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광장 사막
이광호 지음 / 별빛들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쉽게 읽을 수 있는 우화집이지만 쉽게 페이지를 넘길 순 없는 이광호작가의 우화집

<숲 광장 사막>입니다.

표지는 숲과 사막, 그리고 만나는 곳을 표현한 것이라고 하네요.

81개의 단편우화가 실려있는데, 이야기 하나하나마다 특별한 울림이 있습니다.

젊은 작가가 이런 이야기를 어떻게 다 생각했을까...? 할 정도예요.

                                

지면에 비해 활자를 좁게 배치한 이유는 <우리 모두에겐 좁고 작은 틀이 숨겨져있다>라는 의도라고 합니다.

81개의 이야기 모두 커다란 질문을 던져주지만, 그 중 몇 가지만 소개해보겠습니다.

<매미>

옛날에 내가 나무에 붙어살았을 때, 이르게 나온 매미 한 마리를 보았다. 나무는 매미에게 왜 이렇게 일찍 나왔으냐 물었고 매미는 자랑스러운 듯 우수했던 자신의 애벌레 시절을 이야기했다.

그의 이야기는 자만심으로 가득했지만 존경할 만했고 3년의 애벌레 시절을 거쳐 다른 애벌레들보다 일찍 매미가 된 그를 향해 나무는 아낌없이 박수를 쳐주었다.

이르게 나온 매미는 다음 날부터 짝을 찾기 위해 밤낮으로 소리 높여 울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가 다른 매미들에 비해 지나치게 일찍 나왔는지 다른 매미들의 모습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고 늘 이르게 나온 매미의 울음소리만이 메아리칠 뿐이었다.

유일한 그의 울음소리는 처음엔 강렬하고 활기찼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외롭고 고독한 소리로 변해갔다.

한 달이라는 시간밖에 살지 못하는 그의 사정을 알고 나서부터는 그의 울음소리가 절규의 소리로 들리기까지 했다.

어느덧 한 달째가 되었으나 다른 매미들은 여전히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결국 이르게 나온 매미는 짝을 찾지 못했고 매미로서의 일생 동안 울기만 하다가 외롭게 죽고 말았다.

그가 죽은 다음 날, 여름은 매미들의 울음소리로 가득했다.

TV를 보면 늦은 나이에 자수성가하신 분들이 참 많이 나와요.

대부분이 "젊을 때는 고생하다가 이제야 좀 삶이 나아졌어요."라고 하곤 하시죠.

반대의 경우도 나오죠?

"젊을 때는 남부럽지 않게 살았는데, 지금은 한 순간의 실수로 삶이 너무 힘듭니다."

어떤 삶을 살게 되는 지는 삶의 초반에 결정되는 것이 아닌데, 학창시절부터 경쟁구도에 내몰린 우리는 10대부터 달립니다. 남들보다 우위를 선점해야 안심되니까요.

'난 쟤보다 좋은 대학에 갔으니까, 더 성공할거야'

'난 남들보다 먼저 취직했으니까. 성공했구나.'

확실히 처음 길을 잘 닦아 놓으면 유리한 건 사실입니다.

그러니 나보다 더욱 오랜 삶을 살아온 부모님들이 기를 쓰고 내 아이 공부 시키려는 거 아니겠어요?

그러다보니 남들보다 조금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삶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걱정이라는 탈을 쓰고 쉽게 얘기하곤 하죠.

"재수한다고? 누구는 어디를 갔다는데!"

"취직은 언제할거야? 자격증은 따고 있어?"

"이 시기에 휴학하고 뭐할건데! 여행? 여행갔다오면 니 나이가 몇이야! 그때 취직이 되겠어!"

"일을 그만둔다고???? 그만두고 뭐할건데, 너 여기서 더 나이먹으면 다른 회사에서 안 뽑아줘."

"결혼은 언제 할거야~ 애는 언제 낳을거야~"

남들보다 일찍 시작하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는 것도 좋지만, 긴 인생에서 내 삶이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잖아요?

일찍 안정된 것 같아 자만심을 가지기 시작하면 주변 사람들이 떠나가는 건 시간문제겠죠.

반대로 남들보다 조금 늦게 시작해도,

거기에 기죽고 초라해진다면 오던 기회도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대학 인생에서 보면 그 짧은 4년도 중간에 얼마나 일이 많나요.

재수해서 들어온 사람들이 더 일찍 졸업하고 더 좋은 직장가고, 현역으로 들어와도 중간에 일 생겨서 휴학하고 방황하고

백년 가까이 두고봐야 하는 인생에서 지금 남들보다 일찍 혹은 조금 늦게 시작했다고 동요할 필요 없습니다.

<결정권>

악어새가 말했다.

"악어님, 저 이번 주까지만 일하고 그만둘게요."

