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 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러가겠습니다.
시인의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지던 그 시대 같았을까?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오르실 때처럼 그렇게 괴로웠을까? 희망을 노래하고 싶은데 시인이 살았던 시대는 희망을 노래할 수 없었던 시대였다. 따스한 햇빛을 쫓아갔지만 시인은 햇빛을 만져 보지 못했다. 그 햇빛에 가까워질 수 있다면 시인은 기꺼이 십자가를 등에 지고 어두운 시대를 흘러가겠다고 고백한다. 어두운 시대, 천재적인 시인은 괴로웠을 것이다. 박두진 시인은 십자가를 읽고 윤동주의 순결 정신을 가장 잘 나타내는 시라고 말하고 있다.