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기도
안토니 블룸 지음 / 가톨릭출판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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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과 가장 가까우면서도 이질적인 종교인 정교회는, 정교회라는 이름에서부터 뭔가 보수적이고 타협 불가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그리스도의 사상과 사도들과 교부들이 지닌 정수를 오롯이 지켜가는 느낌을 갖게 하는 반면, 가톨릭은 말 그대로 보편적인 종교로서 세상 모든 것을 하느님 아래 피조물로써 포용한다는 너그러운 느낌을 갖게 한다. 그리고 정교회는 은자적인 느낌이나 수도자적인 느낌이 강한 반면, 가톨릭은 제도화된 집단으로서 반듯한 회사원의 느낌이 더 강하게 든다. 사실 따지고 보면, 본래 하나였던 것에서 생각과 입장의 차이로 갈라졌을 뿐 하느님에 대한 사랑에는 차이가 없다. 표현 방식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가치인 기도라는 행위에 있어서도, 약간의 차이가 보인다.

이 책은 모두 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장에서는 기도의 목적에 대한 것으로 시작하여, 가장 완벽한 기도인 주님의 기도, 그리고 기도를 드리는 태도와 자세에 대한 방법의 순서로 짜여져 있다. 그 중에서 6장의 예수 기도와 8장의 침묵의 기도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주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아드님, 죄인인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Kyrie Eleison

예수기도

꽤 오래 전 『이름 없는 순례자』를 읽었을 때, 정교회의 기도 방식과 기도에 대한 그들만의 이해를 접할 수 있었다. 정교회의 정수가 잘 담긴 '예수기도'를 처음 접했을 때의 신선한 충격을, 이번에 읽은 『살아 있는 기도』에서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은 기도의 본질에 대해서, 기도의 주체인 각자가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계속해서 생각하게 한다. 이 점이 이 책이 지닌 가장 큰 매력이다. 저자인 블룸 신부님이 말하고자 하는 기도란, 기도를 받으시는 하느님과 기도를 드리는 사람과의 소통이다. 소통이지만, 조금은 다른 소통이라서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 이유는,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기 위해 그분과 소통해야 한다는 점이다. 내 뜻을 그분에게 전한다기보다,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들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해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8장의 '침묵의 기도'에서는, 기도에 방해가 되는 마음인 자만심에 대한 해석이 와닿았다. 자만심에서 시작된 내적인 상태에 대한 논리적 전개는 이 책의 내용 중 백미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만심은 가치가 없는 것을 찬양하는 것이며,

자신에 관한 판단, 결과적으로는 삶에 대한 태도를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이의 의견에

의존하는 것입니다.

본문 166페이지 중

내면에 자만심이 가득하다면, 이런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는 건 기도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 또한 하느님의 뜻을 저버리며,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에서도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다. 저 문장에서 언급한 '가치가 없는 것을 찬앙하는 것'에 매몰된 사람이라면, '가치가 있는 것을 찬양해야 하는' 일에 관심을 둘 리가 없기 때문이다. '가치가 있는 일'은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자 이웃에 대한 사랑이니, 저 자만심이라고 하는 내면의 적과의 싸움이야말로 참된 기도의 관건이 아닐 수가 없다.

자만심을 없애는 건 자신의 나약한 상황을 인지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부끄러운 마음 '수치심'을 인지하고 드러낼 때 극복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겸손한 마음으로 이어진다. 겸손에 대한 해석도 탁월하다.

기본적으로 겸손은 하느님의 심판 아래 끊임없이

머무르는 사람의 태도를 말합니다.

본문 170페이지

내적인 수련은 내면을 강하게 해준다. 하느님의 뜻을 올바르게 들을 수 있게 해준다.

난 이 책을 통해,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정교회가 지닌 은자적이고 수도자적인 태도의 지향이, 내가 평소 생각하던 그리스도인의 삶과 상당히 맞닿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수도자들은 그리스도 이외의 것에는 가치를 두지 않는 고고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청빈에 대한 의미도 지닌 사람들이다. 속세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거의 차단을 하고 사는 사람들. 하지만 나는 속세에서 산다. 그럼에도 늘 주님을 바라보려고 한다. 어설프긴 해도 기도를 드리고 있다. 이젠 기도의 순간마다, 주님을 떠올리려 해야겠다. 그리고 긴 기도보다는, 무겁고 진지한 마음으로 예수님의 이름을 불러보려 한다.

