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로 간 페넬로페 콩닥콩닥 12
세마 시르벤트 라구나 지음, 라울 니에토 구리디 그림, 김미선 옮김 / 책과콩나무 / 2020년 7월
평점 :
절판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오디세우스와 페넬로페의 이야기가 기억나시나요?

오디세우스는 그 유명한 오디세이아의 주인공이자 트로이전쟁의 지략가로 이름을 떨친 영웅입니다.

그 오디세우스의 아내 페넬로페는 전쟁에 나간 오디세우스를 20년 간 기다립니다. 오디세우스가 없는 사이 구혼자들이 몰려오자 오디세우스의 아버지에게 바칠 옷(수의)을 완성하면 결혼하겠다고 핑계를 대고, 낮에는 옷을 만들고 밤에는 풀어버리는 식으로 3년이나 버티는 지혜로운 현모양처로 묘사되어 있지요.

남편이 비록 엄청난 고생을 하긴 하지만 20년 간 영웅으로서 추앙받고 자신의 꾀를 뽐내며 활약하는 동안 (심지어 중간에 다른 여자와 아이까지!) 페넬로페는 작은 방에서 옷을 지었다 풀었다 반복하며 오디세우스를 기다릴 뿐입니다. 그 기다림 끝에 얻은 건 정숙한 여인이라는 칭호입니다.

과거의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현재 시각으로 보면 눈에 차지 않지만, 페넬로페의 기구한 운명을 남편 만났으니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하기에는 참 찝찝합니다.

그런 페넬로페가 현대를 살아가는 여성이라면 어땠을까라는 상상 끝에 만들어진 멋진 그림책이 나왔습니다.

거친 연필 선으로 그려진 삽화가 족쇄를 벗어던지는 페넬로페의 마음을 더 잘 표현해주는 듯 합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기다리라고 합니다.

기다리는 동안 페넬로페는 창밖의 세상이생각보다 크다는 걸 알 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페넬로페가 여자이기에 뜨개질을 가르쳐 줍니다.

하지만 새로운 페넬로페는 남편에 대한 정조를 지키기 위해 옷을 짓는 대신 그물을 만들었습니다.

여자는 말하기보다 들어주어야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페넬로페는 바다 깊은 곳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폭풍 후의 고요함도 빛나는 별도 페넬로페를 새로운 곳으로 이끄는 듯 합니다.

새로운 페넬로페는 남의 이야기가 아닌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따릅니다.

배운게 없는 작은 소녀인 페넬로페 혼자 감당하기에 바다는 위험하다는 사람들의 말을 뒤로 한 채,

그들이 가르쳐 주지 못한 많은 것을 스스로 알아낸 페넬로페는 혼자 힘으로 노를 저어 바다로 나아갑니다.

오래 이어져 내려오는 이야기들을 어른이 된 지금 곱씹어 보면 기가 찬 부분이 많습니다.

그때는 그때의 사회적 관념이 있는 거지만, 답답한 부분은 그 고리짝 관습이 아직도 이어져 내려와 세상을 향해 나아가려는 여자들의 족쇄가 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옛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풀어 낸 이야기가 더 반갑게 느껴집니다.

"여자는 얌전해야해. 정숙하게 남편을 따라야지. 가정과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여성으로서 최고의 보람이야."

이런 생각 아래 쓰여진 글을 읽고, 이야기를 들으며 자라는 동안 우리는 저도 모르게 세뇌됩니다.

나를 위해 무언갈 하려면 죄책감부터 느껴야 하는 페넬로페들.

하지만 이 책의 페넬로페는 그런 족쇄를 벗어던지고 바다로 나아갑니다.

정해진 길도 없고,

표지판도 없으며,

언제 풍랑이 닥칠 지 모르는 바다로요.

그 위험한 바다에서 매 시간 매 초 겪는 수많은 경험은 다시 더 단단한 페넬로페를 만들어 줄테지요.

바다 위 페넬로페는 한없이 작은 점입니다.

우리는 그 작은 점에 집중하고 잘 보이지도 않는 페넬로페의 뒷모습을 응원하며 책을 덮게 됩니다.

페넬로페는 바다에서 역경과 고난을 만날지도 모릅니다.

어느 날은 거친 풍랑과 큰 암초에 결국 배가 전복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미 한 번 스스로 노를 저어 바다로 나간 페넬로페는 그 고난조차 극복하고 또다시 새로운 세상을 찾아 나설겁니다.

나를 구속하는 목소리들은 내 삶을 대신 살아주지 않습니다.

내면의 소리보다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더 집중하는 페넬로페들에게 <바다로 간 페넬로페> 속 새로운 페넬로페의 메세지가 가슴에 와 닿았길 바랍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