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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냥과 풋사과
단요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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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즈덤하우스 서평단에 참여해서 책을 제공받고 쓰는 감상이다.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을 받아볼 수 있어 기쁘다. 더 많은 말을 쓰고 싶었는데 너무 바빠서 우선 이렇게 올린다. 기회가 되면 더 말해보겠다.


이 책에 관해서는 할 말이 아주 많다. 단요의 팬에게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책이고, 단요를 처음 읽는다면 어른과 아이가 공존하는 시골 힐링물—리틀 포레스트나 계춘할망, 워낭소리 같은 것들—을 상상하고 가볍게 읽어볼 수 있다고 권하고 싶다.

하지만 기왕이면 이렇게 시작해보면 어떨까? 나한테 이건 인지행동치료서처럼 기능하는 책이다.

어떤 위로는 따듯한 희망이 아니라 짜증나는 고통의 형태로, 아주 길고 지루하며 지저분한 삶의 형태로 찾아온다. 도무지 쉽게 설명될 수 없고 설명하려면 다듬어야 하는데 다듬는 순간 원본을 잃어버리는 경험이 있다. 그것의 맛은 떨떠름하고 시큼하지만, 누군가는 바로 그것을 필요로 한다.

어떤 고통들은 아주 매끈하게 다듬어져야만 비로소 좀 들어줄 만하고 예쁘게 팔아먹을 만한 것이 된다. 7번방의 선물이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장애인 묘사 같은 걸 떠올려보라. 어떤 사람들은 이런 콘텐츠에 감동하는데, 이때 감동은 그들의 고통과 경험보다는 적당히 한입거리로 다듬어진 서사로 인한 것이다. 이 경우의 고통은 단지 독특한 액세서리일 뿐이다—그 자리에 다른 무엇이 들어가도 전혀 상관없이 적당히 기능했으리라는 점에서.



문제는 사람들이 이 액세서리를 보고 자기가 고통을 이해했다고 착각하며 감동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는 그야말로 “귀여운 곰인형 애니메이션 보고 곰의 생태를 배웠다고” 하는 것인데, 여기서 또 하나의 문제가 생긴다.

대부분의 사람은 곰을 실제로 눈앞에서 본 적이 없고, 보고 싶어하지도 않고, 곰인형 애니메이션 정도나 즐기는데, 도시로 나온 곰이 마취총을 맞고 끌려가지 않으려면 곰인형 애니메이션 흉내라도 내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애니메이션이라는 건 기껏해야 8에서 24fps, 1초에 그림 8장에서 24장 정도를 이어붙여 만드는 매체고, 데포르메도 잔뜩 들어가는데다가, 상영 시간에도 제한이 있다. 알다시피 실제의 삶은 그렇지가 않다. 곰이 애니메이션 흉내를 내면 어딘가 뚝뚝 끊기면서 어색해진다. 어색함은 사람들로 하여금 거리를 두게 하고, 거리 두기는 언어를 잊어버리게 하며, 곰은 누구에게도 자기 얘길 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 곰은 원래 곰 울음소리를 내는 것이 정상이다. 애니메이션처럼 사람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니까 사람 말을 하는 쪽이 곰에게는 비정상적인 상황인 것이다)

사람 말로 뭉뚱그린 위로보다도 곰 말로 같이 울어주는 것이, 정확한 고통의 재현이 훨씬 큰 위로가 되는 경우가 있다. 이 책의 주인공 최선재는 말하자면 사람 말과 곰 말 사이에서 적당히 균형 잡는 법을 익혀놓은 사람인데, 그 집에 방금 상처입은 곰 한 마리가 덜렁 떨어진다, 최씨 일가의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문제는 선재도 건우도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최선재는 자기가 평생 걸어온 외길 밧줄 걷는 법을 건우에게 가르쳐야 한다. 하지만 천 길 낭떠러지 위에서 외길 밧줄 건너기란 당장 한 치 앞만 보고 걷기도 버거운 일이라서, 그는 자기가 어떻게 이 길을 지나왔는지 기억하면서도 잘 기억하지 못한다. 고통이란 그런 법이다… 설상가상으로 이 동네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이 집안 친척 어르신들이고, 이 구경꾼들은 시골에 온 외지인들에게 아주 관심이 많은데, 저 어린 곰은 밧즐을 건너기는 커녕 당장 선재가 건너는 밧줄마저도 할퀴어 끊어버리려 한다. 이들은 어떻게 될까? 궁금하면 책을 한 번 읽어보라. 확신을 가지고 보장하건대, 기대 이상일 것이다.