올해가 저무는 시점, 내게 있어 가장 중요한 가치는 예수의 이름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얻게 해준 고마운 책이다.

사실 사람들에게 주어진 이름 가운데에서

우리가 구원받는 데에 필요란 이름은

하늘 아래 이 이름밖에 없습니다

사도행전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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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과 함께 준비하는 고해성사
교황청 내사원 지음, 고준석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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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강론이나 연설, 글을 모아 질의 문답 형식으로 구성한 책이다. 이책을 지은이는 교황청의 내사원이라는 기관인데, 많은 이들에게 용서를 베풀 수 있도록 자비를 베푸는 기관이다. 그래서 '자비의 법원'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책의 구성은 1장과 2장 그리고 부록으로 짜여져 있는데, 먼저 제1장에서는 고해의 정의, 죄에 대해 바르게 고백하는 방법, 고해에 대한 질의 응답으로 구성돼 있다. 제2장에서는 통회의 기도와 스스로 양심을 살피는 방법 등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부록인데, 고해 사제들에게 당부하는 교황님의 전언으로 구성돼 있다. 사실 난 부록 부분이 가장 마음에 와 닿았다. 고해 사제들에게 하시는 당부의 말씀은, 곧 일반 신자들에게 "우리 사제들은 모두 한 마음으로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음 놓고 고해하세요."라는 메시지로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고해에 대해 늘 막연한 두려움과 고해로 얻게 될 효용성에 대해 늘 부정적인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고해소에 발을 디디기까지, 아니 고해를 하러 가기까지의 과정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해를 할 때마다 거의 비슷한 내용으로 고해를 하는 나 자신을 보노라면, 과연 고해의 기능이 올바르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회의를 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은 무한한 사랑으로 용서해 주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님께서는 결코 지치지 않고 용서를 베푸십니다.

오히려 우리가 그분께 용서를 청하는 것을

피곤해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치지 않고 용서를 청할 수 있는

은총을 청해야 합니다.

본분 45페이지

그리고 정말 중요한 사실인데 자주 잊게 되는 사실도 되새길 수 있었다. 늘 주님의 기도를 드리지만, 실상 기도를 통해 내가 원하는 것만 부지런히 바랄 뿐이지, 누군가에게 베푸는 것에 대해 인색한 나는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그건 남에 대해 이해하고 용서하는 데에 인색했다는 점을, 책을 읽으면서 돌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주님의 기도

용서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무한히 베풀어 주시는 무한한 은총이며, 내가 타인에게 무한히 베풀 수 있는 은총이기도 하다. 이 문장을 종합하면 '용서는 곧 은총이다.'라는 명제를 도출할 수 있다. 고해는 내가 솔직히 주님에게 고할 때, 내가 고한 것만큼 용서를 통해 은총을 얻는 계기가 된다. 큰 은총을 마다하는 바보는 없다. 용기를 내서 고해소를 향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마지막 장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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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이 된다는 것 -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
안셀름 그륀 지음, 황미하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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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으로서 인간에게 해줄 수 있는 것 중 가치있다고 여기는 것들을 생각해 보자. 축하나 격려가 있고 용서와 화해도 있다. 그리고 위로 또는 위안이 있다. 이 가치들은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어려운 것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 이를 표현하는 사람은 드물고 나 또한 그렇다.

이 중에서도 위로는 참 어려운 듯하다. 신자로서 위로할 때는 으레 "기도하세요."라든가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라는 건 가장 낮은 위로라고 그륀 신부님은 지적한다.

위로는 언어적으로든 비언어적으로든, 인간이 인간에게 베푸는 훌륭한 행위이다. 누군가 상처로 울고 있거나, 삶의 끝자락에서 생과 사를 다투고 있는 순간에 그를 구해낼 수 있는 행위이다.

