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찰은 주어지지
않는다.
주어진 환경에서 훈련을 통해 얻는
것이다.
통찰은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올바로 바라보는 것이다.
‘통찰’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일까? 대개는 많이 공부한 몇 사람만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극히 소수만 가능한 것처럼 여기는 것이다. 좋은 대학을 다니고 좋은 회사를 다니면서 쌓인 노하우인 직감을 통찰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통찰은 훈련가능하다.” 즉, 타고난 사람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통찰을 위한 훈련과 자세는 다음과 같다. ‘많이’, 그리고 ‘잘 읽는 것’이다. 또한 멀리 바라보는
것이다. 현상만 보는 것이 아니라 현상 이면에 있는 원리를 알아야 한다. 물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중력과 바람이듯 말이다. 원리를 알아야 한다.
통찰은 단순히 스킬이 아니기 때문이다. 올바른 통찰을 위해서는 잘 읽고 많이 읽어야 한다. 정립 없이 예측은 무의미하다. 제대로 통찰할 수
없다. 정보를 나열하고 통찰이라 말하지 않는다. 단순한 짜깁기를 통찰이라 말한다면, 그건 지적사기다. 이런 사기에 속지 않기 위해서는 제대로
정립해야 한다. 제대로 읽어야 한다.
또한 통찰은 읽고 예언하는 것이 아니다. 통찰은 올바른 미래예측을 하기 위함이다. 미래예측 이치를 알고 다양한 시나리오를 그리는
것이다.
미래는 예언적으로 예측할 수 없다.
미래는 연구의 대상일 뿐이다.
p.391 中
미래학자는 예언자가 아니라 미래를 연구하는 사람들이다.
미래에 대한 좋은 태도를 갖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미래의 기회와 위기의 가능성을 탐구해보려는 사람들이다.
미래를 운명처럼 정해진 곳으로 끌고 가려는 사람이 아니라
운명론에 빠져 있거나 플라톤의 동굴에 갇혀 있는 사람들을 건져내고,
그들과 함께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p.430
中
미래는 갑자기 발생하지 않는다. 현재와 연속성이 있기에 지금과 관련 있다. 지금을 놓치면 미래도 놓친다. 지금을 놓치면 미래를
쫓아가야 한다. 쫓아갈 것인가, 예측하고 기다릴 것인가. 기회는 누구의 품에 안기겠는가. 위기를 맞이할 것인가, 대비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