이 이야기는 몇 가지 방식으로 읽을 수 있다. 트라우마가 생긴 사고 생존자들의 이야기, 몇 세대에 걸친 고통의 연쇄 속에서 핏줄과 원죄에 대해 고민하는 가족사 소설, 망가진 어른이 망가진 아이를 길러내고 견디는 이야기, 필연적으로 미끄러지는 의미와 번역 불가능한 경험에 관한 이야기, 이해도 대처도 저항도 불가능한 고통과 신앙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잿더미 위에서 싹을 맺고 자라난 풋사과에 관한 이야기.

하지만 기왕이면 나는 이 이야기를 편지라고 하고 싶다. 누군가 무인도에서 병에 끼워넣어 보낸 편지. 먼 바다를 건너서 둥둥 떠다니다가 이 책의 형태로 당신의 눈앞에 놓인, 아름다운 표지의 423쪽짜리 편지. 이 편지를 쓴 로빈슨 크루소가 탈출했는지 아직도 무인도에 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것을 읽는 당신에게 위로가 있으리라는 사실이다.


(참, 이 책의 표지는 이정호 작가의 것이며 녹색 사과는 명백히 르네 마그리트의 오마주인데, 그의 그림이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도 쓰였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어떤 초현실적 환상들은 뇌의 문제로 인해 찾아온다. 그리고 큰 고통은 보통 뇌의 문제를 유발하며, “기이한 일을 겪은 인간의 내면은 기이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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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냥과 풋사과
단요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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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위로는 따듯한 희망이 아니라 짜증나는 고통의 형태로, 아주 길고 지루하며 지저분한 삶의 형태로 찾아온다. 도무지 쉽게 설명될 수 없고 설명하려면 다듬어야 하는데 다듬는 순간 원본을 잃어버리는 경험이 있다. 그것의 맛은 떨떠름하고 시큼하지만, 누군가는 바로 그것을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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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 이 좋은 걸 이제 알았다니 구픽 콤팩트 에세이 6
남유하 지음 / 구픽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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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호러 작품을 섭렵한 호러 (겸 로맨스) 작가의 가벼운 장르 소개서. 그리고 작가 본인의 호러 덕질 역사서. 어린 시절 인형을 토막내서 친구들에게 대접하고, 해부하던 물고기를 먹어보라며 내미는 모습을 보며 이 정도 되어야 호러 작가를 하나 생각했다(농담임). 좋은 작품 추천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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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크 손 현대문학 핀 시리즈 장르 2
단요 지음 / 현대문학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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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에서 나온 단요 작가의 신작 «케이크 손»을 읽었다.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을 남들보다 빨리 접한단 사실이 참 기쁘다. 가제본 도서를 제공해주신 현대문학 출판사에 감사드린다. 아래로는 간단한 서평을 남긴다.

이렇게 물어보자. 마지막으로 남을 착취한 적은 언제일까? 언뜻 생각해 보면, 아마 없는 것 같다. 나는 그냥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있고, 남을 착취씩이나 했다고 말할 만큼 누리는 것도 없다. 그저 매일매일 주어진 삶을 감당해나갈 뿐이다. 그러니까 나는 착취자가 아냐, 그런 생각이 든다.


하지만 삶의 달콤한 면은 반드시 누군가의 고통과 희생을 바탕으로 한다. 어떤 가치를 저울에 달면 그 반대편 접시에는 필요한 비용이 놓이기 마련이다. 필연적으로 그 비용을 감당하는 누군가가 있다. 잘나가는 학생 무리는 소심하고 약한 학생들을 개처럼 갖고 놀고, 깔끔하게 정돈된 아파트 단지와 고가도로 뒤편에는 길에서 치워진 것들이 모인 원룸촌이 자리하며, 형에게 생활비를 받는 남자는 위협과 모욕을 감내한다. 당연히 나와 당신이 누리는 모든 좋은 것의 명세에도 그 가격이 붙어 있는데, 우리는 어떤 것은 기꺼이 지불하지만 어떤 것은 못 본 척 눈을 감고 지나친다.

