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게네스에게 영성을 묻다 - 영성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윤주현 지음 / 가톨릭출판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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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현 신부님께서 2년만에 영성에 대한 두 번째 책을 내셨다. 이젠 시즌별로 '영성 시리즈'를 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2년 전에 윤 신부님께서 쓰신 『영성, 하느님을 바라보다』를 인상 깊게 읽었던 터라, 영성에 대한 이해와 개념을 잘 간직하며 살 수 있었다.

이 책의 테마, 그리고 이 전의 책의 테마는 공통분모는 '영성'이다. 1권에 해당하는『영성, 하느님을 바라보다』는 영성에 대한 입문서라면, 2권에 해당하는 이번의 책은 심화편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렇다면 먼저, 윤 신부님께서 두 권에 걸쳐 다룬 이 영성은 무엇일까? 윤 신부님이 쓰신 『영성, 하느님을 바라보다』의 내용을 추려보면,

하느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성을 표현한 것으로서,

구체적으로는 우리 각자를 향한

하느님 사랑에 대해 우리 각자가

그분께 드리는 고유한 사랑의 표현 방식...

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 내용을 한 문장으로 줄이면

영성은 하느님을 바라보는 것

으로 정리할 수 있다.

책의 이름에 등장하는 오리게네스 성인은, 교부학자로서 가톨릭 교리의 초석을 닦은 인물이다. 위대한 신학자나 성인들은 셀 수 없이 많은데, 왜 하필이면 오리게네스 성인을 다뤘을까. 이 성인의 삶이 영성을 키워가는 전형으로 딱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육체와 정신을 지닌 존재다. 둘 중에 어느 것이 중요하냐고 묻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간의 학습효과를 반영하듯 '정신'이 중요하다는 대답을 하곤 한다. 그런데 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의 삶을 보노라면 육체를 위한 삶을 사는 경우가 허다하다. 경제활동을 하는 주체도 육체이며, 그리고 그 육체를 돋보이기 위해 소비를 하고 시간을 보내는 것도 사실이다. 그것뿐인가? 유튜브나 인터넷으로 접하는 수 많은 컨텐츠도 단말적인 즐거움을 주기 위한 것들을 접하며 시간을 보내기 일쑤이다. 실제로는 육체를 더 아끼면서, 대답과 생각은 정신이라고 하는 것이다.

영성을 키우는 것은 정신과 육체의 조화를 이끌어, 삶을 살 수 있게 하며 세상에 모습을 드러나게 만드는 육체를 가꾸는 일이다. 또한 육체를 기능하게 만드는, 육체를 제어하는 정신도 가꾸는 일이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이기 때문이다.

내적인 부분, 즉 정신과 영혼에 대한 보살핌과 수련의 방법은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것, 그리고 인문서를 읽으며 사유하며 고찰하는 것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리고 외적인 부분, 신체에 대한 보살핌과 수련의 방법은 내적인 부분의 수련을 통해 얻은 지식과 지혜를 통해 육체의 욕구를 제어하며 절제하는 것으로 이룰 수 있다. 오리게네스 성인은 그렇게 살았다.

오리게네스 성인의 생각을 잘 담은 부분은 광야에서의 40년간의 생활이다. 이스라엘인들이 모세의 영도로 광야에서의 40년은 내적인 수련과 외적인 수련을 도모한 중대한 사건이다. 40년이란 시간은, 현대의 인간에게도 의미가 있다.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할 시기이며, 인간이 지닌 모든 기능이 성숙해질 시기이다. 인간의 나이 40세는 그런 의미가 있고, 광야에서의 40년도 그런 의미가 있다.

신앙의 여정은 삶이라는 사막을 거치며

하느님의 신비를 끊임없이 발견해 가는

여행과 같습니다.

우리는 그 삶 속에서 수많은 만남과

사건을 통해 끊임없이

신앙의 도전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본문 175페이지 중

영성을 키워가는 삶은, 하느님의 모상인 인간이 하느님처럼 살기 위한 과정이다. 시간으로 표현하면, 인생이라는 긴 시간이 적당하다. 단편적으로 기간적으로 정해둘 수가 없다. 늘 살면서 쌓아가는 수덕의 과정이라고, 윤 신부님이 본문에 적으셨는데 난 이 말에 적극적으로 동의한다. 수덕이란, 정신과 육체과 조화를 이룬 상태에서의 행위들을 뜻한다. 욕구와 욕망을 절제하며 옳은 가치를 추구하는 삶이 수덕이며,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 하느님에게 더 가까워지는 삶이다. 인간은 언젠가, 하느님의 곁에서 그분처럼 영원히 살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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