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거리 양복점 웅진 우리그림책 50
안재선 지음 / 웅진주니어 / 2019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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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볼로냐 라가치 상 오페라프리마 부문 스페셜 멘션 수상

변치 않는 가치와 장인 정신에 대하여

가업을 잇는 게 당연했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가업을 잇는다면 TV에 나오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돈이 되는 기업이나 건물주 정도가 아니면 이제 가업을 잇는 건 부모에게도 자식에게도 매력적이지 않은 제안입니다.

그러다 보니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는 눈썰미와 노련한 기술이 한 세대가 지나면 끊기고 맙니다.

부랴부랴 국가에선 전통이 잊히지 않기 위해 이런저런 정책을 펼치고 있으나, 찾아주는 이 없고 계승하려는 이 없어 명맥이 유지되기 힘들어 보입니다.

서울시는 30년 이상 운영된 가게나 2대 이상 계승해서 운영되는 무형문화재 지정자가 운영하는 공방을

<오래가게>로 선정하여 <오래가게 가이드북>을 만들고 있습니다.

오래가게들 중 유독 눈에 띄는 가게이자 오늘 리뷰할 [삼거리 양복점]의 주인공은

105년째 3대가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종로의 <종로양복점>입니다.

저렴하고 빨리 얻을 수 있는 '레디메이드' 상품이 쏟아지고, 맞춤을 하려 해도 대부분 백화점으로 향하는 이때,

줄자로 잰 치수로는 알 수 없는 고객의 양 어깨 높이 차이까지 눈여겨본 후 양복을 만드는 '장인'

오래된 것, 전통을 지키는 것 등에 관심이 많은 안재선 작가가 세계 여러 나라의 100년 된 가게들 중에서도 종로 양복점이 왜 작가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알 수 있네요.

                                

1916년, 다들 양복이 낯설기만 한 시기에 개업해 맞춤양복의 전성기를 지나 기성 양복이 대중화되는

3대에 걸친 양복점 주인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100여 년에 걸친 격동의 한국 근대사까지 담담하게 그림책에 담겨 있습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양복점 주변이 바뀌는 과정과 양복점을 찾는 사람들의 바뀐 행동과 모습을 살펴보는 것도 빠질 수 없는 묘미입니다.

양복을 만드는 소품들, 주변 환경, 찾는 사람, 적용하는 옷감과 기술도 시대에 따라 변하지만

변치 않는 것은 수백 번의 가위질, 수천수만 땀의 손바느질로 이어진 양복을 만드는 사람의 정성입니다.

                                

앞표지와 뒤표지 부분에는 이렇게 처음 개업했을 때와 105년이 지난 지금의 삼거리 양복점 주변의 모습이 그려져 있답니다. (실제로는 2000년대 이후 2번 가게를 옮기셨다고 합니다.)

                                

아이와 어떤 것이 바뀌고, 어떤 것이 바뀌지 않았는지 비교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요즘 복고, 레트로, 개성 찾기가 유행하면서

맞춤 제작 물건들과 노포 가게가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 살던 동네에 갔을 때 변치 않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가게를 보면 괜스레 행복해지고

나에게 맞춰진 하나뿐인 물건을 보면 즐거워집니다.

맞춤은 비싸기만 하다, 오래된 가게는 허름하고 시대에 뒤처진다는 편견에서 벗어나 다시 주목받고 가치를 인정받는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낍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택배가 하루 만에 오는 시대에

맞춤 제작 물건을 몇 주 동안 기다리며 설레고

오래된 가게에서 추억을 더듬는 안락함을 느낄 수 있는 감성이 남아있어 다행입니다.

삼거리 양복점은 앞으로도 계속 변화를 거듭하게 되겠지만,

양복 안에 녹아든 장인정신과 정성은 여전히 이어져 나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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