편모 가정에서 방치되어 자라는 중학생인 ‘나,‘ 현수영도 현실의 어떤 값어치에서 눈을 돌린 사람이다. ’나‘는 사람의 마음을 잘 이용하는 부잣집 아가씨 안혜리의 “남편”이자 “애완견”으로 지낸다. ‘나’에게 안혜리는 (부모 대신) 사람처럼 먹고 씻고 말하는 법을 알려준 은인이고, 여기에 ’내’가 지불하는 비용은 폭력이다. 안혜리 무리가 괴롭히는 아이들을 그들 대신 때리거나, 어떤 괴롭힘을 기꺼이 묵인하거나. ‘나’는 묘한 죄책감을 느끼지만 눈을 감는다. 그 비용이 가져다주는 가치가 너무나 달콤하므로, 이는 쉽게 정당화된다. 하지만 ‘내’ 앞에 케이크 손 남자가 나타난다.

남자는 손에 닿은 생물을 케이크로 만들 수 있다. 미다스 왕의 황금처럼, 남자에게 케이크는 저주의 산물이다. 그는 하던 일을 관두고 원룸촌에 틀어박힌 채 폐인처럼 살아가다가, ‘나‘의 삶에 들어온다. ’나‘는 남자에게 과외를 받고 안식처를 제공받는 대신 그의 말상대가 되기로 한다. 그렇게 한동안 둘은 서로의 저울에서 모자란 것을 채워준다. 남자는 사회적 쓸모가, ‘나’는 집에서 떠나 머물 장소가 필요하므로 이 거래는 양자에게 만족스럽다.

반면 저울의 균형은 아슬아슬하다. 두 사람 모두 다른 사람과 자신의 저울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남자의 사촌 형이, 혹은 안혜리가 조금만 움직여도 ‘나’와 남자의 관계는 흔들린다. ‘나’는 안혜리의 “거룩함”에, 남자는 사촌 형이 제공하는 생활비에 빚지고 있다. 두 사람이 빚을 갚을 방법은 내가 아닌 다른 무언가에 폭력을 행사하는 것뿐이다. 남자는 케이크 장사를, ‘나’는 공부를 하려는 생각도 있지만 어쩐지 요원하다. 두 사람의 삶은 자꾸만 세상과 어긋난다. 이런 어긋남의 이유는 우리 마음 속에 있다.

우리는 달콤한 것을 누리고자 하며 쓴 것을 뱉고 싶어 한다. 예쁘고 아름다운 것, 정돈된 것, 좋은 것들을 사랑한다. 반면 추하고 못생긴 것, 더러운 것, 나쁜 것들을 미워한다. 그런데 무언가 “선하고 아름다운 것“이 있으면 그 반대편에는 “나쁘고 더러운 것” 또한 있다. 세상의 균형은 좋은 것의 반대항에 나쁜 것을 가져다놓는다. 드높이 선 빌딩이 있다면 원룸촌이, 일진이 있다면 찐따가, 부유함이 있다면 가난함이 있다. 어느 하나만을 잘라다놓고 구경하거나 소유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허나 그러고자 하는 마음이 우리 모두의 안에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만을 받아들이고자, 그러지 않은 부분은 잘라내고 무시하려는 마음. 보기에 만족스럽지 않은 것은 세상 바깥으로 밀어서 치워버리려는 욕망. 노숙자가 눕지 못하도록 벤치에 펜스를 박아넣고, 인정하기 불편한 사실은 없는 일로 만들고, 귀여운 애완동물은 좋아하지만 지저분한 가축은 싫어하는 태도.

만일 내가 이렇게 잘리고 밀려나는 부류의 인간이라면, 그래서 세상과 불화할 수밖에 없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내게 달린 빚을 갚아야 하는데, 갚을 수가 없다면? 그럼에도 나 또한 달콤한 것을 누리고 싶다면?

결론이 마련된 질문은 아니지만, 상상해볼 수는 있을 것이다. 상상하려 한다면, 단요 작가의 정교한 꿈을 따라가며, «케이크 손»을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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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브 (반양장) 창비청소년문학 111
단요 지음 / 창비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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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가 인간인가? 인간의 조건을 엄밀히 정하는 일이 중요한가? 그 조건이 결정된다면,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는 존재가 나타났을 때, 그의 의사는 조건에 따라서만 존중받아야 하는가? 조건에 맞지 않는 존재라면 존중받지 않아도 되는가? 그런 의문을 던지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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