. 드높이 선 빌딩이 있다면 원룸촌이, 일진이 있다면 찐따가, 부유함이 있다면 가난함이 있다. 어느 하나만을 잘라다놓고 구경하거나 소유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허나 그러고자 하는 마음이 우리 모두의 안에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만을 받아들이고자, 그러지 않은 부분은 잘라내고 무시하려는 마음. 보기에 만족스럽지 않은 것은 세상 바깥으로 밀어서 치워버리려는 욕망. 노숙자가 눕지 못하도록 벤치에 펜스를 박아넣고, 인정하기 불편한 사실은 없는 일로 만들고, 귀여운 애완동물은 좋아하지만 지저분한 가축은 싫어하는 태도.

만일 내가 이렇게 잘리고 밀려나는 부류의 인간이라면, 그래서 세상과 불화할 수밖에 없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내게 달린 빚을 갚아야 하는데, 갚을 수가 없다면? 그럼에도 나 또한 달콤한 것을 누리고 싶다면?

결론이 마련된 질문은 아니지만, 상상해볼 수는 있을 것이다. 상상하려 한다면, 단요 작가의 정교한 꿈을 따라가며, «케이크 손»을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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