이 책에서는 위로의 다양한 방법과 모습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최고의 위로자를 알고 있다. 바로 예수님이다. 그분은 위로가 필요한 이에게 다가가주었고, 이야기를 말없이 들어주었다. 아픈이나 죽음을 앞두고 있는 이들에게는 묵묵히 그 슬픔을 나누시고 함께 해주셨다. 그 위로는 사랑을 기반으로 한 위대한 행위였고, 2천 년이 지난 지금은 기적처럼 빛나고 있다.

한해가 저물어 가는 지금, 누군가에게 위로가 필요한지 생각해 보자. 또한 그동안 베푼 위로가 참된 위로였는지 성찰해 보자. 그리고 예수님의 모습을 떠올리며 이웃과 친구에게 다가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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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이 된다는 것 -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
안셀름 그륀 지음, 황미하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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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있어 가장 힘든 것 중 하나가 위로인데,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려운 위로의 적절한 방법을 편안하게 제시해주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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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령에 사로잡히다
마시모 첸티니 지음, 김희정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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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출판사에서 출간한 악마 시리즈의 세 번째 책인 『악령에 사로잡히다』를 접했다. 이 책이 나오기 전에 읽었던 『악마는 존재한다』, 『구마 사제』를 통해 악마의 존재에 대해 나름 확실히 알 수 있게 되었고, 그 존재의 위험성을 깊이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나를 지키기 위해 예수님께 더 의지해야 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명료한 생각이 깊게 자리잡게 되었다.

앞의 두 책에서는 악마는 늘 우리 곁에 있다는 사실과 악령에 시달린 사람들에 대한 실화, 그리고 악령을 이겨내기 위한 것들을 다룬 것이라면, 이번에 접한 『악령에 사로잡히다』는 악령에 사로 잡힌 다양한 예시들을 구분하여 분석적으로 제시한 책이다. 엑소시스트 영화와 같은 그런 스산함을 기대한 사람에겐 다소 실망일 수도 있겠지만, 부마(악마 들림)에 대한 객관적 제시는 나 자신에 대한 내적 진단과 아울러 타인에 대한 태도에 대한 지침이 되어주었다.

부마의 기원은 인류의 역사와 비례한다. 하느님을 모르고 살던 사람들에겐, 강력한 영적 존재가 필요했다. 변화 무쌍해 보이는 자연에 대해 저항할 수 있는 힘이라고는, 하늘에 절하고 비는 게 전부였던 선사시대와 고대의 사람들로선 최선이었다. 그들이 악령을 맞이한 이유를 주목해 보자. 자신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믿었다는 점은, 선사시대의 인간과 현대의 인간과 다를 게 없다. 바로 이런 점으로 인해 현재에도 부마된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부마된 유형들이 각양각색이긴 하나, 그런 것들을 일렬로 관통하는 것은 인간의 어리석은 욕심이 개입되어 있다. 내게 이롭다는 것에 대해 숙고하지 않은 채로, 남들보다 우월해 보이고 싶은 마음과 화려한 것에 넋을 잃는 모습들은, 언제든 악마를 맞이할 수 있다는 빌미를 제공하게 된다.

그리고 부마된 사람들을 다룬 엑소시즘 영화에서처럼, 인간이 악마처럼 무시무시한 모습을 지니고 있을 때만 부마된 것이 아니란 것도 새삼 깨달았다. 악마의 뜻을 생각해 보자. '참소하는 자, 훼방 놓는 자, 마음을 악하게 하는 자' 등 여러 해석들이 있지만, 간단히 정리해보면 '하느님과 인간의 사이를 멀어지게 하는 자'로 요약할 수 있다. 하느님이 하지 말라고 한 것들을 하고 있다면, 그 또한 부마된 자로 볼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평소 아무렇지도 않게, 남을 비방하고 험담하던 내 모습이 스쳤다. 악마가 좋아하는 일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하고 있던 내 모습을 반성하고 바꾸지 않는다면, 정말 큰 화를 입을 것만 같다.

이 책을 읽으면 기도를 드리고 싶어진다. 내 영혼을 위한 기도와 나쁜 마음을 먹고 있는 누군가를 위해서.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그리고 자기 형제에게 ‘바보!’라고 하는 자는 최고 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

마태오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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