그러자 악어가 말했다.

"안 돼, 가뜩이나 요즘 일손이 부족한데 갑자기 그만둔다니 무슨 소리야. 조금만 더 일해줘."

악어새는 용기 내어 악어에게 말했지만 악어에게는 통하지 않았고 악어새는 악어를 설득할 다른 방법을 생각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악어새가 말했다.

"악어님, 저 몸이 안 좋아서 이번 주까지만 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자 악어가 말했다.

"몸이 좋지 않으면 며칠 쉬고 와, 휴가를 줄 테니까. 조금 더 일하기로 나와 약속했잖아."

악어새가 일을 마치고 떠나자 하마가 악어에게 다가와 말했다.

"쟤는 왜 자기 인생의 결정권을 네게 넘긴 거야?"

그러작 악어가 웃으며 말했다.

"나도 잘 모르겠어."

세상엔 못된 사람 참 많은 것 같아도 착한 사람도 참 많아요.

거절을 못해서 남이 상처받을까봐 본인이 희생하거나

내 당연한 권리를 찾지 못하고 직장 상사한테 끙끙 앓는.

요즘 세상에선 착한게 아니라 호구라고 불리죠?

우유부단해서 남에게 결정을 미루는 것이 아닌,

자기도 모르게 남을 지나치게 배려하거나 혹은 미움받을까봐 결정권을 남에게 넘기곤 합니다.

그런데 살아보니, 남을 지나치게 배려하는 것보다

논리를 가지고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게 훨씬 나도 편하고, 남들도 나를 편하게 대합니다.

자기결정권을 자기가 갖지 못한 지나치게 배려하는 착한 사람은 남들이 편하게 대하는 게 아니라 만만하게 봅니다.

물론 직장에서는 쉽지 않죠.

근데 직장에서 할 말 하고 살거나 중요한 순간에 말을 삼키지 않는 사람들이 (막말말고) 더 능력있지 않던가요?

거절과 거절당함을 무서워하지마세요!

<진실, 거짓, 믿음>

해변을 걷던 진실은 푸르고 청량한 바다에 반해 바다에 들어가길 원했다. 하지만 바다는 이미 자신 안에 진실이 들어와 있다며 진실을 거짓 취급했다.

진실은 자신이 진실이라며 억울해했고, 지금 당신 안에 있는 것이야말로 거짓이라고 큰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바다는 자신 안에는 거짓이 들어올 수 없다고 화를 내며 진실에게 파도를 뿌렸다.

화가 난 진실은 집으로 돌아와 자신의 사진과 거짓의 사진을 챙긴 뒤, 다시 바다를 찾아가 말을 걸었다.

"이봐! 바다, 여기 진실인 나의 사진과 네 안에 있는 거짓의 사진이 있어, 어때? 이 사진을 보니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분간이 가지?"

사진을 본 바다는 다시 한번 파도를 진실에게 뿌리며 말했다.

"어이! 거짓, 그깟 거짓 사진이 내게 통할 거라 생각했나? 얼마나 더 파도를 맞아야 정신을 차리겠는가! 썩 물러가거라 거짓아."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진실이 바다를 향해 분풀이로 돌을 던지려는데 그 순간 바다에서 믿음이 나와 고개를 들고 비웃었다.

그제야 진실은 자신의 적이 거짓이 아니라 믿음이라는 것을 알았다.

진실의 적은 거짓이 아니라 믿음이다.

이 시국에 딱 들어맞지 않나요?

코로나 기사를 보면 서로 귀막고 눈감은 정치댓글로 가득하고 우리나라에 코로나가 확산된 가장 큰 원인인 신천지도 믿음이 바탕인 종교니까요.

예전에 타진요 사건 아시죠?

아무리 타블로가 진실과 팩트를 들이밀어도 자신의 주장을 더 믿고 따르며 욕하던 사람들.

중세시대에 마녀사냥으로 몰려 화형당한 여자들.

거짓이나 정확하지 않은 얄팍한 지식이 믿음과 신념이 되는 순간, 진실을 아무리 들이밀어도 깨지지 않는 견고한 벽이 되어버립니다.

내가 틀렸다는 걸 인정하기 싫은 마음일까요?

믿음이 견고할수록 그 믿음이 깨질 때 사람까지 같이 무너져내려버립니다.

그게 전부가 아닌 데 말이예요.


작가님의 촌철살인 풍자가 굳어져가는 사고에 큰 자극과 질문을 던져주었습니다.

여기 소개한 우화말고도 정말 삶을 꼬집는 이야기들이 많답니다.

철학책 하나 쯤은 읽어야하는데... 무거워서 표지 넘기기 무서우신 분들...

쉽게 읽을 수 있는 쉽지 않은 책 <숲 광장 사막> 강추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